에드워드 호퍼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얼마나 들뜨게 기다렸는지
얼리버드 티켓 사자고 딸들을 하도 들볶아대서 딸들도 열심히 티켓팅 위해 사이트를 수시로 뒤적뒤적
꼭 할인 받겠다는 의미보다는 이 전시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미국여행 날짜를 정하면서 날짜를 한번 변경하는 수고로움까지 시켰으니
아이들이 엄마는 공주 자신들은 머슴이라며 날 놀려댄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갔는데
독서의 계절은 365 이라는 캐치플레이로 시청광장은 그야말로 야외 도서관이 되어있었다
장르별 책 부스가 있어 이 곳에서 골라 폭신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소파가 있는 곳에 파라솔이 더 있었으면 했는데
점심 먹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꽤 앉아 이제 막 시작한 여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한겨레 신문 주말 타블로이드판에 소개된 시청 뒷골목에 있다는 이 집을 찾기 위해
이 주변을 얼마나 헤매었는지...
오래된 전통의 맛과 집을 지키느라 개발되어 우뚝우뚝 솟은 주변 건물 속에 폭 박혀있어
찾기 힘들다
우리가 한자리 남아 겨우 앉았는데 먹는 동안 웨이팅 줄이 너무 길어
얼른 먹고 나와야 했다
너무나 기계처럼 뽑아내는 음식,
처음 맛본 나는 아직 참맛을 모르겠다
날짜와 시간까지 명시되어 있는 티켓팅 덕분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혼잡을 주지 않아 좋다
유명 전시회일수록 작품보다 사람뒷모습 관람이 주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터라
이런 예약시스템이 참 좋다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협업한 이번 전시회는 주요 작품이 걸린 2,3 층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드로잉이나 일러스트 작품이 전시된 1층만이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사진은 구글이나 다음에서 다운로드하여 올린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름 다 의미 있고 일관성이 있었다
이 작품의 배경을 나는 호텔의 로비에 있는 바라고 생각했는데 길 모퉁이의 술집이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자세히 보니 그렇다
술 한잔 앞에 놓고 있는 저 중절모의 남자 뒷모습에서 외로움을 찾아내기는 너무나 쉽다
그래서 다른 세 사람보다는 등 돌리고 있는 한 남자가 가장 이 작품의 중심이란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을 고대하고 갔는데 이 작품은 시카고 미술관의 시그니처 소장품이라서 대여가 안된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궁에 모셔져 절대 대여하지 않는 클림트의 작품 '키스'처럼 말이다
나는 상상한다
아름다운 숲이 있는 한적한 곳으로 엄마와 발랄한 딸이 휴가를 즐긴다
햇살이 집안으로 스미기 시작하는 느지막한 아침쯤으로 할까
아님 나른한 오후쯤으로 할까
엄마는 발코니에서 얇은 책을 잡고 자리를 잡은 반면
발랄하기 그지없는 딸은 햇살이 좋다며 겉옷을 벗어버리고 발코니 턱에 와 앉는다
엄마는 잠시 읽던 책에서 딸이 즐기는 밖의 햇살로 시선을 옮겨간다
그야말로 망중한의 스틸컷이다
어느 커플이 이 그림을 쓰윽 지나치면서 불륜인가 봐 하고 속삭인다
저 앉아있는 여인을 자세히 보지 않아 남자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미국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그림이 반갑다
뉴욕 맨해튼에서 이스트 강을 건너 브루클린으로 연결되는 다리다
아주 고풍스럽게 서 있는 브루클린 다리와 대조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의 이 다리는
푸른빛을 띠고 있어 강빛과 어울려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이 다리를 호퍼의 그림으로 만나다니 하면서 너무나 좋아라 했다
사실 호퍼가 파리에 살면서 그렸던 여러 점의 센 강 다리들도 너무 좋았다
저건 '퐁네프'야 하면서 아는 척하는 재미가 있다
파리를 너무나 몽환적으로 그려, 대표작들의 짙은 색감의 유화들과 대조되는 느낌이다
한 작가의 연대기를 보는 기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 조세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다
사실 호퍼가 대학 동기인 조세핀을 만나기 전엔 그저 잡지나 상품광고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화가로 활약 중인 조세핀의 영향으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 작품들을 전시할 기회도 조세핀의 인맥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전시회 후 그림이 팔리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모든 능력 있는 여자 예술가들의 전철을 조세핀도 그대로 걸었다는 사실이 난 안타깝다
실제 조세핀은 자신의 작품활동보다는 남편 호퍼의 작품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일에 매달린다
그녀가 꼼꼼히 기록한 작품의 설계, 스케치, 장소 등은 물론이고
판매한 가격, 구입한 사람, 수수료 등을 꼼꼼히 기록한 노트를 디지털화해서 우리에게 영상으로 넘기며 보여준다
이 노트는 현재 휘트니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의 다양한 작품이야기는 영상으로 제작해 보여주는데
한참을 보다 보니 빠져들긴 하는데 1시간 반이 훌쩍 넘는 영상이라 해서 중도포기했다
내가 이미 읽은 책들에서 충분히 습득한 이야기들이다
이 영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인 <이른 일요일 아침>에 관한 이야기도 다뤄졌다
내가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어! 아무것도 없는 그냥 거리의 모습을 그렸네 했는데
제목을 보고 너무나 공감하게 되었다
<이른 일요일 아침>
아하~~
맞아 이른 일요일 아침에 이 거리가 복닥거린다면 말이 안 되지 하면서 말이다
일요일 모두가 늦잠을 자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얼마나 평화롭겠는가
햇살이 막 창문을 비추이는 걸 보니 이제 천천히 일어날 준비를 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커피를 내리며 게으름 떠는 연인을 깨우러 가기도 하겠지
포토존에 가면 이 그림 속의 여인처럼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이 있다
그림 속의 배경을 완벽히 재연해 놓고 여인의 자리에 관람객이 서서 촬영을 하면 된다
어물쩡 사진을 찍었는데
좀 더 디테일을 살리려면 옷은 벗지 못하더라도
신발을 벗고 담배인 양 볼펜이라도 손가락에 끼고 있어야 하는 것 아냐?
그래!
어설픈 흉내내기보다는 그래도 그림감상이 더 낫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만나고 보니
정말이지 뉴욕의 미술관들이 너무 가고 싶다
이번에 모마 미술관을 꼭 보고 싶었는데 상품 일정에 없어 너무 서운했었다
아쉬워했더니 비행기 리턴 신청해서 따로 남아서 미술관 관람하시라는 권유에
용기가 없어 말았다
그런데 아쉬움이 너무 남는다
딸들이 다음에 함께 뉴욕 여행하자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말 만으로도 금방 뉴욕행 비행기에 오를 것 같고 위로가 된다
첫댓글 😉 공주엄마와 함께라서 즐거워요 -머슴딸 올림
우리 속담으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인도 속담으로 바닷물이 설탕처럼 달콤하던 시절
너희들 어렸던 그 시절엔 내가 너희들 머슴이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