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8일 (수) 촬영.
한국인의 오늘
<한국인의 오늘> 전시관에서는 케이컬처(K- Culture)에 대해 보여준다. K에는 우리가 공유해 온 일상생활과 민속문화가 담겨 있다.
그중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온 '물건', 공유한 '취향', '함께'의 순간을 꼽아 K로 선보인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세계는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 속 우리는 지게 위에 일상을 쌓고,
호미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었다. 또 우리는 자연 재료로 만든 옷을 입어 자연과 하나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일상의 원동력을 찾았다. 21세기 오늘도 세계의 눈은 우리에게 향한다.
백 년 전 세계가 낯설어한 우리의 일상은 오늘날 낯익은 케이컬처의 중심이자 세계가 함께 즐기는 대상이 되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계속 변화한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과거에서 보낸 여느 때와 같이 오늘을 보낸다.
그 속에서 같은 취향을 즐기고, '함께'의 의미를 잊지 않는다.
<한국인의 오늘> 전시관을 통해 K로 정의된 우리의 일상을 새로이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K-,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다.
'한국적인'이란 말에는 전통의 지혜와 정신이 담겨있다. 오늘의 시각에서 끊임없이 전통 요소를 적용하는 시도와 실험은
또 다른 모습의 전통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K라 부른다.
장옷과 저고리 / 금기숙, 2012, 금기숙 기증.
조선시대 여성의 장옷과 저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철사로 옷의 형태를 만들고,
여러 색의 구슬로 옷의 색과 깃, 고름 등을 표현했다. 작가 금기숙은 '한복의 정수는 흔들림과 떨림'이라 말한다.
앙드레 김의 셔츠와 디자인 스케치 / 앙드레 김, 본명 김용남(1935~2010), (주) 앙드레 김 디자인 아뜨리에 기증.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흰색 셔츠와 의상 스케치이다.
디자인 스케치 속 '한국적인 의상', '한국적인 수' 등의 메모를 통해 앙드레 김이 추구한 디자인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앙드레 김은 서양 복식에 한국의 색과 전통 문양을 표현하여 동, 서양의 융합을 꾀하였다.
성실의 시간 / 정다혜, 2021,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말총으로 제작한 현대 공예 작품이다. 말총은 조선시대 남성의 쓰개의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다. 작가 정다혜는 조선시대 말총공예 기법으로
토기 형태를 표현하였다. 말총 한 올은 털에 지나지 않지만, 촘촘히 역인 말총은 탄성이 있어 모양을 낼 수 있다.
이 작품은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작이다.
쓸모 있는
물건의 외형은 변화한다. 그러나 물건의 기능은 인간의 삶 속에서 사용된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유지된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대표적으로 지게, 호미, 옹기, 한지를 꼽을 수 있다.
지게는 우리 일상의 무게를 견디고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호미는 삶의 터전을 일구고 생기를 북돋아 주는 물건이다.
옹기는 K-푸드의 근간이 되었다. 한지는 우리의 지친 몸을 누이는 공간이 되고 생활 소품이 되었다.
무엇 하나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쓸모 있는 물건이다.
지게, 일상을 지다.
지게는 한 번에 많은 양의 물건이나 무거운 물건을 지고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이다.
지게와 비슷한 도구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게는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흔히
사용한 물건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지게는 지역과 사람에 따라 그 모양과 쓰임이 다르다. 좁은 길, 가파른 길을 가리지 않고 인간과 함께한 지게의 모습은 변함없다.
호미, 터전을 가꾸다.
오늘날 세계는 호미를 원예 도구로 접한다. 우리에게 호미는 생업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구이다.
호미 날의 너비와 모양, 구부러진 각도는 어느 땅에서 사용되는지에 따라 모두 다르게 생겼다.
한글 자음 'ㄱ'과 닮은 호미의 형태는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그 모양에는 땅의 딱딱함과 무름, 손목의 힘 정도와 같은 복합 요소가 녹아 있다.
영주 대장간 호미 / 2022.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는 호미이다. 현대 호미는 농업뿐만 아니라 집 안의 뜰이나 텃밭 가꾸기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영주 대장간의 호미는 전통 호미의 각도와 두께의 정도를 응용하였다.
호미의 날은 폐자동차의 판 스프링을 전통적인 단조(段造) 법으로 제조하여 날의 견고함을 높였다. 굴곡진 나무 손잡이는
호미를 쥐었을 때 손이 편안하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사용하는 사람의 주 사용 손을 고려한 왼손잡이 호미도 있다.
옹기, 생활을 담다.
옹기는 발효음식을 즐겨온 우리 식문화에서 중요한 생활 용기이다. 밥상 위 김치,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장류까지 모두 옹기 안에서
발효했다. 또한 옹기는 통기성과 저장성이 뛰어나 곡식과 물 등 일용할 양식을 저장하기에도 제격이었다.
오늘날 주거 양식의 변화로 옹기 대신 김치냉장고와 스테인리스 밀폐 용기가 우리 생활 공간을 차지한다.
외형은 바뀌었지만, 옹기가 갖던 기능만큼은 계속 이어진다.
한지, 삶을 보듬다.
얇은 한지는 질기고 튼튼하다. 벽과 바닥, 문과 창에 한지를 바르면 매서운 바람을 막고, 따뜻한 온기를 품는 생활 공간이 된다.
새끼줄처럼 꼰 한지는 바구니가 되어, 또 다른 물건을 품는다. 기름을 바른 한지는 젖지 않아 모자로도 쓰였다.
생활 곳곳에 쓰인 한지는 오늘날 회화와 공예의 주재료로 사용된다. 또 문화재 복원에 중요한 재료로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한지, 韓紙 / 1986
닥나무 껍질의 섬유로 만든 우리 고유의 종이다. 닥섬유가 서로 균일하게 얽혀있어 '비단은 오백 년 가고, 한지는 천년간다'는 문장처럼
한지는 견고하고 튼튼하다. 또한 다양한 색으로 염색하여 한지에 아름다움을 더하기도 한다.
종이 삿갓 / 20세기 초, 김필환 기증.
비를 피하고, 햇볕을 가리기 위해 종이로 만든 챙이 크고 둥근 모자이다. 둥글게 엮은 대나무 살 위로 한지를 바르고,
물에 젖지 않도록 기름을 먹였다. 안에는 머리 위에 쓸 수 있게 제작한 틀인 미사리를 넣었다.
모자의 안쪽 면에는 다양한 문양의 색지를 붙여 장식하였다. 이는 대나무 살과 한지를 단단히 고정하는 기능도 함께 한다.
6. 갈모를 쓴 남자 / 20세기 초. 갈모를 쓴 남자의 모습이다.
7. 갈모를 쓴 남자 / 20세기 초. 최창호 기증, 갈모를 쓴 남자의 모습이다.
종이 신 / 20세기 초, 한지로 만든 신이다.
지승 베개 / 20세기 초,
지승으로 직육면체의 나무틀을 감싸 만든 베개이다. 베개의 측면에는 '壽수'자, '福복'자를 만들어 장식했다.
한지로 만든 현대가구, 종이장, 장용복, 2014.
현대 목가구에 쓰이는 나왕 각재로 가구의 형태를 만들고, 안팎으로 한지를 바른 가구이다.
작가 장용복은 조선시대 관복을 보관하던 관복장과 한지로 장식하는 지장 공예에 착안하여 가구를 제작하였다.
하얀 한지와 격자 형태의 목재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마치 한옥의 창호를 연상하게 한다.
자연스러운.
자연은 우리 삶의 터전이자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었다. 자연을 닮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곧 오늘날 우리의 취향이 되었다.
생활 공간은 자연에서 영감받은 기물들로 꾸며졌다. 자연 재료로 만들어 소색(素色) 옷을 입은 우리는
땅에 내려앉은 하얀 구름 떼와 같아 보였다. 하얗고 완만한 곡선의 자기를 보며 무한한 아름다움을 상상했다.
계절의 흐름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색은
우리 일상을 다채롭게 물들였다. 우리 생활의 모든 곳엔 '자연'스럽게 살고자 한 우리의 취향이 묻어난다.
공간, 자연을 품다.
생활 공간에 들어서면 또 다른 자연이 펼쳐진다. 나무의 결과 색이 선명한 가구, 사계절의 각기 다른 풍경을 담은 병풍,
달을 닮은 백자까지 공간을 채우는 기물마다 자연이 깃들어 있다.
'방'으로 안과 밖을 구분하면서도, 문을 열면 보이는 자연과 연결되고자 한 우리의 취향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산수도 10폭 병풍 / 청전 이상범(1897~1972) 외 9명, 1944~1960년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그려낸 10폭 병풍이다.
10명의 화가가 한 폭씩 계절 풍경을 그려내어 십인 십 색의 자연 경치를 방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원반과 찻잔 / 원반(圓盤) - 조선 후기. 찻잔(茶碗, 다완) - 1990년대 권대섭 기증
다과를 나눌 때 사용한 작은 상과 차를 담는 잔이다.
이 원반은 통나무를 갈이틀(회전하는 힘으로 목재를 깎거나 표면을 갈아내는 도구)에 물려 제작된 것으로,
상판과 다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긴 동심원과 일정한 간격의 굴곡은 원반에 장식 효과를 더한다.
4) 부채(摺扇, 접선) / 1901. 5) 부채, 合竹扇 / 20세기 중반 이후, 한무영 기증.
백자, 자연으로 빚다.
백자는 인간의 정성 어린 손길, 그리고 물, 불, 공기의 조화를 바탕으로 탄생한다.
자기가 품은 백색은 마치 자연과 같다, 때로는 하얀 눈처럼 순백색이고, 때로는 푸른 바다처럼 청명한 백색이다.
같은 듯 다른 백색의 자기는 우리 생활 속 곳곳에서 쓰였다. 무한한 미를 품은 백자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달 항아리, 白磁壺 / 조선 후가.
두 개의 반구형 대접을 위아래로 붙여 제작한 항아리다. 보름달을 닮은 달 항아리는 구워지는 과정에서 몸체와 모양이 비로소 완성된다.
고르지 못한 하얀색, 그리고 접합으로 조금은 비뚤어진 형태는 오히려 달 항아리가 갖는 자연미를 강조한다.
패랭이 / 조선 후기, 백기명 기증.
햇볕을 가리거나 비를 피하고자 쓴 모자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이는 모자였다.
굵은 대오리를 성글게 엮어 만들었다. 모자 위에 목화송이 두 개를 큼직하게 얹으면 물건을 지고 판매하러 다니는 부상을 의미하였다.
초립, 草笠 / 조선 후기.
계층의 구분 없이 두루 착용한 모자이다. 또한 관례는 치렀지만, 흑립을 쓰기엔 아직 어린 남자아이가 쓰기도 하였다.
가는 풀이나 대오리를 엮어 만들었다. 재료의 곱고 거친 정도에 따라 신분의 차등을 엿볼 수 있다.
흑립, 黑笠 / 조선 후기.
조선시대 남성이 외출 시 착용한 대표적인 관모이다.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오린 대나무와 말총으로 갓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검정 옻칠을 했다. 시대에 따라 갓모자의 높이와 양태의 너비는 변화하였다. 갓끈은 밀화나 호박, 대모 등으로 만들어 길게 내려뜨렸다.
백립, 白笠 / 조선 후기.
상복에 갖추어 쓴 관모이다. 형태와 제작은 검정 옻칠을 하기 전의 흑립과 같고, 그 위에 백색의 포를 감싸 만들었다. 백포립이라고도 한다.
남자아이의 복건, 幅巾 / 조선 후기.
검은색 비단 한 폭으로 만든 남자아이의 쓰개이다. 복건의 가장자리와 끈 부분에 '수복강녕', '자손 창성' 등 길상어와
무늬를 금박으로 찍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마 부분에는 구슬과 '囍 희'자 장식을 달았다.
풍차, 風遮 / 조선 후기.
겨울철 외출할 때 따뜻하도록 착용한 모자이다. 남녀 모두 풍차를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여성용 풍차이다.
머리 위는 트이고, 뒤는 길게 덮여있다. 솜과 털을 덧댄 볼끼를 달아 볼과 턱을 따뜻하게 하였다.
백의, 자연을 지어 입다.
누에고치와 목화솜, 모시풀 등 자연의 재료는 곧 우리의 옷이 된다. 자연 재료 본연의 색(消色)을 띠는 옷은 계층과 지위를 불문하고
태어나 나이가 들어갈 때까지 모두가 함께 입었다. 백의를 입고 한데 모인 우리는 마치 하얀 구름 떼를 연상시키곤 했다.
자연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이 살아가길 바란 우리의 마음이 옷에도 담겨있다.
흰옷을 입은 두 노인(원제: 명상) / 윌리 세일러(1903~?), 20세기 중반.
길 위에 앉아 있는 두 노인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으로,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하얀색의 평상복을 입고 있다.
추수 김제덕 초상,秋水金濟悳肖像 / 석지 채용신(1850~1941), 1921, 김학수 기증.
조선시대 유학자인 추수 김제덕(1855~1925)을 그린 초상이다. 하얀 심의를 입고, 검은 정자관을 쓰고 있다.
심의, 深衣 / 박광훈 기증.
조선시대 유학자의 옷이다. 옷의 바탕을 이루는 흰색 천과 깃의 소매 끝, 섶과 도련에 두른 검은 선은 조화를 이룬다.
옷을 통해 유학자의 고귀한 기품과 자세를 드러내고자 했다.
흑혜,黑鞋 / 조선 후기
조선시대 남성용 신이다. 신발의 겉은 검은색 모직으로, 안은 흰 가죽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리의 조복과 제복에 갖추어 신거나, 유학자의 평상복에 갖추어 신었다.
정자관, 程子冠 / 조선 후기, 장양원 기증, 국가 민속문화재.
조선시대 사대부가 실내에서 착용한 관이다. 망건이나 탕건을 쓴 후 그 위에 썼다. 말총으로 봉우리가 뾰족한 山(산) 형태를 제작했다.
단수에 따라 단층, 이층, 삼층 정자관이 있는데, 이것은 이층 정자관이다.
색, 일상을 물들이다.
계절에 맞춰 변화하는 자연색은 인간 삶을 다채롭게 물들인다. 자연색을 내고,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색은 일상에 특별함을 더하기도 했다. 어린아이 옷소매에 알록달록한 색은 아이의 활기와 건강을 염원한 부모의 마음을 담고 있다.
혼례를 올리는 여인의 원삼에는 앞으로의 새로운 생활을 축복하는 마음이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서로 다른 색의 천 조각은 한데 모여 또 다른 일상의 쓰임새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색ㅅ
백의, 자연을 지어 입다.
누에고치와 목화솜, 모시풀 등 자연의 재료는 곧 우리의 옷이 된다. 자연 재료 본연의 색(消色)을 띠는 옷은 계층과 지위를 불문하고
태어나 나이가 들어갈 때까지 모두가 함께 입었다. 백의를 입고 한데 모인 우리는 마치 하얀 구름 떼를 연상시키곤 했다.
자연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이 살아가길 바란 우리의 마음이 옷에도 담겨있다.
천연 염색 비단 / 1990, 이병찬 기증.
명주실로 짠 비단에 자연 재료로 염색한 것이다. 괴화, 잇꽃, 쪽, 가래나무로 염색하였다.
쪽은 남색과 같은 푸른 계열의 색을 내는 유일한 식물염료이다.
쪽물로 들인 색은 잘 빠지지 않고 햇빛에도 강해서 쉽게 탈색되지 않는다. 백색 비단은 염색하지 않은 비단 본연의 색을 갖고 있다.
규합총서, 閨閤叢書 / 조선 후기.
1809년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지은 가정생활 백과서의 필사본이다. 가정 살림에 필요한 내용이 항목별로 정리되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염색하는 법, 색상별 비단을 다듬질하는 법, 빨래하는 방법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천연 염색을 위한 자연 식물 재료 / 21세기. 천연 염색을 위한 자연 식물 재료이다.
a, 양파껍질. b, 오배자, c, 소목, d, 괴화, e, 쪽, f, 황련.
천연 염색 실 / 1990, 이병찬 기증,
자연 식물 재료로 염색한 실이다. 주변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식물을 염료로 활용하여 염색했다.
식물염료의 조합과 제작 과정에 따라 같은 종류의 식물염료에서도 다양한 색이 나올 수 있다.
조씨삼형제 초상 / 18세기 말, 조진호 기증, 보물.
평양 조씨 조계(1740~1813), 조두(1753~1810), 조강(1755~1811) 삼형제를 한 폭에 그린 반신 초상화이다.
삼형제 모두 사모를 쓰고, 흉배가 없는 담홍색의 단령을 입고 있다. 흔히 보았던 청색 또는 흑색의 단령과는 사뭇 다르다.
17세기 담홍색의 단령은 관리의 집무복인 시복으로 규정되었다가1884년 갑신의제개혁(甲申衣制改革) 때 흑색의 단령으로
간소화됨에 따라 사라졌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홍 계열의 색이 비단 여성의 색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남자아이(원제 : 석가탄신일) /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혼례복을 입고 있는 신부(엘리자베스 키스 판화 전시 포스터) /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1919.
혼례복을 입은 신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미국 태평양 아시아 박물관은 엘리자베스 키스의 판화 전시를 홍보할 때,
<신부, 1919년 작>를 대표 그림으로 내세웠다.
수채화로 그려진 원작품에는 원삼의 색동, 화관과 도투락댕기 등 여러 색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신부>는
1938년에 에칭 기법으로 100부 한정 재제작되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조각보 / 1930년대.
치자로 염색한 모시 천 조각을 이어서 만든 보자기이다. 조각보는 일상생활에서 쓰다 남은 천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천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또 다른 쓰임을 갖는다.
아름다움, 자연스러움에서 찾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자연스럽게'와 같은 말을, 몸을 관리하고 치장하는 과정에도 적용한다.
시대별 유행 화장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피부 본연의 색을 위한 기초 관리부터 계절에 맞춘 색조 화장법,
그리고 오늘날 나만의 색 (Personal Color) 찾기에는 모두 자연스러움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던 우리의 취향이 담겨 있다.
촌가분,村家粉 / 20세기 초.
얼굴빛을 곱게 하려고 얼굴에 바르는 화장용 백분(白粉)이다. '피부 윤택', '귀부인 화장계 대왕' 등의 화장품홍보 문구가 적혀있다.
백분은 상자 안 종이에 싸여 포장되어 있다.
자개 화장대 / 20세기 중반, 황정애 기증.
몸을 단장하고 치장하는 데 필요한 화장품과 화장 도구, 장신구 등을 보관하는 가구이다.
자개 화장대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일상 가구였다.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보며 얼굴과 머리를 치장하였다. 이 화장대는 꽃과 나비, 봉황 등이 자개로 장식되었다.
한국인은 항상 혼자서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식사나 소풍 등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모임에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찾곤 한다.
퍼시벌 로웰 (1855~1916)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1886.
함께 하는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보낸다.
'밥 먹었어?'라며 주고받는 안부 인사, 노랫말로 공유하는 관심사,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모습,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 등은
평범하지만 우리가 지속해 온 연결의 행위들이다. 그렇게 축적된 우리의 일상은 세계인의 시선에서 '케이컬처'로 새롭게 탄생한다.
The K - 존
타자의 시선과 말로 우리의 일상을 보고 들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일상 속 새로운 우리와 마주한다.
K는 우리가 그간 보내온 '오늘'의 축적물이다.
앞으로 K의 모습은 어떠할까? The K - 존에서 그간의 K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K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을 나섭니다.
첫댓글 생활용품~
세월이흐르니
작품으로
대단한가치네요
늘수고많으신
선배님 두분 덕분에
귀한 자료
구경잘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