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읍지에 나오시는 우리선조님들의 함자에 대하여 고증을 위하여 족보를 들추어 보았으나 몇분 어른들은 그 발자취가 보이나 그외의 분들은 발견하지 못하였기 알려드립니다.
* 兪彦通 : 자산공(휘 泳)의 7세손으로 마전공(휘 希曾)의 5세손으로 기계유씨문중 최초의 도유사를 하신분으로 자산공파보 50p에 계십니다.
* 兪殷柱 : 자산공의 9세손으로 홍성 사시는 우리 인선회원의 8대조부님이십니다. 자산공파보 89p에 계십니다. 가문에서 보존하고 있던 모든 자료들이 불에타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는 없다고 합니다.
* 兪漢寔 : 자산공의 8세손으로 나주목사(휘 命健)공의 증손자 되십니다. 자산공파보31p에 계십니다.
* 兪碩柱 : 자산공파. 자교당(휘 命賚)공의 3자이신 度基공의 증손이시며 자손들은 남양주와 충주등지에 많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자산공파보 26p에 계십니다.
한가지 문제점은 인당이 번역한 울산읍지의 기록에도 울산부사를 마치고 충주목사로 승차하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병도총무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동명이인이라고 하였는데 그 진위를 알수 있는 길이 없을가요?
* 그 외에 兪漢鼎(자산공파의 마전공(휘 希曾)의 6세손과 충목공파보 37p에 동명이 나오고 있으나 벼슬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등재되있어 동명이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兪彦愼(충목공파보 150p), 兪漢緯(진사공파 88p)공등은 역시 동명이
나오고는 있으나 벼슬한 기록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 兪基煥공은 충목공파의 충경공(휘 伯曾)의 자손이란 말은 들은 것 같은데 족보상에는 등재가 되어 있지를 않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첫댓글 자료를 확인하시느라 아주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석주(兪碩柱)공의 거주지가 "서울"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 일단은 자산공파 선조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도광19년 기해년(1839) 6월 29일 충주목사로 승차되었다"는 <울산읍지> 기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 헌종 8년, 임인(1842, 도광 22) 7월 26일(임신)조에 충주목사 유석주공에 대한 기사가 보입니다. 연대로 보아 울산부사를 역임하신 분과 동일인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차산리에 보관되어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유석주공의 忠州牧使 解由文書의 작성연대가 憲宗13년(도광 27년, 1847) 12월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기록연대는 <조선왕조실록> 헌종 8년, 임인(1842, 도광 22) 7월 26일(임신)조에 나타나는 기사와 전후 5년의 차이가 납니다. 그 이유는 차차 밝혀보아야할 일입니다.
세밀한 분석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지적을 받을 당시에는 충주목사로 재직중일때이고 해유문서를 받은 때는 그로부터 몇년지나서 일것으로 생각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통신기술이 없을 때이므로 몇해정도 늦어지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