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계신 은성회원 여려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형통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를 맞아 1월 중순에 발간된 회보를 현지로 우송대신 홈페이지에 게재하오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을 보신 은성회 동기생분들은 답글을 올려 주시고 필요한 요구사항 제시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성회 회보
<2012-1호>
2012. 1.
공군사관학교 제12기사관 동기회
신년인사
은성회 동기생 그리고 가족 여러분, 黑龍이 용솟음치는 2012년 壬辰年 새해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동기생 여러분의 건안하심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11년 한해는 멀리 청양에서 은성회 발전을 위하여 한 번도 빠짐없이, 현충일 행사, 동기생 문병, 총동창회/전우회/공군본부/공군사관학교 행사 등 공식행사는 물론, 동기생간의 대소 모임을 인도하신 우 대석 회장님과 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리 은성회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활성화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밝아오는 2012년 새해에는 미력이나마 배양일 총무님을 비롯한 임원들과 함께 은성회의 발전과 동기생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는데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합니다. 더욱 자주 만나서 즐겁고 보람된 일들이 많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은성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2. 1. 13.
은성회 회장 신동윤 드림.
2012년도 임원구성
회 장 : 신동윤
부 회 장 : 강영식
지 회 장 : 우정수
감 사 : 김영식
골프회장 : 박원규
등산회장 : 전대우
카페지기 : 최대식
총 무 : 배양일
2012년도 행사 및 추진계획
신년인사회 : 2012. 1. 19.(목) 공군회관 3층 그랜드볼룸
공사 총동창회 이사회 참석
현충일 행사 : 6월5일(화) 11:00 서울 현충원 : 재경지구
6월5일(화) 11:00 대전 현충원 : 남부지구
• 참배행사 후 지역별 오찬
공군본부, 공군전우회, 공사 총동창회 행사 참석
성무인 등산, 가을축제(홈 커밍 행사) 참석
투병중인 동기생 문병
등산 및 골프 동호회 활성화
은성회 정기총회 및 송년회 : 2012. 12. 12(수) 11:00
공군회관
은성회 Daum 카페 활용 권장
(http://cafe.daum.net/silverstar12)
보유기금 현황(2012. 1. 6 현재)
• 군인공제회 정기 예금 예치 : 31,000,000원(삼천일백만원)
• 예비비 잔액 : 4,261,836원(전임총무 신동윤으로 부터 총무 배양일 인수, 2012. 1. 6.)
• 보유기금 총액 : 35,261,836원
2012년도 예산 계획
• 수입 : 4,500,000원(연회비 및 찬조금 기준)
• 지출 : 4,500,000원
- 현충일 행사 : 1,100,000원(서울, 대전 현충원 화환 대금 및 참석자 오찬 비)
- 총동창회 분담금 : 400,000원
- 동기생 문병 :1,000,000(5명 기준)
- 운영비(카페, 우편, 공사달력) : 300.000원
- 송년회 경비 : 1,300,000원
- 예비비 : 400,000원
- 계 4,500,000원
• 동기회비 분담금은 금년에도 개인당 10만원으로 책정하였 습니다.
회비 납부 계좌 : 신한은행 110-352-414960
예금주 배양일
五友로 살자.
은성회원 주소록(2012. 1. 현재)
1. 강영식
[156-728] 서울동작구신대방2동 395-66 삼성쉐르빌3703
02-6677-0008, 010-9011-0464
2. 고광덕
[445-976] 경기 화성시 안녕동 212번지 신한미지앤 107동 307호
031-221-3267, 010-3214-4094
3. 계융교
미국 거주
4. 김문수
[714-852] 경북 청도군 이서면 신촌1리 260번지
054-373-0564, 011-730-0569
5. 김부수
[448-545] 경기 용인시 죽전동 1116번 죽전마을 현대4차1단지101-1205
031-272-2998, 017-719-2998
6. 김영식
[425-762]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3동 공작한양아파트 133-2005
031-482-2880, 010-3728-1370
7. 김영웅
[157-]
서울 강서구 마곡동 716번지 한솔 솔파크아파트 101동902호
02-2661-4475, 010-8357-7376
8. 김원인
[412-722] 경기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햇빛마을 일신건영아파 2416-1702
031-938-7310, 010-2445-7310
9. 김정환
[105-609] 대전 중구 목동 111-12 금호 한사랑(아)105동609호
010-7553-7207
10. 김태규
[437-120] 경기 의왕시 포일동 658 포일숲속마을 103동801호
031-397-6404, 010-3319-6404
11. 나광수
[201-1701] 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안동 899 -2 현대4차아파트 201-701
031-674-5176, 018-415-5176
12. 남승진
[445-921] 경기 화성시 향남면 동오리 72-5 합동메탈
031-322-0307, 011-9488-3114
13. 민항식
[135-260] 서울 강남구 포이동 235-21(5층)
02-572-6833, 010-5219-0036
14. 박경석
15. 박덕희
[140-201] 서울 용산구 이촌1동 412번지 이촌아파트 102동 1404호
02-533-6734, 010-8874-6734
16. 박상철
[150-752]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2가 164 현대A 103-2003
[650-800] 경남통영시 용남면 동달리 809-1 유)통영택시
02-2632-8491, 010-3288-2632
sangchul6262@hanmail.net
17. 박원규
[449-557] 경기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삼성래미안1차아파트 109-1203호
031-285-3494, 010-5417-3495
18. 박창길
[135-998] 서울 강남구 대치4동 934-8 그랜드빌라 302
02-501-9889, 010-5594-5838
19. 박춘택
[156-811] 서울 동작구 대방동 506 대방2차 현대아파트 201-501
02-817-5020, 010-3771-6911
20. 배기준
[150-01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삼익아파트 A-109
02-786-0888, 011-9094-3790
21. 배양일
[449-130] 경기 용인시 상현동 851 현대 성우아파트 293-1401
031-304-1083, 010-2212-1941
ambagenbae@hanmail.net
22. 백광현
[448-140] 경기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753번지 버들치마을 경남아너스빌 1차APT 103 - 1705
031-889-4958, 010-9413-4921
23. 서호선
[410-716] 경기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 흰돌마을 금호아파트102동904호
031-914-6425, 010-2874-7797
24. 송창회
미국거주 : 3624 Evans Rd,Doraville,GA,30340
미국 770-934-3409, 770-934-3555(fax)
25. 신동윤
[449-845] 경기 용인시 죽전동 대지마을 중앙하이츠빌 103-701
031-716-9787, 031)265-8267(fax), 011-731-5537
sdy5847@naver.com
26. 안봉열
[156-761] 서울 동작구 대방동501 대림(아)107동405호
02-816-2272, 011-779-5294
27. 엄수남
[122-051] 서울 은평구 갈현2동 519-2 아이원빌 202
02-358-4386, 010-2375-4386
28. 우대석
[345-861] 충남 청양군 목면 신흥리 307-1
041-943-2262, 010-9184-8263
29. 우정수
[701-754] 대구 동구 방촌동 보성강남아파트103-1403
053-985-0376, 010-9988-3453
30. 유필영
미국거주 : 1008 Dartford drive Tarpon Springs FL34689 U.S
미국 727-938-3538, 727-938-3883(fax)
31. 이규설
카나다거주 ;
32. 이명환
[110-847] 서울 종로구 평창동 145-5 일성아파트 A-301
02-379-5725, 010-9118-5725
33. 이부용
[449-130] 경기 용인시 상현동 858 현대아이파크 507-201
031-272-3075, 010-2518-3075
34. 이삼수
[142-101] 서울 강북구 미아1동 벽산 라이프파크 114-504
02-983-1466, 010-5300-1462
35. 이상순
[449-515] 경기 용인시 상현동867 서원마을 5단지 금호베스트빌505-301
031-276-4737, 010-9022-2311
ss4052@hanmail.net
36. 이원열
미국거주 : 10526 Commerce ave. Tujunga CA91042 USA
미국 818-951-1860,
37. 이종득
[449-845] 경기 용인시 죽전동 대지마을 중앙하이츠빌 104-102
031-264-0883, 010-8255-3221
38. 이종양
[705-769] 대구 남구 봉덕2동 효성타운 207동 102호
053-475-1506, 010-8592-1506
39. 이주진
[330-220] 충남 천안시 백석동 현대 아파트 113동 902호
041-902-6035, 010-3742-6035
40. 이중희
[446-557] 경기 용인시 기흥구 마복동 삼성래미안106동501호
010-3305-7879
41. 이홍우
[476-912] 경기 양평군 강상면 교평 2리 14-1
031-774-6670, 011-356-6669
42. 전대우
[411-760] 경기 고양시 일산구 일산4동 밤가시마을 건영빌라 605-301
031-915-5067, 010-2352-5008, 뉴욕 : 404-862-5212
jdw121212@hanmail.net/
43. 정민남
[110-847] 서울 종로구 평창동 154-1 삼형파크 B-203
02-379-6245, 019-698-3217
44. 정판종
[449-566]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신촌마을 포스홈타운 302-904
031-897-9068, 010-9228-9068
45. 진태선
미국 거주 : 17 Ellis Place, Ossining ,N.Y 10562
미국 : 914-432-7565, 914-261-1000(c/p)
meekook@hotmail.com
46. 최대식
[363-883] 충북 청원군 오창면 각리 637-6번지 중앙하이츠빌204동204호
043-294-6645, 010-4415-6645
47. 최영재
캐나다 거주
48. 홍종건
[463-840]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536 선경아파트 116-702
031-703-8625, 010-5226-5153, 043-872-9755(음성)
<은성회 가족 회원>
49. 김규림 / 가족 김유진
[156-010] 서울 동작구 대방동 대림아파트 103-403
02-814-7576, 010-796-8624
(김진한)jh8624@hanmail.net
50. 김무영
51. 김재민/동생 김석규
[706-090] 대구 수성구 지산동 1271 지산 우방타운 105-102
053-782-3033
52. 남농현 / 가족 전금자
[156-010]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우성아파트 3-901
02-845-9225, 010-9971-4414
(남윤호)yhnam@kopec.co.kr
53. 박수길 / 가족 윤송죽
[138-225] 서울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펠리스 110동1601호
02-418-6507, 011-9246-6507
pine304@hanmail.net
54. 신금선 / 가족 이명순
[156-093] 서울 동작구 사당3동 현대아파트 1-1402
02-594-0629
55. 심규형 / 가족 천소자
[110-847] 서울 종로구 평창동 345-112
02-379-3311, 010-7756-1943
56. 심재윤 / 딸 심미숙
[137-841] 서울 서초구 방배1동 684-2 방배 e-편한세상 103-506
02-889-0090
57. 유현웅
58. 이명호
59. 이상경 / 가족 진경자
[156-030] 서울 동작구 상도동 431 래미안 상도3차아파트 305-506
02-823-2944, 010-6711-1969
(이동섭)leeds516@hanmail.net
60. 임기수 / 가족 김홍자
[132-731] (동생/임종수) 서울 도봉구 도봉2동 한신아파트 112-803
미국 : 718-426-5801, 동생 : 02-3491-1230
61. 정경모 / 가족 윤정자
[158-077] 서울 양천구 신정7동 목동아파트 1111-1205
02-2647-2106, 016-383-2106
(신형철,사위)hcshin@kopri.re.kr
<은성회 명예회원>
100. 김경중
미국 거주 : 뉴욕
미국 : 914-420-8677
• 은성 회원 현황
국내(41명), 해외(7명), 가족(13명) 명예회원(1명)
<5공화국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 부인의 애절한 亡夫歌>
김재익 수석은 청와대 근무 때에도 주변 사람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대하며 겸손이 몸에 배어있었다. 아웅산테러 전날에도 미얀마의 수행원 호텔에서 저녁 식사 때 그의 미소 짖는 모습은 다음날의 운명과는 멀어 보였다. 그의 부인 이 여사는 얼마 전 서울대에 20억 장학기금을 약정했다.
" 세월 지나면 잊는다는 건 거짓말. 지금도 남편 묘에 生花 놓아 "등산 마치고 라디오 뉴스로 참사 소식 듣게 돼" 국립묘지 열녀 " 별명경제기획원 기획국장 된 남편 " 월급 안 받고도 일할 수 있다 "보상금은 아이들 학비로… 아들과 상의 안하고 기부
김재익(1938~1983)경기고 2학년 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외교학과 입학.하와이대 석사,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한국은행,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을 거쳐, 국보위 경제분과위원장, 5공 청와대 경제수석.재임 시절정부규제 철폐, 물가 안정,통화 긴축으로 향후 경제 호황의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됨.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 때 숨짐.서울 서빙고동의 아파트에서는 한강이 보였다." 처음엔 반포에 살았어요. 남편이 묻힌 국립묘지에 갔다가 한강 맞은 편에 아파트 짓는 걸 봤어요. 이쪽으로 이사 온 것은 국립묘지를 보기 위해서였지요. 여기 창가에서 바로 보여요. 제 남편이 사준 집 같아요. 국립묘지에는 남편이 죽고 10년 동안은 매일 갔어요. 요즘에는 일주일 두세 번씩 운동 삼아 가요."아웅산테러(1983년) 때 숨진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의 부인,이순자(72)씨를 보니 곱게 늙는 모습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부터 들었다.풍파(風波)의 세월도 그녀의 천성을 허물진 못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창피하지요.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갔는데 혼자서 칠십 몇 살까지 살아온 것은 뻔뻔한 일이죠."그녀는 최근 서울대에 20억원을 내놓겠다고 약정했다. 기자회견 없이 다만 서울대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전했다.'과거에 선진국 원조와 장학금의 수혜자로 배운 학문과 기술로 우리가 나라를 일으킨 것처럼 이제는 우리보다 불우한 나라에 힘을 보태는…'.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젊은 학생과 관료들이 서울대에 와서 경제정책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서울대는 " 김재익 펠로십(장학금)펀드 "를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 어떤 심적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어요. 이제 인생을 서서히 정리할 나이도 됐고요. 저는 연금이 나오니까 돈이 더 필요가 없어요. 사실 돈이 있어도 쓸 돈만 자기 돈이지요. 생전에 남편은 '우리가 좀 살게 되면 우리보다 못한 나라의 젊은이를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해야한다.' 고 했어요. 내가 내놓으려는 액수가 내 형편에서는 매우 크지만 참 적다는 걸 알았어요. 개인당 한해 3300만원이 든다고 해요.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혹 더 있을지 모르니, 대학 측에서는 펀드를 키우자고 했어요.
▼ 남편이 떠난 뒤로 27년 동안 교수(숙명여대)를 하면서 홀로 두 자식을 키웠습니다. 선뜻 20억원을 내놓을 만큼 그렇게 많은 돈은 언제 벌어 놓았지요?" 지난주 서울대 총장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런 의사를 비쳤는데, 바로 다음날 신문에 났어요. 이렇게 빨리 알려질 줄은 몰랐어요. 사실 지금은 가진 돈이 없어요.
"▼ 무슨 뜻입니까?" 3년 뒤면 돈이 마련될 거예요. 제가 1980년에 장기저축예금을 들었어요. 남편이 '경제수석 마누라가 무슨 증권사에 들락거린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해서 예금만 했던 겁니다. 그때 은행 이자가 20%대였어요. 만기일인 1985년에는 원금의 150%가 되어 있었어요. 남편이 죽은 뒤 그 돈을 탄 거죠. 둘이 모은 돈이어서 차마 그 돈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때 친척이 그 돈으로 경기도 용인에 땅을 사놓으라고 했어요. 이번 여름에 그 땅이 토지주택 공사에 수용이 됐어요. 3년 만기 채권으로 받았어요. 2013년에 약 12억원을 받게 됩니다. 바로 그 해는 남편이 돌아가신 30주기가 돼요. 이렇게 딱 들어맞으니, 제 힘으로 한 것 같지 않더라고요.
"▼ 20억원을 약정하고,나중에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내놓겠다고 보도됐더군요." 언론 보도가 잘못 나가서…, 20억원 중에 이 집이 포함돼 있어요. 제가 가진 큰 재산이 집과 용인 땅이에요. 제게는 이 집이 너무 커요. 자식들도 모두 결혼했고. 제 남편은 굉장히 검소한 사람인데 생전에도 '우리가 일반 사람들 평균보다 몇 배를 잘 산다'고 했어요. 때가 되면 이 집을 팔고 실버타운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 장차 유산을 물려받을 아들이 흔쾌하게 동의했습니까?" 주위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아들과 의논했느냐고? 그런데 왜 그래야 하죠? 미국의 부잣집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는 부자이지만 난 아니다'라고 합니다. 사전에 상의가 없었어요.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걔들벌어준 돈이 아닌데.
"▼ 이를 알고 아들이 섭섭하게 여기진 않던가요?
" 아들들은 '그 돈을 아버지의 이름만으로 아니라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도 좀 쓰시라'고 해요. '주위에서는 어머니께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부추긴다'고 농담도 하지만 '어머니 때문에 저희들 위신이 올라갔다'고 말해요.
"▼ 그 돈에는 당시 남편이 숨진 뒤 받은 보상금도 포함돼 있나요?" 보상금은 아이들 학비 등에 쓰였어요. 아웅산 사태 때 돌아가신 분들 대부분이 40대였어요. 공직에서 20년 이상 일해야 연금이 나오는데, 남편을 포함해 이분들은 연금 수혜 대상이 안 됐어요. 당시 전두환 대통령께서 일해재단(현 세종재단)을 통해 연금이 지급되도록 해줬어요. 또 상속세 면제와 유자녀 교육자금과 생활보조금 등 당당하게 혜택을 줬어요. 그건 참 고마운 일이었죠. "
▼ 아웅산 참사 소식은 처음 어떻게 접했습니까?" 그날 친구와 함께 북한산 등산을 하고 내려오니 산 입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어요. 뭐 무슨 일이 생겼나 했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차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고는 알았어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어요."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 27년 전이면, 이제 담담하게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다', '좀 지나면 잊혀 진다'며 제게 위로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잊어버려요? 세월이 지나면 잊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다만 이겨내는 힘이 생기는 거지요. 저는 작은 아들 때문에 살았어요. 걔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 안 살았을 겁니다. 큰아들은 대학생이었으니 괜찮았어요. 하지만 초등학생인 막내를 두고 제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 . 죄를 짓는 것이죠. 걔를 핑계로 살았어요.
"▼ 당시 우리 정부가 북한에 똑같이 보복 대응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안 들었나요?" 전쟁이 날 수 있는 조건이었죠.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고, 우리 공직자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으니까요. 당시에도 좌파세력이 별별 음모론을 퍼뜨렸어요. 북한은 아예 반응이 없었어요. 정말 제가 폭탄을 들고 나가고 싶더라고요. 그래도 마음을 진정하니, 내 애들을 키우려면 전쟁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참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죠.
"▼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 사태를 보면서 느낌이 아무래도 남달랐겠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무력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리더십이 없어 당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불쌍해요. 국민들은 정부가 하는 일을 못 믿게 됐으니…. 천안함 사태 때 정부가 민간에 잠수부 자원봉사자를 찾는 걸 보면서 서글펐어요. 아니 군(軍)에서 일어난 일은 군이 스스로 해결해야지, 민간에 도움을 구하니 그게 어떻게 나라의 군대인가요
."▼ 남편이 5공(共)에 참여할 때는 어떠했습니까?" 욕을 참 많이 먹었지요. 형제와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죠. 저도 펄펄 뛰고 반대했어요. 이민을 가자고 했지요. 남편 실력이면 미국 대학이나 국제기구로 갈 수 있었어요
."▼ 남편은 왜 따르지 않았을까요?" 연희동에 가서 전두환씨와 한 번 면담을 하면서 그 솔직한 면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 뒤로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 분야 가정교사를 몇 달간 했어요. 남편은 자기가 이루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이죠. 사람들이 다 욕해도 자기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떤 자리에서 ' 김재익은 일을 한다는 핑계로 누구 밑에 가서도 충성할 인간 '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집에 돌아와 울면서 남편에게 그 얘기를 전했지요. 남편은 가만히 듣고서는 '만약 내가 누구를 설득시켜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해야지'라고 했어요
."▼ 남편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뒤 " 새로운 경제정책 추진에는 엄청난 저항이 있을 텐데 끝까지 제 말을 믿어주시겠습니까? " 했을 때,전두환 대통령이 "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라고 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합니다." 경제수석은 정치자금과 연계되잖아요. 남편은 '그런 일을 혹 제게 맡기면 그만 둔다'고도 했어요. 당시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하라며 전권을 줬던 게 사실이에요. 군부와 갈등이 많았어요. 군부 출신 실세는 남편 사무실 책상 위에 권총을 탁 놓았어요. 대통령의 신임이 남편 쪽으로 실리는 것에 대한 경고였어요. '너 죽고 싶어?' 하는 메시지였어요
."▼ 남편이 집에 와서 이런 사실을 모두 얘기했나요?" 이는 나중에 전해들은 얘기입니다. 만약 당시에 제가 알았다면 '당장 그만두고 떠나자'고 난리를 쳤을 거예요. 사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고 국내로 들어오겠다고 했을 때도 저는 반대했어요. 저는 미국 생활을 원했어요. 남편은 '미국의 수천 명 경제학자보다 한국의 열 명 안 되는 경제학자가 우리나라를 살릴 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 컨설턴트의 자문을 받지만 이들은 가슴으로 우리 현실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어요. 박정희 정권 때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을 맡게 되자 '월급 안 받고도 일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라면 이런 기회는 돈을 내고도 해야 한다'고도 했어요.
"▼ 남편이 숨졌을 때 나이보다 이제 큰아들의 나이가 더 많지요?" 미국에 있는 큰아들이 지금 47세예요. 걔가 남편이 숨졌던 45세가 됐을 때 저는 불안해서 제대로 잠을 못 이뤘어요. 제 아버지가 돌아간 나이를 무사히 넘겨야 하는데…, 아들이 그 나이를 넘어서자 안심이 됐어요. 둘째 아들은 아직 삼십대예요
."▼ 주변에서 재혼을 권하지 않았나요?" 글쎄, 바보처럼 재혼도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국립묘지 열녀'로 통해요. 지금도 꼭 생화(生花)를 놓고 오니까요. 살아오면서 좋은 일이 있으면 남편 묘소를 찾아가 먼저 이야기하고, 속상해도 그 앞에서 푸념했어요. 저는 혼자서 두 아들을 키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에게 얘기할 때도 남편의 말을 제가 대신 전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 세월이 이렇게 흘러도 일편단심이니, 남편의 무엇이 그리 좋았나요?" 굉장히 명석했어요. 원래 공대를 지망했다는데 색약(色弱)이라 못 갔어요. 수학을 잘하고 기계를 좋아했지요. 대학에서 만났을 때부터 그분의 착한 심성이 제일 좋았어요. 남의 말을 선의로만 받아들여요. 물론 저도 사람인데 약이 오르는 일이 많죠. 고생만 죽어라고 시켜놓고 떠나갔으니…. 하지만 그동안 남편의 음덕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어딜 가든 남편을 아는 사람들이 제게 잘해 줬으니까요."나는 더 이상 뭐라고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옮긴글
김재익(1938년 11월 26일 ~ 1983년 10월 9일)전두환 정권 당시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서 금융실명제, 물가안정화 정책, 정보화 정책, OECD 가입, 수입자유화 정책 등을 입안한 인물이다.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 테러사건으로 사망하였다.경기고등학교 2학년 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하였다.졸업 후 한국은행에 재직하는 중에 도미하여 하와이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3년 박사학위를 얻은 해에 귀국하여 한국은행에 적을 둔 채 청와대비서실로 들어간 김용환 경제수석 밑에서 자문역으로서 관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때 부가가치세 도입의 이론적인 바탕을 마련하였다.1974년 경제기획원으로 자리를 옮겨 비서실장, 경제기획관을 거쳐 경제기획국장이라는 요직을 차지하였다.
1980년 전두환은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였다.김재익은 경기고 1년 후배인 오명을 청와대 경제비서실 과학기술 담당 비서관으로 임명하여 통신혁명의 기틀을 잡았다. 오명은 전기통신사업을 체신부에서 분리해 한국통신공사(현 KT)가 탄생하였으며, 전자교환기를 도입하였다.경제 정책김재익은 미국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1980년 초기의 한국 사회의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하여 금융과 재정을 긴축하고, 수입을 자유화하며, 임금상승은 생산성 증가의 범위 내로 억제하고, 환율과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하였다.또한 경제의 능률 향상을 위해서는 개방과 경쟁이 필수적이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졌다.재무부와 경제기획원 파벌김재익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재직시절,재무부 관료를 배제한 경제기획원 관료에 편중한 인사를 기획.일부 실행에 옮겨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전두환의 신임을 한 몸에 받던 그의 이러한 인사철학은그대로 통치권자에게 전해져서,강경식 등 경제기획원 출신의 인사들이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어,재무부 관료들에게 경제기획원출신 장관에 대한불만을 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그 결과,현재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까지도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출신이라는꼬리표를 경제관료들에게 붙여주어 파벌을 형성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고 김재익 경제수석 미망인 이순자씨는 " 이렇게 빨리 알려질 줄은 몰랐어요.사실 지금은 가진 돈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 이진한 기자
첫댓글 총무님, 넘 수고많이~ 외국 동기생들이 많이 참고가 될듯합니다.**이종득 주소변경;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501-1**
은성회 회보 잘 받았읍니다. 밖에 나와있는 동기생들까지 챙기시느라 수고가 많았읍니다.그런데 질문 하나.
유필영이와 이중휘주소와 전화번호가 확실한지요? 좌우지간 회장님과 총무님 이~뻐. 계속 수고하세요.
진태선 동기님! 이중희 주소는 신 회장께서 확인했다고 하니 맞을 것이며 유필영 주소도 아마 송창회를 통하여 건너 받은 주소 같아요. 같은 미국내에서 연락하면 쉬울 수 있는감 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이렇게 즉각 답변을 주셔서. 한국 한 번 오세요. 배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