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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하나패밀리)철 이른 섬진강 (11.3.12)
숲길(吉) 추천 0 조회 36 11.03.30 10: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철 이른 섬진강 여행(11.3.12)

 

매화는 사군자중의 하나인데 매화 꽃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하나투어에 섬진강 청매실, 화개장터, 산수유마을 상품이 떴는데 확정 상품이어서 미리 예약을 했다.

 

우리 가이드는 이진수가이드인데 주관 여행사는 우리테마투어였다.

아침 일찍 6시 20분까지 가야했지만 완주, 순천간 고속도로가 얼마전에 개통되어 생각보다 빨리 광양 매화마을에 도착했다.

 

이진수 가이드의 말대로 정말 섬진강 물길은 애머랄드 빛이 고와 보였다.

강바닥이 모래가 있으면 햇빛에 반사되어 애머랄드 빛을 띤다는 것이다.

강가의 백사장도 넓고 강물도 깨끗하게 보였다.

 

가면서 보니 차창 너머로 이제 봄기운이 완연한 것같았다.

그래 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던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같다.

이제 봄이 와야 꽃도 구경하고 곤충도 구경하는 계절이 되지.

 

이제 나름대로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 여행으로 산으로 가야할 때가 된 것이다.

시청역 11번 출구에서 김용녀 가이드를 만났는데 휴게소에서 1호차가 김수민가이드였다. 우리는 2호차이고.

 

가면서 이진수 가이드가 광양매실에 대하여 설명을 했는데 원래 밤을 많이 재배했는데 며느리가 경상도에서 와서 매실을 심자고 했다고 한다.

요리 솜씨도 좋아서 명장이 되었다고 하는 것같았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 섬진강 변을 따라 계속 내려갔는데 화계장터가 있는 남도다리도 건너고 조금 더 가니 청매실 마을이다.

 

휴게소에서 김수민가이드가 매화가 안 핀 것같다고 걱정을 했는데 가보니 청매화는 거의 안 피고 원예종인 홍매화만 피었다.

화사스런 풍경은 연출이 되지 못하고 봄기운만 느꼈는데 간혹 한, 두 송이 매화가 피었다.

 

도착하니 생각보다 주차장이 넓었는데 사실 지금은 매화축제가 구제역 때문에 취소되었는데 오는 사람은 안 말린다는 것이다.

 

예년같으면 이 매화축제의 경제적 효과가 5, 6백억원 된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축제라는 것이다.

구제역이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같다.

 

주차장에 내려 올라가면서 보니 가지에 꽃 몽우리만 져 있었다.

그런데로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홍매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고 있었다.

 

커다란 매실나무 아래에는 동네 아주머니가 나와서 각종 산나물,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장독이 엄첨나게 많은 곳이 있었는데 그 밑과 그 위가 매실관련제품도 팔고 밥도 팔았는데 비빔밥을 사서 먹었다.

 

봄이 되어 그런 지 서향나무도 팔고 매화도 파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장독 밑에서는 매화를 그린 바위 앞에서 일단의 어린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과도 팔고 된장, 간장, 젤리 등 각종 매실제품을 팔고 있어 한과 등은 작은 조각을 시식해 볼 수도 있었다.

한 곳에는 거의 흑빛에 가까운 홍매화도 있었다.

 

장독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담고 있었고 맞은 편에는 청매실 상설 전시판매장도 있었고 그 옆에는 비빔밥 식사가 가능했다.

 

전시판매장 좌측으로 해서 언덕을 올라갔는데 올라갈수록 전망이 아주 좋았다.

그쪽에는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들 받고 있었다.

길가 중간 중간에는 큰 돌에 매화관련 시를 적어 놓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부근에는 청매실나무가 어쩌다 한송이씩 피어 있었다.

그 올라가는 중간에도 순대나 파전 등 음식을 팔고 있었다.

저쪽 하늘에는 일단의 매 무리가 하늘을 빙빙 날고 있었다.

 

섬진강 주변의 봄기운은 가득찼지만 매화는 너무 이른 시기였다.

그렇지만 한가로운 청매실농원의 풍경만은 아주 만족했다.

 

매화가 피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안고 왔으며 지역 주민들은 봄맞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언덕위에서 내려다 보는 장독대 무리도 장관이었는데 가끔은 언덕 중간 중간에 줄을 지어 옹기를 놓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전시관 뒤쪽으로는 대나무 숲도 조금 조성되어 있었고 돌에 새긴 매화관련 시는 끝이 없이 나타났다.

전망대도 조성되어 있어 그곳까지 올라갔는데 전망이 아주 좋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초가집과 문학이 있는 공원을 둘러보고 정자를 거쳐 식당있는 곳으로 와서 비빔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홍매화를 감상하고 청매실공원을 떠났다.

 

다음에 간 곳은 화개장터였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난 것도 각설이였다.

화개장터에도 장승도 있고 3.1운동 기념비도 있었다.

요즘 뻥티기도 자동화되어 기계 스스로가 뻥티기를 하고 있었다.

 

화개장터에는 각종 약재, 건어물, 옹기공예품, 복수초 등 꽃, 산나물 등을 보았다.

특이한 것은 아직도 대장간이 있어 눈을 끌고 있었다.

시간이 있어 구 화개장터쪽으로 다리를 건너갔는데 그 곳에는 터미널이 있었다.

 

터미널쪽의 골목으로 들어가니 개가 짖는데 한집에는 큰 음나무가 있어 눈을 끌고 있었다.

화개장터 중앙에는 화개누라는 정자가 있었고 음식점들은 재첩국, 장터국밥, 매운탕 등을 팔고 있었다.

 

봄이 되니 꽃들도 팔았는데 복수초, 수선화, 브로니아 등 여러 종류를 팔았다.

생선 파는 집에서는 빙어를 수족관에 넣어 파는 것이 신기했다.

하동은 차로도 유명하다는데 하동차는 야생차가 특히 유명하다는 것이다.

 

장터 중앙에는 조영남의 노래가사를 돌에 새기어 놓았고 성기와 계연의 사랑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글을 새겨 놓았다.

 

화개장터를 떠난 버스는 구례 산수유마을로 향했는데 불행히도 산수유는 피지 못하고 몽우리만 져 있었다.

나무는 아주 오래되어 마을 분에게 물으니 100년쯤은 된 것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올 수 밖에 없었다.

돌담길을 보라고 해서 돌담길을 걸어보고 산유정으로 왔다.

산유정에서 보는 구례의 풍경은 너무 평화롭고 봄기운이 느껴졌다.

 

한곳을 보니 묘가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군데 군데 사람들이 농사 준비를 하는 것같았다.

산수유 마을 구경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도로가 새로 생겨서 기사님이 마을분들에게 길을 물어 우리는 서울을 최단거리로 왔는데 뒷차는 길을 잘못 들어서 우리보다 30분이 늦었다고 한다.

 

기사님과 이진수 가이드님, 김수민 가이드님이 너무 수고하여 편안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 좋은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 우리테마투어, 하나투어, 하나패밀리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더욱 발전하길 기원하겠습니다.

 

 

청매실농원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청매실농원에는 1930년경 율산 김오천선생이 심은 70년생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하여 매화나무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고 매실가공식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전통옹기 2000여기, 농원 뒷편 왕대숲, 영화세트장, 매화산책로 등이 있다.

 

특히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의 풍경은 방문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산 좋고 물 맑은 고장, 연중 따스한 햇살이 가장 많이 비추는 고장인 광양지역의 특산물을 얘기하자면 밤, 매실, 설록차, 고로쇠약수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밤과 고로쇠약수를 제외하고는 특산물에 대해 이렇다할 기록이 없는 형편이다. 특히 광양매실은 매화나무의 최초 집단재배 시기와 장소가 광양밤과 맥을 같이 하였고, 매실의 상품화 노력 또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계승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광양밤이 그 유래가 분명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데 반하여 광양매실은 새로운 품종의 매화나무가 밤나무와 함께 대량으로 들어왔다는 기록 이외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광양매실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광양매실이 가진 전통과 특징을 밝혀 광양이 밤뿐아니라 매실의 본고장임을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이며, 그 원산지는 중국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천 오백년 전에 들어와 우리의 선조들이 수백년 전부터 이 열매를 식용 또는 약용으로 사용하여 왔다.

 

세계적으로 매실의 산지는 동북아시아 즉 한국, 중국과 일본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에서만 생산되는, 지리적으로 특수성을 지닌 온대과실로써 중부이북의 매화나무는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매실의 식품으로서의 가공법과 약리작용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연구 끝에 그 놀랍고 신비스런 약효가 증명되어 전 일본국민의 건강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실주를 수십 년 전부터 상품화해 온 것 이외에는 최근에서야 매실음료가 나오게 되었고, 매실을 이용한 전통매실 반찬은 광양의 청매실 농원에서 1994년 처음으로 상품화 하였다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 여사

 

밀양태생으로 올해 68세인 홍쌍리 여사는 45년 전인 1965년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밤나무골 김영감님″의 아들인 김달웅(68세)씨에게로 시집와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가 심기워진 7㏊의 산비탈 농장 청매실농원을 가꾸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하지만 홍여사는 몇 년 전부터 ″매실박사 홍쌍리″로 통하는 전국적인 유명인사이다. 최근에는 그녀의 명성이 동남아 식품박람회를 통해 홍콩, 싱가폴에도 알려졌으니,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홍쌍리 여사가 매실의 본고장인 광양매실의 자존심이라는 점이다.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여사의 유명세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본다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은 매실식품의 맛이 좋고 약효가 좋기로 유명하고 또한 그 종류가 다양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청매실농원에서는 매실장아찌, 매실고추장아찌, 매실고추장 등 매실반찬을 만들고 있다.

 

홍쌍리 여사가 정식으로 매실전통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이고 19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매실전통식품 지정을 받았다.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종류는 매실농축액, 매실장아찌, 매실청(차), 매실잼, 매실사탕, 매실젤리 등이 있다.

 

청매실 농원에서는 한결같이 매실식품을 전통제조법에 따라 만든다는 것이 오늘의 홍쌍리 씨를 있게 한 근본이며, 또 하나는 7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대를 이어오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제품을 만들어 상품화하게 되었다는데 남다른 유명세의 원인이 있다. 물론 매실농축액 제조과정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조공정중에 반드시 사람손을 거치게 되어 있어 매실농축액 제조도 완전 자동이 아닌 반자동으로 하고 있다.

 

청매실을 숙성·발효시키는 과정도 남다르다. 마당에 즐비하게 늘어선 300여개의 장독들, 숨쉬는 그릇인 전통용기로 구워낸 장독에 매실을 담아 수개월동안 발효하는 전통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청매실을 3개월 이상 보관하지 않고 반드시 3개월 이내에 제조작업을 마침으로써 매실식품의 신선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청매실 농원의 식품이 최고 품질을 갖기까지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70년 전통에 보다 큰 근본이 있다.

 

홍쌍리 여사가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과 시어머니의 매실식품 제조 활용법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눈썰미있게 새겨두면서 끊임없이 묻고 연구한 끝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이 밤과 매실을 수확하기 시작한 1935년부터 74년간을, 홍쌍리 여사가 김씨 집안에 시집온 1965년부터 44년간을 매실 식품 제조에 매달려 온 것이다.

 

이제 홍쌍리 여사는 매실전통식품 제조자로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95년에는 “매실박사 홍쌍리의 매실미용 건강 이야기”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홍쌍리 여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더 좋은 식품을 만들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오늘날 광양매실을 이야기하려면 광양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통했던 밤나무골 김영감님인 김오천 선생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없다. 김영감님이 1931년 일본에서 밤나무 묘목과 함께 들여온 5,000주의 매화나무 묘목으로부터 광양매실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오천선생은 1902년 11월 21일(음력)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살 나던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의 광부생활로 돈을 모았고 1931년(30세때)에 귀국하면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를 비롯하여 감나무, 배나무 등 양질의 신품종 묘목을 가지고 들어왔다.

 

3년동안에 가지고온 묘목을 심고 관리하던 김영감님은 나무 키우는데 필요한 기술과 돈을 구하기 위해 1934년 다시 일본에 들어가서 10년동안 일본과 광양의 고향집을 수없이 오고가면서 돈을 벌고 나무 키우는 기술을 익혔다. 김영감님은 두 번째로 일본에 들어가서는 당신이 광부생활을 했던 구천에서 광산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인부를 수 십명이상 많을때는 1백여명까지 썼고 고향마을 사람들도 10여명에 달했다.

 

1944년에는 완전 귀국하여 다시 밤나무, 매실나무 키우는 일에 매달려 45만평의 임야를 밤산으로 만들었고 집주변 언덕배기에는 매화나무를 집중해서 키웠다.

또한 김오천옹은 1952년부터 매실의 상품화에도 앞장서 해마다 매실 한약재인 오매와 금매 수십가마를 만들어 구례, 순천, 하동 등지의 한약방에 공급하였으며, 매실농축액과 매실식초, 매실차 등 매실식품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였다.

 

매화에 관하여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매화!

만해 한용운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쌓인 눈 찬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를 토하는 것이 매화라면, 거친 세상 괴로운 지경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용자니라.

 

꽃으로서 매화가 된다면 서리와 눈을 원망할 것이 없느니라. 사람으로서 용자가 된다면 행운의 기회를 기다릴 것이 없느니라. 무서운 겨울의 뒤에 바야흐로 오는 새 봄은 향기로운 매화에게 첫 키스를 주느니라."

 

매화의 그윽한 향은 전국으로 널리 펴져 매년 3월 초순이면 섬진강변 매화마을에서 전국 규모의 봄꽃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1997년 지역 주민의 동네축제로 시작한 광양매화문화축제는 남해성 전국판소리 경연대회, 매화사생대회 등을 가미한 문화축제로 발전되고 있으며 축제를 통해 농가소득 향상에 일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초 10여 년 사이에 축제가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지만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꽃축제로 겨우내 웅크렸던 우리들의 마음을 활짝 열계하는 전국 최초 축제라는 의미를 두고 있어 광양매화문화축제는 대표적인 축제로도 손색이 없다. 매화와 섬진강 재첩 다양한 먹거리 잔치도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매실제품과 각종 특산품은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아 관광객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순천 - 완주 고속도로

 

전주-서남원(65.6km) 구간은 지난해 12월 개통됐고, 서남원-순천(47.9km) 구간은 이달 말에, 순천-동순천(4.3km) 구간은 4월 말에 각각 개통될 예정이다.

 

순천-완주 고속도로는 총 9개 나들목(동전주, 상관, 임실, 오수, 북남원, 서남원, 구례, 황전, 동순천), 3개 분기점(완주, 남원, 순천)으로 설계돼 완공 때까지 총 사업비 2조2천477억원이 소요된다.

 

순천-완주 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면 전주와 동순천 간 차량 운행시간은 기존 2시간9분에서 1시간 11분으로 58분 단축되고, 남원과 순천 간 운행시간이 35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연간 924억원의 물류비 절감과 118억원의 환경개선 효과가 기대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 및 지역개발 역시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지리산에서 시작한 화개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열리던 전통적인 재래식시장이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최근에는 상시시장이 개장되어 특별히 5일장이 따로 서지는 않는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화개장터는 전국에서도 이름난 시장이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산나물과 약재, 전라도 곡창지대의 쌀과 보리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부보상들이 가지고 온 생활용품 및 남해안 일대 어부들이 섬진강을 통해 가져온 미역과 고등어 등의 수산물도 볼 수 있었다.

 

하동읍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10리 벗꽃길이 시작되는 곳이라 봄이 되면 전국의 물산과 꽃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곳이다. 예전에는 지금의 화개천 다리 아래에서 장이 섰지만 현재는 화개장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과거의 정취가 조금은 퇴색되었다. 몇몇 초가집 상가와 누각으로 과거의 운치를 살리기 위해 노력있는 모습이 보인다.

 

추천 먹거리로는 재첩국이 재격이며 빙어와 은어회 또한 일품이다.

 

구례 산수유마을

 

춘향골 남원에서 고속도로 같은 19번 국도를 타고 밤재터널을 지나면 곧장 구례 땅이다. 때마침 3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이곳을 찾는다면 밤재터널을 나서자 마자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샛노란 산수유꽃이다. 길가와 집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산기슭과 골짜기, 논둑과 밭두렁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샛노란 꽃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지리산의 산머리에는 겨우내 쌓인 눈이 아직도 희끗희끗한데, 그 산자락에 등을 기댄 마을들은 눈부시게 화사한 꽃 세상을 이루었다. 사실 산수유꽃은 꽃잎이 2㎜가량으로 아주 작기 때문에 낱낱의 꽃송이는 딱히 아름답다거나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수십 수백그루씩 무리를 지은 산수유나무가 한꺼번에 노란 꽃부리를 활짝 펼치면 벚꽃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사하고도 아름답다

 

꽃길 찾아가는 여행.... 몸보다 마음이 앞선다. 지도책을 펼쳐들면 어느새 눈 앞에는 꽃구름 위를 살포시 걸어가는 사람들의 환영이 아른거린다. 지금 전남 구례에 가면 샛노란 산수유꽃이 절정기를 지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지리산 만복대 남서쪽 골짜기에 들어서있는 산동면 위안리와 대평리는 국내 최고의 산수유 꽃단지. 꽃그늘 아래로는 섬진강으로 합쳐드는 실개천이 졸졸 흐른다.

 

구례로 출발하기 전에 곽재구 시인의 < 산수유꽃 필 무렵> 이라는 시를 미리 감상하고 여로에 오른다. 시인박목월 아니면 조지훈님의 서정과 유사한 느낌을 갖게하는 짧은 시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리

 

시인은 노랗게 채색된 그 세상에서 설움을 보았단다. 행여 보릿고개 있던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허기진 아이들은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족한 지금에 와서 산수유꽃 유람은 봄을 환히 밝히는 즐거운 나들이길이다.

 

여행자들은 실개천변을 따라 피어난 산수유 군락을 만나는 순간 그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외마디 감탄사를 지르고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잰걸음을 떼며 군락 속으로 몸을 던진다. 누구 하나 돌봐주는 이 없어도 저 혼자서 봄이 온 것을 알고 새색시처럼 곱디곱게 노랑저고리롤 갈아입는 산수유.

 

숨막히도록 화사한 정경을 저마다 가슴에 담기 위해 여행자들?느 그림 그릴 채비를 하고 카메라 션터를 누른다. 해도 길어졌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산수유를 만나고 저마다 가슴에 노란 꽃 한송이를 심어오면 족한 것이다.

 

꽃은 4월 중순까지 그 아름다운 자채를 유지한다. 구례는 산우유의 고장답게 오늘날 우리 나라 산수유(열매) 생산량의 60%가 이곳에서 나며 구례 지방 생산량의 85%는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자리잡은 산동면에서 생산된다. 이 작은 면에서 생산되는 산수유의 양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절반쯤이나 되는 셈이다.

 

산수유가 이 지방특산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년 전쯤이었다고 한다. 지리산 험한 준봉에 둘러싸여 있어 논이 적고 밭이 척박하였기에 산수유 나무를 곳곳에 심어 생계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산수유꽃하나로 전국 가지의 여행자들을 불러오으는 위안리는 한국전쟁 전만 해도 1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여순 반란사건(1948)으로 많은 주민 대다수가 목숨을 잃으면서 지금은 40여 가구만 그 땅을 지키고 있다.

 

그토록 청초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산수유꽃은 산동면뿐만 아니라 천은사로 들어가는 광의면 마을 길 주변, 화엄사로 이어지는 마산면 민가 담장, 호남 3대 명당의 하나라는 운조루, 노고단 아랫마을 문수리로 들어가는 계단식 논둑, 연곡사와 피아골로 들어가는 토지면 연곡천변과 계곡을따라 줄줄이 피어나서 구례 땅의 봄을 화사하게 물들여 놓고 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홍매화가 인사를 드립니다. ㅎ

 

 

평화로운 섬진강의 풍경을 본다.

 

 

매화나무 밑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데 아직 매화가 안 피었다.

 

 

흑매화라는 말이 있는데 붉은 홍매화가 붉음이 지나쳐서 흑빛이 난다고 해서 흑매화라고도 불리운다.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청매화가 겨우 하나 피었다.

 

 

전시관 앞의 장독대들이다.

 

 

대나무 숲도 있다.

 

 

홍매화 사이로 전망대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대나무 숲 사이이로 길이 나있다.

 

 

섬진강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문학동산의 모습이다.

 

 

정자가 멋지게 서있다.

 

 

홍매화를 큼지막하게 본다.

 

 

화개장터 3.1운동기념비와 장승이 있다.

 

 

화개장터에는 산나물, 특산물로 가득차 있다.

 

 

복수초도 판다.

 

 

옹기가 가득하다.

 

 

대장간 아저씨 담배불 좀 끄고 했으면 좋겠네요 ㅎ

 

 

좌우 상점에 물건이 가득차 있다.

 

 

화개터미날이 있다.

 

 

쌍계사 가는 길 벚나무가 즐비하다.

 

 

화개장터 표지석이다.

 

 

남도대교의 모습이다.

 

 

100년은 되었다는데 아직 산수유는 안 피었다.

 

 

돌담길 옆으로 산수유가 심어져 있다.

 

 

산수유 열매가 조형물로 전시되어 있다.

 

 

참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다.

 

 

묘가 나란히 서있다.

 

 

풍경이 너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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