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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다
어려서부터 학교 대표로 사생대회에 나가 곧잘 입상했을 정도로 그림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여가 시간에는 화실에 가거나 집에서 차분히 그림을 그린다. 배우 인생 28년 중 20년을 ‘전원일기’ 복길이 엄마로 살았던 김혜정은 ‘전원일기’가 종영한 후 공허함을 견딜 수 없었단다. 한쪽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마음을 그림으로 채우기로 결심하고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화실에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평화를 느끼기 때문에 마음을 달래고 싶은 날에는 화실에 들른다. 사정이 영 여의치 않으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 베란다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 또한 운치 있는 일이다. 그녀가 주로 그리는 그림은 자연이고, 좋아하고 모으는 그림 역시 자연이다. 추상화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사실화를 더 좋아해, 그녀의 집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그림 역시 꽃이나 풍경화 같은 구상화다. 촬영차 지방에 내려가거나 양수리 별장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꽃이나 풍경 등을 만나면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컨버스에 옮겨 담는다. 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작업실을 따로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아크릴 물감과 붓, 팔레트, 작업 중인 작품 등을 쌓아둔 베란다 창가 옆은 그녀만의 아틀리에다.
그림으로 화가와 소통하다
그녀는 미술 마니아다. 수시로 인사동과 삼청동으로 전시회를 찾아다니고 클림트나 모네, 램브란트, 고흐 등 주목할 만한 전시회는 꼭 관람한다. 외국 여행을 다닐 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을 볼 수 있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같은 곳을 들르는 것도 습관이 됐다. 한 번은 해외여행 도중 만난 모네의 ‘수련’ 앞에 3시간이나 앉아 있었단다. 단순히 그림이 좋아 앉아 있었다기보다 모네라는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했다고. 김혜정은 그림의 색감과 터치를 보는 것보다 그림에서 풍기는 화가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서재에는 미켈란젤로의 크로키북이나 반 고흐의 일생과 그림을 볼 수 있는 고서, 팸플릿 등이 빼곡하다.
작가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중시하는 그녀의 습관은 작품을 구입할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시를 관람하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바로 구입하지 않고 작가를 만나 그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듣고 구입한다.
최쌍중, 권준, 김일해, 윤장렬 등 그렇게 인연을 맺은 작가들이 이제 미술계의 중견이 됐다. 누구는 미술 재테크를 위해 그림을 사 모은다고 하지만, 그녀가 그림을 수집하는 것은 그와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현재 작은 전시회와 공연을 할 수 있는 미술관 겸 공연장을 계획 중이다. 그림이 전시된 자신만의 공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놓고 쉬고 싶다고. 오랜 세월 가족처럼, 친구처럼 함께 지낸 그녀와 그녀의 그림은 이미 하나가 된 듯했다.
"그림을 볼 때 그림 자체보다는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을 보려고 노력해요.
이 화가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저렇게 표현했을까,하고요.
한 장의 그림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내는 게 그림 감상의 포인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그림을 보면서 화가의 성장 배경이나 그림을 그리던 그 시절도 혼자 추측하곤 한답니다"
2 그녀가 사용하는 미술용품 | 아크릴 물감, 다양한 호수의 붓, 캔버스, 기름 등 유화를 즐겨 그리는 그녀는 주로 신한이나 바바라 제품을 사용한다.
3 그동안 모아온 소중한 자산, 팸플릿 | 전시회에 가면 빼놓지 않고 구입하는 팸플릿. 이 안에는 화가의 모든 작품이 집약돼 있어 그림을 직접 구입하는 듯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여성조선
진행 윤미 기자 | 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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