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기억도 내 것이 아니다 >
초전법륜경과 같은 시기에 설해졌다는 무아경(無我經)에 보면 3법인 중에서 무아(無我)를 깨닫기가 무상(無常)이나 고(苦)를 깨닫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물론 성인의 경지에서는 그 차이가 없겠지만 범부(凡夫)의 경우에는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가 더욱 난해하다는 말일 것이다. 무아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면서 “나의 기억”도 나의 것이 아니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새삼스럽게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내가 어제 기억해 두었던 일을 오늘 다시 생각해냈다면 어제의 기억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내가 기억한 것이 아닌가. 주변 식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여 보았다. “어제 내가 기억했던 것은 나의 기억인가, 아닌가” 모두 한번씩은 머리를 갸우뚱해본다. 그 동안 "무아(無我)"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지만 무아의 개념 속에 나의 기억도 포함되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니 그 동안 무아란 말을 건성으로 들어왔다는 증거이리라.
선생님께 여쭈었더니, 어제의 기억은 이미 어제 멸하여 없어졌고 지금의 기억은 어제의 일을 찾아낸 새로운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 기억은 이미 그 순간에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진실을 모르는 우리가 어제 기억한 것을 오늘까지 간직한다고 착각하고 그것이 나의 것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개미의 행렬을 멀리서 보면 한 줄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또한 영화의 화면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수많은 정지된 장면의 연속인 것처럼.....우리의 일상은 생멸의 연속일 뿐인데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 인줄 알고 희노애락을 키우며 집착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 생멸의 한 입자는 한 찰라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나”라고 하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무아경의 한 부분을 옮겨놓으면,
“사람들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릴 때, 그때 그 대상을 만났던 것도 '나' 이고 지금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도 '나' 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고, 들을 때 위빠싸나의 지혜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고들은 그 순간이 사라지는 것을 위빠싸나의 지혜로 알면 기억하고 생각하는 산냐[想]는 한 순간일 뿐 머물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방안의 전기를 켜기 위하여 스위치를 누르는 이 동작은 수도 없이 되풀이 되어온 일상의 행위가 아니라 처음이자 마지막인, 일생의 단 한번의 행위인 것이다. 지겹도록 되풀이 되어왔고 또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부엌에서의 설거지도 일생에 단 한 번 맞이하는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그래서 한 순간이 소중하다고 하는가보다. 이 소중한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이 "할 때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사견(邪見)의 하나로써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영원하다고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상견(常見)이다. 상견을 가진 사람들은 "몸은 무상하여 버릴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선업을 쌓아 천당이나 극락에 가길 원하고 그곳에서 고통도 없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영혼 불멸설 인데, 결국 '나'란 존재가, 비록 몸은 바뀌더라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흔히 불교인들은 죽는 것을 "옷 바꿔 입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 몸을 받은 내생의 나와 현생의 나는 모양만 다를 뿐 마음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최근까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성품으로는 연속되는 '나'가 없다. 그것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영혼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영혼이라는 용어에는 영원불변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표현한다면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도 한 순간에 일어났다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새로 기억한 마음이 다시 일어난 것뿐인데 우리는 이것이 연속되는 나의 마음인 줄 안다. 그래서 어제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것인 줄 알고, 어제의 기억이 나의 기억인 줄 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사견인 줄을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