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작업장에 출근합니다. 홍천 현장이동 시기가 다시 3주 가량 늦추어 져서
의외의 휴가가 생겼네요. 작업장PJ, 아내를 위한 공간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점심 무렵 아내가 출근합니다. 잠깐 몽실이을 돌봐 주고 점심 먹으러 궈궈!
오늘은 시내 말고... ^^
난생 처음 수안보에 가서 먼저 찾은 곳은 수안보 성당
작업장에서 출발해 천천히 운전하고, 수안보 즈음에서는 아예 구 도로를 이용했음에도
대략 35분 만에 성당 마당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그리 덥지 않은 초여름, 날씨는 청명했고
평일 낮 3번 국도는 한산했어요. 성당은 고요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초여름, 한 낮... 그 선명한 그림자와 정적 속에서 성당과 사제관 부속실 기념관 등 성당 내
모든 건축물의 외장재로 쓰인 붉은 벽돌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사제관 지붕은 낡을대로 낡았고 회색 슬레이트 지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부속실은
쇠락의 상징임에도 그와 대비되는 붉은 벽돌의 고색창연함이란... 오히려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내 유년의 한 시기 등 하교길에서 마주하던 친구의 집과 그 동네, 중2 때 간
양수리 적십자수련원과 정릉교회 고등부 하기수련회에서 머물렀던 건물이 오버랩되는,
찰라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어요.
옛것에서 눈물나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금 이 순간, 맑고 푸른 하늘 탓일 수 도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아내를 뒤쫓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당에서 한 시간 여를 머물다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성당 언덕에서 내려와
노포 느낌이 나는 식당에 들어가 비지장과 순두부를 주문했어요. 이동수단과 목욕문화의
변화에 따라 '영광의 시기' 에서 밀려나 쇠락의 길을 걷던 수안보는 최근에 재기의 바람이
시내 곳곳에 불고 있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시와 도에서도 적극 후원하고 있다 하네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세월을 품고 있는 오래 된 가게들이 즐비하죠. 내가 그 전과 비교해
나이들기는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 원래 신도시의 말쑥함보다는 이처럼 옛 마을의
정취가 더 편하고 익숙합니다
내친 김에 월악산 방향으로 하늘재 왼편 닷돈재 야영장까지 드라이브하며 감탄을 연발.
가던 길에 눈여겨 보았던, 빈티지 감성 가득한 카페에 앉았습니다. 20여 년 가량 정성껏
가꾼 카페와 주인장부부의 스타일 그 분위기가 참... ㅎ 부럽기도 했어요 ^^
행복은 '순간', '찰라'에 있으며 그것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숲 터널처럼 울창한 나뭇입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과 아스팔트 위에 드리운 그림자,
물결처럼 이어지는 그런 길을 천천히 지나가는 동안 살짝 열린 창 틈으로 밀려오는
맑은 공기가 코 끝을 스칠 때, 성당 십자가 위에 걸린 조각 구름과 '스카이블루' 하늘을 보며
나도 모르는 탄성이 입술 사이로 마치 한숨 쉬듯 새어 나올때, 한적한 산길 카페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의 모임 일거라는.
내가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다면, 점심시간에 아내와 수안보로 나와 십자가의 길을 걷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3시가 여를 보내다가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게 가능할까요?
https://youtu.be/IFL2zFpSFe8
미대진학 준비할 때 사부님이 들려 준, 그룹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의 Old & Wise
그때는 가사내용을 몰랐어요. 알았다 해도, 이해할 수는 없었겠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천성이 미숙하다고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