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완주 1회라는 짧은 경력으로 무모하게 울트라를 도전했다. 할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나름대로 연습을 했지만 역시 생각대로 무척 힘든 레이스였다. 9월 4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길래 ‘밤새도록 비맞고 뛰어야되는거 아닌가’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오후가 되니 날씨가 개이고 마라톤하기에 적정한 기온인 것 같았다. 저녁 6시 45분 마라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출발을 응원해 주겠다고 같이 집을 나섰다. 7시 10분경 행사장에 도착하여 등록을 하고 준비된 행사를 관람하다 출발시간이 다가와 출발점에 섰다. 마라톤클럽 회원들과 함께 결의를 다지는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신호와 함께 출발했다. 응원나온 아내와 아들이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아들이 한번더 소리쳤다. “아빠! 일등해.” 5살밖에 안된 놈이 뭘 알겠는가! 일등은 나에겐 너무나 머나먼 등위라는걸... 그래도 여러 대회를 참가했지만 가족들이 이렇게 응원해주는 것은 처음이라 ‘감개무량’했다. 초반부에는 조동호&최정미회원 부부와 동반주를 했다. 조동호회원이 여러 가지 조언을 많이 해 주었다. 광주 울트라때 실패의 원인과 체력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을 잘 하라는 당부였다. 15킬로지점까지 동반주중 경기도 산본에서온 길종섭씨라는 분과 함께 동반주를 하게 되었다. 그 분과 서림입구(39.1킬로지점)까지 줄곧 동반주를 했다. 그 분이 나름대로 계획한 완주시간이 15시간 50분이었는데 이 사람만 따라가면 무난히 완주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계속 페이스를 맞춰 동반주를 했다. 40킬로 지점을 지나 벽실골입구에서 길종섭씨가 갑자기 램프에 불을 꺼 보라고 한다. 램프의 불을 끄고 하늘을 쳐다보니 캄캄한 밤 하늘에 별들이 나의 감성을 자극하였다. 매일 사는게 뭐 그리 바쁜지 하늘 한번 쳐다볼 시간이 없는게 우리의 실정이지만 지금 올려다 보는 하늘은 나에게 여유 그 자체였다. 나름대로 지금 까지의 레이스는 즐기면서 잘 오고 있었고, 길종섭씨는 해뜨는 마루턱가기 중간 지점쯤 고독을 음미하고 싶다며 먼저 앞서 나간다, 한참을 가다 다시 길종섭씨를 만났다. 절대 고독의 언덕을 넘으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며 나름대로 울트라의 참맛을 늘어 놓았다. 저 분은 울트라자체를 즐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뜨는 마루턱까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어느덧 날이 밝기 시작했다. 일출을 보고자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해뜨는 마루턱에 도착했을때 이미 해는 떠있었다. 해뜨는 마루턱(55킬로지점)에 도착하니 신영우회원, 김회율고문, 이맹섭사무국장, 김원기회원이 도착해 있었고, 간단한 식사와 함께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발걸음이 굉장히 무거웠고 발바닥도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뛰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고 이전 페이스보다 약간 속도를 줄인 페이스로 계속 전진했었다. 70킬로 지점쯤 갔을때 발바닥이 아파 잠시 발맛사지를 하면서 쉬고 있을 때 김회율고문이 나를 제치고 지나간다. 그때 발의 통증을 억제하고자 나는 진통제 2알을 먹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72킬로 정도 갔을때 김회율 고문이 쉬고 있었고 나는 계속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후 구토를 동반한 현기증이 발생하면서 완전히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그후 무척 졸렸다. 너무 졸려 길옆 표지석에 잠깐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한5분에서 10분정도 잔 것 같다. 그다음 몸을 추슬러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고자 뛰었지만 여러 가지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발바닥은 물론 가방이 허리에 슬려 이미 다까진 상태였고, 무릎에서도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 페이스를 유지하지는 못해도 뛰어보자고 뛰었지만 때는 늦었나보다 통증이 심해 걷기 시작했다. 그 지점이 75킬로 정도 될 것이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 75킬로나 왔는데 포기할 수 없지! 나의 완주를 바라는 사람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기 시작했다. 특히 아들을 생각하니 끝까지 완주해야 겠다는 굳은 의지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계속 전진하기 시작했다. 77킬로지점쯤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되었다. 정태권회원이다. 줄곧 뒤에오다가 내가 페이스가 쳐저 걷고 있다보니 쫓아온 것이다. 왜이리 늦었냐고 물으니 졸려서 자기도하고 걷고 뛰고 했다며 이제 왔다고 했다. 정태권회원보다 더 뒤쳐저선 안될 것 같아 열심히 따라 붙었다. 강릉호수마라톤 클럽회원이 정태권회원과 동반주를 했고 다시 내가 합류해서 세명이 같이 동반주 아니 동반보를 하기 시작했다. 80킬로 90킬로 지점까지 거의 걸었다. 그만큼 통증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명이 꼭 완주하겠다는 의지는 결의에 차 있었다. 90킬로 지점가까왔을 때 한명의 뒤쳐졌던 사람이 다시 합류하여 네 명이 걷기 시작했고 92킬로 정도 되었을 때 정태권회원과 나는 뒤로 쳐지고 나머지 두명은 우리와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정태권회원도 그들과 같이 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클럽회원이라고 나와 계속 함께 해 주었다. 93킬로지점 수리마을이 내려다 보일정도까지 왔을때 나는 걷는 속도도 느려졌다. 정태권회원이 걸음을 재촉했지만 정말 걷기 조차 힘들었다. 할수없이 정태권회원을 먼저 내려가라고 보내고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또 걸었다. 혼자 걸으면서 내가 왜이런 고통을 참으며 100킬로를 완주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했을때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영웅이고 싶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보는 아버지는 언제나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영웅이라는 것을 아들에게만은 각인시켜 주고 싶어서였다. 겨우겨우 수리저수지를 지나 도로에 다다랐을때 조동호&최정미회원 부부가 마중나와 있었다. 정태권회원도 먼저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부부가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정태권회원과 마지막 8킬로를 끝까지 완주하자는 결의를 다지고 또 열심히 걸었다. 명지푸르미 아파트를 지나고 양양 구다리를 건널때 양양클럽 전세열회원이 다 왔으니 뛰라는 것이었다. 100미터정도 남기고 우리는 뛰기 시작해 마지막 힘을 다해 피니쉬라인에 도착했다. 장장 19시간 35분의 기나긴 레이스가 종결되는 시간이었다. 피니쉬라인에 내 가족들과 대회 운영위원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꽃다발을 준비해 축하해 주었고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런 감격을 다시 맛볼수 있을까? 출발때도 그랬지만 도착점에서도 너무 감격스러웠다. 아들과 정태권회원과 완주 기념사진을 찍고 운영위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나의 울트라여정이 끝났다. 나로서는 좋은 경험이었고 “도전”이라는 것이 참 매력있는 단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끝까지 동반주 해준 정태권회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양양 설악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하신 속마클회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