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심마니 도 모씨(65)는 10m만 걸어도 숨이 차서 산은커녕 평지도 걸을 수가 없어 병원을 찾았다가 심장기능이 떨어져 생명이 위협받는 상태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심장이식 수술이 필요했지만 심장을 공급받을 뇌사자도, 시간도 없었다. 하늘이 도왔던 것일까, 주치의가 생명의 끈을 들고 왔다. 미국 소라텍에서 만든 인공심장 ‘하트 메이트 Ⅱ’를 이식받는 방법이었다. 그는 인공심장을 심어 지금은 5㎞를 거뜬히 걷고 실내 자전거도 탄다. 등성이는 오르지 못하지만, 둘레길을 걸으며 심마니로서 산의 기운도 받는다.
도 씨의 주치의인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이영탁 교수는 “이전 인공심장이 뇌사자 인공심장을 받기 전 가교 역할에 그쳤다면 현재 인공심장은 그 자체로서 치료가치가 있다”면서 “인공심장이 난치성 심장병 환자의 고민을 해결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거나 특정 감염병에 걸린 사람 등 뇌사자 심장이식이 불가능해서 속절없이 삶의 종착역만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인공심장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에게 수시로 이메일을 보낸다.
“우리 병원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1억5000만원에 가까운 수술비 때문에 삶을 접어야 하는 심장병 환자를 위해서 우리나라 전체에서 1년에 10명이라도 인공심장 이식을 받게 해주십시오.”
이 교수는 심장으로 혈액을 공급해주는 심장동맥이 막힌 환자에게 새 혈관을 만들어주는 수술의 권위자다. 지금까지 8000여명에게 새 삶을 선사했다. 2007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방영된 MBC 드라마 ‘뉴하트’에서 최강국(조재현 분)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그는 1989년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를 마치고 심장병 전문병원 부천세종병원에서 12년 동안 ‘칼잡이’로서 이름을 떨치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막강 심장수술팀을 구축하면서 국내 최초의 역사를 써왔다.
이 교수는 1996년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만드는 ‘무펌프 심장동맥우회술’을 국내 도입했다. 이전에는 일단 심장을 정지시키고 인공심폐기를 돌린 상태에서 수술했는데, 새 수술은 뇌졸중과 부정맥 후유증을 뚝 떨어뜨렸다. 수술 시간도 1~2시간 줄었다. 초기에 포크의 중간 두 날을 잘라내고 이것으로 혈관의 꿰매는 부분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켜 시행한 ‘포크 수술’은 흉부외과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는 한 해 400명의 심장동맥 환자를 수술하는데 이 가운데 90% 이상을 펌프 없이 수술한다.
이 교수는 1998년 심장동맥 우회로를 동맥으로만 만드는 수술에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동맥과 다리의 정맥을 함께 사용해 우회로를 만든 기존 수술에 비해 정맥을 얻기 위해 다리를 수술할 필요가 없고 혈관이 오래 살아있는 장점이 있는 기법이었다.
2003년 응급순환보조장치(EBS)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도 이 교수다. 이 기계는 갑자기 심장이나 폐 기능이 멎다시피 한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해 한동안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인데 지금은 전국의 큰 병원에 도입돼 있다.
그는 수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술 뒤 환자의 경과를 살피는 것이라고 믿는다. 회진할 때 에는 가급적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한다.
“환자의 손을 잡으면 건강상태를 알 수 있어요. 손이 따뜻하면 심장이 잘 뛰고 피가 잘 돌고 있다는 증거랍니다. 의사의 따뜻한 손길이 환자에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환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재충전합니다.”
이 교수는 주말에도 가급적 병원에 와서 환자를 본다. 오후에 가족이나 지인 약속이 있거나 학회가 있어도 오전에는 들른다. 환갑 나이에 왜 휴일도 안 챙기고 환자를 보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은 내가 환갑인줄을 모른다. 휴일이라고 환자에게 위기가 오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후배나 제자 의사가 휴일에 직접 환자를 보지 않고 차트로만 환자를 점검했다가는 불호령을 듣는다.
“흉부외과에 오는 환자는 대부분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의사의 한 순간이 환자에게는 영원이 됩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늘 후배 의사나 간호사들을 긴장에 몰아넣는 보스와는 거리가 멀다. 병원에서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이나 술자리를 갖고 형이나 오빠처럼 팀원들을 도닥거린다. 더러 집에까지 데려와 스트레스와 걱정을 녹이기도 한다. 연말에는 집에 병원 식구들을 초청해서 송년회를 갖는다. 밤늦게까지 시끌벅적하게 카드나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그래서 환자뿐 아니라 제자나 간호사, 직원들도 좋아한다. 이 교수는 2004년 삼성서울병원 전공의들에 의해 가장 닮고 싶은 의사로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삼성서울병원이 선정하는 ‘올해의 교수상’을 받았다. ‘뉴하트’를 촬영하면서 3개월 동안 이 교수의 일상을 일거수일투족, 미주알고주알 스케치했던 황은경 작가는 그의 팬이 돼버렸다. “국내 최고 명의인데도 권위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도 명예도 관심이 없이 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오로지 병 고치는 사명감으로 사는 듯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순수함에 감동받았습니다.”
- 심장동맥질환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심장은 인체의 엔진과도 같다. 어른의 종주먹 크기 근육 덩어리가 쉴 새 없이 뛰면서 온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보낸다. 그런데 심장은 자체 근육이 뛰는 데에도 산소와 영양분이 필요하다. 혈액이 공급돼야 하는 것이다. 심장에 혈액을 보내는 ‘심장동맥’은 세 개인데 심장을 뒤집었을 때 왕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관상동맥(冠狀動脈)이라고도 부른다. 이 동맥이 막히면 심장이 멎는다. 이 동맥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꽉 막히는 것이 심장동맥질환이다. 관상동맥질환, 허혈성 심장질환이라고도 부른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심장동맥의 내부에 피떡(혈전)이 엉겨 붙어 혈관이 좁아지는 ‘협심증’과 혈관이 막혀서 심장근육이 죽는 ‘심근경색’(심장발작)이 있다. 협심증은 3∼5분간 가슴 한가운데가 짓누르거나 빠개지는 듯한 통증이 되풀이된다. 때로 팔이나 목이 아프기도 한다. 계단이나 육교를 오르거나 급히 움직일 때 아팠다가 쉬면 덜 아프며 추운 날씨나 식사 직후에 통증이 생긴다. 병이 진행되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온다. 사람마다 통증이 다른데 고령이나 당뇨병환자는 통증을 못 느끼면서 병이 진행되고 담배를 오래 피운 사람은 새벽녘이나 아침에 통증이 온다.”
-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숨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멀쩡한 사람이 그럴 리가 있나? 술, 담배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고혈압 환자 등은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가 갑자기 심장이 막혔을 때 대응하지 못해 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절반이 사망할 만큼 치명적이므로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증세가 나타나면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1, 2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30분 이상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더러 구역질이 나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졸도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소화가 안 되거나 식은땀이 나거나 가슴 주위가 저린 듯 아픈 등 증세가 달리 나타나는데 그렇다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가슴 부위가 아프면 무조건 병원에 가는 것이 안전하다.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사람 중의 상당수는 급성 위염이나 역류성 식도염으로 진단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결국에는 치료받아야 하지 않은가? 특히 심근경색은 생명과도 직결돼 있다. 병원에 안 갈 이유가 없다.”
- 병원에서는 어떤 처치를 하나요?
“응급환자에게는 우선 혈관을 막은 피떡(혈전)을 녹이는 약을 투여하고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결정한다. 심장내과에서는 약물요법과 중재시술로 치료하고 흉부외과에서는 수술을 한다. 최근에는 사타구니를 통해 작은 그물망(스텐트)을 넣어 심장동맥을 넓히는 중재시술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이것이 능사는 아니다. 스텐트 시술은 잘 재발한다는 단점이 있다. 심장동맥 하나에 너무 많은 스텐트를 넣으면 나중에 증세가 심각해졌을 때 수술을 받을 수도 없다. 흉부외과에서는 막힌 동맥을 대신하는 새 혈관을 만들어 이어주는 수술을 한다. 재발률이 낮지만 큰 수술인 만큼 몸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증세가 가벼운 환자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환자는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의사 간 협진이 잘 되는 병원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심장동맥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심장동맥질환도 예방이 최선이다. 고혈압, 흡연, 고지혈증, 운동부족, 당뇨병, 비만, 스트레스 등이 심장동맥질환의 위험요소다. 우리나라에서는 술과 담배에 절어 사는 45세 이상의 남성에게서 흔하며 가족력도 위험인자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매년 1번 정도 심전도검사나 운동부하검사 정도는 받는 것이 좋다. 특히 고혈압 환자는 증세가 없다고 해서 약을 먹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수 있으므로 꾸준히 혈압을 관리해야 한다. 요즘엔 30∼45세 남성에게도 심장질환이 많이 생기는데 주로 스트레스와 흡연 탓으로 추정된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이면 호르몬 ‘카테콜아민’이 많아져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며 이 상태가 5, 6년 계속되면 혈관이 급격히 수축된다. 따라서 1주 3회 이상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하고 취미와 여가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