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영화 100년사에 최대 쾌거를 이룩하였다. 김기덕 감독은 흔히들 한국영화계에 이단아로
불리우며 비주류인 아웃사이더 입장에 서있는 독특한 개성의 영화감독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지키려고 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어떠한 비난을 받더라도 끝까지 신념을 지키며
자기 주장을 펼치는 감독이다. 자기만의 분명하고 확고한 색깔이 있는 감독이다.
영화 <피에타>의 감상기를 쓰기 이전에 먼저 김기덕을 알아 봄으로써 <피에타>의 접근이 쉬울 것 같다.
①김기덕의 고향과 이력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송은 결이 곱고 단단하여 옛부터 한옥 궁궐 사찰 등에
건축자재로 많이 사용한다. 금강송 중에서도 경북 봉화의 춘양에서 나는 금강송이 으뜸으로 친다.
경북 춘양의 금강송을 춘양목이라고 하는데 김기덕감독의 고향은 춘양목이 많이 나는
경북 봉화의 춘양면 서벽2리 <본마>라고 하는 자연부락이다.
봉화 영주는 우리 안동과 거의 같은 고향이나 마찮가지다.
그는 이곳에서 1960년 태어나 9살까지 살다가 그의 부친(김노봉.작고)을 따라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지금 그의 고향에는 생가는 없어지고 그의 고모 내외분만 본마에 살고 있음)
근 40여년 전 경기도 일산은 요즘과 같은 아파트도 없고 그냥 여느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북 봉화에서 경기도 일산에 정착한 김기덕감독의 집은 벼농사로 생업을 꾸려나갔다.
유년을 일산에서 보낸 김기덕 감독은 공부를 잘 했던 형이 중학교 졸업하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자동차 폐차장으로 취업을 하자 부친은 차남은 장남 보다 많이 배우면 안된다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김기덕을 농업학교(삼애실업전수학교) 에 보낸다 ,
삼애실업전수학교는 졸업장이 없는 학력 비인가 학교이다.
때문에 김기덕 감독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삼애학교 졸업후 부친은 제도교육이 필요없다 하며 차남인 김기덕을 공장에 다니게 하였다.
김기덕은 곧바로 청계천 공장으로 취직해 밑바닥 사회생활을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단추공장에서 일하다 폐차장을 거처 트랜스와 항공무선장비를 만드는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뛰어난 손재주로 사장의 눈에 들어 어린나이에 공장장까지 하게된다.
그 당시 청계천은 한국 기계산업과 전자산업의 아카데미였다.
기계과 전자과 학생들이 샘플을 만들고 납품을 하고,
종로의 세운상가를 축으로 청계천은 근대 한국 기계 전자산업의 메카나 마찬가지였다.
청계천에서 공장생활을 하던 중 그는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여 하사관으로 4년6개월간 군복무를 마치고
남산의 시각장애인교회에서 2년간 허드렛일을 도우며 봉사활동을 하고나서
예술의 도시인 파리로 무작정 그림을 그리려고 떠났다.
김기덕 감독은 <나는 열등감을 먹고자란 괴물이다> 라는 자신의 표현처럼 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열등감의 탈출구가 <해병대 지원>이고 <파리행>이다. 무작정 파리로 떠난 그는 부랑자처럼 살았다.
길거리에서 파스텔로 사람의 초상을 그려주고 생활하면서 예술의 세계에 눈을 뜨며
한국처럼 학력이 중요시 하지않고 능력이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자기많의 의식세계를 만들어간다.
②김기덕의 영화와 인연
서른 두살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하던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퐁네프의 연인들>과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를 보고 영화문화에 충격을 받아 1992년 귀국하여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충무로 대한극장 뒤편 옛날 가수 주현미가 가수가 되기전 약사로 있던 필동약국 골목에서
동국대학교가 보이는 언덕배기 밑에<영상작가 교육원>이 있다.
영상작가교육원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설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금산빌딩에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의 <한국방송작가교육원>과
쌍벽을 이루는 극본교육기관이다. 영화시나리오 쪽은 충무로의 영상작가교육원이 방송극본 쪽은
여의도의 방송작가교육원이 영화와 드라마에 뜻이 있는 젊은이들을 교육 시켰다.
김기덕 감독은 충무로의 영상작가교육원 5기 출신이다. 시나리오 공모전과 방송극본 공모전에서 이 두곳
교육기관의 수강생들이 많이 당선 된다. 나도 한때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아 이 두곳을 기웃거린적이 있는데
수업이 끝나면 몇몇 뜻있는 사람끼리 모여 주머니 속의 동전 몇닢을 털어 낯술을 먹다가
취기가 오르면 철조망을 넘어 남산 기슭으로 기어올라 쌓인 눈을 똘똘뭉처 어그적어그적 씹어 먹으며
인생의 요설들을 전개하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처간다.
김기덕 감독은 영상작가교육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를 하면서 교육원측에서 분기별로 수강생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공모전에서 <화가와 사형수>로1993년 영상작가교육원 창작대상을 수상한다.
이어 1995년 영화진흥공사에서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전에 <무단횡단>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가로 들어선다.
1996년 김기덕은 자기가 쓴 시나리오 <악어>를 직접 연출하면서 감독의 길로 들어 선다.
한강에 투신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치졸한 인물을 통해 세상의 어두운 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가 김기덕 감독의 감독으로써 처녀작이다.
이어 <야생동물보호구역.1997> <파란대문.1998> <섬.1999> <실제상황.2000> <수취인불명.2001>
<나쁜남자.2001> <해안선.20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사마리아.2003>
<빈집.2004> <활.2005> <시간.2006> <숨.2007> <비몽.2008>등 2008년까지
매년 한편씩 영화를 연출하며 유럽의 각종 영화제에서 입상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다.
김기덕 감독은 조감독생활등 엘리트코스를 거치지 않고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로
오로지 거친 환경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무기로 삼아 자신많의 독특한 캐렉터의 영화를 만들어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는 입지전적인 감독이되었다.
③김기덕의 옷
도인을 연상케 하는 김기덕의 옷은 늘 파스텔 톤의 침전된 우중충한 색만 입고 돌아 다닌다.
어떻게 보면 남루하기 까지한 그의 패션은 일반인들이 생각했던 옷 보다 훨씬 비싼 옷이다.
베니스영화제 시상식에서 입은 김기덕 감독의 옷이 화제가 된적이 있다.
김기덕 감독이 입은 옷은 상의가 150만원. 하의가 60만원 한별에 200만원을 홋가하는 옷이다.
일일이 감물로 염색을해서 제작기간만 2~3년걸리는 인사동의 옷가게의 고급수제옷이다.
그는 늘 영화 제작비가 없어 저예산 영화를 만들면서 어찌 옷은 고가의 옷을 입느냐?
앞뒤 틀리는 것 아니냐?고 관객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적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KBS 2TV 이야기쇼 <두드림> 녹화를 가는데 집에서 아무리 입고 갈 옷을 찾아봐도 입고 갈만한 옷이 없어
인사동 옷가계에 들렸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 10~20만원쯤 할거라는 생각으로 여직원 있는데
옷을 다 살 것처럼 얘기 했다. 이 옷이 여자옷인지도 몰랐다. 직원도 아무나 입어도 된다고 얘기했다.
가격을 물으니 상의 하나가 150만원이라고 했다.
산다고 벌써 얘기 했고 두드림 녹화 갈 시간도 되어서 그냥 옷을 샀다."고 했다
어쩌다 비싼 옷을 사 입었지만 내가 보기에 김기덕감독은 명품옷을 사입고 사치를 즐기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옷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는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옷 한벌이면 똑 같은옷을 1년 내내 입고 다니고 심지어 칸영화제 마치고
현지에서 산 스페인제품 30만원대 신발도 그 자리에서 접어신으며
일년 내내 그 신발 하나만 끌고 다니는 쿨한 사람이다.
감물을 들인 수제품옷 과 스페인산 신발
④김기덕의 그림들
파리의 남부지방에서 거리의 화가로 있을때 20일동안 자신을 가둬놓고 그린 그림들
미술공부를 별도로 하지않고 자기 스스로 독학으로 그린 그림으로
김기덕 감독의 그림에는 태극기의 빨간색과 파란색 , 타임코드가 꼭 들어 간다.
(아래 그림들은 김기덕 그림의 부분캡처임)
⑤김기덕의 영화<아리랑>
베니스영화제 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김기덕 감독은
수상소감을 말한 후 관객들을 향해 아리랑을 한곡 멋지게 부른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1996년 악어로 처음 영화감독이된 김기덕 감독은 2008년까지 매년영화 한편씩 연출하다가
2008년부터 돌연 모든이와 연락을 끊고 한국 영화계를 등지고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다 2011년 느닷없이 <아리랑>이란 자전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을 세상에 던진다.
그는 자기자신이 직접 출연(1인4역).촬영,감독,제작한 기상천외하고도 기가 막히는
영화 <아리랑>을 들고 칸으로 달려가 칸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시선>상에 최고상을 받았다.
시상식 자리에서도 아리랑을 불렸다.
아리랑~
아리랑~
1996년 <악어>로 영화 감독에 데뷔한 김기덕감독은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한국의 주류영화계 밖의 국외자 입장에 서 있다.
그에 대한 관객들과 평단의 반응도 극과극이다. 그가 첫 영화<악어>를 만들었을때
어떤 영화 평론가는 백해무익한 감독이라고 혹평하고 2001년<나쁜남자>를 감독했을때
어떤 평론가는 정신병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악필을 날렸다.
<악어>이후 <피에타>까지 18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거의 모든 영화가
국내에서 보다는 해외에서 호응이 더좋은 편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에게 영화를 배우고 싶다고 애걸하며 찾아온 영화학도를 받아들여
자기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거처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주며 감독으로
데뷔 시키고 자기와 영화를 2편 더 만들기로 했지만 제자는 영화감독이 되고나서
메이저와 계약을 하며 그를 배신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김기덕은 2008년 영화계에 환멸을 느끼고 양평에서 홍천 사이에 있는 강원도 오지마을에
오두막 집을 짓고 그 속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스스로를 유배시키며 세상과 단절한다.
자기 자신이 내린 유배생활 속에서 영화 <아리랑>은 탄생한다. 화장실도 없는 오지마을 오두막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가지고 생활하면서 세상과 단절하고 철저하게 자아성찰의 길로 들어선다.
김기덕 감독의 세상과의 단절이 어쩌면 그리도 추사 김정희의 절해고도 제주도에서의 유배생활과
닮아 있는지, 물론 김기덕은 스스로가 내린 유배(?)이지만 추사 김정희처럼 세상을 등지고
자기자신을 채찍 하고 연마하며 한을 삮이는 부분은 매우 흡사하다.
터무니 없는 무고로 땅끝 제주도에 유배되어 풍토병과 끝없는 외로움에 시달리며
자아성찰과 자신에게 채찍을 든 장면이 김기덕의 텐트유배(?)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역시 능력자와 예술혼이 있는 사람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한다.
영화 <아리랑>은 그가 은둔 생활을 하던
그 오두막집에서 혼자 mark 11(디지털 카메라)을 설치해놓고 찍은 다큐 영화다.
아!~~ 이렇게도 영화를 만드는 구나.
나는 다운로드로와 케이블 구매로 아리랑을 세번 보면서 김기덕은 천재구나!!
김기덕이 아니면 이런 영화는 만들수도 없고 이런 영화의 발상 자체를 가지지 못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기덕 영화의 매니아로써 그가 만든 영화는 CD로 보든 다운로드로 보든 거의 다 보았지만
영화 <아라랑>을 보면서 나는 큰 충격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이제까지 내가 알았던 김기덕과 그에 영화들은 영화<아리랑>에 견주면 전부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기덕 영화를 단 한편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은 꼭 그가 만든 영화 <아리랑>을 봐야한다.
무조건 봐야한다. 이것은 명령 조에 가까운 말이나 다름없다.
풀삿으로 뜨는 오두막 그의 집. 부시시 잠에서 깨어난 그는 언덕배기 계곡으로 내려가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화장실이 없기에 볼일을 보는 것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오두막집 곳곳에 널려있는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김기덕이다.
냄비에 눈을 담아 난로에 녹여 라면을 끓여먹고 밥솥에 밥찌꺼기가 있어도 쌀을 넣어 씻지도 않고
물만부어 밥을 하고 배고푸면 알밤구워 까먹고 걸어둔 명태 살점 칼로 베먹고
청계천 공장생활때 익힌 기술로 직접만든 에스프레소 머신에 커피를 내려 먹기도 한다.
어두운 한밤에 그의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김기덕은 문을 열고 밖을 살피지만 아무도 없다.문을 잠그고 다시 텐트속으로 들어오면
또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다시 밖으로 나가보면 아무도 없다.
그러기를 세번 김기덕이 문을 열었을때 3명의 김기덕은 그의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술을 물마시듯 하면서 레디 액션!~을 외치며 스스로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아리랑에는 4명의 김기덕이 나온다. 좌절과 실의에 빠진 김기덕ⓛ,
실의에 빠진 김기덕을 다그치는 김기덕②,
김기덕의 그림자가 되어 김기덕에게 궁금한 질문을 던지는 그림자 김기덕③
그리고 화면에 촬영된ⓛ②③의 영상을 바라보는 영화감독의로써 김기덕④등이다.
김기덕은 혼자 1인4역을 한셈이다. ⓛ②③의 대화 속에는
가학(남을 괴롭히는 것) 피학(남이 나를 괴롭히는 것) 자학(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다 들어있다.
영화 말미에 김기덕은 수제 권총을 만들어 4발의 총알을 장전하고 누군가를 죽이러 떠난다.
도회로 나가서 자기가 증오하는 곳 허상에 3발을 쏘고 다시 집으로와
자기자신에 총구를 정조준 되도록 설치해놓고 낚시줄을 방아쇠에 연결해
레디 액션!!~을 외치면서 자기자신을 죽인다.
4발의 총성은 능력위주 보다는 학력위주의 스펙을 중요시하는
쓰레기같은 사회구조를 향해 통렬한 방아쇠를 당긴 것이며
아울려 그 쓰레기 같은 사회구조를 기억하는ⓛ②③④ 자기자신을 죽인 것이다.
김기덕의 영화 <아리랑>에 등장하는 자신의 발, 아리랑 메인포스터
ⓛ,영화 <아리랑>속의 좌절되어 실의에 빠진 김기덕
②, 영화 <아리랑>속의 실의에 빠진 김기덕을 다그치는 김기덕
③영화 <아리랑>속의 김기덕의 그림자가 되어 김기덕에게 궁금한 질문을 던지는 그림자 김기덕
④, 영화 <아리랑>속의 영화감독의로써 김기덕
자신이 만든 에스프레소 머신을 조작하는 이 장면은 찰리체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연상시키는 명장면이다
-어떤 사람이 찰리체플린에게 물었다. 당신작품 중 최고의 한 작품은 무었입니까?
-체플린의 대답은 다음 작품입니다. 김기덕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직접 만든 에스프레소 머신에 커피를 내리는 김기덕
(김기덕이 만든 에스프레소 머신은 1호, 2호, 3호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총구를 자신에 향하게 설치해 놓고 낚시줄에 연걸된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를 죽인다.
머지않아 사라질 청계천 공장들에 대한 헌사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를 보고-
인간의 내면을 잘게 부수면 그 본성은 선(善)이 많을까? 악(惡)이 많을까? 선이 많으면 선한사람이요
악이 많으면 악한사람이 된다. 선과 악의 본체는 무었이며 그 발로는 무었인가?
선과 악은 그사람의 성질(質)에 따른 것인가?
제아무리 선한 사람도 자기 자식이 남으로 부터 따귀 맞는것을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제아무리 악한 사람도 어린 아이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것(儒子入井)을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선한 사람의 그 끝은 어디이며 악한 사람의 끝은 어디인가?
악이 없으면 선이 존재할 필요도 없고 선이 없으면 악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선한 사람들도 사회의 악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범법자 살인자가 태어날때 부터 범법자 살인자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정형편 사회환경 경제적 여건등이 악한자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선과 악
김기덕 감독에게 선과 악은 똑같은 것으로 동일시된다.
그는 늘 흰색과 검은색은 똑같다고 주장한다. 그의 예술혼 의식세계에는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 <아리랑>에서 취기가 오른 김기덕은 아리랑을 아주 처연하게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아리랑은 고개라고 하면서 오르막~ 내리막~, 올라가고~ 내려오고~,또 올라 갔다가~ 또 떨어 졌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은 같은 것이다.오르막이 없으면 니리막도 없다.내리막이 없으면 오르막 또한 필요없다.
악한사람 강도(이정진)
그는 악마같이 추악한 사체업자 밑에서 일하는 해결사다.
그의 주무대는 청계천 주물공장 프레스공장들의 영세 업체다 .
유아기에 모성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살아있는 생선만 잡아 먹고 엄마가 없는 유년시절
멈춰버린 기억 때문에 그는 자기가 한 행동이 잔인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냉혈인간이다.
그래서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추악하고 극도로 잔인하다.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10배가 넘는 이자와 원금을 기일내에 값지 못하면
채무자를 보험에 들게 해서 공장의 절단기계를 이용해 린치를 가하거나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불구를 만든다음 보험금을 타내는 방법을 쓴다.
채무자의 가족이 보는 앞에서도 끔찍한 일을 스스럼 없이 자행하는 악의 화신이다.
표정없는 이정진의 악행연기는 살벌하다 못해 소름 기치게 한다.
그러던 어느날
무작정 엄마라고하는 미선(조민수)이 나타나면서 강도는 정체성의 혼돈에 빠지며 수많은 상념에 젖어든다.
미선은 강도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뜨개질로 옷도 뜨면서 거리에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길거리 데이트도 같이 한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아니라고 부정하던 강도도 미선의 적극적인 모성에
점점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며 진짜 어머니로 받아 들인다.
태어나서부터 사랑한번 받아보지 못한 강도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생활은
그의 가슴속 깊이 내재해 있던 악한 심성을 조금씩 허물어뜨린다.
급기야는 엄마가 없으면 이제는 못 살거 같은 상항으로 변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선은 뜨개질로 옷을 거의 완성해갈무렵 강도에게
오늘 너 생일인데 케익 하나만 사올래 하면서 부탁한다.
강도가 캐익을 사려간사이 미선은 집안에 강도가 든 것처럼 난장판을 만들고 피도 좀 흘려놓고
강도에게 휴대전화를 해 강도야 나 지금 악~~ 하면서 다급한 소리를 보내고 전화기를 끊어 버린다.
강도가 허겁지겁 집에 왔을때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고 어머니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강도는 자기가 돈을 받아내기위해 린치를 가한 채무자 중 누군가가 자기에게 복수를 한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잔인하게 돈을 뜯어낸 채무자의 집을 하나하나 찾아가 어머니를 찾는다.
그러나 미선은 어디에도 없다. 미선은 어디로 사라 졌을까?
(여기서 부터 끔찍한 반전이 시작되는데 영화를 보실분을 위해 줄거리 전개 생략)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란 과연 무었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돈때문에 인간관계가 사슬처럼 엉켜버리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 영화는 현대사회의 극단주의 자본주의하에서 생겨나는 가슴아픈 이야기다.
돈에 의해서 사람이 자살하거나 죽게 되고 그로 인하여 감정이 생기고 증오가 생기고 복수심이 생기면서
가족이라는 구도가 깨어지고 또 다른 가족구도가 만들어 진다. 영화는 화면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속에는 고통과 슬픔 폭력과 증오.가족의 소중함을 아주 솔찍하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보여준다. 미선이 강도에게 복수 하는 방법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진짜 자기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고통>을 고스란히 강도에게 <어미를 잃은 아들의 고통>을 느끼겠끔 돌려준다. 거기에는 미선의 죽음이 희생되어 아름다운 가족애의 여운을 남기고.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고통은 쉽게 치유되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치유되기 어럽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신 앞에서 자비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선을 죽인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법일지도 모른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화면이 투박하고 거칠고 매끄럽지 못하다.
폭력성이 난무하고 때로는 상식을 벗어난 장면들이 가끔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김기덕 영화의 장점이다.
흔히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 하면서 관객들의 취향에 맞는 써비스도 가끔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김기덕에게는 그러한 것이 별로 없다.김기덕 감독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렌즈에 렌즈를 붙이고 심지어 배우의 본성을 가리는 화장까지도 못 마당하게 생각한다.
고기는 그대로 먹어야지 굽거나 양념를 처서 먹으면 고기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타이틀만 봐도 그렇다. 타이틀 한장면에 몇백만원씩 투자해 웅장한 싸운드를 넣어 CG로 근사하게 처리하기 보다는 단순 소박하게 자기가 쓴 붓글씨로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물론 저예산 영화라 그럴수도 있지만 그는 드라마에 중점을 두고
테크니컬에는 별로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면 투박하고 연결 연결씬이 매그럽지 못한 경우가 나온다.
즉 드라마 주제는 지키되 테크닉은 포기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 피에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전체가 김기덕의 옷처럼 침전된 색깔의 이미지다.
청계천의 기계부품상가 공장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변함없이 정체되어 있다.
청계천 기계공장 골목을 가 보면 아직도 사체 명함이 널부러져 있고
슬레이트 지붕 영세공장들은 옛날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종로의 세운상가를 축으로 청계천 을지로를 거처 충무로의 진양상가까지 전자, 기계, 인쇄골목들은
아직도 김기덕 감독이 16세때부터 다니던 공장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광화문의 행정타운과 시청 을지로 입구의 금융타운 그리고 동대문의 의류타운에 밀려 종로의 세운상가는 없어졌고 청계천의 많은 공장들이 철거 되었다. 남아있는 공장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지만
모두 향후 10년 내에 이전되거나 없어진다. 김기덕 감독은 젊어 한때 청춘을 묻었던 청계천 기계공장을 무대로 현실얘기를 했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것을 내포하며
사라질 위기에 처한 청계천 기계공장에 던지는 자비의 헌사처럼 느껴진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 피에타( Pieta) 상
피에타( Pieta)는 <자비를 베푸소서> 와 < 동정>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영화 피에타( Pieta)의 메인 포스터
첫댓글 김기덕 감독의 성장과정이
지금까지 찍은 자신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수있습니다.
피에타 개봉하자마자 혼자 CGV로
달려가 봤는데 주인공들의 잔인함에
섬찟헜던 순간들에 가슴콩콩댔고
반전에서 아~~ 탄성이 절로 나오드라니
과연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받을만 했지요.
조민수도 훌륭한 연기를 했지만 이정진
표정 연기에서 느끼는 잔인함이란...
지식의 배움은 받지 못했어도 뛰어난
그림솜씨도 그렇고 천재인건 사실인가봐요.
나도 영화 많이봤지만 김감독영화는 지난후
TV나DVD를 통해 몇번봤을뿐 극장에서만난건
피에타가 처음입니다.
나도편견을 갖고있었나?
김기덕감독의 이력과 배경등 상세하게
알게해줘 진심으로감사~!~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영화관에서 보기 힘들거예요.
관객이 없으니 개봉하고 잠깐 있다가 스크린에서 사라지죠. 피에타는 그래도 오래 상영하는 편입니다.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라고 매스컴에서 호들갑을 떨고 하니영화관 수도 좀 늘어나고
저도 김기덕 영화를 극장에서 본건 청송 주왕산의 주산지의 아름다운
배경을 담은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과 <피에타> 딱 두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