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의 맛을 맨 처음 알기 시작하던 2월 초. 서울에서 내려와 5박 6일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첫째날인 월요일에 처음으로 걸었던 길이 바로 바우길 11구간의 신사임당길이다. 물어물어 시작점인 위촌리 송양초등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에서부터 낯설고 신기한 체험은 16.3km의 구간 내내 끊이질 않았다. 오죽헌을 빼놓고는 거의 사람들을 볼 수 없어, 송양초 뒷산 언덕으로 하얀 눈밭을 걸을 때엔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컸었다. 아이젠에 스패치를 하고 스틱을 단단히 잡으면서 생소한 첫 바우길을 홀로 상념 속에 기도로만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우길을 걷는 바우님들은 정기적으로 화요걷기, 목요걷기, 토요걷기 등 지속적인 모임들로 꾸준히 발전해간다. 바우길을 동행함으로써 건강과 체력증진은 물론 길 위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과 우정을 탄탄하게 다져가고 있다. 이번 나의 바우길 6박 7일 중 넷째날인 4월 20일 목요일엔 목요걷기팀에 합류하여 동행한다. 강릉사람인양 송양초등학교로 가는 버스를 자연스레 탄다.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바우님들이 차례차례 올라타며 반가운 인사들을 나눈다. 출발장소인 송양초등학교 정문 앞에 내 기타를 메고 온 그리메님은 그야말로 꼭 기타리스트다. 테라님이 메어보니 그녀 역시 폼이 난다. 수업이 한창인 학교는 조용하다. 조우하는 우리들만 아이들처럼 신이 났다. 나무님의 설명과 길잡이로 11구간 신사임당길의 출발이다.
송양초등학교 아래 벽화가 있는 방앗간을 돌아 뒷산쪽으로 올라간다. 봄기운을 넘어 벌써 여름으로 가는지 덥기 시작한다. 솔향 강릉의 근사한 소나무들이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니 걷는 걸음들이 활발하고 힘차다. 몇 번의 작은 산을 오르내리고 다시 오른 산중에서 갑자기 이벤트가 펼쳐진다. 일사분란하게 현수막이 걸리고, 바우님들은 관중이 되어 한쪽에 자리잡고 앉는다. 타지 서울에서 온 나를 위한 ‘화인샘 산중콘서트’ 라고 한다. 공연장에서 콘서트할 때와는 또 다른 아기자기한 산중콘서트는 참으로 뜻밖이고 아주 신선했다. 나의 소중한 기타 ‘마틴’을 연주하며 솔향 속에 라이브로 노래하는 기분도 이 순간 더없이 황홀하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Evergreen, 세월이 가면, When I dream, 잊혀진 여인’ 등 박수와 앵콜 속에 나는 행복한 라이브에 빠진다. ‘다이아나’ 빠른 비트로 노랠 부르자, 테라님의 로봇춤에 피닉스님의 자유춤이 환상이다. 모두가 신나는 박수와 몸짓 손짓 리듬으로 산중에서 기쁨으로 하나가 된다. 테라님은 기타를 잡고 폼생폼사 씽어가 된다. 웃음화산이 폭발한다. 걸으면서 산중에서 이런 즐거운 시간은 처음이라며 내게 갈채를 보내주는 멋진 바우님들, 실로 아름다운 동행이여! 꺼지지 않는 유대감 연대감이여!
길 위의 철쭉 연산홍 큰 무리진 꽃들, 작은 들꽃 예쁜 야생화들을 카메라 폰들에 담다가도, 바우길 꼬리 리본과 표지들이 낡은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적극적인 열정을 담아 떼어내고 새로 달아맨다. 조곤조곤 소곤대며 길을 걷다가도 전봇대 위, 시멘트벽,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안내 리본을 발견하고는 교체하는 일에 혼자서 둘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 그저 걷기만 하는 게 아니다. 참으로 놀라운 바우길 사랑이다. 기운을 받은 나도 어느 새 리본 교체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그림 같은 죽헌저수지 물결과 반영에 감탄들을 하고, 꼬불꼬불 오르내리는 길, 묘지길, 논둑밭둑길, 오솔길, 소나무숲길, 신작로, 포장도로길 들을 지나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그들 속에 함께 한다는 것이 이토록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엊저녁에 이틀 뒤가 그리메님의 생일인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생일케잌을 하나 사서 몰래 들고 왔다. 사천둑방길 나의 길잡이 동행 때에 발바닥이 아프면서도 전혀 표를 내지 않고 끝까지 걸어주었고, 몇 번씩 쳐오는 파도를 맞아가면서 잡은 감성돔 회로 나의 바우길 완주를 축하해준 고마움에 작게나마 보답하고 싶었다. 카메라를 든 나는 에바다님에게 비밀리에 케이크 운반을 부탁했다. 피닉스님이 이어 받으니 케이크인지 모르는 흔들림에 많이들 웃었다. 다시 산길에 올라서자 이번엔 생일축하 이벤트가 펼쳐진다. 내가 기타 반주로 ‘Happy birthday party' 팡파레를 울리자, 케이크에 촛불을 밝힌다. 뜻밖의 생일축하에 얼떨떨한지 어색해하는 그리메님은 눈가가 촉촉하다. 생일축하의 노래를 기타반주에 맞추어 박수치며 부르고, 진센님의 가슴을 울리는 시낭송이 이어진다. 케이크를 자르고 산속에서 한 조각씩들 축하하며 나누어 먹는다. 이 또한 의미있고 아름다운 동행 아닌가!
돌고 돌아 오는 길, 한 시골음식점에서 감자옹심이를 맛있게 먹는다. 오죽헌을 지나가고 강릉예술창작인촌에서 동양자수박물관과 공방의 공예 작품들을 둘러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배다리에 올라 선교장의 활래정을 바라본다. 분홍 철쭉꽃 주홍 연산홍이 쓸쓸한 정자에 빛을 더해주고 있다. 매월당기념관 담장너머로 꽃들이 그림같다. 경포생태습지엔 연꽃이 생명을 다한 채 아이들 장난기 서린 그림 같은 고부라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남을 기다리고 있다. 해발 87m의 시루봉을 넘으니 빨강꽃 진분홍꽃들이 한창 불타고 있는 경포대가 얼싸반긴다. 허균 허난설헌 유적지엔 분홍빛 겹사쿠라꽃이 흐드러졌다. 신사임당이 걸었고 초희 허난설헌이 걸었던 그 길엔 지금 사랑 가득한 바우님들 동행이 꽃보다 한층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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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화인샘 신사임당길
이야기를 넘 생생하게 글을 잘 써주셔서 저는 못갔지만
갔다온것 같은 마음이
드는군요
5학년짜리 방공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봐주느라 못가서 아쉬웠는데 ......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시구 심심하면 강릉에
또놀러오세요
글과 사진 잘봤습니다~^^
네. 오시는줄 알고
실은 기다렸지요.
손자가 더 예쁘니
하는 수 없겠지요.
늘 공감해주시고
칭찬해주시니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한 곡조라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거 꿈이였는데..ㅎ
그래두 해봤네요..ㅎ
화인샘
예쁜 추억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테라님의 숨은 다양한 재주와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함께 하는 내내 여기저기서
봅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여인, 테라님.
@화인샘 고운칭찬이 부끄런 요즘이예요..ㅎ
화인샘
따뜻한 연휴 되세요...
@테라 5월 연휴에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일 기쁜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화인샘님ㅎ~재주가 아주 많아요~
넘 좋은 재주로 행복을 담으며~
나누어 주기도~사람을 무지 좋아하고
막춤밖에 재주가 없는 ㅎ 1살 더하기
언니 같은 친구 가끔 함께 걷게 되면
막춤 기회좀 ~ ㅋ ㅋ ㅋ ~그날 함께 넘
즐거웠어요 많이 감사합니다 ㅎ
우리 50년 51년 52년생
세 여인들.
그중에 가운데인 난
언니 동생 있어
참 좋네요.
다시 또 바우길에서
뭉치길 고대해봅니다.
길을 개척한 분들
여전한 사랑으로 가꾸고 있는 분들
그리고 그 길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모두 참 아름답고 멋진 동행이었습니다~*
그렇죠.
남들이 닦아놓은 길 위를
저는 좋아라고 즐겁게
다니고 있구요.
행복했던 동행길
참 반가웠어요.
전날 가게에서의 공연이 너무 좋아서
무리인줄 알면서도 무조건 부탁을 드렸었는데
기꺼이 허락해주심에 넘 즐겁고 행복한
축제 분위기의 걸음이었습니다.
진정한 나눔과 배려가 무엇인지
화인샘님을 통해서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고맙습니다.^^
순수한 열정에
아낌없는 배려가
몸에 이미 베어있는
진센님과 함께 한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벌써 또 그립네요.
바우길을 걸으며
즐거웠던 많은 날 중에
그날은 으뜸이었습니다.
산중 콘서트...!
어디에도 없었던
그 특별한 이벤트는
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사건.
아직도 선율이 가시질 않네요.
더군다나 귀빠진 저에게 축하이벤트 까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함께 한 시간들은 행운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에도 언제나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리메님.
참 좋은 바우길 인연에
감사해요.
그리워 또 내려갈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