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눈물을 삼키며 산 여인 ①
제가 지켜본 한 많은 여인을 꼽으라면 단연 어린 시절 저와 8년을 함께한 고모님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켜본 고모부는 사랑의 표현도, 느낌마저 없는 무뚝뚝한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분은 첩이 사는 춘천에 지내면서 어쩌다 도지세를 받거나 농토를 팔기 위하여 잠시 들려 잠만 자고 가는 남편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첩의 집으로 가기 위하여 나서는 고모부에게 고모는 돈을 좀 주고 가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 대한 고모부의 첫 마디는 “없어~”라며 굵고 매몰찬 목소리로 고모를 윽박지르며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뚱뚱한 배에 턱선이 사라진 번들거리는 얼굴로 내뱉는 고모부의 모습은 어린 저의 눈에도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였으니 말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럴 때며 애매한 저를 핑계로 삼아 “수옥이도 학교에서 돈을 가져오라고 하는데 좀 주고 가요”하면서 사정을 합니다. 그러면 마지 못한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바지 호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 마당에 툭 던져 놓고 갑니다. 그렇게 남편에게 무시당하며 사랑받지 못하고 지내신 고모님은 지금 생각해도 참 불행한 삶을 사셨던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고모님에게 특이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울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럽고 마음이 쓰려서 우실 만한데도 제가 본 고모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눈물 없이 어떻게 외롭고 서러웠던 시간을 견디셨을지 지금도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본 영화 중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서편제>라는 영화입니다. 시대적인 배경은 1960년대로 소리 품을 파는 유봉은 자신의 양딸 송화가 자기를 떠나는 것을 막고 소리에 한(恨)을 심어주기 위하여 독이 들어 있는 한약을 달여 먹게 하여 눈을 멀게 합니다.
시력을 잃고 가난이라는 굴레에 한을 품고 여기저기 떠도는 송화는 소리꾼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애절하고 처연하기 그지없는 서편제의 창을 부릅니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갈등과 한이 실타래 풀리듯 흘러나오는 명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아픔은 눈물이라는 도구로 풀어내야 합니다. 고난의 아픔과 억울한 한이 서려 있더라도 눈물에 이런 것을 녹여 주님께 드리면 그런 눈물이 때로는 보석처럼 변화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서러움은 정말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순절을 맞으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눈물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