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난 재미있는 항공대에 관한 기사야..
다들 쓰레기 결혼식에 다녀와서 맛이 간줄 안다만...
항공대 출신이라는 것에 관한 나름대로의 자부심이랄까...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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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격변기의 통신산업 인맥 대탐구 7
50년 전통 이어온 기술개발 ‘역군’… 통신업계 두터운 ‘허리층’ 형성
학계·연구계 가장 많이 진출 … 각 업체 기술담당 ‘실세’로 부상
인맥대탐구 글 싣는 순서
1회 국립 체신고(98년 7월호)
2회 기술고시(8월호)
3회 대구·경북(9월호)
4회 벨연구소(10월호)
5회 정보통신부(11월호)
6회 호남출신(12월호)
7회 항공대출신(이번호)
국내통신산업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지난 90년과 96년의 2차에 걸친 통신산업 구조조정이 100년 독점의 통신사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이라면, 최근 일고 있는 지각변동은 ‘殺生’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관련업계는 물론이고 온나라가 주시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이번 ‘대수술’이 명실공히 국내 통신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한 차원 높은 ‘구조조정’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같은 격변기에 『tele.com』은 그동안 국내 통신산업을 일구고 이끈 인물, 학연과 지연이라는 끈끈한 연을 중심으로 ‘인력 풀’을 형성해 국내 통신산업 발전에 기여한 인맥 대탐구를 하기로 했다. 비록 국내 통신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긴 하지만, 업계 재편은 기존 통신산업인들의 각고의 노력에 의한 결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흔히 ‘인맥’하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전문기술인 보다 행정가·경영인이 대접받는 사회, 통신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은 때에 ‘살기위한 방편’으로서의 인맥 형성은 어찌보면 당연한 ‘생존논리’일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이제 막 꽃을 피운 국내통신산업 발전을 위해 그동안 우리사회 한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다.
『tele.com』은 이번호에서 ‘항공대출신’ 통신인맥을 「「격변기의 통신산업 인맥 대탐구」」에서 일곱번째로 다루기로 했다. 통신업계 항공대 출신은 크게 통신공학과와 전자공학과 출신들로 구성된다. 사회에 진출한 항공대 출신을 보면 ‘엔지니어’가 중심. 일반 통신사업자 종사자보다 연구원들이나 제조업체의 엔지니어들이 많다는 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최근에는 기술력을 앞세워 벤처기업을 창업한 사례도 늘고 있다.
항공대 출신들은 허리층이 두텁다. 현재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항공대 출신 중 일부를 제외하곤 대다수가 40대 중반이다. 회사내 주요 요직을 맡아 한창 일할 시기다. 이와같이 중간층이 많은 이유는 초창기 졸업생들이 학·연구계로 배출된 반면 국립특채로 입학한 72학번부터 산·학·연구계 등 폭넓은 분야로의 진출이 적극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립항공대 출신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정경미 기자> kmjung@datanet.co.kr
항공대, 어떤 대학인가
6.25 동란중 설립된 국립항공학교
… 국내 최초 통신학과 개설
「마음과 몸매를 밝게, 학문과 창의를 넓게, 화협과 단결을 굳게」
한국항공대는 항공우주과학기술과 이와 관련한 이론과 응용방법의 배움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다. 항공기술 개발을 주 목적으로 하지만 통신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항공분야에서 통신기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통신공학과가 개설됐기 때문이다.
항공대의 역사는 6.25전쟁중인 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공대는 6.25전쟁 중에 민간항공분야의 개척을 위한 교육기관의 필요에 따라 교통부 산하 교통고등학교 2년제 특설 항공과로 발족했다. 초기에는 조종과, 기관과, 통신과 등 세 과만이 있었으며 부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듬해 3년제로 개편해 국립항공학교로 독립됐으나 53년 기숙사 준공과 함께 서울 용산으로 옮겼으며 4년제 국립항공대학으로 정식 등록됐다. 지금의 고양군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지난 54년. 항공기 격납고를 준공하면서다.
항공대는 정부의 국립학교 설치령에 따라 국립항공학교로 개편, 입학자격을 일반 이공계 대학 2년 수료자 또는 초급대학 졸업자로 제안하고 대학 3, 4년 과정의 2년제로 개편했다가 65년 입학자격을 고등학교 졸업자로 변경, 수업연한도 4년제로 개편했다.
이어 지난 68년 교통부 소관에서 문교부로 이관됨에 따라 한국항공대학으로 개편했고 학과명칭도 운항관리학과, 정비공학과, 항공통신공학과, 항공전자공학과로 바꿨다.
항공대는 지난 72년부터 입학생 전형방법을 바꿔 특채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즉 72학번이 국립특채 1기인셈. 특채로 바뀌면서 전국의 우수한 학생을 상당수 유치할 수 있었다. 전교생에게 장학금이 수여됐기 때문에 머리 좋은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항공대는 그러나 79학번을 마지막으로 국립 세대를 마감하고 사립으로 넘어가게 된다. 80년대부터 민간항공회사인 대한항공이 재단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항공대의 교조는 ‘송골매’. 송골매는 넓은 세계로의 웅비를 자랑하고 지구를 하나로 내다보며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를 가진 새로 무한경쟁 시대의 학문과 창의를 넓히자는 대학의 의지를 담고 있다. 교목은 소나무다. 소나무는 천년이 지나도록 사계절 푸르름을 간직하는 것으로 굳건함을 표상하고 세기의 새 정기를 받고자 한다는 뜻.
국립 항공대는 국가의 통신인력을 배출해낸 ‘사관학교’로 일컬어진다. 정부 부처의 통신담당 책임자급이 대부분 항공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보더라도 통신분야만큼은 항공대가 가장 우세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통신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항공분야의 통신기술은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를 포함한 학계 및 연구계에서 항공대 출신을 선호한 것은 당연하다. 또한 시장이 협소했기 때문에 마땅한 사회진출 활로를 못찾아 기술고시를 통해 정부 부처로 진출한 경우도 많았다.
50년대 개설된 통신공학과의 전통도 남다르다. 국내 대학으로는 가장 먼저 통신공학과가 개설됐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다른 대학들은 80년대 중반부터 정보통신 관련학과를 경쟁적으로 신설하기 시작했다. 서울대도 항공대와 비슷한 시기에 통신공학과를 개설했으나 전자공학과를 만들면서 없애버렸다. 항공대가 타 대학에 비해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선·후배간에 응집력이 뛰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전통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항공대 출신에 대한 주위의 평은 기술력이 뛰어나고 성실하다는 것. 튀지 않으면서 묵묵히 제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충실히 다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에 대해 항공대 출신들은 『기술자가 기술개발에 부단히 노력해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최선 아니냐, 다른 것으로 드러낼 일이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목소리다.
항공대 출신 모임 중 전체 동문회와는 별도로 「통·전 동호회」가 있다. 즉 통신공학과와 전자공학과 출신들의 모임을 말한다. 분기별로 한번 정도 만나 친목을 다지고 있는데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편.
통신학회장 다수 배출
항공대 출신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은 학계. 70년대까지만 해도 항공대에 개설된 통신공학과가 전국에 유일해 학사학위만을 가지고도 전문대 출강이 가능했기 때문에 학계 진출이 많았던 것. 전문대를 포함한 전국 대학 통신관련 학과 교수 중에 항공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항공대 출신들이 통신학회와 정보처리학회 등 크고 작은 정보통신 관련 학회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특히 지난 75년에 설립된 통신학회의 경우 故 이형룡 교수와 故 조정현 교수, 정년퇴임한 왕지균 교수, 이 진 항공대 교수 등이 주도했는데, 이들은 모두 항공대 출신이거나 항공대와 인연이 깊은 인물들이다.
현재 진연강 단국대 교수와 이진 항공대 교수가 상징적인 인물. 두사람 모두 졸업연수가 가장 높을뿐 아니라 통신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굵직굵직한 이력이 많기 때문이다.
단국대 진연강 교수는 초창기 모교인 항공대에서 전자공학과 전임강사를 맡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오리건주립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큐빅사 선임연구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지난 83년 귀국, 단국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물리전자공학, 항공전자장치, 아날로그와 디지탈통신 등 몇권의 저서가 있으며 지난 87년 국민훈장목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북 고창이 고향으로 고창고를 나왔다.
통신학회 설립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이 진 교수는 통신공학과 57학번. 35년 서울生으로 한양대와 경희대에서 각각 통신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항공대 전자정보통신개발연구소장 외에 한국통신학회 명예회장, 한국정보통신학원 이사 등을 겸임하고 있다.
이진 교수의 1년 후배인 한국과학기술원의 김재균 교수도 통신학회 회장 출신. 김교수는 경북 의성이 고향으로 안동고를 나왔으며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미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통신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석사학위는 공군장교 복무중에 받은 것. 김교수는 미 NASA GSFC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귀국해 줄곧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과학기술처 전기전자 연구조정관,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정보전자연구소장,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처장 등을 겸임하기도 했다. 현재 정보통신부 HAN/ISDN사업추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 취미는 등산이며 박인자 여사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동국대 이진구 교수도 학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교수 중 한사람. 김포가 고향이며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미 오리건주립대에서 전기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와 미 오리건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두 번 받았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교수는 졸업 후 크레이연구소 선임연구원, 마이크로반도체사의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85년 귀국, 동국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대한전자공학회 반도체 부품·재표 및 CAD 연구위원장을 맡았으며 한국전자파학회 상임이사와 대한전자공학회 상임이사도 역임했다. 반도체 및 초고주파 집적회로 관련 논문도 83편이나 국내·외에 발표했다. 위성통신용 파워 MESFET와 무선랜용 MMIC 전력증폭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통신관련 주요 학회 중 하나가 한국전자파기술학회. 한국전자파기술학회는 전자과 69학번인 동국대 윤현보 교수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학회에 참여하고 있는 항공대 출신 중 비교적 학번이 낮은편. 윤교수는 42년생으로 단국대학교와 인하대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계 진출 가장 두드러져
학교별로 보면 대부분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모교에 몸담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특히 항공통신정보공학과에는 이진 교수를 필두로 조성준 교수, 이병섭 교수, 백중환 교수, 정대권 교수 등이 있다.
조성준 교수는 통신공학과 65학번. 동기로는 목포해양대 최병하 교수, 동국대 이진구 교수, 제주대 문 건 교수, 인하공업대학 이문승 교수, 동양공업대학 원청육 교수 등이 있다. 이중 이문승 교수는 통신학과의 최초 여자 졸업생. 통신사 1급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조성준 교수는 46년 서울생. 수석으로 졸업한 조교수는 당시 학과장이던 고 이형룡 교수가 발탁, 교직의 길을 걷게 됐다. 조교 자리조차 얻기 힘든 시절이었다. 조교수는 『조교봉급이 너무 적어 전문대 교수로 옮겨가는 이도 적지 않았다』고 당시를 술회한다. 조교수는 조교로 재직하면서 통신공학 석사학위를, 일본 오사카대에서 통신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번역서는 기본이고 고등학교 교과서까지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통신공학과 75학번인 이병섭 교수는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ETRI 보전 S/W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SLMOS’를 개발하기도 했으며 관제기술연구실장을 맡았다. 이교수는 지난 86년 도미, 미 뉴저지공대에서 통신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항공우주위성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귀국, 모교인 항공대에서 통신정보공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통신학회 위성통신 연구위원이며 다목적 실용위성 관제수신분과 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다. 백중환 교수는 통신공학과 77학번. 보문고를 나왔으며 미 오클라오마주립대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91년 재외 유치과학자로 ETRI에 입사,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이듬해인 92년 모교 통신정보공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해양대 전자통신공학과 양규식교수가 통신공학과 출신. 70학번인 양교수는 전남 순천이 고향으로 순천고를 나왔으며 건국대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선박통신운용」과 「RADAR이론과 보수」,「종합실습」이 있다. 경북대 홍순목 교수는 전자공학과 74학번.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 미시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계와 더불어 연구소도 졸업생들의 진출이 활발했던 곳으로 손꼽힌다. 초창기에는 마땅히 갈만한 통신업체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대부분의 연구소가 정부산하 기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업을 보장받을 수 있기도 했다.
연구소 중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국방과학연구소에 가장 많다. 통신공학과 69학번인 오근수 삼보정보통신 사장이 ETRI 1기. 오사장은 해군기술장교로 제대한 후 KIST에 있다가 지난 76년 ETRI 1기로 지원했다. 정만영 박사가 ETRI를 설립하면서 연구원을 모집했는데 몇단계의 시험을 거쳐 최종 37명이 연구원으로 임명됐다. 항공대 출신으로는 당시 오사장이 유일. ETRI는 초기에 교환, 전송, 경영 등의 세조직으로 구분됐는데 오사장은 전송파트에 몸담았다. 당시 KD/4라는 단국장치를 국내 최초로 개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을뿐 아니라 수입대체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캐나다 노던텔레콤으로부터 장비를 들여왔기 때문이다.
ETRI 1기 ‘오근수’
3년 6개월만에 선임연구원으로 올라선 것도 눈여겨볼만한 이력. 일반적으로는 선임연구원이 되기까지 6년이 걸린다. 『ETRI에 근무하던 시기를 통털어 10시 이전에 귀가하거나 일요일에 집에서 쉰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할만큼 오사장 자신이 열정을 쏟아부은 시기다. ETRI를 그만둔 것은 지난 82년, 남산에서 대전으로 청사를 이전하면서다. 일진그룹 통신사업본부 기술이사로 자리를 옮겨 ARS 기술 개발에 관심을 쏟았다. 당시 디지콤으로부터 ARS 기술을 전수받기로 했으나 기술 이전에 따른 비용문제로 일진그룹 내부에서 이견이 일었는데 삼보컴퓨터가 그틈을 타 거액을 들여 ARS 기술을 이전받기로 한 것. 결국 오사장은 일진그룹에서 삼보컴퓨터로 또한번의 자리이동을 했다. 삼보컴퓨터는 80년대 급성장한 회사다. 삼보컴퓨터 시절, 오사장은 ‘정보화’ 개념을 도입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한국통신의 080시스템도 오사장이 진행한 작품이다. 오사장이 삼보정보통신사장을 맡게 된 것은 지난 92년이다. 삼보컴퓨터는 회사규모가 커지면서 「PC에 날개를 달아주자」고 표방, 몇 개의 사업본부를 만들었으나 90년대 들어 PC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사업본부를 분리했다. 오사장은 20여명의 팀원을 데리고 나와 지금의 삼보정보통신을 설립하게 된 것. 설립 후 7년동안 흑자를 기록한 우량기업이다. 삼보정보통신은 현재 CTI, 콜센터, 개방형교환기 등을 공급중이며 각 기업들에게 적합한 시스템을 연구,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93년 국제전시회에서는 삼보정보통신이 구축한 철도청의 티켓 자동발매 시스템으로 대상을 차지한 바 있다. 올해는 도전적인 사업추진과 고객가치에 가장 역점을 둘 계획이다. 대학시절, 데일-카네기 처세술 12주 과정을 수료한 바 있는 오사장은 성격이 치밀하고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주위의 평.
‘임덕빈·채종석’, ETRI 지킴이
오사장 외에도 ETRI를 거쳐간 항공대 출신도 꽤 된다. ETRI에 현재 남아 있는 항공대 출신으로는 임덕빈 부장과 임춘식 부장, 이유경 부장, 채종석 부장 등이 있다. 일반 연구원까지 포함하면 30∼40명 정도의 항공대 출신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임덕빈 이동통신연구부장은 통신공학과 71학번. 지난 80년 ETRI 연구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은 이래 연구관리부장, 인력계획실장, 지능망시스템연구실장, 시스템기술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임부장은 또 정통부 국제공동연구사업 심의위원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전파통신분과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디지탈 다중화체계 표준화 연구와 TDX-1의 신뢰도예측 및 품질보증방안 연구, CDMA 디지탈이동통신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연구과제에 참여했다. 임춘식 부장은 52년생으로 일본 요코하마국립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ETRI에서 지상시스템 연구부장을 맡고 있다. 이유경 광대역통신망연구부장은 54년생으로 연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채종석 전파기술연구부장은 전북 부안이 고향. 55년생으로 연세대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국방과학연구소와 LG정밀 중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지난 85년 ETRI로 자리를 옮겼다. 전파응용연구실장과 지상시스템 연구실장, 위성방송 시스템 연구실장, 지상시스템 연구부장 등을 거쳤다. 강창구 책임연구원은 전자공학과 75학번. 충남대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반도체통신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지난 87년 ETRI 책임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술고시 출신 중 1/4 배출
항공대 출신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고시 출신을 대학별로 분류할 경우 항공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전체의 1/4 정도가 항공대 출신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공직생활을 지속하거나 중간에 민간업체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성태경 전 성미전자 부사장이 대표적인 케이스. 기술고시 5회 출신으로 기술사와 박사학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성 전 부사장은 지난 70년 체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나 중간에 그만두고 민간업체로 옮겨 미 웨스팅하우스, 한국통신기술 상무, SK텔레콤 전무,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역임했다. 성 전부사장은 이어 지난 96년 성미전자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 전부사장이 SK텔레콤 전무로 재직할 당시 통신장비 이중화 프로젝트를 시행, 기존 장비공급사였던 모토로라 외에 루슨트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도 했다.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경희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과학한림원 회원. 지난해 12월 성미전자를 그만두고 사업을 준비 중이다.
성태경 전 부사장 이후로는 한동안 뜸하다가 14회부터 항공대 출신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홍용표 한국통신TRS상무와 김장진 한국통신 서울통신운영연구단 신호망팀장이 기술고시 14회 출신. 홍용표 상무는 한국통신 전남사업본부, 데이타사업본부 하이텔사업국장, 네트웍본부 통신망기획팀장을 거쳐 지난해 3월 상무이사로 승진되면서 한국통신TRS로 발령받았다. 홍상무는 한국통신 재임기간동안 하이텔 사업에 가장 오랫동안 참여한 만큼 가장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51년 전북 정읍생으로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용한 성품으로 뚝심있게 일을 추진한다는 평. 지난 85년과 93년 두차례에 걸쳐 체신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통부 과장급에 다수 근무
정통부에 있는 항공대 출신도 모두 기술고시 출신. 임차식과장과 황의환과장, 서광현 과장, 김치동 국장이다. 황의환 기술기준과장과 서광현 Y2K전담반장은 기시 18회 출신이면서 전자과 76학번 동기다. 황의환 주파수과장은 철도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지난 87년 체신부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과에 몸담아 라디오방송 허가에 관여하면서 지금의 평화, 교통, 불교방송 허가를 담당하기도 했다. 지난 94년 정통부 발족당시 정책실에서 정부주도의 국책사업을 맡았다.
황과장과 동기인 서광현 과장은 순천고를 졸업하고 미 콜로라도주립대에서 전기통신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통부 통신정책국과 정보통신국, 정보통신정책실을 거쳐 전파연구소 통신기술담당관으로 파견나갔다가 최근 본부로 돌아와 Y2K 상황실 총괄팀장을 맡고 있다. 통신정책실 근무시절에 정보통신표준연구센터를 설립, 표준기술개발과 전기통신표준화, 국가기간전산망 표준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으며 국산주전산기의 개발과 교육용 컴퓨터 보급에도 기여했다. 또한 아쪾태전기통신협의체 파견 근무시절에는 최초로 회원국들간 공동기고서를 작성해 ITU WRC에 제출하는 데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취미로는 바둑. 초등학생인 아들과 집에서 자주 대국을 벌일 정도로 가정적이다.
임차식 산업지원과장은 기시 17회 출신. 한국통신이 정통부에서 분리될 당시 신설된 통신정책국 정보통신과를 거쳐 정보통신국 전산망과에 몸담았다. 성품이 온화한 편으로 일을 합리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주위의 평. 전남 함평이 고향으로 학다리고를 나왔으며 미 조지아공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가기간 전산망 사업을 거쳐 현재는 관련업계를 지원하는 산업지원과장을 맡고 있다. 통신위원회 김치동 사무국장은 기시 21회 출신으로 통신정책국 정보통신과와 연구개발과, 정보통신지원국 통신업무과를 거쳐 지난 97년 통신위원회로 발령 받았다.
국립항공대 출신은 크게 72학번을 기준으로 1세대와 2세대로 구분된다. 이전까지는 일반 전형으로 입학생을 선발했으나 72학번부터 특채로 모집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모집 학생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립 특채 기준 ‘세대 교체’
국립특채가 시작된 후에는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했기 때문에 일반 사립대보다 선호도가 높았다. 전국의 이·공계 단과대 중 예비고사 1위를 차지할 만큼 우수한 학생들도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국립 특채 1기인 72학번에는 팬택의 양기곤 상무, 삼성전자 지영만 이사, 유용상 에어로텔레콤 사장과 박인상 세원텔레콤 이사, 황성광 현대정보기술 이사 등이 있다.
한국통신 이현영 기술협력실장도 통신공학과 72학번. 이실장은 충북 청주가 고향으로 연세대 산업대학원에서 전자계산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통신에서는 연구개발단 교환연구실장, 선로기술연구소 선로보전연구실장, 연구기획실장 등 선로기술개발을 담당해 왔다.
항공대 마당발로 손꼽히는 팬택의 양기곤 상무는 전북 군산이 고향으로 ETRI에서 무선기술연구실장을 역임했다. 성태경 전 부사장이 코오롱정보통신에 재직할 당시 코오롱정보통신으로 자리를 옮겨 CDMA 연구단 소속으로 이동전화 사업권 획득에 관여했다. 신세기통신이 설립된 후 코오롱정보통신을 그만두고 ETRI와 삼성전자 출신들과 기지국 파워엠프 개발 관련 벤처회사를 설립하려 했으나 박병엽 팬택사장의 끈질긴 권유로 팬택에 합류하게 됐다.
전자과 72학번인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최홍근 상무는 서울産. 경동고를 나왔으며 한국IBM 서비스 사업본부에서 15년동안 근무하다 지난 94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로 자리를 옮겼다. 성우시스템 이지성 사장과 현대정보기술의 황성광 이사와 친하게 지내는 편. 성격이 차분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취미는 골프. 황성광 이사는 54년생으로 서울이 고향으로 한양대에서 전자계산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정보기술에서 통신운영팀장을 맡고 있다.
핵심요직 맡은 72학번 ‘상한가’
항공대 72학번 중에는 한국전자통신에 근무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한국전자통신은 이만영 박사가 세운, 산업은행이 1백% 출자한 전전자교환기 전문업체로 국내 최초로 M10CN을 도입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교환기 사업부로 흡수 통합됐다. 양승택 한국정보통신대학원장이 대표적인 한국전자통신 출신 인물이다. 항공대 출신으로는 삼성전자의 지영만 이사와 세원텔레콤의 박인상 이사, 우광정보통신의 유병복 상무, 하나로통신 손성찬 이사, LG정보통신 강충성 생산담당 등이다.
양상무와 더불어 항공대 마당발로 손꼽히는 삼성전자의 지영만 이사는 경기 고양産. 신일고를 나왔으며 ROTC 출신. 지이사는 제대 후 한국전자통신에 입사했다. 양승택 한국정보통신대학원장이 당시 면접을 담당했다. 한국전자통신이 삼성전자 교환기사업부로 흡수된 후 삼성전자 통신기획팀장, 마케팅그룹장 등 20년 이상 줄곧 통신시스템 기획파트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조직개편에 따라 네트웍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기간N/W 사업기획팀장, 전략마케팅팀장을 맡고 있다. 현재 네트웍분야의 상품기획, 마케팅 개발을 총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트랜드를 연구하기 위해 매달 수십권의 책을 탐독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높다.
SK텔레텍의 이동전화 단말기를 OEM 생산하고 있는 세원텔레콤 박인상 이사도 한국전자통신 출신. 박이사는 경북 예천이 고향으로 대광고를 나왔다. 한국전자통신과 삼성전자, 대덕전자를 거쳤으며 컴퓨터 관련 개인사업을 하다가 세원텔레콤에 합류했다. 현재 세원텔레콤의 김포공장을 총괄운영하고있다.
LG정보통신의 강충성 생산담당도 72학번과 같은 시기에 한국전자통신에 입사한 케이스. 통신공학과 75학번인 강 생산담당은 한국전자통신이 삼성전자로 흡수되면서 LG정보통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전자통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교환기에 들어가는 써킷보드 등 시험장비 개발부서와 교환기 생산관리부 등을 거쳤으며 최근에는 단말기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생산혁신을 이뤄낸 공으로 상공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73학번부터 통신업계 진출 본격화
학계, 연구계 진출이 높았던 항공대 출신들이 통신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73학번부터다. 국립 특채 2기인 73학번은 기술고시를 통해 체신부에 대거 입사, 지난 82년 한국통신이 분리되면서 상당수가 한국통신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한국통신의 허리라 할 수 있는 주요 국·팀장급 중에는 항공대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미국 지사장으로 나가 있는 윤종록 이사를 비롯해 양재수 팀장, 박석준 팀장, 엄용식 팀장, 이영희 팀장 등이다.
이들에 앞서 성태경 전 성미전자 부사장과 양남국 전국장, 신기수 국장, 조영현 국장 등 69학번 동기들이 진출하기도 했다. 이중 성 전 부사장과 양 전 국장은 기술고시를 통해 한국통신에 입사했지만 현재 일선에서 모두 물러난 상태. 지난해 조직개편과정에서 명예퇴직을 한 양남국 국장은 제주가 고향. 한국통신 제주전화국장과 서울 전자교환운용연구단 TDX지원국장, 개봉전화국장, 여의도전화국장 등을 거쳤다.
한국통신 내에 항공대 출신 중 현재 가장 높은 기수는 신기수 국장과 조영현 부장. 두사람은 전자과 동기로 ETRI에서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지난 84년에 한국통신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통신내 차세대 주자 ‘윤종록’
신국장은 사업지원단 정보통신연구실장, 설비기준연구실장, 연구개발단 전송기술연구실장, 통신시스템개발센터 고속패킷팀장 등을 역임했다. 조영현 국장은 49년생으로 서울이 고향이며 연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신국장과 마찬가지로 한국통신에서는 사업지원본부 집중보전연구실장, 운용보전연구실장, 연구개발단 연구지원부장, 통신망연구소 TMN구축팀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한국통신내에 항공대 후발기수로 가장 손꼽히는 인물은 윤종록 이사. 윤이사는 기술고시 15회 출신으로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빠른 케이스. 윤이사는 지난 85년 미 AT&T 교환 근무시절 통신망분야의 연구를 맡게 된 것을 계기로 국내에 들어와서도 통신망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해 오다 지난해 조직개편 때 한국통신아메리카 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 외모는 부드러우나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 외국통신시장의 동향파악을 위해 외국 저널을 수십권씩 탐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남 강진이 고향으로 광주고를 나왔으며 연세대 산업대학원을 졸업했다. 윤종록 이사와 동기인 이영희 팀장은 기시 16회 출신.
기술고시 16회 출신으로 기시동기로는 박석준 국장과 양재수 팀장, 엄용식 팀장, 권태정 국장이 있다.
이 팀장은 지난 80년 영동전화국 기계부장을 시작으로 서울통신운용연구단 운용2국장을 거쳐 지난 지난해 7월부터 연구개발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집념이 강하고 한번 목표를 세우면 끝을 보는 형. 벨지움 브루쉘대에서 전산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통신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양재수팀장은 통신공학과 77학번. 경남 진주가 고향이며 진주고를 나와 건국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미 뉴저지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양팀장은 한국통신에 입사해 하이텔사업부장, 인터넷시설팀장 등을 역임했다. 인터넷사업부장 시절 국내 최초로 코넷이라는 인터넷서비스를 개시했으며 하이텔 전자전화번호 DB구축 및 전국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양팀장은 전화상품팀장을 맡을 당시 「평생번호서비스」의 가입자를 단기간내에 1백만명을 확보하기도 했다. 「컴퓨터 통신망」과 「인터넷과 TCP/IP」라는 책을 출간할 정도로 인터넷의 대가로 일컫어진다. 진주중학교 시절 총학생회장을, 대학에서도 학도호국단 부연대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쉽이 강하다는 것이 주위의 평. 시간이 다소 여유로워진 요즘은 아들과 스케이트장을 찾을 정도로 가정적이다.
한국통신 자회사에도 상당수 포진
한국통신 자회사에는 한국통신기술에 항공대 출신인사가 많은 편이다. 이는 한국통신기술이 한국통신의 자회사로 공기업이라는 점도 있지만 ‘기술’직원을 뽑았기 때문에 항공대 출신들이 공채에 많이 응시했다. 특히 한국통신기술이 설립되던 해인 86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항공대 출신이 전체 인원의 상당수를 이뤘다. 그러나 지난해 구조조정이 단행된 후 대부분이 그만두고 지금은 김덕규 팀장 등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통신기술을 거쳐간 항공대 출신인사로는 조준구 넥스텔레콤 사장과 김익래 전 소장등이 가장 대표적.
한국통신기술 공채 1기 출신인 조준구 넥스텔레콤 사장은 전자과 72학번. 졸업후 금성전기에 입사, 광전송개발을 담당했다. 당시 한국HP의 김승렬 상무와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조사장은 이어 국내보다는 해외통신시장 개척과 해외통신망 구축에 관심을 갖고 지난 86년 한국통신기술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통신기술에서는 전송부장을 역임하면서 해저광케이블 구축에 매진했다. 통신관로를 파묻는 공사에 들어가는 표준 품셈을 만든 장본인이며 신기술 공법 개발로 과학기술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의 현지사장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6월 넥스텔레콤 사장에 임명됐다. 해외사업의 경험과 해저광케이블 구축의 주역이라는 점이 사장으로 발탁된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넥스텔레콤에 와서 회선 품질 개선, 요금체계 조정, 국제로밍 등을 성사시켰다. 최근에는 아시아 7개국 별정사업자들과 ATG(Asia Telecom Group)를 결성, 사무총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ATG는 회원사간 요금정산을 합리적으로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공동 통신망 구축 계획도 갖고 있다. 충남 청양이 고향으로 성동고를 나왔다.
데이콤에도 최근들어 항공대 출신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80년대 초반만해도 항공대 출신은 손에 꼽을 정도. 기업통신단의 김일환 이사가 항공대 출신 중 첫발을 들여 놓은 케이스.
김일환 이사는 전자공학과 72학번으로 데이콤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업계에 진출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김일환 이사는 『애초부터 전산분야에 관심을 갖고 ‘데이콤’이라는 회사를 눈여겨 봤다』고 말한다.
김이사는 초창기부터 DB개발부터 시작해 천리안과 관계된 모든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덕분에 우수 DB선정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천리안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학교후배인 양재수 국장과 박석준 국장이 한국통신에서 같은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EC/인터넷으로 업무영역을 확장했는데 얼마전부터 불붙기 시작한 인터넷 게임방 덕분에 김이사가 맡고 있는 팀의 매출 실적이 크게 늘고 있다. 김이사는 올해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이 분야에 주력할 계획이다.
오랫동안 부가통신사업분야에 몸담은 경험으로 인터넷/컴퓨터통신 용어사전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번역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취미는 난 기르기이며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
가입자 회선 책임진 ‘손성찬·박찬흠’
하나로통신에는 박찬흠이사와 손성찬이사, 홍현성 부장 등이 포진해 있다. 손성찬 이사는 통신공학과 73학번으로 성남고를 나왔으며 한양대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통신의 양재수 팀장이 고등학교 후배다. 손이사는 ETRI와 금성전기, 한국전자통신을 거쳐 지난 85년 데이콤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전자통신에 근무할 당시 지영만 삼성전자 이사와 유병복 우광정보통신 상무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다. 데이콤 초기시절에는 박찬흠 이사와 함께 컴퓨터 운용을 담당했다. 최근에는 하나로통신 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WLL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학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찬. 서비스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매주 어머니를 찾아뵙는 효자로 평이 나있다.
박찬흠 이사는 56년생으로 통신공학과 75학번. 학번동기인 임영식 스탠다드텔레콤 사장, 서광현 정통부 Y2K전담반장과 친하게 지내는 편. 충남공주가 고향이며 한성고를 나왔다. 손이사의 학번 후배긴 하지만 데이콤에는 먼저 입사했다. 박이사는 건설회사인 한일개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데이콤에는 지난 84년 공채로 입사, 초기 전산 네트웍 구축팀, 전송망 설계 구축 등을 맡았다. 특히 신입사원 시절에는 김일환 이사와 함께 천리안 DB개발에 힘쓰기도 했다. 박이사는 이어 지난 96년 에어미디어 기술이사를 맡다가 하나로통신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하나로통신의 서비스 개시에 맞춰 가입자망을 구축하기 위해 바쁘다.
통신업계에 진출한 인물이 적기도 하지만 특히 무선통신업계는 출신 인물이 드물다. SK텔레콤의 송진규 이사와 이상연 부장, 신세기통신의 장석우 부장, 한솔PCS의 조양현 부장 등 소수에 그친다.
SK텔레콤에는 부산생산본부장을 맡고 있는 송진규 이사와 이상연 부장이 항공대 출신. 송이사의경우 LG그룹에 근무하다 성태경 전 성미전자 부사장이 전무로 있을 당시 스카웃한 케이스.
IMT-2000 개발팀장으로 재직중인 이상연 부장은 79학번. 이부장은 61년 서울생으로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성전기 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LG정보통신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지난 97년 SK텔레콤 중앙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SK텔레콤에 와서는 플림스 개발그룹 책임연구원, IMT-2000 개발본부 수석연구원 등 IMT-2000 개발에만 줄곧 몸담아 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정통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신세기통신의 장석우 부장은 전자공학과 77학번. 인천출신이며 제물포고를 나왔다. 기술고시 16회 출신으로 한국통신에서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한국통신의 양재수 팀장, 박석준 국장, 엄용식 국장, 이영희 팀장등과 기시 동기다. 특히 박석준 국장은 고교 동기이기도 하다. 장팀장은 주로 지역 전화국에 근무했는데 인천전화국 기계과장, 남인천전화국 기술부장, 부천전화국 기술부장을 맡으면서 지역의 전화적체를 해소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어 본사의 총무관리실을 거쳐 기업통신사업본부의 시설운영부장과 SI사업부장을 맡았다. 장팀장은 향후 무선분야가 전망이 밝을 것으로 내다보고 신세기통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통신을 그만둘 당시 국장진급을 앞두고 있던 터라 우승술 본부장과 윤종록 국장이 말렸다는 후문이다. 장팀장은 신세기통신 시절, 초창기에는 보직없이 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신규서비스 연구 개발에 몰두하다가 시설본부로 자리를 옮겨 시설운영팀장 등을 역임했다. 취미는 골프. 무엇보다 일을 무척 즐기는 편이다.
기술력 앞세운 ‘파워 엔지니어군단’
항공대 출신 중에는 기술력을 앞세워 벤처기업을 창업한 사례가 많다. 통신공학과 75학번인 임영식 스탠다드텔레콤 사장이 가장 대표적. 임영식 사장은 서울생으로 경동고를 나왔으며 전경련 국제경영대학원을 마쳤다. 임사장은 대륭정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정보통신연구소 책임연구원을 맡았다. 무선호출 시장이 급격한 성장을 보임에 따라 몇몇 연구원들과 함께 스탠다드텔레콤을 창업했다. 최근에는 GSM 단말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임사장의 2년 후배인 김인배 사장이 운영하는 윈텔에 지분을 투자하기도 했다. 스탠다드텔레콤이 상장을 앞두고 매출규모를 늘리기 위해 윈텔과의 합병을 요구해 김사장은 결국 연구소직원만을 데리고 ‘이오텔’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이후 스탠다드텔레콤은 당장의 규모는 늘어났지만 연구소 직원이 모두 빠져나간 탓에 새로운 신제품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회사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이오텔 역시 초기자본이 없던 터라 개발품목을 놓고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시티폰을 선택하고 자재조달은 카드조회기 제조회사인 씨엔아이의 자본투자를 받게 됐다. 그러나 시티폰시장이 휘청이면서 이오텔은 큰 손해를 보게 돼 씨엔아이에 합병이 된다. 대다수의 이오텔 멤버들은 회사를 그만뒀으며 김인배 사장도 최근 씨엔아이를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전송장비업체인 우광정보통신의 이대영 사장은 통신공학과 70학번. 동기로는 SK텔레콤의 송진규 이사와 모토로라 맹상진 전무, 한국해양대 양규식교수 등이 있다. 이사장은 대우통신의 전신인 광진전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삼성전자 전송파트장을 역임했다. 이어 지난 96년 지금의 우광정보통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광정보통신의 창업주인 유창목 사장과 광진전자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지금의 인연이 됐다. 최근에는 에이스테크놀로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마이크로웨이브 전송장비를 취급하는 ‘아미텔’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대영, MW 전문업체 ‘아미텔’ 설립
우광정보통신의 유병복 상무도 항공대 통신공학과 72학번. 유상무는 한국전자통신을 거쳐 삼성전자에 줄곧 몸담아 왔다. 이대영 사장과는 학교시절 태권도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으며 삼성전자에서도 같이 근무한 전력이 있다. 이때 맺은 인연으로 우광정보통신에 오게 된 것. 현재 공장관리와 영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인천이 고향으로 인천고를 나왔다. 단말기 제조업체인 팬택에도 항공대 출신이 꽤 되는 편. 양기곤 상무를 필두로 유수엽 박사, 팬택미디어의 김기섭 상무, 팬택데이타콤의 신기영 이사 등이 있다. 유수엽 박사는 어려서부터 ‘월간 전자과학’을 구독, 전자분야의 지식기반을 만든 것으로 선후배 사이에 꽤 유명하다. 특히 이론적인 측면보다 응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평.
팬택미디어의 김기섭 상무는 전자과 78학번. 경북 영주가 고향이며 환일고를 나와 항공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에서 사회 첫발을 내딛었으며 크로스컴퓨터, 서두미디어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97년 서두미디어가 팬택에 인수됨에 따라 팬택미디어로 명칭이 변경됐다. 장영실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종교는 기독교.
최근에 설립된 팬택데이타콤의 신기영 이사는 전자공학과 80학번. LG정보통신 전송연구단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이후 선배인 김인배 사장이 운영하던 윈텔과 이오텔의 연구소장을 거쳤다. LG정보통신에 재직할 당시 2400/9600 BPS 외장형과 PC 내장형 MNP5 공중선 모뎀을 개발하기도 했다.
계측기 분야를 이끌고 있는 핵심 3인방이 항공대 출신. 한국HP의 김승렬 상무와 한국텍트로닉스의 최대식 이사, 한국 르크로이의 김민수 사장이다. 이들 외에도 계측기 업계에는 항공대 출신이 다수 포진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계측기 분야에 항공대 출신이 많은 이유는 다른 분야에 비해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외 계측기 시장의 선두주자로 불리우는 HP의 김승렬 상무가 가장 대부격.
김승렬 상무는 서울생으로 성남고를 나왔으며 항공대 전자과 73학번이다.
지난 84년 삼성전자 HP사업부에 합류했다. 현재는 계측기 사업부의 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성격이 외향적이며 쾌활하고 사람을 잘 사귄다는 것이 주위의 평. 자신도 영업체질이라고 평한다. 취미는 등산과 골프.
계측기업체 3인방
한국텍트로닉스의 최대식이사는 전자과 75학번으로 ROTC 출신. 동기로는 미디어랜드의 이무성 사장과 데이콤인터내셔날의 유성렬이사, 현대전자 반도체연구소의 오철동 박사가 있다. 최이사는 삼성전자 HP사업부에서 계측기영업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최이사는 이어 지난 96년 한국텍트로닉스로 자리를 옮기고 영업부문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한국텍트로닉스가 설립되기 이전, 텍트로닉스의 국내 공급업체인 CSC의 일부 인원을 흡수, 영업부서를 확대했다. 취미는 스포츠 경기관람과 여행. 서울생으로 보성고를 나왔다.
한국르크로이의 김민수 지사장은 전자공학과 79학번. 계측기 업계 항공대 출신으로는 학번이 낮은 편이다. 김 지사장이 계측기 분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군생활 시절. ROTC 출신인 김지사장은 군생활 5년동안 비행기에 탑재되는 통신시설과 계측기 관련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계측기 관련 기술자가 많지 않았다. 제대 후 초창기에 한국모토로라반도체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동기들의 소개로 계측기 공급업체인 명코퍼레이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동기들과 ‘씨에스씨’라는 회사를 설립, 텍트로닉스의 계측기 공급을 담당하다가 지난해 한국르크로이 설립과 함께 지사장에 임명됐다.[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