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민/이제노] 장시간 이용 시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모눈 원고지]

브라운 아이즈 걸스 - My Style

장시간 이용 시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49대 51. 51대 49. 누가 49고 51인데! 대답해줘. 기자님 몰라요. 저는 둘 다 똑같이 좋은 걸 어떡해요.

 우리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드라마를 감상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몸이 앞으로 나갔다.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벌써 전체 회차중에 반이나 봤다.

"아니 말이 돼?"

"또 뭐가."

"그냥 둘 다 좋아하면 되는 걸 비율을 왜 따져."

"드라마를 그냥 쫌. 그냥 쳐 봐."

 민주언니는 질겅질겅 씹던 오다리로 내 정수리를 후려쳤다. 사유인 즉, 드라마 볼 때 토 좀 적당히 달라는 거였다. 정말 직업병은 괴로웠다.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는 자주 틀리는 표현이, 드라마에서는 공감되지 않는 감정선들이, 영화를 볼 때면 두 시간 내내 집중할 수 없게 하는 만성 허리디스크가 날 괴롭혔다. 이러려고 4년제 졸업장을 땄나 괴롭고 죄책감이 들어…….

"그래서 언닌 앵커야 재벌이야?"

"재벌? 돈이 좋지. 닌?"

"난 둘 다. 절대 못고른다."

 언니는 싱겁다는 듯 스텔라를 한 캔을 더 땄다. 저 또 또, 한캔씩만 먹기로 했으면서 또 두 캔 먹는다. 나는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넣고는 캔을 찌그러트렸다. 대충 쓰레기를 한손에 쥔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오다리로 후려맞은 정수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대충 냄새를 맡아보니 정수리 냄새랑 오다리 향이 섞인 거 같았다. 토나왔다. 우웩. 오늘은 진짜 머리를 감아야겠다. 백수로 칩거한지도 벌써 반년 째였다.

 민주언니야 이제 갓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업 최종결과만 기다리고 있어서 걱정이 안됐다. 이번에 준비했던 회사도 엄마가 다니는 성삼그룹 계열사여서, 엄마가 손 써줄게 분명했다. 사실 엄마가 미리 힘을 써두지 않아도 언니 스펙이면 무난하게 입사가 가능했다. 역시 이과를 갔어야했나, 이런 쓸데 없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언니가 바라고, 바랬던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말이다. 이제 언니까지 취업하면 이렇게 같이 노가리 까줄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또 침울해졌다. 나는 한 손에 쥔 스텔라캔을 더 찌그러트렸다. 진짜 나 이제 뭐해먹고 살지. 언제까지 엄마한테 빌붙어서 살지.

 싱크대에 켜켜이 쌓인 그릇들이 보였다. 나는 곧장 부엌으로 가 고무장갑을 꼈다. 벌써 엄지손가락에 구멍났네. 오늘 나가서 장보는 김에 보리차랑 고무장갑도 사오고, 언니가 사다달라고 했던 얼그레이 티백이랑 과일 이것저것 사와야겠다 생각하면서 그릇을 벅벅 닦았다. 어제 야식으로 해먹은 프렌치 토스트 때문인지 후라이팬이 더럽게 안닦였다. 그러니까 바로 닦을걸. 정말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었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불리고 있자, 언니가 거실에서 소리질렀다.

"양여주!!!"

 또 키스신이 나왔나. 나는 몸만 슬쩍 돌렸다. 언니는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내 핸드폰을 가리켰다. 나는 고무장갑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올렸다. 뭐지. 전화올 사람 없는데.

"너 뭐 잘못했어?"

 수신전화에 분명히 찍힌 이름. 엄마. 무슨 일이지. 갑자기 심장이 벌렁거렸다. 당장 싱크대 물을 잠그고 고무장갑을 벗어던졌다. 언니 얼굴이 하얘졌다. 그도 그럴것이, 엄마는 우리한테 워낙 전화를 안했다. 일 때문에 집에도 잘 안오고 한달에 두번 보면 많이 보는 거였다. 카톡도 잘 안해서 가끔 문자로 안부를 주고 받는 게 전부였다. 엄마 월급날이면 꼬박꼬박 언니랑 내 통장에 꽂히는 용돈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런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는 건,

"……언니. 나 어떡하지."

 분명히 큰 일이 있다는 거다. 지난 번에 전화가 왔을 때를 떠올렸다. 이미 전화가 한번 끊기고 한번 더 걸려오고 있었다. 이건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하겠다는 얘기였다. 언니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징조가 좋지 않았다. 나는 여태까지 엄마가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었을 때를 떠올렸다.

(1) 중학교 때 엄마랑 싸우고 엄마 연구자료 유에스비를 물통에 담근 일

-> 그래서 나는 뒤지게 혼나고 용돈도 반으로 깎였다. 엄마는 한달을 꼬박 새워 자료를 복구했다.

(2) 스무살 때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가 바람을 폈고 화가 나서 짝불알 만들어 버린 일

->이 때 엄마 애인이 변호사였어서 엄마 애인이 겨우 해결해줬다.

(3) 4학년 2학기 때 인생 노잼시기 와서 복수전공이고 뭐고 자퇴해버린다고 한 일

-> 은밀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담당교수님이 확인 차 엄마한테 전화해서 들켰고 그날 귀에 피가나게 연설을 들었다.

 시히히발. 요 근래에 정말 평범하게 살았다. 학교도 꾸역꾸역 졸업하고 복수전공 성적도 나쁘지 않게 받았다. 엄마에게는 컴활 1급을 따겠다는 핑계로 연명헀다. 저번 주에 컴활 1급 필기 붙은 거까지 캡쳐해서 보내줬는데 도대체 뭘 잘못했지. 벌써 두번 째 전화가 끊겼다. 다시 한번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는 빨리 받으라며 날 재촉했다. 받자마자 소리지르는 거 아니야? 나 어떡해. 언니는 손바닥을 휘저으며 내 쪽으로 핸드폰을 밀었다. 지 일 아니라고 서두르라는거 봐. 나는 떨리는 손으로 겨우 핸드폰을 쥐었다. 전화 수락 버튼을 누르고 귀 옆으로 가져다댔다. 나 진짜 억울해 엄마, 이번에 사고 친거 없…….

- 여주야

"어?"

- 미안한데, 엄마가 저번 주에 너네 집에 두고 간 황색 봉투 기억해?

"어..어 뭔지 알아. 그 에이포 사이즈 만한 거 맞지."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언니는 좋은 구경거리가 났다는 듯 스피커폰으로 전환시켰다.

- 응 맞아. 혹시 집이니? 괜찮으면 지금 서류 좀 갖다줄래? 급한 건이라고 해서 빨리 해줘야할 거 같아서.

"아... 민주언니한테 운전해서 가져가라고 할까?"

 언니는 내 팔뚝을 꼬집어 뜯었다. 지 가기 귀찮다고 또 나 시키려고 하는거 봐.

- 민주말고 여주가 와야돼. 지금 세시니까, 네시 반까지 가져다줄 수 있을까? 많이 급해서 그래. 임원회의에 올려야 하는 거래서.

"어..응. 택시 타고 갈게."

 이상하게 평화로웠다. 엄마가 서류 부탁을 하는 일은 드물 뿐더러, 여태까지는 늘 문자로 부탁했다. 그런 엄마가 전화까지 하고 콕 찝어서 나한테 가져다달라고 하는 걸 보면 뭔가 있긴할거다. 나는 엄마방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화장대 위에 놓인 황색 봉투를 품에 안았다. 그냥 엄마가 급해서 부탁하는거겠지. 잠옷 맨투맨은 그대로 입고 바지만 수면바지에서 슬랙스로 갈아입었다. 위에는 롱패딩을 대충 패션을 얼버무린 후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 내 바지 입지 말랬지!"

 내 뒤통수에 대고 언니가 소리지르는 걸 애써 무시했다. 엄마는 아무 일 아니라고 하는데 왜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뭔가 가벼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에 잦아지던 두통이 몰려왔다. 잠을 못자서 그런가 눈 앞에 가로선이 아른거렸다. 마치 고장난 티비에서 색색의 줄이 그어져있는 거처럼 말이다.

 요즘 잠을 못잔다. 정확히는 계속 꿈을 꾼다. 두통의 시작이었다. 원래 꿈 같은 건 모르고 푹 잤는데 요새는 한 시간 쪽잠을 잘 때도 계속 시달렸다. 이건 그냥 미래에 대한 압박감이라고 넘길 수 있지만, 아주 이상하게 계속 똑같은 인물들이 나왔다. 인물도 아니고 인물'들'.

 꿈 속이어서 자기소개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게임 NPC의 정보를 습득하는 것처럼 자동으로 입력됐다. 꿈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직업이 바뀌었다. 어느 날은 고등학생, 어느 날은 대학생, 선생님, 회사원, 연구원……. 처음에는 그냥 취미로 연재하는 인터넷 소설 때문에 공상을 하는 시간이 많아져서라고 생각했다.

"여주야!"

"여주야."

 근데, 왜 예쁜 남자 두명이서 날 괴롭히는 건데. 맨날맨날 내 꿈에 왜 오는건데 왜. 처음에는 얼떨떨 했다. 그냥 현실에서는 못보는 이런 얼굴 꿈 속에서라도 많이 봐야지. 그리고 저번주를 기점으로 꿈 속의 내용도 어그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단절된 형태였다면,

"...여주야. 제노를 더 사랑하는거야?"

 이번에는 계속 이야기가 이어졌다. 꿈 내용은 양심에도 찔렸다. 기본의 도덕성이라면 감히 시도도 못해 볼 관계성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나재민과 이제노라는 두 남자 사이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누구랑 사귀어줄 것처럼 굴다가도 두 남자를 내팽겨쳤다. 아니 나도 이러고싶지 않아요. 예쁜 남자 두명을 울리고 싶지... 아니 울려... 아니 울리고 싶지 않았다.

"..여주 너는. 재민이를 더 마음에 두는거지."

 이번 주에 꾼 꿈은 마지막이 항상 슬펐다. 엊그제는 자다가 울면서 깬 적도 있었다. 아니 꿈 속인데 제 마음대로 안돼요. 꿈인 걸 아는데 몸과 말이 내 마음대로 안되면 그게 내 꿈인가. 답답했다. 이 얘기를 하면 언니는 분명 "그거 귀신이다 마."라고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너무 현실같이 생생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 환상같은 꿈을 말하면 사라질 거 같았다.

"언니. 나 요새 이상한 꿈 꾼다."

"왜?"

"몰라... 막 남자들이 나와서. 계속 이어져."

"니 외로운갑네."

 그리고 고민하다가 언니에게 털어놓은 그 날. 그 날부터 이제노와 나재민은 내 꿈속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두통이 앞뒤로 조여오는 거 같았다. 진짜 무당집이라도 가봐야하나.

 

 택시가 미끄러지듯 회사 앞에 섰다. 지난 번에 지나갈 때 봤지만 언제나 성삼그룹 건물은 사람 기를 죽였다. 강남 한복판에 떡하니 30층 고층빌딩을 지네 회사로 다 쓰니 안그러고 배기나. 나는 추리닝바지 대신 슬랙스를 입고 온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괜히 들어가면서 꿇릴 뻔 했잖아. 택시비를 결제할 때 핸드폰 뒤에 꽂아놨던 엄마카드를 내밀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온 거니까 써도 괜찮겠지. 영수증을 패딩 안주머니에 구겨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인포메이션 쪽으로 걸어가자 엄마가 나와있었다. 시계를 두드리면서 나를 발견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일찍 왔네! 고마워. 민주도 집에 있어?"

"응. 언니 집에 있어... 여기."

 나는 크로스백 안에 소중히 넣어뒀던 서류봉투를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받아들고는 봉투 안을 확인한 후 웃었다. 진짜 급한거였나보다. 내가 사고친 거 아닌가보네. 등줄기에 흐르던 땀이 점점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엄마. 나 이제 간다?"

"잠깐만."

 아 시발...뭐지. 나 진짜 잘못한 거 없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진짜 사고친 거 없는데도 엄마랑 대화하는 게 떨렸다. 민주언니가 없는 엄마와의 대화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잠깐 연구실 들어올래? 할 말 있어서."

 진짜 내가 뭘 잘못했나봐. 뭐지. 엄마카드로 새벽에 피시방 긁어서 화났나. 민주언니랑 야동 사이트 엄마카드로 모르고 결제해서 그랬나. 근데 이정도는 사고축에도 안낄텐데. 엄마는 문자 확인도 잘 안해서 모를텐데.

"어..어 왜?"

 차마 내가 잘못한 거 있냐고는 못물어보겠다. 괜히 일을 키울까봐. 엄마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웃었다. 그러더니 나를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직원들이 자주 왔다갔다하는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 엄마는 인포메이션을 지나쳐 건물 안쪽으로 쭉 들어갔다. 건물 뒷문쪽으로 가니 인포메이션이 하나 더 있었다. 청원경찰도 두세명이 서있었다. 왠지 서늘함이 느껴졌다. 엄마는 앞에 서있는 직원들과 목례를 나누고는 사원증을 찍었다. 나도 따라들어가려고 하자 정장을 입은 직원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허우대가 큰게 올블랙 정장까지 입고 무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니 솔직히 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괜히 움츠러들었다. 아 그냥 어제 루미큐브 내기에서 이긴 소원쿠폰 쓸 걸 괜히 내가 왔다. 엄마 부탁이라도 그냥 박박 우길걸.  엄마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뒤돌아봤다.

"아. 여주야 핸드폰 여기에 내야해."

 나는 패딩 안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인포메이션 안쪽 스태프 방으로 들어가더니 목에 거는 출입증을 내게 건넸다. 그제서야 나는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진짜 성삼그룹이 돈이 많긴 많나보다. 스마트폰 개발부서를 이렇게 꽁꽁 숨겨놓다니. 유튜브에서 본 대기업 사원 브이로그를 찍고 있는 기분이었다. 건물 깊숙한 곳으로 오자 인테리어에 돈을 쏟아부었는지 더 고급스러웠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사원증을 찍어야했고, 특정층으로 들어가려면 또 찍어야했다. 무슨 보안이 이렇게 이중 삼중이야. 핸드폰도 걷고……. 텅스텐 독서등 켜고 침대에 누워서 책 읽는게 천국인 나는 이런 곳에서 일하라면 알레르기나 날 것 같았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29층을 누르고는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층수가 올라가는 게 고속이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인가봐, 혼자 생각하고는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분명 일주일 전에도 엄마가 옷을 가지러 들렀는데 그 사이에 또 얼굴이 야윈 것 같았다.

"엄마. 요새도 많이 바빠?"

"응. 하던 프로젝트가 막혀서 다음 달에는 집에 아예 못갈지도 몰라."

"직원 숙직실 엄마가 전세 내겠네."

"매매했지 뭐."

 엄마랑 잠깐 얘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 29층에 도착했다. 정말 당장이라도 로봇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따뜻함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고층빌딩에, 차가운빛의 조명에, 정말 조용했다. 연구실 하나씩 지나칠수록 무슨 수술실들을 지나치는 것 같았다. 수많은 랩실을 지나치고 가장 안쪽에 엄마 이름이 박힌 사무실로 들어왔다.

"와. 엄마 진짜 높은 사람인가보네."

"집에 못가는 만큼 승진하는거지."

 엄마는 자연스럽게 날 쇼파에 앉혔다. 진짜 엄마 높은 사람인가봐. 맨날 무슨 일 하냐고 물어봐도 대답 잘 안해주더니,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런가보네. 드라마에서 보면 임원급이 쓸거 같은 크기에, 가구들이었다. 엄마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보니 꽤 값이 나가보이는 재질로 제작된 것 같았다. <전략본부실 책임연구원 양 미 선> 

"커피마실래? 티?"

"어... 그냥 물 마실래."

 아까부터 몸에 힘을 주고 있었더니 더웠다. 나는 연신 손부채질을 하다가 결국 롱패딩을 벗었다. 여기까지 부를 정도면 엄마가 길게 할 얘기가 있는 거 같아서였다. 열심히 짱구를 굴렸지만 답은 하나다. 내가 먼저 선수쳐야겠다. 엄마는 사무실 한 켠에 있는 냉장고에서 물 한병을 내왔다. 엄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눈을 질끈 감고는 얘기했다.

"엄마. 나 진짜 이번년도에는 취업할 수 있어! 눈 좀 낮춰서 넣어볼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엄마는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천천히 나를 쳐다봤다. 아 이게 아닌가?

"그러니까...어... 그니까 조금만 더 빌붙어도 될까용? 최고 멋쟁이 양미선씨..."

"그래. 요새 취준 기간 2년 잡아야 한다며. 서두르지 마"

"정말?"

"응. 그 말 하려고 부른 거 아니야."

 그럼 도대체 뭐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혼내려고 부른 건 아니었다. 그랬으면 진작에 사무실 들어오자마자 등짝을 내려쳤을 거다. 엄마는 쇼파 앞에 놓인 리모컨으로 티비를 틀었다. 엄마 진짜 고급스럽다. 집에서 볼 때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정도 자태면 회장까지 먹을 수 있겠다. 나중에 소설 쓸 때 참고해야지.

 티비가 틀어지자마자 총선 결과가 나왔다. 엄마도 이런 거 챙겨보는구나. 하긴 총선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터넷이나, 티비나, 정치 얘기를 할 수 있는 모든 매체에서는 총선 결과를 분석했다. 이번 국회는 동물 국회대신 식물 국회가 되어보자라는 논평도 쏟아졌다.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만 뭐.

"이번에 투표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름지기, 술창과에서 버티려면 모르는 게 없어야했다. 좆같은 한남충들이 술자리에서 문학이란 말야, 정치란 말이야 이딴 말 짓거릴 때 반박하려면 꿰뚫고 있어야했다. 성격 급한 우리 자매는 진작에 사전투표로 하고왔다. 엄마는 리모콘을 누르면서 채널을 옮겨다녔다. 온통 뉴스채널이었다. 엄마가 시사에 관심이 생각보다…… 더 많았구나. 역시 가족이어도 모르는 게 많았다.

"여주야. 이번에 엄마 좀 도와줄래?"

 엄마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엄마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지금 가능한 이야기인지. 의심했다. 내가 생각치도 못한 분야의 얘기였다.

 

 여덟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서야 겨우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심장이 뛰어서 도저히 바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엄마 얘기를 듣고 집 근처 카페에 앉아서 멍을 때렸다. 내가 지금 뭘 들은거지. 뭘 본거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십초 안에 원샷 때리고 얼음까지 바득바득 씹어먹었다. 그런데도 속이 다 풀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큰 일을 맡아도 되나. 결론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머릿 속에 온통 형형색색의 실로 꼬인 것 같았다.

"뭐하냐? 치킨 시켜먹을래?"

"입맛 없어..."

"많이 혼났어?"

"몰라..."

 민주언니는 내가 크게 혼난 줄 아는지, 평소에 하지도 않는 방 불까지 꺼주고 갔다.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건 내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심장의 울림이었다. 처음 인터넷에 팬픽을 쓰고 그 글이 대박을 쳐서 댓글 오백개 달렸을 때. 고등학교 때 언니한테 내가 쓴 팬픽 소장본 걸렸을 때. 대학교 때 진짜 잘생긴 과선배랑 키스할 때. 전부 이것에 비하면 심장이 죽어있다 수준이었다. 어떡하지. 엄마는 급한 건이어서 내일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나는 충전시켜놓은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옆방에 있을 민주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방까지 걸어가기 귀찮은 게 그 이유였다.

"언니."

- 왜. 우냐?

"아니.. 들어봐. 그동안 우리가 엄마한테 많이 빌붙긴 했지?"

- 엉. 까놓고 말해서 니나 나나 지금 백수잖아.

"그치..?"

- 왜? 니 게이소설 쓰던 거 걸렸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리고 BL을 뷰티풀 라이프라고 해줄래? 글고 나 이성애 소설도 쓰거든."

 정리해보자. 엄마는 아빠 없이 우리를 키우느라 힘들었다. 한번도 부족하게 키운 적 없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거, 가지고 싶은 건 웬만하면 소유할 수 있게 해줬다. 용돈도 많이줬다. 크게 잘못하지 않으면 혼내지도 않았다. 우리한테 뭘 강요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방목과 훈육으로 키웠다. 그러므로 언니와 나는 엄마한테 큰 빚이 있다. 엄마는 지금 필요로 한다.

- 뭔데.

"언니 엄마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거지?"

- 당연. 사람 죽이라는 거만 아니면 한다.

 이게 맞는거지. 일단 언니에게 알았다고 한 뒤 심장을 쿵쿵 때렸다. 그래 딱 한명만 더 물어보고 결정해야지. 사실 이미 한다로 마음이 51%정도 기운 것 같다. 대화창 가장 위에 있는 유리에게 카톡을 보냈다. 유리야, 너 엄마가 뭐 도와달라고 하면 바로 도와줌? ㅇㅇ 당연. 좀 큰거여도? 할 수 있는 거면 도와야지, 가족인데.

 가족인데, 가족인데, 가족……. 그래 맞다. 천생 문과가 할 수 있는 일중에 가장 거룩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통화 기록에 남아있는 엄마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번 울리더니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여주야. 이번에 성삼그룹에서 중도당 밀고 있어.'

 엄마가 이렇게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있었나. 엄마 뿐만 아니라 누군가 나를 이렇게 애타게 찾을 때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엄마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거 아니었어?'

'대외적으로는. 근데 지금 하는 일은 그룹 자체에서 어느 정치세력 밀어줄 지, 어떻게 빅딜을 성사시킬지, 기술적으로 뭘 도울지 개발하고 실행시키는 일 하고 있어.'

'...내가 도울 건 뭔데?'

'중도당은 10-30 여성유권자 표가 절실히 필요해. 그래서 문화컨텐츠 사업 규제 완화랑 함께 중도당 차원에서 여성유권자 니즈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할거야. 내가 총책임자고, 프로젝트는...'

 엄마가 사무실에서 내게 건넸던 말은 중대한 임무였다.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가족이 아니면 쉽게 얘기를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 승낙 하려고 전화 한 거 맞지?

"할게."

 미국에서는 문예창작과 졸업생이 그렇게 취업이 잘된다고 했다. AI 발달과 함께 헤이 시리, 헤이 알렉샤, 하이 빅스비 같은 친구들 세계관을 짜고 대본을 일일이 창작해야했다. 그런거라고 생각하면 됐다.

- 그래. 내일 엄마 회사로 와.

 사실 두려웠다. 티비 속에서만 보던 정경유착 속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건 아닌가 싶어서. 엄마가 내게 건넨 의뢰는 값을 매길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한차례 유행했던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과 VR 기술, 어플리케이션 결합으로 긍정적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게 그 목적이었다. 내가 맡게될 업무는,

- 노트북 준비해놓으라고 말할게.

 VR 시스템 내에 들어갈 세계관 창조, 인물 형성, 그리고 직접 체험 및 평가보고서 작성이었다. 중학교 때나 썼던 판타지물에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만든 세계 안으로 내가 들어가서 평가해야한다니.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전화를 끊고 노트북을 켰다. 블로그와 포스타입에 휴재 공지를 때렸다. 독자님들 죄송합니다, 돈 벌고 돌아와서 다시 쓸게요. 눈물의 휴재공지를 쓴 후 노트북을 덮었다. 나는 다시 침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엄마가 제시한 기간은 두 달. 빨리 스토리를 완성시키고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야하는 게 내 숙명이었다. 그리고 그 날 밤 다시 내 꿈에는 이제노와 나재민이 나왔다.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두명은,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각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항상 서로 대척되는 말만 하던 두 남자의 입모양이, 같은 문장을 뱉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기다렸어. 여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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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쓰려고 했던...

여주가 게임 이야기 창작자가 되어서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내용이에요

1편 써뒀는데 도저히 못쓰겠더라고요..허허허허

10,000자가 넘는데 버리기는 아까워서 단편형식으로 올려봅니다

[터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터널]

장시간 이용 함 해보자.. 함 해보자고... 저 스토리 남주들 분명 제노 재민이겠죠???? 장시간 이용 함 해보자... 함만 해보자... 건강 함 해쳐보자 ㅜ...

[친구]

저도할래요

[NCT U 도영]

현생? 그게 뭔가요 기필코 장시간 이용하겠습니다.

[NCT Dream Mark]

하앙 담편 엄버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