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049] 주요(周繇)5율-―‘개똥벌레의 노래(영형·詠螢)’
‘개똥벌레의 노래(영형·詠螢)’ 주요(周繇·841∼912) 繇=부역 요, 말미암을 유, 점괘 주.역사 요, 熠熠與娟娟(습습여연연), 池塘竹樹邊(지당죽수변). 반짝반짝 밝디밝은 모습으로, 연못이나 대숲 가에 살지.
亂飛如曳火(난비여예화), 咸聚卻無煙(함취각무연). 어지러이 날 땐 불을 끌고 가는 것 같지만, 한데 다 모여도 연기는 나지 않지.
微雨灑不滅(미우쇄불멸). 輕風吹欲燃(경풍취욕연). 가랑비 뿌려도 사라지지 않고, 미풍이 불 때면 불타는 듯하지.
昔時書案上(석시서안상), 頻把作囊懸(빈파작낭현). 옛날엔 책상 위에다, 자주 주머니에 담아 매달아놓았지. ◦熠熠=밝게 빛나다. 熠=빛날 습 연연(娟娟): ‘연연하다’의 어근. 1. 빛이 엷고 산뜻하며 곱다. 2. 아름답고 어여쁘다. ◦ 지당(池塘):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 늪보다 작다.=못. ◦ 난비(亂飛): 어지럽게 날아다니거나 분분(紛紛)함. ◦ 무연(無煙): 연기가 나지 않는 것. 또는 연기가 없는 것. ◦ 미우(微雨): 보슬보슬 내리는 비. 불멸(不滅):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아니함. ◦ 경풍(輕風): 「1」 가볍게 솔솔 부는 바람. 「2」 『지구』 풍력 계급 2의 바람. 10분간의 평균 풍속이 초속 1.6~3.3미터이며, 나뭇잎이 흔들리고 풍향계도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실바람. ◦ 석시(昔時):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난 오래전 때.=옛적. ◦ 서안(書案): 「1」 예전에, 책을 얹던 책상. 「2」 문서의 초안. |
이하 동아일보=동요풍의 한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200〉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3-02-17 03:00
반짝반짝 밝디밝은 모습으로,
연못이나 대숲 가에 살지.
어지러이 날 땐 불을 끌고 가는 것 같지만,
한데 다 모여도 연기는 나지 않지.
가랑비 뿌려도 사라지지 않고,
미풍이 불 때면 불타는 듯하지.
옛날엔 책상 위에다,
자주 주머니에 담아 매달아놓았지.
熠熠與娟娟, 池塘竹樹邊.
亂飛如曳火, 咸聚卻無煙.
微雨灑不滅. 輕風吹欲燃.
舊曾書案上, 頻把作囊懸.
―‘개똥벌레의 노래(영형·詠螢)’ 주요(周繇·841∼912)
당 초엽 낙빈왕(駱賓王)이 쓴 시 중에 ‘거위의 노래’가 있다.
‘꽥, 꽥, 꽥/목 비틀며 하늘 향해 노래하네.
하얀 깃털은 푸른 물 위에 떠오르고/
붉은 갈퀴는 맑은 물결을 휘젓네.’
해맑은 동심이 묻어나는 건 이 시가 일곱 살 때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성인이 지은 한시임에도 동요 맛을 풍기는 작품이 더러 있다.
한시 특유의 근엄하고 진지하거나 혹은 세상사 달관한 듯 느긋하고
한가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개똥벌레(반딧불이)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묘사한 이 시가 바로 그런 예다.
시는 시종 개똥벌레에게만 집중할 뿐 심오한 비유도, 유별난 꾸밈도 없다.
단순하고 천진스러운 발상 그 자체다. 한시로서는 흔치 않은 분위기 덕분인지
청량한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 구절은 그 옛날 개똥벌레의 불빛으로
공부했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주인공 차윤(車胤)의 고사를 응용했다.
그나마 이 고사는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이야기라 시의 동요적 풍취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작품으로
또 이교(李嶠)의 ‘바람(風)’이 있다.
‘가을 나뭇잎을 떨구고/2월의 꽃도 피울 수 있지.
강을 건너며 천 길 파도 일구고/대숲에 들어가
모든 줄기를 엎드리게도 하지.’ 온화하면서도 강고한
바람의 속성을 묘사했으되 그 발상은 사뭇 동요적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