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는 몇 분을 걸었다.근처에 있는 새로 생긴 할인 마켓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힘차게 팔에 걸고 30분을 걸었다.
묶음으로 파는 물건이 굉장히 많다.치약도 따로 파는 것보다는 세 개를 묶어서 좀 더 싼 가격에 팔고 있는 경우가 많다.게다가 가끔은 다른 것을 덤으로 얹어 주기도 한다.보통 판매하는 것보다 크기도 작고,빨간색으로 ‘증정품’이라고 찍혀 있는 것들이다.샴푸도 린스와 세트를 엮어서 판다.물론 좋긴 하지만 그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많아 보인다.메모지에 적어둔 것들을 잔뜩 사고 나니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다.그 김에 차라리 먹을 것도 잔뜩 사 가기로 한다.할인 매장의 음식 코너에는 대량으로 만들어서 파는 가공품 외에도 이런저런 먹거리들이 많다. ‘보쌈,수육’이라고 써 있는 생 돼지고기 약간이랑,대파도 한 단 산다.양파도 하나 사고,고구마도 너댓 개 봉지에 담아 바구니에 넣었다.이런저런 야채를 썰어 담아 놓고,겉에는 ‘샐러드용 야채’라고 쓰여 있는 봉지와 샐러드 드레싱도 바구니에 들어갔다.우유랑 치즈도 작은 것으로 하나씩 샀다.마아가린도 한 통 사고, ‘수제 소시지’라며 묶어 파는 소시지도 한 팩 샀다.계산대로 가는데 어째 바구니가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들 수 있는 게 아니다.이건 솔직히 심하다.이렇게 무거워서야 어디 집까지 들고 갈 수나 있겠냐…
이 두 개의 봉지는 웬수다.웬수.뭔가 덜었으면 좋겠건만,기왕 산 게 아깝다.
이걸 어쩐다.집까지 끙끙거리면서 들고 가야 하는 걸까.
[여어.]
편해 보이는 운동화.검은 바지.진한 적갈색의 셔츠.그 위에 놓여 있는 얼굴은 금발에 금안.나올 힘마저도 사라지게 만드는 장본인은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
[너,너…너…!]
이럴 때 잔뜩 쏘아보고는 발걸음을 돌려 소리나게 걸었으면 좋겠건만,지금 그에게는 들고 가야 할 짐이 산더미다.속으로 엄청난 후회를 하면서,영차,하면서 짐을 들어 보지만 역부족이다.금방 어깨가 빠질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짐을 쾅 내려놓는다.땅이 다 울릴 정도였다.
[그러게 욕심부리지 말았어야지.]
에드는 혀까지 차며 말한다.아주 저걸 확 짓뭉개고 싶은 생각이 머리 속에서 뭉클거리며 피어올랐다.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에드는 가뿐히 그 봉지를 하나 들어올렸다.
[들어다 줄게.가자고.]
[기사도를 따지는 거냐.난 전설에 나오는 공주님처럼 너랑 사랑에 빠질 생각 없으니까 그만 둬라.]
[허,참.내가 어이가 없어서-]
6월 28일,날씨-미치도록 맑음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쫓겨났다,아니,정확히 말하자면 나간다고 버럭,소리를 질렀는데도 붙잡는 사람이 없었던 것뿐이다.주종관계는 싫다.주종관계따윈 정말 싫다.주종관계는 싫어.싫다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다.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찾아달란 말인가,엔비?그건 말도 안 되는 것 아닌가?제대로 하라고,제대로.네가 쫓겨난 주제에 뭘 그렇게 말이 많냐.혼자서 일어서서 가란 말이다.]
[그,그렇지만…!일단 혼자서 일어서서 당신에게 루트를 부탁한 것뿐이라고!명색이 총통이잖아?]
[음,그렇다면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긴 한데…]
[앗!정말?!]
[원한다면 아르바이트 이상으로 갈 수도 있고.한 달에 몇 번만 하면 되고,돈은 충분히 줄 거고…]
[어딘데?!]
엔비는 반짝,눈을 빛내면서 총통에게 매달린다.이대로라면 다리를 붙잡고 매달릴 분위기다.총통은 엔비 모르게 야릇한 웃음을 짓더니,그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게 한다.
[뭐야…?]
[아르바이트를 찾는다고 했지?]
이번엔 총통은 엔비에게 보일 정도로 야릇하게 웃는다.혼자 웃던 것보다 좀 더 잔인한 미소를 담아서.
[웁…아파…앗…하읏,아앗…그,그만…!]
[돈은 충분히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아니잖아,그…그러니까…읏…!]
소년치고라도 흰 살결이,중년의 보기 좋지 않은 그것과 스친다.땀이 흘러내린다.처음 겪어 보는 모호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무력하게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것이 전부이다.자신도 꽤나 쌓였던 것일까.상대는 결코 관계를 맺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존재였다.그런데도 불구하고 몸은 열락에 들뜨고 있다.보랏빛 눈동자가 색기에 젖은 신음을 토해낸다.엔비는 그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도 난 바이 섹슈얼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낀다.
[하,아악…흐억…]
결코 원하지는 않았다.그저 단순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달라고 했을 뿐이었다.허리 밑에 전해지는 고통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숨이 차서 아예 숨이 넘어갈 정도였다.몸 안에 느껴지는 고통이 조금 덜해졌다고 생각했다.쾌감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고통뿐이다.차라리 아픔뿐인 현실이 짜릿함을 느끼고 수치심이 드는 것보다는 낫다.하지만 역시 정신이 없었다.몸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입 안에 무언가,가득히 들어왔다.
[웁…]
보랏빛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멍하게 풀려 있다.
[아파…]
허리가 지끈거렸다.역시 운동부족이었던 걸까.전이라면 이 정도로 움직인 것으로는 멀쩡하게 일어나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땀 때문에 온 몸이 차갑게 느껴진다.쇼파…인가.정액이 말라붙어서 하얀 자국이 다리 밑에 흘러내린다.손톱으로 긁어서 조금 지워진 느낌은 들지만,아프다.살이 빨갛게 부어 올랐다.한 번쯤 더 긁으면 피가 나올 것 같았다.그가 누워 있던 머리맡에는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주머니를 열어 보니 금화가 잔뜩 들어 있었다.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금액이다.이 정도면 한 달 동안 충분히 살 수 있을 만한 금액이다.
그런데…한 달에 몇 번이라고?
무표정하게,주머니를 챙겨 들고는 아무런 느낌 없이 문 밖으로 나갔다.건물 밖으로 나섰다.아직은 해가 지기 훨씬 전이다.몇 시간이나 자고 있었던 걸까.사실은 정신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자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이제 슬슬 여름이라,해가 늦게 지기 시작했다.시간은 아마 다섯 시쯤 되지 않았을까.갑자기,어제 웃으며 짐을 들어 주었던 사람이 떠오른다.보고 싶다.그렇게 좋은 기억을 남기지 못했던 사람인데도 보고 싶었다.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그 정도로 친구가 없는 그였다.
열쇠를 따고 집에 들어갔다.냉기가 감돌고 있다.아무도 없는 집이다.평상시처럼.
설마,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를 바랬던 걸까.
[…한심스럽긴.]
엔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심플한 집이다.혼자 살기에 이만큼 좋은 집이 더 있을까.가구도 적당량,식기도 적당량.갑자기 집이 맘에 들지 않아서 지갑에 돈을 넣고 밖으로 나갔다.열쇠로 문을 철컥,잠근다.금속성의 소리가 어째서인지 맘에 들지 않는다.무언가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거리로 나갔다.변화라면 변화이다.일상 생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변화.옛날에 들었던 이야기처럼 평범하게 사는 생활이 지겨워져서 자신만의 변화를 추구하다가,결국엔 홀로 고립되어 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생각해 보면 혼자 있었을 뿐,사실 누구랑 같이 있어본 적은 없었다.확실히,'같이 있어본 적'은 없었다.그렇지만,혼자 있는 것과 고립되어 있는 것은 다르다.적어도,고립되어 있는 쪽보다는 혼자 있는 쪽이 좀더 자유롭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걷고 있다.집이 번화가 쪽에 가까웠던 탓일까.걷다 보면 혼자 다니는 사람이 없다.다들 두셋씩 붙어 다닌다.회색과 붉은색으로 알 수 없는 무늬를 그린 보도블럭 위로 발자국과,멋대로 뱉은 껌 딱지와,담배꽁초가 드문드문 보인다.노란색 이온 음료 캔이 발 앞에서 깐죽대길래 뻥 차 버렸다.누가 맞던지 말던지.노란색이라.꼭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절대 그와는 관련이 없을 듯한 보석 가게와,자주 들르던 마켓,디스크를 잔뜩 갖다 놓고 파는 음반 매장,꽃집,사진관.발걸음을 멈추고 양 쪽으로 늘어선 건물을 멍하니 바라본다.높은 건물의 윗층에는 술집이 잔뜩 있다.술집뿐이랴,‘성인용품’이라며 낮뜨거운 단어들을 잔뜩 늘어놓은 빨간 간판도 보인다.저기까지 가서 뭔가를 사 올 정도로 배짱 있는 사람이 있을까.시계방이 보인다.검은색 간판에 금색 글씨.『120년 전통』.멋지다…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발을 움직였다.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혔다.사과도 없이 지나쳤다.뒤돌아보며 욕하는 사람.가만히 무시하고 간다.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vert’라는 이름의 짙은 초록빛 간판이 걸려 있다.간단한 샐러드나 닭 요리 같은 것을 파는 곳이다.돈이 없을 때 배부르게 먹기 좋은 곳.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가게도 넓은 편이다.하지만 넓은 만큼,가격을 보기 전에는 웬지 위축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엔비는 샐러드 바에 가서 가장 작은 접시를 하나 주문했다.생각 외로 단 음식을 선호하는 엔비는 파인애플이나 멜론 같이,빵이라도 같이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단 과일만 잔뜩 담다가,어디선가 들었던,토마토는 건강에 좋으니 먹어 두라는 소리를 기억해내고는 두텁게 베어진 토마토를 집게로 집어 접시에 올렸다.엔비는 요령있게,그 작은 접시에 과일을 잔뜩 담아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입맛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과일 같은 거라도 먹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먹다 보니 어쩐지 식욕이 생겨서 어쩌면 샌드위치라도 추가로 주문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순간,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짚었다.크게 놀라서 통조림 파인애플을 찍은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합석해도 돼?…아니,뜯어먹을 생각은 아니라고…]
눈에 익은 얼굴.금발에 금안.
…에드.
보고 싶었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다 어디 갔는지,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다.엔비는 무표정하게 다시 포크를 집어다 휴지로 닦아,샐러드를 푹푹 찍었다.먹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마치 누군가를 찔러죽이려는 듯,과일을 포크로 뭉갰다.으깨진 토마토의 불그스름한 과즙이 접시에 튀었다.에드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엔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뭔 일 있어?]
[남이사!]
생각한 것과는 달리,자존심 높은 엔비로서는,신용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그나마 약간이나마 믿을 수 있는 것은 다른 호문큘러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드는 자신을 배신했다.처참하게.잔혹하게 범했다.갑자기 얼굴이 확 붉어졌다.붉어진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서,손으로 얼굴을 감쌌다.테이블에 팔을 파묻은 채 엎드렸다.에드가 시선을 돌리고 자기 볼 일을 볼 때까지 기다리려는 심산이었다.그러나 그는 가지 않았다.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첫댓글 총통님을 양지바른 곳에 살며시 묻어드리고 싶다..는 건 나만의 생각.....?
크흐... 레모나님!!!!!!! 강력 동의합니다!! [엥?]
윗님들말......동감......[어디서 반말이야!!!!!!!!!!!!!!!!!!!!!!!!!!!!!!!!!!!!!!!!!!!]입니다. 대총통....들고 산에갑시다
총통님.....나이갑좀 하지??이따 나랑 뒷동산에서 잠깐 볼까??-ㅁ-*//위엣님들...같이 묻읍시다..-v-*[반짝]
레모나쨩..나도 동의함-_-..총통 죽여......크크크크큿,,앞산에 묻읍세.....
레모나언니말에 동의<ㅔ-
이거 제목말이죠, 에드엔비-동감합니다. 였었죠.
총통....갑자기 삽들고 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 일까요? 우리 모두 같이 합시다!!예에!![뭐냐?]
호오.. 레모나님.. 저도 같이가요.. 그래 총통.. 너 주거..... 양지바른.곳...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