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안은 죽음을 각오해야 옵니다.
온전한 평안이란 불안한 것이 전혀 없어야 오기 때문입니다.
작년 어느날 새벽아침에 실제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하라는 재난문자가 왔습니다. 보장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우리의 재산과 생명은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당장이라도 일어남을 가정하고 사는 삶에서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까지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께 맡겨진 것임을 알아야 온전한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잃을 수 있는 최대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전쟁과 전염병등의 죽음으로 협박하고 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우리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온전한 평안이 옵니다.
내가 내 친구들인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난 후 더 이상 아무일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 지 내가 보여주리라.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진 그분을 두려워하라.
정녕,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분을 두려워하라.
누가복음 12장 4절
죽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면, 더 이상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온전한 평안이 오는 것이고, 이 평안이 그대로 온전하신 주의 약속으로 이어져서 이 땅 이후에 대해서도 온전한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몸을 죽이는데 그치는 자들을 두려워하여 지키지도 못할 목숨을 위하여 우리가 물러서면 평안은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몸이 죽고난 후 우리를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지신 그분을 다시 또 두려워해야만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영생에까지 보존하리라.
마태복음 16장 25절
앞의 생명은 육신의 생명이고, 뒤에 얻는 것은 영원한 생명 즉 구원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구하고자 한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이란 선택이 아니라 시기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예정된 것이며,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며, 다만 그것을 직면하지 않고 외면하여 진실의 통증을 잊고 있는 중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위협에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육신의 생명을 잃는 것처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명이 나의 주관아래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으로 온전한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우리의 혼의 의지라는 생명을 포기해야 합니다. 즉 나의 뜻을 죽이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지니고 있는 너희의 자랑으로써 단언하노니 나는 매일 죽노라.
내가 만일 사람들의 방식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우리도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고 하였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 32절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부활이라는 보장이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탄의 위협에 목표가 되는 우리의 생명을 조건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사람들은 죽음으로 위협하는 자들에게 무조건 굴복하게 됩니다.
지금의 우리도 일루미나티라는 짐승들과 싸우고 있으며, 바울이 싸운 것처럼 사람들의 방식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으로 싸워야 합니다. 짐승의 표앞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목숨을 내려놓는 각오로 평안한 가운데서 인내로 순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육신은 우리가 스스로 죽을 수 없지만 나의 뜻은 스스로가 아니면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내 뜻을 죽이는 것을 이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나의 의지의 죽음을 각오함으로 평안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육신과 뜻의 목숨을 걸고 주의 약속으로 인내하여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O 이 일 후에 예수께서는 이제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목마르다." 고 하시니 이는 성경이 이루어지게 함이라.
거기에 식초롤 가득 찬 그릇이 놓여 있는데 그들이 식초를 해면에 적셔서 우슬초 가지에 꿰어 주의 입에 대니라.
그때 예수께서 그 식초를 받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고 하시더니 고개를 떨구시고 숨을 거두시더라.
요한복음 19장 28절 ~ 30절
예수님은 우리의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목마름을 견디시고,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와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죽음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거부하고 평안은 없는 것입니다.
조금 가시다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며 말씀하시기를 "오 나의 아버지시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옵소서." 하고
마태복음 26장 39절
다시 두 번째로 가셔서 기도하며 말씀하시기를 "오 나의 아버지시여,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42절
예수님께 주어진 잔이 지금 우리앞에도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 앞의 그 잔은 짐승의 표입니다.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것으로 소외와 모멸과 차별과 목마름과 굶주림의 인내를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받는 모든 고통들은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면 평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