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학(2) 한용운,「사랑의 存在」외
―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人類 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한용운,「당신을 보았습니다」)
1. 텍스트 이전
01.『님의 침묵』중 ‘사랑’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과 구절
사랑의 측량/사랑의 존재/사랑하는 까닭/사랑의 불/사랑의 끗판/사랑을 사랑하야요
사랑의 바다/노래/날개/이별/최후/세계/신/언덕/속박/꿈/광인/보褓/혹법酷法 등.
02.『님의 침묵』서시 [군말]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 衆生이 釋迦의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님이다 薔薇花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伊太利다 님은 내가사랑할뿐아니라 나를사랑하나니라
戀愛가自由라면 님도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自由에 알뜰한拘束을 밧지안너냐 너에게도 님이잇너냐 잇다면 님이아니라 너의그림자니라
나는 해저문벌판에서 도러가는길을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쓴다
*긔룬 것(님): 생의 전부를 바치는 자발적 대상. 긔룸(그리워함, 안쓰러움)의 상태 속에서 대상은 비로소 님이 된다. 완전한 존재-주객 너머 원융한 일체. 님은 어떤 대상 이전에 마음에 형태를 부여하는 통로나 계기. 마음의 초점(화). 님-당신-그대-애인. *가장 님이 긔룬 때: 꽃 핀 아침, 달 밝은 저녁, 비 오는 밤 (「우는 때」)
03. 만해의 시와 사랑
a. 만해 시의 궁극은 사랑의 완성. 사랑은 참다운 자유와 지혜의 산물.
b. 집은 우주적 진리와 실상이 담긴 장소, 그 집에 이르는 길을 알고 실천하는 삶이 사랑의 지혜.
c. 만해의 사랑은 깨친 자, 곧 견성한 자의 성불成佛의 한 양식.
d.『님의 침묵』은 참다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불법과 불심으로 탐구하고 시적으로 구현한,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문 지혜와 사랑의 시집. 회향廻向의 텍스트.
e. 인간의 자기완성과 자아실현이 사랑의 실천과 완성에 있다면, 만해는『님의 침묵』을 통해 그런 사랑을 꿈꾸고 뭇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04. 십현담十玄談과『님의 침묵』
a. 십현담十玄談: 心印/祖意/玄機/塵異/演敎/達本/還源-破還鄕/轉位/廻機/一色.
b. 십현담요해: 매월당 김시습이 동안 상찰의『십현담』을 해석하여 1475년에 간행한 주석서. 십현담주해는 이를 토대로 만해 한용운이 다시 주해한 책. 다음은 서준섭 교수가 번역한 서문.
을축년(1925) 내가 오세암에서 여름을 지낼 때 우연히 십현담十玄談을 읽었다. 십현담은 동안 상찰 선사(同安 常察 禪師)가 지은 선화(禪話)이다. 글이 비록 평이하나 뜻이 심오하여 처음 배우는 사람은 그 유현(幽玄)한 뜻을 엿보기 어렵다. 원주(原註)가 있지만 누가 붙였는지 알 수 없다. 열경(悅卿)의 주석도 있는데, 열경은 매월(梅月) 김시습(金時習)의 자(字)이다. 매월이 세상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 중옷을 입고 오세암에 머물 때 지은 것이다. 두 주석이 각각 오묘함이 있어 원문의 뜻을 해석하는데 충분하지만, 말 밖의 뜻에 이르러서는 나의 견해와 더러 같고 다른 바가 있었다. 대저, 매월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운림(雲林)에 낙척(落拓)한 몸이 되어, 때로는 원숭이와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천하만세(天下萬世)에 결백하였으니, 그 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情)은 슬픈 것이었다. 또 매월이 십현담을 주석(註釋)하였던 곳이 오세암이고, 내가 열경의 주석을 읽었던 것도 오세암이다. 수백년 뒤에 선인(先人)을 만나니 감회가 오히려 새롭다. 이에 십현담을 주해(註解)한다.
을축 6월 일 오세암에서, 한용운 씀.
c. 3.1 운동 당시 불교계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가 수감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른 후 1922년 출옥한 만해는 설악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세암에 칩거하면서 1925년 여름 연달아 두 권의 책을 완성한다. 한문체《십현담주해》(6월)와 국문체 시집《님의 침묵》(8월)이 그것이다. 만해는《님의 침묵》한 권으로 불후의 시인이 되었지만, 이면에는《십현담주해》의 현묘한 세계와 선적 사유가 가로놓여 있다.《십현담주해》는 주해 형식을 빌어 자신의 깨달음과, 정위(正位)와 편위(偏位) 어느 한쪽에도 머물지 않는 조동선(曹洞禪)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책이다.
[心印]
問君心印作何顔 心印誰人敢授傳
歷劫坦然無異色 呼爲心印早虛言
須知本自虛空性 將喩紅爐火裏蓮
莫以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이란 어찌 생겼는가
심인을 뉘라서 감히 전할 수 있겠는가
긴 세월 한결같이 다른 색깔이 없으니
심인이라고 호칭을 붙이면 벌써 잘못이다.
(심인이란) 본래부터 텅 비고 공한 성품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하니
비유하자면 시뻘건 화로 속에 피어난 연꽃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무심을 도라고도 절대로 말하지 말게
무심하더라도 오히려 한 관문에 가로막힌다.
[塵異]
濁者自濁淸者淸 菩提煩惱等空平
誰言卞璧無人鑑 我道驪珠到處晶
萬法泯時全體現 三乘分別强安名
丈夫自有衝天志 莫向如來行處行
탁한 것은 저절로 탁하고 맑은 것은 저절로 맑아
보리와 번뇌는 모두 공하고 평등하다
누가 변화의 옥을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나는 말하리라, 검은 용의 여의주는 곳곳에서 빛난다고.
온갖 법이 사라질 때에 (한 마음의) 온전한 바탕이 드러나고
3승으로 분별한 것은 억지로 이름 붙인 것이네
대장부란 본래 충천의 기상이 있으니
여래께서 가신 길이라도 절대로 가지 마시오.
[一色]
枯木巖前差路多 行人到此盡蹉跎
鷺鸞立雪非同色 明月蘆花不似他
了了了時無所了 玄玄玄處亦須呵
殷懃爲唱玄中曲 空裏蟾光撮得麽
마른 나무 차가운 바위 앞에는 갈림길이 많고
가는 사람마다 여기에서 죄다 자빠지네
흰 색 해오라기가 흰 눈 위에 섰다고 같은 색깔이 아니고
밝은 달과 갈대꽃은 색깔이 같지 않다네.
분명하고 분명하게 깨달았을 때도 깨달을 것이 없고
현묘하고 현묘한 자리라도 그 역시 칭찬할 것이 못되네
은근히 그대를 위하여 현묘한 노래를 부르노니
허공 속의 달빛을 잡을 수가 있겠는가? (신규탁 옮김)
2. 텍스트의 분석과 감상
사랑의存在 / 한용운
1. 사랑을「사랑」이라고하면 발써 사랑은아님니다
2. 사랑을 이름지을만한 말이나글이 어데잇슴닛가
3. 微笑에눌녀서 괴로은듯한 薔薇빗입설인들 그것을슬칠수가잇슴닛가
4. 눈물의뒤에 숨어서 슯음의 黑闇面을 反射하는 가을물ㅅ결의눈인들 그것을 비칠수가잇슴닛가
5. 그림자업는구름을 것처서 매아리업는絶壁을 것처서 마음이 갈ㅅ수업는바다를 것처서 存在? 存在임니다
6. 그나라는 國境이업슴니다 壽命은 時間이아님니다
7. 사랑의存在는 님의눈과 님의마음도 알지못함니다
8. 사랑의秘密은 다만 님의手巾에繡놋는 바늘과 님의심으신 ᄭᅩᆺ나무와 님의잠과 詩人의想像과 그들만이암니다
(일련번호는 필자가 논의의 편의상 부여)
십현담주해 (원문 塵異편 菩提煩惱等空平)
批: 春草王孫今何在 黃沙白骨共無邊 (봄풀과 왕손은 이제 어디에 있는가. 황사와 백골이 모두 끝이 없구나.)
註: 菩提性空 煩惱本寂 一切平等 無有高下 妄分別 故有悟有迷 (보리는 자성이 공한 것이요, 번뇌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일체가 평등해서 높고 낮은 것이 없는데, 망령되이 분별심을 내는 까닭에 깨달음이 있고 혼미함이 있다.)
〈분석과 감상〉
이 시는 만해가 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사랑의 가치와 존재론을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만해의 사랑법이자 사랑의 시학이다. 진이塵異의 註에서 분별이란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批에는‘春草王孫今何在’가 나오는데 이는 왕유의 시「送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봄풀이니 왕손이니 하는 분별을 뛰어넘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2행:‘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노자『도덕경』1장)이라 했듯이, 사랑의 존재는 언어로는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어 즉 관념이나 개념을 통해 우주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
3-4행: 1-2행을 구체적 이미지로 제시한 대목으로 사랑의 속살은 아름다운 장미와 장및빛 입술로도 어루만지거나 스칠 수가 없다. 눈물과 슬픔의 어둡고 깊은 마음, 그 표면에 반짝이는 가을 강의 물빛으로도 사랑의 동경銅鏡은 결코 찾을 수 없으며, 사랑의 진면목 또한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은 입술이나 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묘용妙用의 전체적이며 불가사의한 세계다. 사랑은 분리가 아닌 통합을 지향한다.
5-6행: 사랑의 존재는 그림자도 메아리도 없고 구름과 절벽을 거쳐서야 이를 수 있는, 마음의 바다 저편에 있다. 그 나라는 경계가 없고 시간과 수명을 초월해 있다. 참된 사랑은 일체가 끊어진 절대이자 공적空寂의 세계이며,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세계다. 공간과 시간, 인식과 마음을 넘어선 자리에 사랑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존재?하면서 물음표를 첨가하는 이유는존재라는 말 자체도 사실 적확한 표현이 아님을 뜻한다.
7-8행: 눈과 마음도 모르는 사랑은 사랑을 하는 자의 행동과 모습 속에 존재한다. 이는 사랑을 받는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법. 사랑의 비밀은바늘/꽃나무/잠과‘시인의 想像’에 있다.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반영하는 실체로서 바늘과 꽃나무는 지금 여기서 작용하는 사랑의 실제-실재다. 마음과 사물이 어우러진 사랑의 아름다움이자 신비인 그것은, 사랑을 하는 자의 평상시 행동에 그대로 녹아 있다. 님의 잠과, 시인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반영하는 존재로서 시인의 상상은 곧 사랑의 완성이다. 한편, 사랑에 대한 앎과 느낌은 선禪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의 세계이며, 오직 깨달음에 도달한 자의 평상의 모습과 행동 속에 녹아 있을 뿐이다. 만해의 시에서 사랑은 법성法性의 실상이자, 그것의 구체적인 작용을 (인간의) 언어로 드러낸 말이다. 깨달음의 환희와 세계는 노래와 시 말고는 없다. 가장 훌륭한 삶이 사랑의 삶이라면, 사랑의 존재와 진리가 드러나는이 세상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고 읽혀져야 의미를 갖는다.(김재혁,『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3. 텍스트 이후
a. 사랑의 시학적 원리: 상대적/절대적/존재론적 원리
b. 시는 사랑의 운동이자 모험이며 발명이다.
c. 현대시의 열 가지 주제: 형식/리듬/언어/이미지/시선/전통/장소/시간/주름/경계
d. 만해 한용운 선생은 [ ]이다.
e.「사랑의 存在」에서 좋아하는 말로 된 나만의 한 줄 시어사전 만들기
예) 거울: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의 장면을 반대로 담아낸 하나뿐인 화폭.
물결: 무리나 떼를 지어 움직이는 모양이나 현상.
■ 만해 한용운의 회갑연시回甲宴詩-周甲日卽興 (1939년 7월 12일 청량사)
悤悤六十一年光 云是人間小劫桑
歲月縱令白髮短 風霜無奈丹心長
聽貧已覺換凡骨 任病誰知得妙方
流水餘生君莫問 蟬聲萬樹趂斜陽
바쁘게도 지나간 예순 한 해, 이 세상에선 소겁 같이 긴 생애라고
세월이 흰 머리 짧게 했건만, 풍상도 일편단심 어쩌지 못해
가난을 달게 여기니 범골도 바뀐 듯, 병을 버려 두매 좋은 방문 어이 알리
물 같은 내 여생 그대여 묻지말게, 숲속 가득 매미소리 사양 향해 가는 몸을
(참조. 만해기념관)
더 읽을거리
회향廻向 / 박노해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참고문헌
김광원, 님의 침묵과 禪의 세계, 새문사, 2008.
김행숙, 에로스와 아우라, 민음사, 2012.
서준섭, 한용운의『십현담주해』와『님의 침묵』의 거리, 한국현대문학회학술발표회자료집 8집, 2013.
신규탁,『十玄談註解』에 나타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선사상, 선문화연구 16권(한국불교선리연구원), 2014.
정효구, 한용운의『님의 沈默』, 전편 다시읽기, 푸른사상, 2013.
진순애, 만해 시의 사랑과 시학적 원리, 인문과학, 41권, 2008. 기타
심우장尋牛莊 전경.
♣ 차시 예고
7회(5.17.)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道家의 사랑(1) 8회(5.24.) 금교영 (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사랑의 감정들 |
사랑의 시학(2) 한용운,「사랑의 存在」외
―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人類 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한용운,「당신을 보았습니다」)
1. 텍스트 이전
01.『님의 침묵』중 ‘사랑’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과 구절
사랑의 측량/사랑의 존재/사랑하는 까닭/사랑의 불/사랑의 끗판/사랑을 사랑하야요
사랑의 바다/노래/날개/이별/최후/세계/신/언덕/속박/꿈/광인/보褓/혹법酷法 등.
02.『님의 침묵』서시 [군말]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 衆生이 釋迦의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님이다 薔薇花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伊太利다 님은 내가사랑할뿐아니라 나를사랑하나니라
戀愛가自由라면 님도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自由에 알뜰한拘束을 밧지안너냐 너에게도 님이잇너냐 잇다면 님이아니라 너의그림자니라
나는 해저문벌판에서 도러가는길을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쓴다
*긔룬 것(님): 생의 전부를 바치는 자발적 대상. 긔룸(그리워함, 안쓰러움)의 상태 속에서 대상은 비로소 님이 된다. 완전한 존재-주객 너머 원융한 일체. 님은 어떤 대상 이전에 마음에 형태를 부여하는 통로나 계기. 마음의 초점(화). 님-당신-그대-애인. *가장 님이 긔룬 때: 꽃 핀 아침, 달 밝은 저녁, 비 오는 밤 (「우는 때」)
03. 만해의 시와 사랑
a. 만해 시의 궁극은 사랑의 완성. 사랑은 참다운 자유와 지혜의 산물.
b. 집은 우주적 진리와 실상이 담긴 장소, 그 집에 이르는 길을 알고 실천하는 삶이 사랑의 지혜.
c. 만해의 사랑은 깨친 자, 곧 견성한 자의 성불成佛의 한 양식.
d.『님의 침묵』은 참다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불법과 불심으로 탐구하고 시적으로 구현한,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문 지혜와 사랑의 시집. 회향廻向의 텍스트.
e. 인간의 자기완성과 자아실현이 사랑의 실천과 완성에 있다면, 만해는『님의 침묵』을 통해 그런 사랑을 꿈꾸고 뭇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04. 십현담十玄談과『님의 침묵』
a. 십현담十玄談: 心印/祖意/玄機/塵異/演敎/達本/還源-破還鄕/轉位/廻機/一色.
b. 십현담요해: 매월당 김시습이 동안 상찰의『십현담』을 해석하여 1475년에 간행한 주석서. 십현담주해는 이를 토대로 만해 한용운이 다시 주해한 책. 다음은 서준섭 교수가 번역한 서문.
을축년(1925) 내가 오세암에서 여름을 지낼 때 우연히 십현담十玄談을 읽었다. 십현담은 동안 상찰 선사(同安 常察 禪師)가 지은 선화(禪話)이다. 글이 비록 평이하나 뜻이 심오하여 처음 배우는 사람은 그 유현(幽玄)한 뜻을 엿보기 어렵다. 원주(原註)가 있지만 누가 붙였는지 알 수 없다. 열경(悅卿)의 주석도 있는데, 열경은 매월(梅月) 김시습(金時習)의 자(字)이다. 매월이 세상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 중옷을 입고 오세암에 머물 때 지은 것이다. 두 주석이 각각 오묘함이 있어 원문의 뜻을 해석하는데 충분하지만, 말 밖의 뜻에 이르러서는 나의 견해와 더러 같고 다른 바가 있었다. 대저, 매월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운림(雲林)에 낙척(落拓)한 몸이 되어, 때로는 원숭이와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천하만세(天下萬世)에 결백하였으니, 그 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情)은 슬픈 것이었다. 또 매월이 십현담을 주석(註釋)하였던 곳이 오세암이고, 내가 열경의 주석을 읽었던 것도 오세암이다. 수백년 뒤에 선인(先人)을 만나니 감회가 오히려 새롭다. 이에 십현담을 주해(註解)한다.
을축 6월 일 오세암에서, 한용운 씀.
c. 3.1 운동 당시 불교계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가 수감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른 후 1922년 출옥한 만해는 설악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세암에 칩거하면서 1925년 여름 연달아 두 권의 책을 완성한다. 한문체《십현담주해》(6월)와 국문체 시집《님의 침묵》(8월)이 그것이다. 만해는《님의 침묵》한 권으로 불후의 시인이 되었지만, 이면에는《십현담주해》의 현묘한 세계와 선적 사유가 가로놓여 있다.《십현담주해》는 주해 형식을 빌어 자신의 깨달음과, 정위(正位)와 편위(偏位) 어느 한쪽에도 머물지 않는 조동선(曹洞禪)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책이다.
[心印]
問君心印作何顔 心印誰人敢授傳
歷劫坦然無異色 呼爲心印早虛言
須知本自虛空性 將喩紅爐火裏蓮
莫以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이란 어찌 생겼는가
심인을 뉘라서 감히 전할 수 있겠는가
긴 세월 한결같이 다른 색깔이 없으니
심인이라고 호칭을 붙이면 벌써 잘못이다.
(심인이란) 본래부터 텅 비고 공한 성품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하니
비유하자면 시뻘건 화로 속에 피어난 연꽃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무심을 도라고도 절대로 말하지 말게
무심하더라도 오히려 한 관문에 가로막힌다.
[塵異]
濁者自濁淸者淸 菩提煩惱等空平
誰言卞璧無人鑑 我道驪珠到處晶
萬法泯時全體現 三乘分別强安名
丈夫自有衝天志 莫向如來行處行
탁한 것은 저절로 탁하고 맑은 것은 저절로 맑아
보리와 번뇌는 모두 공하고 평등하다
누가 변화의 옥을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나는 말하리라, 검은 용의 여의주는 곳곳에서 빛난다고.
온갖 법이 사라질 때에 (한 마음의) 온전한 바탕이 드러나고
3승으로 분별한 것은 억지로 이름 붙인 것이네
대장부란 본래 충천의 기상이 있으니
여래께서 가신 길이라도 절대로 가지 마시오.
[一色]
枯木巖前差路多 行人到此盡蹉跎
鷺鸞立雪非同色 明月蘆花不似他
了了了時無所了 玄玄玄處亦須呵
殷懃爲唱玄中曲 空裏蟾光撮得麽
마른 나무 차가운 바위 앞에는 갈림길이 많고
가는 사람마다 여기에서 죄다 자빠지네
흰 색 해오라기가 흰 눈 위에 섰다고 같은 색깔이 아니고
밝은 달과 갈대꽃은 색깔이 같지 않다네.
분명하고 분명하게 깨달았을 때도 깨달을 것이 없고
현묘하고 현묘한 자리라도 그 역시 칭찬할 것이 못되네
은근히 그대를 위하여 현묘한 노래를 부르노니
허공 속의 달빛을 잡을 수가 있겠는가? (신규탁 옮김)
2. 텍스트의 분석과 감상
사랑의存在 / 한용운
1. 사랑을「사랑」이라고하면 발써 사랑은아님니다
2. 사랑을 이름지을만한 말이나글이 어데잇슴닛가
3. 微笑에눌녀서 괴로은듯한 薔薇빗입설인들 그것을슬칠수가잇슴닛가
4. 눈물의뒤에 숨어서 슯음의 黑闇面을 反射하는 가을물ㅅ결의눈인들 그것을 비칠수가잇슴닛가
5. 그림자업는구름을 것처서 매아리업는絶壁을 것처서 마음이 갈ㅅ수업는바다를 것처서 存在? 存在임니다
6. 그나라는 國境이업슴니다 壽命은 時間이아님니다
7. 사랑의存在는 님의눈과 님의마음도 알지못함니다
8. 사랑의秘密은 다만 님의手巾에繡놋는 바늘과 님의심으신 ᄭᅩᆺ나무와 님의잠과 詩人의想像과 그들만이암니다
(일련번호는 필자가 논의의 편의상 부여)
십현담주해 (원문 塵異편 菩提煩惱等空平)
批: 春草王孫今何在 黃沙白骨共無邊 (봄풀과 왕손은 이제 어디에 있는가. 황사와 백골이 모두 끝이 없구나.)
註: 菩提性空 煩惱本寂 一切平等 無有高下 妄分別 故有悟有迷 (보리는 자성이 공한 것이요, 번뇌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일체가 평등해서 높고 낮은 것이 없는데, 망령되이 분별심을 내는 까닭에 깨달음이 있고 혼미함이 있다.)
〈분석과 감상〉
이 시는 만해가 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사랑의 가치와 존재론을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만해의 사랑법이자 사랑의 시학이다. 진이塵異의 註에서 분별이란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批에는‘春草王孫今何在’가 나오는데 이는 왕유의 시「送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봄풀이니 왕손이니 하는 분별을 뛰어넘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2행:‘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노자『도덕경』1장)이라 했듯이, 사랑의 존재는 언어로는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어 즉 관념이나 개념을 통해 우주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
3-4행: 1-2행을 구체적 이미지로 제시한 대목으로 사랑의 속살은 아름다운 장미와 장및빛 입술로도 어루만지거나 스칠 수가 없다. 눈물과 슬픔의 어둡고 깊은 마음, 그 표면에 반짝이는 가을 강의 물빛으로도 사랑의 동경銅鏡은 결코 찾을 수 없으며, 사랑의 진면목 또한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은 입술이나 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묘용妙用의 전체적이며 불가사의한 세계다. 사랑은 분리가 아닌 통합을 지향한다.
5-6행: 사랑의 존재는 그림자도 메아리도 없고 구름과 절벽을 거쳐서야 이를 수 있는, 마음의 바다 저편에 있다. 그 나라는 경계가 없고 시간과 수명을 초월해 있다. 참된 사랑은 일체가 끊어진 절대이자 공적空寂의 세계이며,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세계다. 공간과 시간, 인식과 마음을 넘어선 자리에 사랑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존재?하면서 물음표를 첨가하는 이유는존재라는 말 자체도 사실 적확한 표현이 아님을 뜻한다.
7-8행: 눈과 마음도 모르는 사랑은 사랑을 하는 자의 행동과 모습 속에 존재한다. 이는 사랑을 받는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법. 사랑의 비밀은바늘/꽃나무/잠과‘시인의 想像’에 있다.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반영하는 실체로서 바늘과 꽃나무는 지금 여기서 작용하는 사랑의 실제-실재다. 마음과 사물이 어우러진 사랑의 아름다움이자 신비인 그것은, 사랑을 하는 자의 평상시 행동에 그대로 녹아 있다. 님의 잠과, 시인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반영하는 존재로서 시인의 상상은 곧 사랑의 완성이다. 한편, 사랑에 대한 앎과 느낌은 선禪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의 세계이며, 오직 깨달음에 도달한 자의 평상의 모습과 행동 속에 녹아 있을 뿐이다. 만해의 시에서 사랑은 법성法性의 실상이자, 그것의 구체적인 작용을 (인간의) 언어로 드러낸 말이다. 깨달음의 환희와 세계는 노래와 시 말고는 없다. 가장 훌륭한 삶이 사랑의 삶이라면, 사랑의 존재와 진리가 드러나는이 세상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고 읽혀져야 의미를 갖는다.(김재혁,『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3. 텍스트 이후
a. 사랑의 시학적 원리: 상대적/절대적/존재론적 원리
b. 시는 사랑의 운동이자 모험이며 발명이다.
c. 현대시의 열 가지 주제: 형식/리듬/언어/이미지/시선/전통/장소/시간/주름/경계
d. 만해 한용운 선생은 [ ]이다.
e.「사랑의 存在」에서 좋아하는 말로 된 나만의 한 줄 시어사전 만들기
예) 거울: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의 장면을 반대로 담아낸 하나뿐인 화폭.
물결: 무리나 떼를 지어 움직이는 모양이나 현상.
■ 만해 한용운의 회갑연시回甲宴詩-周甲日卽興 (1939년 7월 12일 청량사)
悤悤六十一年光 云是人間小劫桑
歲月縱令白髮短 風霜無奈丹心長
聽貧已覺換凡骨 任病誰知得妙方
流水餘生君莫問 蟬聲萬樹趂斜陽
바쁘게도 지나간 예순 한 해, 이 세상에선 소겁 같이 긴 생애라고
세월이 흰 머리 짧게 했건만, 풍상도 일편단심 어쩌지 못해
가난을 달게 여기니 범골도 바뀐 듯, 병을 버려 두매 좋은 방문 어이 알리
물 같은 내 여생 그대여 묻지말게, 숲속 가득 매미소리 사양 향해 가는 몸을
(참조. 만해기념관)
더 읽을거리
회향廻向 / 박노해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참고문헌
김광원, 님의 침묵과 禪의 세계, 새문사, 2008.
김행숙, 에로스와 아우라, 민음사, 2012.
서준섭, 한용운의『십현담주해』와『님의 침묵』의 거리, 한국현대문학회학술발표회자료집 8집, 2013.
신규탁,『十玄談註解』에 나타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선사상, 선문화연구 16권(한국불교선리연구원), 2014.
정효구, 한용운의『님의 沈默』, 전편 다시읽기, 푸른사상, 2013.
진순애, 만해 시의 사랑과 시학적 원리, 인문과학, 41권, 2008. 기타
심우장尋牛莊 전경.
♣ 차시 예고
7회(5.17.)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道家의 사랑(1) 8회(5.24.) 금교영 (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사랑의 감정들 |
사랑의 시학(2) 한용운,「사랑의 存在」외
―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人類 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한용운,「당신을 보았습니다」)
1. 텍스트 이전
01.『님의 침묵』중 ‘사랑’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과 구절
사랑의 측량/사랑의 존재/사랑하는 까닭/사랑의 불/사랑의 끗판/사랑을 사랑하야요
사랑의 바다/노래/날개/이별/최후/세계/신/언덕/속박/꿈/광인/보褓/혹법酷法 등.
02.『님의 침묵』서시 [군말]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 衆生이 釋迦의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님이다 薔薇花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伊太利다 님은 내가사랑할뿐아니라 나를사랑하나니라
戀愛가自由라면 님도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自由에 알뜰한拘束을 밧지안너냐 너에게도 님이잇너냐 잇다면 님이아니라 너의그림자니라
나는 해저문벌판에서 도러가는길을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쓴다
*긔룬 것(님): 생의 전부를 바치는 자발적 대상. 긔룸(그리워함, 안쓰러움)의 상태 속에서 대상은 비로소 님이 된다. 완전한 존재-주객 너머 원융한 일체. 님은 어떤 대상 이전에 마음에 형태를 부여하는 통로나 계기. 마음의 초점(화). 님-당신-그대-애인. *가장 님이 긔룬 때: 꽃 핀 아침, 달 밝은 저녁, 비 오는 밤 (「우는 때」)
03. 만해의 시와 사랑
a. 만해 시의 궁극은 사랑의 완성. 사랑은 참다운 자유와 지혜의 산물.
b. 집은 우주적 진리와 실상이 담긴 장소, 그 집에 이르는 길을 알고 실천하는 삶이 사랑의 지혜.
c. 만해의 사랑은 깨친 자, 곧 견성한 자의 성불成佛의 한 양식.
d.『님의 침묵』은 참다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불법과 불심으로 탐구하고 시적으로 구현한,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문 지혜와 사랑의 시집. 회향廻向의 텍스트.
e. 인간의 자기완성과 자아실현이 사랑의 실천과 완성에 있다면, 만해는『님의 침묵』을 통해 그런 사랑을 꿈꾸고 뭇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04. 십현담十玄談과『님의 침묵』
a. 십현담十玄談: 心印/祖意/玄機/塵異/演敎/達本/還源-破還鄕/轉位/廻機/一色.
b. 십현담요해: 매월당 김시습이 동안 상찰의『십현담』을 해석하여 1475년에 간행한 주석서. 십현담주해는 이를 토대로 만해 한용운이 다시 주해한 책. 다음은 서준섭 교수가 번역한 서문.
을축년(1925) 내가 오세암에서 여름을 지낼 때 우연히 십현담十玄談을 읽었다. 십현담은 동안 상찰 선사(同安 常察 禪師)가 지은 선화(禪話)이다. 글이 비록 평이하나 뜻이 심오하여 처음 배우는 사람은 그 유현(幽玄)한 뜻을 엿보기 어렵다. 원주(原註)가 있지만 누가 붙였는지 알 수 없다. 열경(悅卿)의 주석도 있는데, 열경은 매월(梅月) 김시습(金時習)의 자(字)이다. 매월이 세상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 중옷을 입고 오세암에 머물 때 지은 것이다. 두 주석이 각각 오묘함이 있어 원문의 뜻을 해석하는데 충분하지만, 말 밖의 뜻에 이르러서는 나의 견해와 더러 같고 다른 바가 있었다. 대저, 매월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운림(雲林)에 낙척(落拓)한 몸이 되어, 때로는 원숭이와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천하만세(天下萬世)에 결백하였으니, 그 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情)은 슬픈 것이었다. 또 매월이 십현담을 주석(註釋)하였던 곳이 오세암이고, 내가 열경의 주석을 읽었던 것도 오세암이다. 수백년 뒤에 선인(先人)을 만나니 감회가 오히려 새롭다. 이에 십현담을 주해(註解)한다.
을축 6월 일 오세암에서, 한용운 씀.
c. 3.1 운동 당시 불교계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가 수감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른 후 1922년 출옥한 만해는 설악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세암에 칩거하면서 1925년 여름 연달아 두 권의 책을 완성한다. 한문체《십현담주해》(6월)와 국문체 시집《님의 침묵》(8월)이 그것이다. 만해는《님의 침묵》한 권으로 불후의 시인이 되었지만, 이면에는《십현담주해》의 현묘한 세계와 선적 사유가 가로놓여 있다.《십현담주해》는 주해 형식을 빌어 자신의 깨달음과, 정위(正位)와 편위(偏位) 어느 한쪽에도 머물지 않는 조동선(曹洞禪)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책이다.
[心印]
問君心印作何顔 心印誰人敢授傳
歷劫坦然無異色 呼爲心印早虛言
須知本自虛空性 將喩紅爐火裏蓮
莫以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이란 어찌 생겼는가
심인을 뉘라서 감히 전할 수 있겠는가
긴 세월 한결같이 다른 색깔이 없으니
심인이라고 호칭을 붙이면 벌써 잘못이다.
(심인이란) 본래부터 텅 비고 공한 성품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하니
비유하자면 시뻘건 화로 속에 피어난 연꽃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무심을 도라고도 절대로 말하지 말게
무심하더라도 오히려 한 관문에 가로막힌다.
[塵異]
濁者自濁淸者淸 菩提煩惱等空平
誰言卞璧無人鑑 我道驪珠到處晶
萬法泯時全體現 三乘分別强安名
丈夫自有衝天志 莫向如來行處行
탁한 것은 저절로 탁하고 맑은 것은 저절로 맑아
보리와 번뇌는 모두 공하고 평등하다
누가 변화의 옥을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나는 말하리라, 검은 용의 여의주는 곳곳에서 빛난다고.
온갖 법이 사라질 때에 (한 마음의) 온전한 바탕이 드러나고
3승으로 분별한 것은 억지로 이름 붙인 것이네
대장부란 본래 충천의 기상이 있으니
여래께서 가신 길이라도 절대로 가지 마시오.
[一色]
枯木巖前差路多 行人到此盡蹉跎
鷺鸞立雪非同色 明月蘆花不似他
了了了時無所了 玄玄玄處亦須呵
殷懃爲唱玄中曲 空裏蟾光撮得麽
마른 나무 차가운 바위 앞에는 갈림길이 많고
가는 사람마다 여기에서 죄다 자빠지네
흰 색 해오라기가 흰 눈 위에 섰다고 같은 색깔이 아니고
밝은 달과 갈대꽃은 색깔이 같지 않다네.
분명하고 분명하게 깨달았을 때도 깨달을 것이 없고
현묘하고 현묘한 자리라도 그 역시 칭찬할 것이 못되네
은근히 그대를 위하여 현묘한 노래를 부르노니
허공 속의 달빛을 잡을 수가 있겠는가? (신규탁 옮김)
2. 텍스트의 분석과 감상
사랑의存在 / 한용운
1. 사랑을「사랑」이라고하면 발써 사랑은아님니다
2. 사랑을 이름지을만한 말이나글이 어데잇슴닛가
3. 微笑에눌녀서 괴로은듯한 薔薇빗입설인들 그것을슬칠수가잇슴닛가
4. 눈물의뒤에 숨어서 슯음의 黑闇面을 反射하는 가을물ㅅ결의눈인들 그것을 비칠수가잇슴닛가
5. 그림자업는구름을 것처서 매아리업는絶壁을 것처서 마음이 갈ㅅ수업는바다를 것처서 存在? 存在임니다
6. 그나라는 國境이업슴니다 壽命은 時間이아님니다
7. 사랑의存在는 님의눈과 님의마음도 알지못함니다
8. 사랑의秘密은 다만 님의手巾에繡놋는 바늘과 님의심으신 ᄭᅩᆺ나무와 님의잠과 詩人의想像과 그들만이암니다
(일련번호는 필자가 논의의 편의상 부여)
십현담주해 (원문 塵異편 菩提煩惱等空平)
批: 春草王孫今何在 黃沙白骨共無邊 (봄풀과 왕손은 이제 어디에 있는가. 황사와 백골이 모두 끝이 없구나.)
註: 菩提性空 煩惱本寂 一切平等 無有高下 妄分別 故有悟有迷 (보리는 자성이 공한 것이요, 번뇌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일체가 평등해서 높고 낮은 것이 없는데, 망령되이 분별심을 내는 까닭에 깨달음이 있고 혼미함이 있다.)
〈분석과 감상〉
이 시는 만해가 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사랑의 가치와 존재론을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만해의 사랑법이자 사랑의 시학이다. 진이塵異의 註에서 분별이란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批에는‘春草王孫今何在’가 나오는데 이는 왕유의 시「送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봄풀이니 왕손이니 하는 분별을 뛰어넘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2행:‘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노자『도덕경』1장)이라 했듯이, 사랑의 존재는 언어로는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어 즉 관념이나 개념을 통해 우주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
3-4행: 1-2행을 구체적 이미지로 제시한 대목으로 사랑의 속살은 아름다운 장미와 장및빛 입술로도 어루만지거나 스칠 수가 없다. 눈물과 슬픔의 어둡고 깊은 마음, 그 표면에 반짝이는 가을 강의 물빛으로도 사랑의 동경銅鏡은 결코 찾을 수 없으며, 사랑의 진면목 또한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은 입술이나 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묘용妙用의 전체적이며 불가사의한 세계다. 사랑은 분리가 아닌 통합을 지향한다.
5-6행: 사랑의 존재는 그림자도 메아리도 없고 구름과 절벽을 거쳐서야 이를 수 있는, 마음의 바다 저편에 있다. 그 나라는 경계가 없고 시간과 수명을 초월해 있다. 참된 사랑은 일체가 끊어진 절대이자 공적空寂의 세계이며,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세계다. 공간과 시간, 인식과 마음을 넘어선 자리에 사랑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존재?하면서 물음표를 첨가하는 이유는존재라는 말 자체도 사실 적확한 표현이 아님을 뜻한다.
7-8행: 눈과 마음도 모르는 사랑은 사랑을 하는 자의 행동과 모습 속에 존재한다. 이는 사랑을 받는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법. 사랑의 비밀은바늘/꽃나무/잠과‘시인의 想像’에 있다.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반영하는 실체로서 바늘과 꽃나무는 지금 여기서 작용하는 사랑의 실제-실재다. 마음과 사물이 어우러진 사랑의 아름다움이자 신비인 그것은, 사랑을 하는 자의 평상시 행동에 그대로 녹아 있다. 님의 잠과, 시인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반영하는 존재로서 시인의 상상은 곧 사랑의 완성이다. 한편, 사랑에 대한 앎과 느낌은 선禪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의 세계이며, 오직 깨달음에 도달한 자의 평상의 모습과 행동 속에 녹아 있을 뿐이다. 만해의 시에서 사랑은 법성法性의 실상이자, 그것의 구체적인 작용을 (인간의) 언어로 드러낸 말이다. 깨달음의 환희와 세계는 노래와 시 말고는 없다. 가장 훌륭한 삶이 사랑의 삶이라면, 사랑의 존재와 진리가 드러나는이 세상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고 읽혀져야 의미를 갖는다.(김재혁,『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3. 텍스트 이후
a. 사랑의 시학적 원리: 상대적/절대적/존재론적 원리
b. 시는 사랑의 운동이자 모험이며 발명이다.
c. 현대시의 열 가지 주제: 형식/리듬/언어/이미지/시선/전통/장소/시간/주름/경계
d. 만해 한용운 선생은 [ ]이다.
e.「사랑의 存在」에서 좋아하는 말로 된 나만의 한 줄 시어사전 만들기
예) 거울: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의 장면을 반대로 담아낸 하나뿐인 화폭.
물결: 무리나 떼를 지어 움직이는 모양이나 현상.
■ 만해 한용운의 회갑연시回甲宴詩-周甲日卽興 (1939년 7월 12일 청량사)
悤悤六十一年光 云是人間小劫桑
歲月縱令白髮短 風霜無奈丹心長
聽貧已覺換凡骨 任病誰知得妙方
流水餘生君莫問 蟬聲萬樹趂斜陽
바쁘게도 지나간 예순 한 해, 이 세상에선 소겁 같이 긴 생애라고
세월이 흰 머리 짧게 했건만, 풍상도 일편단심 어쩌지 못해
가난을 달게 여기니 범골도 바뀐 듯, 병을 버려 두매 좋은 방문 어이 알리
물 같은 내 여생 그대여 묻지말게, 숲속 가득 매미소리 사양 향해 가는 몸을
(참조. 만해기념관)
더 읽을거리
회향廻向 / 박노해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참고문헌
김광원, 님의 침묵과 禪의 세계, 새문사, 2008.
김행숙, 에로스와 아우라, 민음사, 2012.
서준섭, 한용운의『십현담주해』와『님의 침묵』의 거리, 한국현대문학회학술발표회자료집 8집, 2013.
신규탁,『十玄談註解』에 나타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선사상, 선문화연구 16권(한국불교선리연구원), 2014.
정효구, 한용운의『님의 沈默』, 전편 다시읽기, 푸른사상, 2013.
진순애, 만해 시의 사랑과 시학적 원리, 인문과학, 41권, 2008. 기타
심우장尋牛莊 전경.
♣ 차시 예고
7회(5.17.)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道家의 사랑(1) 8회(5.24.) 금교영 (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사랑의 감정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