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흥배, ‘To see, to be seen’, 97.0×145.5㎝, 캔버스에 오일, 2018
하늘공원의 명물, 억새와 야고에 어리는 상념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고복수의 ‘짝사랑’이 절로 나오는 가을이 한창입니다. 하늘이 맑은 날 아침, 상암동 하늘공원 291개의 나무계단을 올라 바다처럼 펼쳐진 초록 억새밭을 찾았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계단 옆에 쭈뼛쭈뼛 피어나는 야생의 꽃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가막사리, 애기나팔꽃, 유홍초, 낭아초, 진득찰 등 누가 가꾸지도 않은 꽃들이 앙증맞게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소박하고 청초한 야생 꽃들을 즐기면서 올라도 계단이라서 숨이 가쁩니다. 마스크를 써야만 하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른 봄부터 불어닥친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지나친 올해의 봄, 여름이 나를 울립니다. 입에 재갈 물리듯 마스크를 써야만 사람 앞에 나설 수 있는 세월입니다. ‘정언(正言)도, 상식도 소멸한 세상이니 말하지 말고 살라.’는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야고 (열당과) 학명 Aeginetia indica
어느덧 푸른 잎새에 은행알 도드라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 좋은 계절임에도 마스크를 쓰고 헉헉대면서 힘들게 계단을 오르며 찾아온 하늘공원은 어떠한 곳인가? 이곳은 1978년부터 1992년까지 15년 동안 서울 시민의 쓰레기가 몽땅 모이는 ‘난지도 쓰레기장’이었습니다. 약 1억4천만 톤 규모의 쓰레기 더미가 쌓여 만들어진 해발 98m의 봉우리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 산이었습니다. 파리, 먼지, 악취가 진동한 지옥 같은 땅이었지만 한때는 이곳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먹고 있는 꽁보리밥 점심 그릇에 파리가 하도 많이 달라붙어 새까맣게 파리만 보이는 밥그릇을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식사를 하던 그 모습이 참담했습니다. 참혹한 환경과 악취 풍기는 쓰레기장이었지만 먹고살기 위해 모여든 2천~3천 명 정도가 삶을 지탱하는 생존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순위에 따른 호칭, 소위 ‘앞벌이’, ‘뒷벌이’가 그들입니다. 쓰레기차가 들어와 쓰레기를 비우면, 힘세고 기득 세력인 '앞벌이'들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먼저 줍고 난 이후에 그 쓰레기 더미를 이삭 줍듯 다시 뒤지는 사람들이 '뒷벌이'입니다. 앞벌이의 선심에 따라 뒷벌이의 수익이 달라집니다. 이 순서는 준엄했고 앞벌이가 되기 위해서는 권리금도 필요했습니다. 이 암울한 기억밖에 생각나지 않는 이곳을 다시 찾게 만든 것은 하늘공원의 억새밭입니다.
이토록 추악하고 참혹했던 ‘난지도 쓰레기장’이 탈바꿈한 하늘공원이 지금은 서울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1996년부터 평화의 공원을 비롯해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의 5개 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이른 봄부터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한여름의 초록빛 억새가 장관입니다, 가을에는 바람에 살랑대는 하얀 억새 물결이 아름다워 하늘공원에서는 2002년부터 매년 가을이면 억새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늘공원의 억새가 이곳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억새에 더하여 꽃쟁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으니 바로 하늘공원 억새밭의 야고입니다.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며 하늘공원을 아등바등 찾는 이유도 바로 억새에 붙어 자라는 기생식물, 야고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억새 뿌리에 붙어 자라는 제주의 희귀 기생식물 야고
야고는 열당과의 기생성 한해살이풀입니다. 억새 뿌리에 붙어 양분을 얻어먹고 자라기에 잎이 필요 없는 식물입니다. 억새꽃이 피는 가을에 연노랑 빛을 띠며 솟아나는, 털이 없고 매끈한 꽃줄기 끝에 연한 홍자색 꽃이 옆을 향하여 핍니다. 열매는 삭과(蒴果)입니다. 꽃이 옆을 향하여 기역자 모양을 하고 있어 마치 담배를 피우는 곰방대와 비슷하여 담배더부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 한라산 남쪽의 억새밭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인데 어느 날 갑자기 옛 쓰레기장에 조성한 서울의 하늘공원 억새밭에 야고가 나타났으니 명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제주 한라산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하늘공원에서 희귀식물인 야고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만 있고 육지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 야고가 어떻게 인공으로 조성된 하늘공원에서 자랄 수 있게 되었을까? 하늘공원에 옮겨 심은 억새는 전국에서 수집한 것인데 그중 제주도 억새에 씨앗이 함께 따라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자라지 않아 키울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곳에서는 쓰레기 매립에 의한 가스의 발생으로 지면의 온도가 제주 한라산과 비슷한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뿐입니다.
육지와 멀리멀리 떨어진 남녘 땅 제주에서 뜻하지 않게 딸려와 생소하고 차가운 땅, 서울의 하늘공원에 자리 잡아 여리디여린 꽃줄기를 내밀어 씨앗 맺고 대(代)를 잇는 야고의 끈질긴 생명력을 봅니다. 기세등등하게 활짝 팔을 벌리고 태양 빛을 가로채는 억새의 그늘에 숨죽여 몸 숨기고 겨우겨우 생을 의지하다가 억새꽃 필 무렵 반짝 틈을 타 여린 꽃줄기 뽑아 올려 후대를 잇는 하늘공원의 야고입니다. 우거진 억새밭과 여린 색깔의 가냘픈 꽃줄기에 한 서린 듯 피어난 야고 꽃송이! 버려진 땅,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주어진 생명이기에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으로 살다간 앞벌이, 뒷벌이의 혼과 넋이 억새와 야고로 피어난 것은 아닐까? 하늘공원의 억새와 야고를 보니 80년대 난지도 쓰레기장의 서글픈 광경이 아련한 그림처럼 스쳐 갑니다. 세상사 어려워도 모질고 질기게 살아가는 것이 생인가 봅니다.
하늘공원의 억새와 야고
세월 흘러 되돌아온
난초, 지초 어우러진 땅.
억새 나불대고, 야고 삐죽 솟는
하늘공원 억새밭.
한때는 절망 속에서 꿈을 캐는
처절한 삶의 몸부림 터였다.
모든 삶터에 순위가 있듯
그곳 또한 앞벌이, 뒷벌이가 있었다.
지금은 불야성 빌딩 숲속의 귀한 초록 섬.
태양 빛 가득 안은 억센 억새 숲과
소롯이 고개 쳐든 해말간 야고가 있다.
야성(野性) 넘친 힘센 앞벌이는
태양 빛 가로채는 억새가 되고
힘 부쳐 나약한 뒷벌이는
억새에 붙어사는 야고가 되었나 보다.
흘러간 모진 생의 넋인가 싶다.
(2020.9.25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밭에서)
-끝-
ps: 하늘공원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9월 26일부터 11월 8일까지 44일간 출입이 제한됩니다.
[옮겨온 글] / 출처; 2020년 10월 14일 (수)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박대문(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가장 강력한 방탄은 '컬처파워'
“사방의 의복과 모자, 기물이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처럼 들썩이고 있다.”(《속자치통감(續資治通鑒)》)
중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외부 문물을 수용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외래문화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서역에서 들어온 의복과 음식, 춤을 두고 호복(胡服), 호식(胡食), 호등무(胡騰舞)처럼 굳이 ‘오랑캐 호(胡)’자를 붙여가며 구별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나라 때 유행했던 고려식 생활풍습인 ‘고려양(樣)’을 중국 역사가들은 불만의 눈초리로 봤다. 송나라의 혐한파 지식인 소동파가 ‘메이드 인 코리아(고려)’ 물건을 두고 “아무 쓸데없는 노리개”라고 폄하한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편협한 민족주의 감정에 기반한 중국인들의 외국에 대한 반감,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질시가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또 불거졌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7일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과 미국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사람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꼬투리 잡은 것이다.
일부 중국 네티즌은 ‘6・25 당시 중국군의 희생을 무시한 일’이란 주장을 펴며 한국산 불매 가능성을 내비쳤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서둘러 현지 SNS 홍보물에서 BTS 관련 게시물을 지우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 네티즌이 BTS의 악의 없는 발언을 공격했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BTS가 희생양이 됐다”고 꼬집었다. 6・25전쟁 참전국에서 중국산 불매운동까지 일어날 듯하자 중국 외교부는 “상호 우호를 도모하자”며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이 G2로 불릴 정도의 경제・군사대국으로 떠오른 상태에서 뿌리 깊은 배타주의가 결합하면 그 폐해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란 점이다. 또 중국을 대표할 만한 문화 콘텐츠가 없다는 점은 중국인의 열등감을 자극하기 좋은 요인이다.
문화인류학자 양하잉은 중국인의 심리 근간을 “강한 피해의식과 콤플렉스 덩어리”로 봤다. 중국의 질시가 집약된 감정적 트집은 BTS에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했다. ‘컬처 파워’의 방탄력이 중국의 빈약한 문화수준만 드러낸 꼴이다.
[옮겨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김동욱(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20.10.14 00:28
문화재 ‘가격’
2008년 2월 서울 한복판에서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이 방화로 소실됐을 때 받은 보험금은 9508만 원. 한국을 상징하는 역사적 건축물이자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성문이라는 문화재적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 액수였다. 당시 서울시가 화재보험에 가입하면서 목재 건축물로서만 가치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의 속을 까맣게 태웠던 숭례문을 복구하는 데는 5년 3개월간 국비 245억 원이 투여됐다. 현재 숭례문의 보험가는 약 255억 원이다.
▷그제 문화재청이 국회에 제출한 ‘궁・능 주요 목조문화재 보험가입’에 따르면 경복궁의 근정전(국보 제223호) 보험가액은 약 33억 원, 경회루(국보 제224호)는 99억5000여만 원으로 평가됐다. 보물로 지정된 경복궁의 자경전, 사정전 등은 10억 원대 안팎이다. 보물이 국보보다 더 비싼 것도 있다. 보물급 문화재인 창덕궁 대조전과 희정당은 61억4000만 원, 36억4000만 원으로 근정전보다 높이 평가됐다.
▷궁궐 같은 국가 소유 문화재는 취득 원가가 따로 없어서 재산가액, 즉 보험가를 계산하기가 어렵기는 하다. 보험가액이 너무 낮게 책정되면 화재 등 불의의 사고가 생겼을 때 복구비용을 제대로 충당할 수 없다. 숭례문처럼 또다시 막대한 혈세 지출과 국민들의 ‘감성 기부’로 메워야 할 판이다. 반대로 무형적 가치까지 반영할 경우 보험가가 높아져 보험료가 올라간다. 대체로 우리나라 문화재는 보험가가 낮게 책정돼 있다. 평균 0.02% 수준으로 적용받는 보험료율이 비싸다는 게 주된 이유다.
▷목조 건축물을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가로 평가되는 문화재는 조선의 두 번째 궁궐이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2312억 원)이다. 뒤를 이어 1926년에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서울시청(경성부청)이 1312억 원,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가 1250억 원,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1028억 원이다.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속리산의 정이품송은 856억4000만 원으로 평가됐다. 반면 경복궁 향원정(5500여만 원)처럼 낮게 평가된 보물급 문화재들도 적지 않다.
▷한 나라의 문화재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자산이다. 이런 문화재를 돈으로 환산하는 건 한계가 있지만 보존이나 활용에 투입할 예산 책정을 위해서라도 보다 정확한 가치 평가가 필요하다. 문화재나 예술품 가격은 그 나라의 국력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경복궁에서 제일 웅장한 건물이자 조선 왕실의 상징인 근정전이 강남의 고급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못하게 책정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옮겨온 글] / 출처; 동아일보 / 안영배(동아일보 논설위원) / 2020-10-14 03:00
주름잎
독재자의 눈물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이라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눈물 많은 지도자'로 불렸다. 히틀러와 함께 2차 대전을 일으킨 추축국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도 히틀러와 처음 대면한 뒤 "히틀러는 눈물이 많은 감상주의자로 보인다. 나의 파시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었다"고 일기에 적었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히틀러는 외국 지도자와의 대담에서 유독 눈물을 많이 보이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9월 히틀러와 역사적 뮌헨회담을 했던 당시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는 회담 내내 눈물을 글썽이며 영국의 선진적 문명과 자신을 존경한다는 히틀러의 모습을 보고 "히틀러는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독일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뒤 히틀러는 이 역사적 뮌헨협정을 뒤엎고 2차 대전을 일으켰다.
[이미지출처=이스라엘 야드바솀 홀로코스트 기념관 홈페이지]
히틀러는 매일 연기연습을 통해 상대 앞에서 진심어린 눈물을 보이는 기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당시 독일 정부의 검열로 수입이 금지됐던 미국 할리우드 영화들을 매일 밤 시청했는데, 자신을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인 '위대한 독재자'도 포르투갈을 통해 밀수한 뒤 수차례 모니터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틀러의 사례는 위선적인 독재자의 '악어의 눈물'이 외교적 무기로 쓰인 주요 사례로 남게 됐다.
중국에서는 자국 역사상 가장 눈물이 많았던 역사적 인물로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후한시대의 군벌 유비를 손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가 조조와 대비돼 정의의 상징처럼 그려지지만, 중국에선 유비를 눈물로 모든 세력을 구축한 매우 교활한 인물로 묘사한다. 1911년 중국의 사회개혁가였던 리쭝우란 학자가 유비에 대해 "눈물로 천하를 속이고 자기나라를 세운 인물"이라며 얼굴이 두껍고 속은 시꺼먼 사람이란 뜻의 '후흑'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유비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비는 특히 자신보다 강력한 다른 군벌들 앞에서 눈물을 많이 보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눈물이 잦은 무사인 유비를 큰 위협으로 생각지 않았던 수많은 군벌들의 오판 속에서 유비는 조용히 세력을 확장하며 다른 군벌들을 물리치고 삼국 중 하나를 세웠다는 게 리쭝우의 주장이다. 히틀러나 유비처럼 적을 속이고 오판을 낳게 하는 눈물에 능한 독재자일수록 더욱 위험한 인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옮겨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 / 이현우(아시아경제 기자) / 2020.10.13 11:13
단풍취
붕어를 정직하게 낚는 법
붕어 아이큐가 궁금해 검색해보니 3, 높아봤자 10이라 한다. 붕어 아이큐를 검사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들지만, 인간에 비해 머리가 매우 나쁜 것은 분명하다. 낚싯바늘에 걸렸던 것이 분명한 붕어가 또 걸려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기억력이 3초라는 말도 있다.
이 머리 나쁜 붕어를 낚기 위해서 낚시꾼은 온갖 노력을 한다. 붕어의 생리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다. 계절에 따라 붕어가 어느 수심에 떠도는지, 어느 미끼에 반응하는지 경험 많은 낚시꾼에게 배운다. 자연 변화에도 밝아야 한다. 동풍인지 북풍인지에 따라, 저기압인지 고기압인지에 따라 붕어의 행동이 달라짐을 알아야 한다.
붕어는 아무 채비에나 물리는 것이 아니다. 토종 붕어와 떡붕어, 중국붕어, 향붕어 등에 따라 채비를 달리해야 한다. 채비하는 방법이 이 조사(釣師) 다르고 저 조사 다른데, 결론은 늘 “정답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라 하면 됩니다”다. 초보 낚시꾼은 난감하다.
미끼 선택은 거의 카오스 상태다. 상품화된 미끼의 종류만 수백 종이다. 이를 배합하는 방법까지 따지면 수수만종의 미끼가 붕어에게 주어진다. 붕어를 잡는 인간이 낚시터에서 먹는 음식은 닭도리탕, 삼겹살, 제육볶음, 라면 등 몇 종 안 된다. 낚시터에서는 인간보다 붕어의 미각이 백배는 더 까칠하다.
낚시꾼은 붕어와 대화를 한다. “야, 이놈들아, 이제는 나와라” “엄마 아빠 어디 있니? 데리고 와” “잘 놀았다. 다음에 또 보자”. 아이큐 3, 높아봤자 10이라는 붕어는 평균 아이큐 100인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고 낚시꾼은 믿는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주변의 아무 낚시꾼이나 붙잡고 물어보라. 붕어가 낚싯바늘에 걸려서 올라올 때 침을 뱉으며 욕을 한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낚시꾼에게 붕어의 아이큐는 검토 대상이 아니다. 낚시란 인간과 붕어의 두뇌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붕어는 물속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논리’대로 살 뿐인데, 낚시꾼이 붕어의 논리를 파악하려다가 붕어를 인격화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에이햅 선장이 고래에게, 노인이 청새치에게 보인 감정과 다르지 않다. 좁은 저수지에 사는 작은 붕어도 대해의 고래나 청새치와 같은 자연이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붕어는 원래 인간에게 낚이기 위해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다. 인간이 낚는 재미를 붕어에 붙였을 뿐이다. 붕어에 낚이는 인간은 없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이 일방적 게임에 인간의 독주를 막기 위한 장치를 하나 두었다. 낚시꾼 전문 용어로 ‘정흡’이라는 것이다. 붕어는 미끼를 흡입한다. 이때 낚싯바늘도 함께 붕어 입안으로 들어가고 붕어가 뒤돌아서거나 위로 뜰 때 찌가 올라온다. 이 타이밍에 낚아채면 낚싯바늘이 붕어의 윗입술에 걸린다. 이 상태로 붕어가 올라오면 “정흡했다” 한다.
전통적 낚시꾼은 정흡을 한 붕어만 낚은 것으로 친다. 낚싯바늘이 아랫입술이나 입 밖에 걸려 있으면 붕어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바로 물속으로 돌려보낸다. 일방적 게임에서 낚시꾼이 붕어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끼리도 일방적 게임이 벌어진다. 검찰은 정교한 채비와 다양한 미끼를 가지고 있는 낚시꾼에 비교될 수 있다. 막강한 조직력을 가진 검찰의 수사를 받는 개인은 작은 붕어에 불과하다. 일방적 게임을 함에도 검찰은 낚싯대를 마구 휘두르며 훌치기를 시도한다. 걸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 극단 정치집단과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쑤시고 저렇게 쑤시며 인디언 기우제를 올린다. 낚시꾼으로 보자면 하수 중 하수다.
낚싯대 함부로 휘두르는 것 아니다. 낚싯바늘에 자기 몸을 거는 하수들도 많다. 낚시든 뭐든 정직이 고수의 길이다.
[옮겨온 글] / 출처; 국민일보 / 황교익(칼럼니스트) / 2020-10-14 04:01
"Dessert" - Mikhail Kalin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