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어느 분야(식초) 최정상에 오르려면 언외지의(言外之意)를 간파하라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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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2.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3. 문장의 네 가지 법칙, 김성탄(金聖歎)
4. 1만 시간의 법칙(10,000-Hour Rule)
5. 손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감응할 뿐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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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언어(言語), 예)논어(論語 bc551-bc479, 73세), 교육(敎育➩기초)과 학습(學習➩함의)
✔denotation vs connotation/ 명시(明示)적 의미 vs 함축(含蓄), 언외지의(言外之意)
✔행간(行間)을 읽어라 ➩언단지장(言短志長) 말은 짧지만 뜻은 길다. 깊은 생각이 숨겨져 있는 메타포(Metaphor) 그 공간에서 글자보다 더 깊은 오묘한 내용을 찾으라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The whole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 Aristotle/ Psychological Gestalt theory). 육상(六相)/ 총별(總別) 동이(同異) 성괴(成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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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연즉성인지의(然則聖人之意) 기불가견호(其不可見乎)
1.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그렇다면(然則) 성인(聖人)의(之) 뜻(意)
그것은(其) 살펴질 수 없는 것(不可見)인가(乎)?
연즉성인지의(然則聖人之意) 기불가견호(其不可見乎)
글은(書) 말을(言) 모두 다하지 못하고(不盡) 말은(言) 뜻을(意) 모두
다하지 못한다(不盡). 그렇다면(然則) 성인(聖人)의(之) 뜻(意)
그것은(其) 살펴질 수 없는 것(不可見)인가(乎)? 공자가(子) 말했다(曰):
☞ 언부진의(言不盡意), 입상진의(立象盡意)
말로 다하지 못한 것은 입상(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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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소동파(蘇東坡 1036-1101)
당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699~759)는 그림을 소리 없는 시(무성시無聲詩)라고 보고, 시(詩)를 소리 있는 그림(유성시有聲畵)이라고 하였다.
중국 북송의 문인 소동파(蘇東坡) 소식(蘇軾,1036~1101)은 왕유 시(詩)를 음미하면 그림이 있고, 그림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시(詩)가 있다고 찬미하였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론이다.
시가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어 심중에 그림의 상을 떠오르게 하며, 그림 또한 시적인 취미를 담고 있어 시상을 불러일으킴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림과 시의 조화는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고 전해지기에 생명이 불어넣어진 예술이라고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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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열이불역(說而不繹)하고 종이불개(從而不改)
성변화(成變化) ➩지변자(知變者), 행귀신(行鬼神)➩
공자가 왜 『논어(論語)』에서 ‘열이불역(說而不繹)하고 종이불개(從而不改)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해두었겠는가?
이는 바로 남의 글(書)이나 말(言)에만 기대고서 졸졸 따라하지 말라 함이다.
즐기기만 하면서(說而) 스스로 뜻을 찾아내지 않고(不繹) 따르기만 하면서(從而) 고치지 않는다(不改)면
성변화(成變化) 행귀신(行鬼神)으로 화신(化神)하지 못하고 만다는 것을 밝혀둔 것이다.
‘화신(化神)’은 스스로 지변자(知變者)로서 산다는 말이다. 변화를(變) 아는(知) 사람(者)으로서 살라 함이다.
9-23.
子曰 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
자왈 법어지언, 능무종호 개지위귀. 손여지언, 능무설호 역지위귀.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
설이불역, 종이불개, 오말여지하야이의.
주석(註釋)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른 깨우침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마는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완곡히 인도하는 말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그 참 뜻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뻐하면서도 참뜻을 찾지 않고, 받들면서도 고치지 않으면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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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장의 네 가지 법칙과 글쓰기 요령/ 김성탄(金聖歎 1610-1661)
金圣叹 => 金聖歎
김성탄(金聖歎 1610-1661)은 중국 명말 청초의 문학비평가다. 그는 여러 책을 독창적으로 평론하였는데 <장자>, <이소>, <사기>, <수호전>, <서상기(西廂記)>, <두시>등 여섯 작품을 중국 문학의 걸작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통칭하여 재자서(才子書)라고 불렀다.
김성탄은 <서상기(西廂記)> 평론에서 문장의 네 가지 법칙을 제시하였다.
①홍운탁월(烘雲托月)은 달을 묘사하고자 하나 그것이 어려우므로 밝은 구름을 그려 달의 모습을 대신 보여준다는 뜻이다. 즉 빗대어 표현한 상징물 이해하기다.(객관적 상관물)
②이당취수(移堂就樹)는 집을 옮겨서 나무 밑으로 가져간다는 뜻이다. 이는 비틀어 표현하여 반전효과를 노리는 것을 말한다.(낯설게 하기)
③월도회랑(月度廻廊)은 달빛이 복도와 계단을 지나고 창문을 지나 비로소 방안의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는 미인을 비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점층적으로 묘사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것이다.(기억을 상상력에 의해 숙성 marinating시키는 것)
④묘처부전(妙處不傳)은 작품의 진짜 포인트는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글에서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을 했으면 멈출 줄 알아야 한다.
⑤청진한실(淸眞閒實)는 판타지(fantasy)로서 진실말하기를 의미한다.
임어당(1895~1976)은 깊은 통찰력(洞察力)으로 많은 글을 썼다.
그는 교양 에세이 <생활의 발견>에서 글쓰기 요령인 청진한실(淸眞閒實)을 제시했다.
淸은 참신한 것, 상투적인 발상이 아니라 상상력과 기발한 소재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
眞은 저자가 하려고 하는 말을 저자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閑은 여유 있는 정취, 작가는 소재와 떨어져 있어야 하며, 소재는 기억이나 회상된 어떤 것.
實은 충실포만(充實飽滿)을 의미하는데 말은 끝이 있지만 뜻은 그 끝이 없다.
이는 어떤 사물을 정말로 깊이 있게 안다면 아주 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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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만 시간의 법칙(10,000-Hour Rule), 에릭슨(Anders Ericsson) 박사
자기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사람들 연구,
10년 즉 1만 시간(하루에 3시간씩 10년 노력)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질’이다!
노력의 올바른 방법은 바로 3F
1)집중(Focus), 2)피드백(Feedback), 3)수정하기(Fix it)로 요약
‘방법의 차이’가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를 가져온다
※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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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의(聖人之意)를 주역(紬繹)하려는 말씀(자왈子曰)이다. 서부진언(書不盡言)-언부진의(言不盡意)의 ‘진(盡)’은 ‘끝까지 남김없이 다할 실(悉)’과 같다. 글(書)로는 ‘성인(聖人)의 말씀(言)’을 다 밝힐 수 없고(不盡) 말하기(言)로는 ‘성인(聖人)의 뜻(意)’을 다 밝힐 수 없음(不盡)을 깨우쳐, ‘글(書)’이나 ‘말(言)’만을 따라 앵무새 노릇만 해서는 안 된다는 까닭을 비로소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공자(자왈子曰)는 ‘서부진언(書不盡言)-언부진의(言不盡意)’로 풀이해주고(紬繹) 있다. 성인(聖人)이 64괘(卦)에 붙여둔(繫) 괘효사(卦爻辭)를 스스로 완미(玩味)하자면 ‘서부진언(書不盡言)-언부진의(言不盡意)’ 이 말씀을 늘 명심(銘心)하고서 괘효사(卦爻辭)를 제 나름대로 새겨들어 본받아야(效) 한다. ➩ 입상진의(立像盡意)
왜 공자가 『논어(論語)』에서 ‘열이불역(說而不繹)하고 종이불개(從而不改)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해두었겠는가? 이는 바로 남의 글(書)이나 말(言)에만 기대고서 졸졸 따라하지 말라 함이다. 즐기기만 하면서(說而) 스스로 뜻을 찾아내지 않고(不繹) 따르기만 하면서(從而) 고치지 않는다(不改)면 성변화(成變化)-행귀신(行鬼神)으로 화신(化神)하지 못하고 만다는 것을 자왈(子曰)이 밝혀둔 것이다. ‘화신(化神)’은 스스로 지변자(知變者)로서 산다는 말이다. 변화를(變) 아는(知) 사람(者)으로서 살라 함이다.
괘효사(卦爻辭)에는 성인지의(聖人之意)가 ‘상(象)’으로 간직돼 있음[입상진의(立像盡意)]을 암시(暗示)해두고 있다: 성인(聖人)의(之) 속내는(意) 살필 수 없는 것(不可見)인가(乎)? 이러한 공자(子曰)의 반문(反問)은 ‘성인(聖人)의(之) 속내를(意) 살필 수 있음(不可見)’을 반어법(反語法)으로 강조하고 있음이다. 다만 성인지의(聖人之意)를 즐기되(說) 그 뜻(意)을 스스로 새로 풀이해(繹) 제 속내를 이루어(成) 즐겨야하고(說) 성인(聖人)의 뜻(意)을 따르되(從) 그 뜻(意)을 스스로 새로 고쳐(改) 제 속내(意)를 이루어(成) 따라야함(從)을 공자(子曰)는 곡진(曲盡)하게 당부하고 있다. ➩ 입상진의(立像盡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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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손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감응할 뿐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다.
得之於手(득지어수)
(비록 다 같은) 손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而應於心(이응어심)
역시 영감(靈感)과 같은 것이 작용한다.
口不能言(구불능언)
그것은 말로 어떻게 하면 된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장자(莊子) 외편(外編) 천도편(天道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