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1일 (목) 촬영.
화엄사
구례 화엄사 / 사적 제505호.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에서 온 연기 존자가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 하였다.
자장 법사와 원효 성사, 의상 대사, 도선 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이 중창하여 조선 세종 6년(1424)에는 선종 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대가람인 8원 81암자가 모두 타 버렸다.
이때에 주지 설홍 대사가 승병 153명과 함께 석주진(石柱鎭)을 지키다가 전사하였다.
인조 8년(1630)에 벽암 각성 대사가 동, 서 오층 석탑을 중창하고 중수하였다. 이후 계파당 성능 대사가 숙종 25년(1699)에
각황전 중건을 시작하여 숙종 29년(1703)에 중건 불사를 회향하자 선교 양종 대가람(禪敎 兩宗 大伽藍)으로 승격되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서면 높이 쌓아 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승방과 강원 등의
수행 공간이 있으며,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각황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조화된 가람 배치의 아름다움이다.
4사자 3층 석탑, 공양탑, 연기 존자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효대, 원통전 앞의 사자탑(4사자 감로탑), 각황전 앞의 화엄 석등,
동, 서 석탑, 대웅전 뒤편 숲속의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볼 수 있는 천불전,
모과나무 기둥이 독특한 구층암 등이 화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화엄사는 가람 배치 모양이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다.
경내에는 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 현지 설명문 -
일주문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출발.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리고 말없이 살라고...
박물관 앞. 벽암 국일도 대선사비, 碧巖國一都 大禪師碑
벽암 국일도 대선사비는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 각성 대사(碧巖 覺性, 1575~1660)의 탑비이다.
대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짓는 등, 조선 후기 사회에서
불교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 또한 전란 후에는 화엄사를 비롯하여 해인사, 법주사 등 여러 사찰의 중수를 주도하였다. - 현지 설명문 -
벽암 국일도 대선사비와 금강문.
금강문을 통과하면,
천왕문이 나옵니다.
천왕문 계단 소맷돌의 용 모습.
보제루로 올라가는 계단.
보제루에서 본 천왕문
보제루에서 본 화엄사 마당. 각황전과 대웅전, 동서 오층 석탑 등이 보입니다.
구례 화엄사 동 오층 석탑 / 보물.
구례 화엄사 동 오층 석탑은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 가운데에서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신라 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 국사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한 탑이다. 화엄사의 대가람이 백두산 혈맥의 웅대한 힘과 섬진강
태극의 힘에 슬렁거리는 배와 같은 형국이므로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두 탑으로 움직임을 가라앉히고, 가람에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하였다. 부처님의 모든 법이 거짓과 꾸밈이 없고 순수하여 진실 그대로 참된 진리임을 증명하는 탑이다.
곧 부처님 도량은 참된 장소요, 세계요, 법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탑으로, 증명탑, 다보탑, 다보분좌탑이라고도 한다.
탑의 오층은 삼계(옥계, 색계, 무색계)와 보살계, 불계를 표현하고,
단층 기단은 일승법(一乘法 -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함께 성불한다는 석가모니의 교법)을 뜻하며, 장식이 없는 것은 청정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 탑의 사상은 부처님과 보살과 사람의 성품은 둥글고 원만하여 차별이 없고 꾸밈이 없으며, 평등한 마음의 세계가
곧 화엄 세계요, 연화장세계라는 것을 나타낸다. 1999년에 이 탑에서 사리 8과 와 330여 점의 성보 유물이 나왔다. - 현지 설명문 -
동오층석탑(오른쪽)과 서오층석탑(왼쪽). 왼쪽 건물은 각황전이고 오른쪽 건물은 대웅전 건물입니다.
서오층석탑(왼쪽)과 동오층석탑(오른쪽)
각황전과 서오층석탑.
구례 화엄사 서 오층 석탑 / 보물.
구례 화엄사 동 오층 석탑은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 가운데에서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신라 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 국사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하였다. 화엄사의 대가람이 백두산 혈맥의 웅대한 힘과 섬진강
태극의 힘에 슬렁거리는 배와 같은 형국이므로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두 탑으로 움직임을 가라앉히고, 가람에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하였다.
기단 아래에 새긴 조각은 12지신인데 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수호신이고, 윗부분의 조각은 팔금강(八金剛)과 사천왕으로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다. 그래서 이 탑을 옹호탑이라고도 부른다.
2층 기단은 상대의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이 없는 이치인 불이법(不二法)을 표현한다.
1995년에 이 탑에서 백지문서다라니경, 부처님 사리 22과를 비롯한 16종 72점의 성보 유물이 나왔다. - 현지 설명문 내용 -
서오층 석탑과 각황전.
각황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 국보
국보(1962.12.20지정)인 각황전은 670년 의상 법사가 건립한 3층 장륙전으로 장륙존상을 봉안했으며
사방 벽은 화엄석경으로 장엄되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99~1702년에 성능대사가 중건했으며, 193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중수되었다. 앞면 7칸, 옆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높은 석조 기단 위에 세워졌다. 기둥은 평주이며 기둥머리 위에 창방과 평방이 놓여 있다.
평방 위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올린 다포계이며 상하층 모두 내외2출목으로 되어 있다.
1층 앞면에는 살문을 달고 옆면, 뒷면은 일부만 벽으로 막았다. 2층은 사방에 작은 창을 달았다.
천장은 우물천장이고 그 주위에 경사진 빗반자가 있다.
대불단 위에 석가불, 아미타불, 다보불이 있고 그 좌우에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적보살이 있다. - 출처 다음 백과 -
각황전의 내부 모습.
대불단에는 석가불, 아미타불, 다보불과 그 좌우에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적보살을 모셨습니다.
후면에 모셔 있는 아미타불.
작은 창이 나있는 모습.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 국보.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 조사가 조성한 것이다. 최대의 석등으로 높이가 6.36m이다.
꽃잎의 형태는 3천 년 만에 한 번 핀다고 하는 우담바라화의 꽃잎인데, 이 꽃은 부처님이 오심이 지극히 드문 일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꽃의 8잎은 8정도<정견(正見),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명(正命), 정업(正業), 정어(正語), 정사유(正思惟) 정정(正定)>이고,
화창 넷은 사성제<고집열도>와 부처님의 광명이며, 북의 모습은 진리의 소리이다.
곧 8정도로 수행하여, 사성제의 진리의 이치를 밝히고, 광명을 놓고, 진리의 소리를 중생들에게 들려주어,
마음의 등불<자등명 법등명>로 세계를 밝혀 주시는 부처님의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석등이다. - 현지 설명문 - 석등은 보수 중입니다.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 보물.
이 탑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조성한 것이다. 사자 네 마리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이고 있는 모습이다.
4사자의 표정은 인간의 감정인 희로애락(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를 뜻한다.
사자의 표현은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법문을 사자후 또는 감로법,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탑을 4사자 감로탑이라고도 한다, 이 석탑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청정한 지혜를 얻어 수많은 번뇌와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나
연화장 세계로 가도록 이끌어 주는 감미로운 탑이라 할 수 있다. - 현지 설명문 내용 -
구례 화엄사 대웅전 / 보물.
화엄사 대웅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화엄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화엄 10찰 중 하나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가람이다. 대웅전은 각황전과 함께 화엄사의 주불전으로 1636년에 중건되었다.
내부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협시불로 모셨다.
불상 뒤에 있는 화엄사대웅전삼신불탱도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 다음 백과 -
대웅전의 편액.
대웅전에 모신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뒤에 있는 불화도 보물입니다.
대웅전 뒤 계단을 통해 구층암으로 갑니다.
구층암으로 가는 길
구층암 편액이 걸린 건물 앞에 있는 삼층 석탑입니다.
온전하지 않아서 더 마음이 가는 삼층 석탑
마당 가운데 건물은 천불전입니다.
구층암 편액이 걸린 건물인 요사채.
구층암의 매력은 자연을 닮은 데 있다. 무엇 하나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없다.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은 단연 자연스러움의 으뜸이다.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져다 썼다. 천불의 부처가 모셔진 천불보전 앞에 단아한 석등과 배례석, 모과나무가 있다.
복원하지 못하고 듬성듬성 쌓아 놓은, 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3층 석탑마저 자연스럽게 보인다. - 현지 설명문 -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
천불보전과 석탑과 배례석.
모과나무.
요사채와 마주 보고 있는 건물에도 모과나무 기둥이 있습니다.
내려가는 길
이곳에도 홍매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보제루에서는 "대한민국 전통 문화재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보제루.
천왕문.
금강문을 차례로 나섭니다.
돌사자상
이 돌사자상은 1930년대에 도쿄 영친왕(1897~1970) 신축 저택을 장식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구례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국보 35)의 서남쪽 돌사자상을 모방하여 일본인 조각가 아사카와 노리타카가 제작하였다.
이후 1954년 영친왕 저택이 매각되면서 前 일본 중의원 의장 호시지마니로(星島二郞)에게 양도되었고,
1959년 호시지마는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하여 이 조각상을 주일한국대표부(현 주일한국대사관)에 기증하였다.
주일한국대사관에 보관 중이던 이 상은 2013년 2월 국내로 이관되었고,
문화재청에서 구례 화엄사에 관리를 위탁함에 따라,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 현지 설명문 -
차가 이곳까지 들어올 수 없어 입구까지 걸어서 내려가야 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승탑군이 있는 곳도 지났습니다.
가람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승탑들이 있었습니다.
계곡 건너에 "지리산 대화엄사화엄석경관"이라는 건물을 짓고 있네요.
화엄사 각황전 전신이었던 장륙전 벽을 경전을 새긴 돌벽으로 둘렀었다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면서 파손된 화엄석경을 수습하여
전시관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시 3층이었던 장륙전 내부를 모두 경전을 새긴 돌로 채웠었다니 전시관이 준공되면 대단할 것 같습니다.
아우성치며 흐르는 물이 있는 계곡길 따라 걸었습니다.
계곡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주문이 보이네요.
웅장하긴 하지만 멋은 없습니다.
지리산 대화엄사 편액도 맘에 들지 않았어요.
식당가까지 내려왔습니다.
반찬은 많은데 젓가락은 갈 곳을 찾지 못하네요.... 어찌 됐던 밥 한 그릇은 다 비웠습니다.
천은사로 갑니다.
작성자 : 칠복이
첫댓글 화엄사의 전경을 잘 담아 주셨네요
잘 감상 했습니다.
국보와 보물이 많은 화엄사
칠복이거사님 덕분에 복습도 하고,,,,
저는 11일 새벽 화엄사에서 3시간 머무르며
좀 처럼 보기 함든 수많은 밤 하늘에 별,
여러 전각에서 들려오던 목탁소리에 감사가 넘치는
순간을 맛 보았습니다
사사자 삼층탑도 어스름할 때 올라걌고
구층암은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때
작가님께 부탁하여 구층암, 천불전에 갔습니다
정성으로 올려주신 영상과 글 감사히 즐감합니다~~
구층암은 못 올라갔는데
영상으로 즐감합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셔요_()_
한켠에선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홍매와 산수유는 봄이 벌써 가득하네요
함께했던 그날이 참 좋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