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v.daum.net/v/20240420050008826
Daum
뉴스1
구독
알림피드 이동
통합검색
'전교 1등' 청년 가장이 4명 죽인 흉악범으로…'무등산 타잔' 비극
김송이 기자2024. 4. 20. 05:00
타임톡60음성으로 듣기번역 설정글씨크기 조절하기
가난한 가족 산속에 움막집…전국체전 앞두고 철거 명령[사건 속 오늘]
불까지 지르자 철거반원에 애원…언론은 괴물 묘사, 3년 수감 후 사형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미지 크게 보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47년 전 오늘, 반듯하게 잘 자란 24세 청년 박흥숙의 인생이 한순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총명한 두뇌, 잘 단련된 체력과 절제력을 겸비한 박흥숙은 유난히 추웠던 봄날 일순간에 쇠망치로 건장한 남성 4명을 살해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를 '무등산 이소룡', '무등산 타잔' 등으로 부르며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로 묘사했다.
AD
테무
광고 역대급 할인
역대급 할인
바로가기
◇ 비상했으나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산속에 움막집 세운 소년 가장
박흥숙은 전남 영광에서 가난한 농사꾼 집안의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위암을 앓던 아버지를 여의었고, 안타까운 사고로 형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장남이 됐다.
소년 박흥숙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수재였다.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책임감으로 중학교에 수석 입학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박흥숙의 가족은 그가 수석 입학해 받을 수 있었던 교과서를 팔아 차비를 마련, 생계를 위해 다 함께 광주로 향했다.
박흥숙은 중학생 나이에 철공소에 취직했지만 문제는 보금자리였다. 살 곳이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산속으로 들어갔다. 박흥숙은 무등산 해발 450m 덕산골에 흙과 돌로 벽을 쌓고 주운 신문지와 밀가루 포대를 벽지로 발라 집을 지었다. 고물상에서 사 온 헌 양철을 지붕으로 얹어 완성한 집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있는 가로세로 3m 정도 크기의 움막집이었다.
작고 허름한 공간에 여섯 식구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했지만 박흥숙에게는 집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어린 남동생 둘을 데리고 절에서 허드렛일하던 엄마, 식모살이를 하던 열세 살 여동생과 비로소 한데 모여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 박흥숙이 가족을 위해 60일간 지은 산속 움막집.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미지 크게 보기
소년 박흥숙이 가족을 위해 60일간 지은 산속 움막집.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도시 경관 미화로 시작된 강제 철거…어머니 쓰러졌을 때도 참았다
당시 박흥숙네와 같은 무허가 움막은 덕산골에만 약 20채가 있었다. 불법이지만 오랫동안 묵인해 왔던 정부가 움직인 건 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박흥숙의 움막은 곧 설치될 케이블카가 지나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AD
테무
광고 역대급 할인
역대급 할인
바로가기
게다가 가을에 열릴 제58회 광주 전국체전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광주시는 무등산 움막들을 하루빨리 철거해야 했다.
1977년 4월 20일 당시 '망치부대'로 불리던 철거반원 7명이 박흥숙의 움막집에 쇠망치를 들고 나타났다. 이미 철거를 예상했던 박흥숙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집안의 물건들을 밖으로 꺼냈다.
그런데 철거반원들은 집을 부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불까지 붙이려 했다. 박흥숙과 가족들은 "제발 불은 지르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박흥숙의 어머니가 미처 챙기지 못한 돈이 생각나 집으로 뛰어들었다. 움막 천장에 넣어둔 현금 30만 원이 있었던 것이었다. 시내에서 방 한 칸이라도 얻어보려 어렵게 모은 돈이었다.
철거반원들은 박흥숙의 어머니를 제지했고, 밀려난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박흥숙은 참았다. 여동생이 울면서 소리 질렀지만 오히려 박흥숙은 "저 사람들도 우리 같은 서민이다.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거고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며 동생을 달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미지 크게 보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어떻게 개·돼지만도 못하게 대하나…우리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닌가"
어머니가 쓰러져도 참았던 박흥숙의 이성을 잃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박흥숙은 철거반원들에게 아픈 노인들이 있는 집만큼은 불을 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얼마 후 계곡 위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박흥숙은 그곳을 향해 달렸다.
노인들의 집이 불타는 모습을 본 박흥숙은 "어떻게 이렇게 우리를 개, 돼지 짐승만도 못하게 대하나, 우리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닌가"라며 울부짖었고, 잠시 후 총성이 울렸다. 박흥숙이 산짐승 때문에 쇠 파이프로 만든 사제 딱총이었다.
놀란 철거반원 2명은 그대로 줄행랑쳤고, 나머지 5명은 박흥숙을 제압하려 달려들었지만 평소 체력 단련에 성실했던 박흥숙이 흥분해 날뛰는 것을 잡을 수 없었다. 박흥숙은 철거반원에게 망치를 휘둘렀고, 그 결과 4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미지 크게 보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건의 진정한 원인 외면했던 언론…말 못 할 외압 있었다
그날 박흥숙에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 대부분은 구청에서 고용한 박봉의 일용직이었다. 이전에도 철거는 있었지만 불까지 지른 적은 없었으나,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생계를 위해 무등산을 오른 그들도 어쩔 도리가 없이 집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생존의 최전선에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사건 직후 지역 신문사에도 시청 간부들의 외압이 들어왔다. 1970년대 당시 전국 곳곳에 있던 움막집과 판잣집은 셀 수 없었다. 특히 서울 주택의 32%가 판잣집이었다. 사건의 진상이 알려져 폭동이 일어날까 우려했던 윗선의 지시로 언론은 박흥숙을 괴물로 그려나갔다.
당시는 미신 타파를 부르짖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 무속 굿거리가 펼쳐지곤 했던 덕산골은 '무당촌'으로 보도됐으며, 박흥숙은 무당촌을 사수하려는 집념에 사로잡힌 기형적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쐈다는 사제총의 조악함은 감춰졌고 그는 총기를 소지한 흉악범으로 비쳤다. 그렇게 박흥순은 '무등산 이소룡', '무등산 타잔'이 됐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미지 크게 보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자수에도 사형 집행…"나는 죽어 마땅" 수감생활 3년간 참회
박흥숙은 경찰에 자수했고 범행도 순순히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자기 죗값을 덜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살인 및 살인미수죄로 사형이 선고됐고, 1980년 12월 24일 그의 사형이 집행됐다.
박흥숙은 자필로 쓴 최후 진술서에서 "저의 지난날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저의 울분 때문에 아깝게 희생돼 버린 그분들의 영령을 위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나의 죄는 죽어 마땅하리다"라고 썼다.
그는 "미친 정신병자의 개소리라 해도 좋고 빗나간 영웅심의 궤변이라 해도 좋다. 하오나 다음에는 이 같은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죽어가는 몸으로서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라며 죄없이 가난에 떨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 도시 빈민에게 무관심한 채 철거만 강행했던 나라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이 다시없기를 바란 박흥숙의 바람은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빈민촌 철거는 절정에 달했다. 올림픽으로 인해 강제로 집을 철거당한 사람의 수는 72만 명에 달했다.
정부는 일부 강제 이주민들의 임시 천막마저 철거했다. 성화 봉송 주자들이 지나가며 주변에 있던 허름한 천막들이 잠시라도 TV 중계 화면에 잡힐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임시 천막마저 뺏긴 사람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두더지처럼 살았고, 1987년 대한민국은 '가장 비인간적인 철거를 자행하는 나라'가 됐다.
'무등산 타잔'은 근대화 과정 속 도시 빈민의 고통과 절망을 상징하는 비극적인 이름으로 남아 있다.
syk1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5
좋아요
3
감동이에요
4
화나요
87
슬퍼요
314
매일 아침 뉴스브리핑 톡으로 받기
뉴스1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성범죄자 정준영 친구랑 사귀는 게 자랑이냐"…공개연애 현아에 비난 봇물
[단독] '눈물의 여왕' 김지원, 알고보니 '63억 건물'의 여왕
"계속 직원 눈치보더니 결국"…대낮 주꾸미 비빔밥 '먹튀' 빨간옷 여성
함께 찾은 검색어
박흥숙
타임톡beta60개
이 뉴스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세요.
톡방 종료까지 22:35:01 남았습니다.
타임톡참여하기
이 시각 추천뉴스
이준석 "尹지지층은 가정주부, 무직, 은퇴층…회사선 다 욕해"
중앙일보 · 1분 전
“바람 난 아내는 행복한데…” 상간남 찾아가 침 뱉은 남편 [사건수첩]
세계일보 · 7시간 전
광고 역대급 할인
역대급 할인
AD 테무
김병만 “SBS가 내 아이디어 도둑질…토사구팽당해” 주장
서울신문 · 7시간 전
“93세 아버지가 성폭행...때려죽였다” 진실은 [그해 오늘]
이데일리 · 6시간 전
"최원태가 자기 역할 잘 해줬다"…1회 위기 넘기고 6이닝 1실점, 시즌 첫 QS에 염갈량도 엄지척 [MD인천]
마이데일리 · 5시간 전
'불펜 이닝수 1위' 삼성의 불안요소, '3이닝도 버거운 5선발→육선엽이 대안될까' [대전 현장]
스타뉴스 · 6시간 전
의대 정원 1000~1700명 줄 듯…결국 물러선 윤 정부
한겨레 · 7시간 전
한복 차림으로 종일 돌아다녀 보니… “살아 있는 유물이 된 기분”
조선일보 · 3시간 전
"반포는 왜 피해가나요"…토허제 연장에 '압여목성' 한숨
아이뉴스24 · 1시간 전
광고 역대급 혜택
역대급 혜택
AD 테무
더 브라위너의 역대급 부진... 무려 37번이나 소유권 상실→불명예 챔피언스리그 신기록
스포탈코리아 · 12시간 전
바이든, 유세 중 갑자기 "삼촌이 식인종에게 먹혀" 발언 논란
아이뉴스24 · 11시간 전
'열혈 형사' 이제훈, 종남서 비리 파헤치기 실패? 이동휘에 뒤통수 맞았다 ('수사반장')[종합]
스포츠조선 · 6시간 전
[올댓차이나] 대만 증시, 중동정세·반도체 우려로 급반락 마감…3.81%↓
뉴시스 · 13시간 전
"6개월 동안 50억 벌었다" "4시간 방송하면 300만원" 이런 BJ 수두룩하더니···
서울경제 · 7시간 전
서울시의회 임시회 개회…김현기 의장 "민의 수렴 민생의회"
연합뉴스 · 15시간 전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
조선일보 · 3시간 전
'트럼프 재선' 막으려 가족 버린다…케네디家, 바이든 지지 선언
중앙일보 · 1분 전
KBO, '오심 은폐 논란' 부른 이민호 심판 해고
연합뉴스 · 12시간 전
‘충주 살면, 충주 사람’… 이것이 통하기 시작한 충주에 생긴 변화
한국일보 · 12분 전
오늘의 숏
‘설경구♥’송윤아,결혼15년만에 안타까운 소식
셀럽뉴스
0:28
생각지도 못했던 승무원의 비밀
웃긴 움짤
0:58
흑인 줄리엣 어떤가요? 🤔 [저스트원미닛]
저스트원미닛
0:56
평생 치킨 공짜로 먹는법 #치킨 #웃긴유머 #해외유머
유머픽
0:18
‘얼마 만이야’ 정석원❤️백지영 부부, 손잡고 극장 나들이…’꿀 뚝뚝’
마이데일리
0:38
화장실이 급했을 뿐인데
논란이슈
0:21
뉴스1 PICK
세상만사
역사&오늘
사건속 오늘
지구촌 화제의 뉴스
100세 건강
중동전쟁 확전
4·10 총선
약전약후
아내 없는 신혼집에 여직원들 몰래 초대한 남편…"해명해야" "사회생활" 와글
13시간 전
"계속 직원 눈치보더니 결국"…대낮 주꾸미 비빔밥 '먹튀' 빨간옷 여성
16시간 전
고속도로 휴게소 버려진 아내…남편 만나자마자 '등짝 스매싱' 무슨 사연
18시간 전
혼인증명서·산부인과 검사지 요구한 예비 신랑…"떳떳하면 떼와"
18시간 전
세상만사 더보기
뉴스1 랭킹 뉴스
최근 3시간 집계 결과입니다.
많이 본 뉴스
탐독한 뉴스
1KIA, NC와 1-2위 매치서 연장 끝내기 승…'감독 퇴장 후 역전' 롯데 2연승(종합)
7시간 전
2태양 "군대서 커피 처음 마셔…유일한 행복이었다" 깜짝
9시간 전
3'2연승' 황선홍호, 한일전 앞두고 빨간불…중앙 수비수 2명 이탈 악재
5시간 전
4"난 열심히 할 뿐"…또 논란이 된 '선 넘는' 롯데 황성빈의 도발
19시간 전
5트럼프 재판 뉴욕 법원 앞에서 남성 분신…병원 긴급 이송(종합)
2시간 전
더 많은 언론사를 구독해보세요
구독설정
조선일보
마이데일리
머니S
kbc광주방송
전자신문
아시아경제
뉴스타파
한국경제TV
다른 언론사
서비스 바로가기
뉴스
연예
스포츠
뉴스 홈
사회
정치
경제
국제
문화
IT
연재
포토
정정보도
뉴스봇
팩트체크
Daum 로그아웃 PC화면 전체보기
서비스원칙· 게시물 운영원칙· 24시간 뉴스센터
기사배열책임자 : 황유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성희
ⓒ Kakao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