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은 여러 면에서 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북한과 마주한 최전방의 군사적 이미지가 강한 지역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단순히 군사지역으로서 한정하기엔 많은 오류가 있다. 면적이 1,800㎢가 넘어 남한에서 가장 넓은 고장으로
손꼽히는 만큼 너무나 많은 특징을 간직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우선 굉장히 긴 거리(직선거리 59km, 분단 이전 기준 86km!)를 태백산맥과 마주하고 있어 수많은 명산과 계곡을 품고 있다. 내린천으로 대표되는 계곡에선 여름철 인기 있는 래프팅과 캠핑이 있고, 백담사를 포함한 내설악의 모든 곳이 인제에 있어 등산 코스로 유명하다.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만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곰배령, 조침령, 그리고 분단 이전에는 고성가는 삼재령과 내면으로 이어지는 구룡령까지 전부 인제 땅이었기에 전국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가 수도 없이 많다.
이렇게
곳곳이 자연 속에 묻혀 있는데 읍내 역시도 마찬가지다.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 사이에 움푹 숨어있는 인제읍내의 모습은
조촐하고 아담하며, 앞마당에는 내린천과 인북천이 만나 커다란 호수로 들어가기 직전에 몸을 추스르는 소양강이 때묻지 않은 태초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위치에 인제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다. 의외로 상당히 커다란 건물 속에 있지만 그 안에는 외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제터미널 앞에는 인제교차로가 자리
잡고 있다. 4차선 쭉 뻗은 도로로 개량된 44번 국도에서 인제읍내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바로 앞에는 아름답게 굽이치는 소양강이
있다. 소양호라는 이미지 때문에 깊고 넓은 강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여기는 호수가 만들어지기 전 원래의 강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물줄기가 좁고 깊이도 얕은 편이다. 이런 자연 속의 강 바로 옆에 읍내가 있는 것이 다소 신기하고 놀랍다.
교차로에서 본 읍내의 모습은 이렇다. 인제가 태생적으로 인구가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사진 하나로 설명된다. 산, 산,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산. 읍내에서조차 가까운 위치에 산이
가로막고 있고 완만하지만 오르막길이 바로 앞에 펼쳐진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읍내는 과연 천연의 요새라 할만하고, 과거 오지라
불렸던 이유가 충분히 설명된다.
이런 입지 때문에 서울과 멀지 않음에도 오랫동안 오지라 불리며
군인들에겐 기피 장소 0순위로 통했던 지역이다. 군인들 한정으론 최전방, 강추위, 훈련 강도 등등 여러 면에서 지금도 악명 높은
최악의 기피 장소지만 교통만큼은 열외 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에 양평-홍천-인제-원통까지 국도가 4차선으로 말끔하게
개량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도로가 뚫리면서 서울까지 3시간이 훌쩍 넘던 것이 2시간~2시간 30분으로 한 시간 이상 줄어들었고,
2010년에는 경춘고속도로까지 개통되면서 1시간 30분이면 서울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편해진 교통으로 수혜를 입을 곳 중 하나가 인제터미널이다. 과거엔 어디를 가도 험한 산길을 넘어야 했던 오지 중의 오지였기에
버스를 타려면 멀미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고, 그래서 고정 수요가 아니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쉽게 인제를 올 수 있게 되어 버스를 타는 일이 한층 편해졌고, 그래서 도로의 개량과 함께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하여
2009년에 지금의 큰 건물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그동안 인제에
마땅한 편의시설이 없음을 감안하고 최신식 편의시설을 이 건물에 몽땅 때려넣었다. 그래서 인구가 1만명도 채 안 되는 군소 읍내에
복합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 공간의 일부를 버스터미널로 쓰게 한 것이다. 덕분에 수요에 비하면 넘치게 좋은 시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건물을 지을 때 손님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나 보다. 너무나 버스터미널 같지 않은 생김새임에도 터미널 시설과 같은
홍보가 너무 부족하다. 건물 한쪽에 인제터미널 간판이 있는 게 전부일뿐더러, 정작 버스터미널이 있는지도 눈에 띄지 않는 데다
사람들이 통하는 정문에는 터미널을 알리는 간판은 간데없이 호텔 간판만 붙어있을 뿐이다. 건물과 주차장에 가려져 버스와 관련된
시설은 전혀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문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한참을 돌아 터미널 승차장에 먼저 당도했고, 승차장 문을 통해서야 대합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커다란 건물에 비교하면
하염없이 초라한 규모일 뿐이다. 너무 많은 공간을 상업시설로 내준 탓에 터미널 시설은 너무나 좁은데 그마저도 사람이 별로 없어
텅텅 비어 있다. 나중에 찾아간 복도의 구조 또한 여기저기 구불구불 꺾여있어 터미널이 전혀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역시
버스터미널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기껏 큰 돈 들여 터미널을 재개장 했으면 그에 맞는 친절한 안내와 홍보가
절실해 보인다.
44번
국도상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속초, 양양, 간성, 원통 방면 대부분의 노선을 공유하지만 상대적으로 횟수가 확연히 적은 편이다.
심지어 같은 군 소속이자 자신들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품고 있는 원통에도 밀린다. 동서울행의 경우 그럭저럭 자주 있다고는 하지만
원통 28회에 못 미치는 하루 22회 정도인데 이게 가장 차이가 적은 편이다. 다른 수도권 행선지인 상봉, 수원, 고양, 안산행은
절반 이하에 그치고, 심지어 원통에서 다니는 성남, 의정부행은 아예 없다. 타 지역으로 가는 것들은 그나마 모두 인제를
경유하기는 해도 대부분이 군인을 노린 노선들이라 큰 의미가 없다.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노선은 상봉행과 홍천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때 20~30분 간격으로 수없이 다녔던 노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배차가 감소했다. 홍천행 하루 여섯 번, 상봉행은 고작 하루 한 번에 그친다.
영동 방면 노선은 더욱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속초방면 노선의
대부분이 동서울 및 수도권에서 출발한 차들이기 때문에 이 노선들이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 여기 인제터미널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이다. 대략 원통의 절반 정도의 배차로, 시간이 안 맞으면 원통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환승하는 게 더 낫다. 진부령가는
시내버스는 대부분 원통에서 출발하는데, 홍천에서 진부령까지 가는 노선이 일부 있다고는 하지만 시간표에 없는 것으로 봐서는 사실상
홍천-원통-진부령 계통으로 다른 노선 취급하는 것 같다.
이처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통에 비해 확연하게 입지가 밀리고
있지만, 그나마 유일하게 강점을 보이는 부분은 현리 방면 노선들이다. 원통에서 현리까지 바로 가는 노선은 없는 반면에 여기에서는
현리까지 가는 노선이 두 방향으로 나뉘어 각각 다르게 운행하고 있다. 소요시간에서 볼 수 있듯이 아랫길이 원래의 31번 국도를
따라가는 메인 노선이고, 윗길은 인제의 오지 마을을 들어가는 보조 노선이다. 31번 국도가 내린천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경치도
훨씬 좋으니 드라이브를 왔다면 한 번 타보는 걸 권장한다.
이렇게 시간표를 보면 원통에 입지가 확연히 밀리는 것은
물론이요, 같은 인제군 내에서조차 중심지 역할을 못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리까지는 시내버스가 가지만 그 밑동네인
상남면이나 북쪽의 서화면으로 가는 버스가 아예 없어 각각 현리와 원통에서 한 번씩 갈아타야 하고, 신남에서 상남으로 이어지는
446번 지방도쪽 노선도 없다. 시내버스 노선조차 중심지로서 이쪽으로 연결해주는 노선이 아니라 그저 지역-지역 간을 연결하는
출발점으로서의 역할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보다
노선이 적은 지역은 숱하게 많지만 인제처럼 군청이 있는 읍내가 중심지 역할을 하지 않는 지역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다. 성주처럼
외부 노선이 적으면 최소한 읍내로 거의 모든 농어촌버스가 총집결하는 반면에, 여기는 시내 노선보다 외부 노선의 숫자가 훨씬 많은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확실히 수많은 승객들과 버스가 왔다
갔다 하는 원통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느낌에 가깝고, 맞이방과 이어져 있는 롯데리아에도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다. 명색이 군을 대표하는 지역의 버스터미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입지는 역전되어 버린 상황이다.
인제군의 터미널을 통틀어 유일하게 승차장 구조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들어오는 버스는 보기 힘들다.
문 뒤쪽의 농어촌버스 한 대만 잠깐 정차할 뿐 그마저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버스 기사 두 분께서 담소를 나누며 자리를 피하신다.
버스가
있어야 할 주차장은 승용차 차량들로 가득 차 있지만 주차하는 버스가 거의 없으니 제제하는 사람도, 버스 출입을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다 쓰러져 가는 버스터미널과 비교하면 너무나 큰 실례겠지만 왠지 모를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인다. 과연 이게 기분
탓일까, 알맹이가 없는 중심지, 인제터미널의 모습은 따스한 겨울과는 비교되는 칼바람으로 다가와 냉하고 얼얼하게 쏘는 것만 같았다.
첫댓글 마지막 박차장 사진을 보니 황량함이 느껴집니다 저도.
뭔가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느낌은 아니죠...
군청 소재지이지만 원통터미널이 훨씬 수요가 많더군요...인제에서 수원 올때 생각보다 횟수가 적었는데 옆동네 원통에서 많이 있더군요.. 원통에서 출발해서 인제를 지나가지만 터미널은 경유 안하더군요. 원통이 군부대가 커서 수요가 훨씬 많은것 같습니다. 강원도 북부지역은 역시 군인수요를 무시 못하는것 같습니다
군부대 규모 이외에는 도로 분기? 측면도 있는 듯 합니다.
어차피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읍내를 지나갈 때에도 터미널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데 이왕 가는거 잠깐이라도 들려주면 안될까 싶네요. ㅎㅎ 아무리 그대로 명색이 군청소재지에다 인구도 더 많은데, 어찌 보면 군인 수요가 원주민 수요보다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원통에 비해 수요가 적은 건 양구 가는 길이 인제보다는 원통에서 좀 더 가까워서인 점도 있나 봅니다.
홍천 방면으로는 대신 농어촌버스가 더 많군요.
수요 문제는 양구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겁니다. 인제와 양구는 둘을 합쳐도 인구가 5만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적은데다 양측간의 왕래도 거의 없는 편이죠. 윗분 말씀대로 군인 수요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2008년 양구ㅡ해안ㅡ원통ㅡ현리ㅡ내면ㅡ구룡령넘어 양양 을 버스여행했는데
현리윗길버스 일부러탔었는데 꽤 긴구간을 비포장도로로 달렸습니다
아스팔트 깔 공사를 하고있어서 비포장노선은 아마 마지막일것이다 하며 탄 기억이 있네요~
그때 당시까지 비포장도로였었군요...ㄷㄷ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어떻게 다녔을까 싶습니다.
현리 들어가는 시내버스 오랫만에 보니까 반갑네요 ㅎㅎ 12년 4월부터 14년 4월까지 현리에 있었던지라.. 반갑네요. 사진 보니까 좌석형 시트 박아서 운행하는 보양인데... 그 때만 해도 그냥 일반 시내버스 시트였죠. 원통은 12사단 전체 병사를 다 커버하니까 군인 수요가 엄청나게 나오지만 인제읍은 연대 2개 뿐이라.. (이름 다 밝히면 잡혀갈까봐 구체적인 부대 이름은 좀.. 쓰기가...) 아무래도 군인 수요 차이가 커요. 현지 사시는 분들은 노인들 빼고는 거의 다 자가 운전해서 다니니까 터미널 규모는 인근 지역 장병 규모라고 생각하시면 대충 맞습니다.
모든 차가 좌석시트로 다니는 것은 아니고 랜덤입니다. 원통의 경우도 바로 앞에 부대가 있는 것보다는 주변 지역의 부대를 죄다 커버해서 그렇게 수요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연대 2개가 적다라... 저는 시/군단위에 대대 1개씩만 있는 후방 쪽에서 근무해서 연대 2개도 많아 보이네요. ㅎㅎ
여행길에 잠시 지나만 가던 인제군, 도로의 발달과 함께 지역 경제도 동반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집니다. ^^
캬~~~~~벌써 31년이 지났네요 ....17연대 ㅋㅋㅋㅋ 무지 막지하게 걸어 다녔습니다
세월이 세월이라 많이 변했네요 겨울이면 12사 완전군장해서 봉화봉 진지 ㅋㅋㅋㅋㅋㅋ
그 뒤로 설악생수가 있던걸로 기억이 나네요 잠시 옛 생각이 나게 해서 감사 감사 ^^
오래 전에 여기서 군생활을 하셨었군요~! 너무 많이 바껴서 거의 못알아 보시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