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팔령골사랑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아름다움이 있는 곳(음악.영상.글.유머.산행) 스크랩 동심의 세계
김윤득(19회) 추천 0 조회 91 07.11.29 16:29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잠깐이나마 동심에 빠져 보세요.^^

 

 우리의 전통놀이들를 정겹게 잘 묘사한 묵은

달력그림이 그 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아이들방 벽에 붙여 놓았었는데

제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정겨움과 동심을 듬뿍 느끼게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놀이가 있는지 조차 모르거나 

전자오락이나 컴퓨터에 밀려서 점차 잊어져 가고 있어 이러다

맥이 끊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 마저 듭니다.   

 

시골의 정취를 잘 표현하신 분의 성함을 미처 알아 놓칠

못했는데 양해없이 올리는 점이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영리목적이 아니니까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보자기는 비닐이나 종이봉지가 보급되기 전에 물건을 싸거나

담는 역활을 했는데 책가방이 귀하던 시절엔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 어깨나 허리에 차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서 힘든 보릿고개 때인데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이름모를 놀이에 빠져 있습니다.

 

보리는 가을에 추수한 식량이 떨어질 무렵인 춘궁기에

대체식량으로 요긴하게 이용되었던 곡식으로

보리싹 나물,  꽁보리밥과 보리빵을 물리도록 먹어서

지겨운 음식으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 다행히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라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는데

어릴 때 간식으로 먹었던 보리빵이 오히려 구수한 별미로 기억됩니다.

 

  

밖에서 갑자기 비를 만나기라도 하면 넓은 토란잎을 우산처럼 썼었는데

아쉬운대로 머리에 맞는 비는 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겨우내 언 땅이 녹으면 해마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어김없이

싹이 나와 꽃을 피웠던 옥잠화와 금낭화, 붓꽃, 다알리아,

나리꽃 등이 뜰을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안 되는 일이지만

야산의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다 꽃병에 꽂아 놓곤 했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순진해서 노래가사처럼 달나라에

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는 줄 알았답니다.

 

 

 

문방구에서 둥근 별딱지는 팔았지만 사각딱지는

직접 만들었는데 딱지를 바닥에 힘껏 쳐서

상대방의 딱지가 뒤집어지면 따 먹는 놀이였습니다.

 

남아나는 종이가 없을 정도로 닥치는대로 딱지를 접어서

어른들한테 혼도 나곤 했지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다마(구슬)치기, 삔 따먹기, 공기놀이, 제기차기,

닭싸움, 고무줄 놀이 등을 즐겨 했었는데

팬티가 보여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물구나무서며

고무줄을 넘던 추억을 생각하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다리가 있는 냇가는 드물어서 주로 징검다리를 건너곤 했는데

자칫 잘못 짚기라도 하면 넘어져서 옷을 적시곤 했습니다.

 

  

 

참외밭과 수박밭에 있었던 원두막은 소나기를 피하기에

적합한 곳이었고 땀을 식히기엔 더 없이 시원한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참외와 수박 서리를 하다가 들켜도 웃으면서 봐 주거나

가벼운 꾸중만 하고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전 과수 서리는 안 해 보았는데 이웃집 감나무 가지가

우리집으로 넘어 와서 몰래 따 먹곤 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씨름으로 힘을 겨누기도 하고...

 

 

 

냇가에서 팬티만 걸치고 멱을 감거나 공놀이를 했지만

여자들은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몰래 멱을 감곤 했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에는 가축을 들로 몰고 나가 풀을

먹이는 일로 일손을 돕기도 했습니다.

 

 

학교 숙제로 곤충채집을 한다고 잠자리나 나비를 많이 괴롭히기도 하고

가을엔 논에서 잡은 메뚜기를 기름에 볶아서 먹기도 했습니다.

 

 

 

자치기도 많이 하고 놀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기적조차 희미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간식과 선물을 받을 욕심에

일년내 다니지 않던 교회에 몇 일씩 나가곤 했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 명절이 다가오면 맛있는 음식과 때때옷이나

새옷 입을 기대감 때문에 아이들이 더 신나 했습니다.

 

 

 

정월 대보름 전날은 밥을 훔쳐 먹어도 되는 날이라 몰래 부엌에 들어가서

오곡밥과 나물을 훔쳐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화로불에 고구마나 밤을 구워 먹으면서 놀이기구를

만드는 일 또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속이 빈 노란 기저귀 고무줄로 만든 고무줄 새총에

작은 돌맹이를 가죽 부분에 끼워 당겼다 놓으면

참새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만큼 위력이 있었습니다.

 

 

 

예전엔 딱히 탈만한 것이 없어서 비료푸대로

눈썰매를 탔었는데 두꺼워서 제법 쓸만했습니다.

 

 

 

팽이치기는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렸습니다.

 

누구의 팽이가 오래 도는지 시합하기도 하고 또 팽이를 돌리다가

상대방의 팽이에 부딪치게 하여 쓰러뜨리기도 했으며 잘 돌고 있는

팽이를 한껏 쳐서 누구 것이 멀리 나가 돌고 있는가를 시합하곤 했답니다.

 

 

 

벽에 등을 대고 서면 차례로 다리사이에 머리를 디밀고 엎드려

그 위를 타는 말타기 놀이인데 체중이 많이 나가는 친구가

말을 타기라도 하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행해지는 연날리기는 임진왜란 때 군사 통신수단으로도

사용되었고 민속신앙적인  '액막이'로도 쓰여서 옛날부터

정월 대보름날이면 연에 ‘厄’자 또는 ‘送厄’이라 써서

높이 날려보냄으로써 액을 쫓아보낸다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을 날리다가 연이 추락된 집은 그 해에 재앙이 있다는 속신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와, 재앙을 점치는 것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07.11.29 16:29

    첫댓글 추억을 기억해 보세요,

  • 07.12.01 14:33

    윤득이만 갖고 있는 기억들....저 시절이 그립다^^그때는 사기꾼,도둑,못된직업은 없었던것 같은데 아~거지양반들은 있었제?

  • 07.11.29 16:36

    그림 마다 전부 경험은 있었네..비료푸대로 눈 썰매타는거이 젤 정겹다....양동동네 토끼써리하고 돈물려준것도 생각나고..ㅠㅠ

  • 작성자 07.11.30 11:17

    정말 그랬었네요 ㅋㅋㅋㅋ

  • 07.12.04 00:27

    9회들(김병기,문정섭, 김동일, 이영화, 김영택, 홍윤석,심재흥등등) 닭서리 해와서 나도 많이 삶아 주었다네. 뒤에 들은 얘기로는 거러실, 닥실 등에서 잡아 온 닭이라 카더만)

  • 07.12.04 12:35

    지금이라도 이자 쳐서 닭주인한테 닭값 물어줘야 되겠꾸만 ㅋㅋㅋㅋㅋ

  • 07.12.04 12:41

    그런데 나도 서리해온 닭 묵어 봤지롱ㅎㅎㅎㅎㅎㅎㅎ

  • 07.11.29 18:03

    요새는 해볼라캐도 해작질 할때가 엄다 ㅎㅎㅎㅎ기억만 남아 있제 ㅎㅎㅎㅎ

  • 작성자 07.11.30 11:16

    마음만 가지고 그냥 추억으로 웃으며 살자 ^^ ^^

  • 07.12.04 12:32

    병오 니혼자는 몬할낀대 ,,,내가 지금 갈까?

  • 07.11.29 18:16

    벵오오빠 헤작질 또 할라꼬요...마 참으시이소...

  • 07.11.29 22:03

    그래요 마음 뿐이라요 ㅎㅎㅎㅎ

  • 07.12.01 04:43

    해작질 같이할 친구가 없어서 못하지? ㅎㅎㅎ

  • 07.11.30 18:36

    여자애들도 전부 해본놀이네요 그때는 왜그렇게 가난혓는지이 ㅋㅋㅋㅋ학교만 갔따오면 소몰고 망태메고 소꼴베로 나갔었는데. . . . .

  • 작성자 07.12.01 13:12

    그시절은 순수하고 가난해도 깨끗했든거같애요 ,수박서리 고구마서리 ㅎㅎㅎ

  • 07.12.04 00:19

    그런 가난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것이 아닐까? 그래도 엄청 행복했던 시절이었지.

  • 07.12.01 04:53

    설날때 쯤엔 화토치기 많이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고스톱이 없었고 주로 나이롱뻥 아니면 민화토, 가끔씩 짓고땡으로 성냥개비 따먹기에 열올리던시절! 진근오빠와 미국에사는 연희,병혁,미영,혜영이와 같이....ㅎㅎㅎ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 작성자 07.12.01 13:17

    우리는 숙자네 작은오빠네서 나이롱뻥 많이했는데 달밤엔 온동네 을 쏘다녀 어른들한테 야단도 많이 맞고ㅎㅎㅎㅎ

  • 07.12.01 22:54

    난 윤덕엉가 기역하는데 나 모르지로 점이언니 동생 ...이그림을보니 12월 이면 카~드 보내던그시절이 떠오르네여 미리 카드 보냄니다 팔령골 사랑님들 모두모두 행복하시고...건강하십시요........

  • 작성자 07.12.01 23:25

    알지 지금 무지기 산다고 사과 많이 열었드라 강르거지 하느라 수고 마니했어 건강하게 행복하게살드구나^^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