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최동원
해태의 선동렬
한국 최고의 투수는 누구일까?
최동원, 선동렬, 박찬호, 송진우,
류현진, 오승환 등,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각자 좋아하는 투수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의 라이벌 투수를 꼽으라며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최동원과 선동렬을 선택할 것이다
1승 1무 1패....
과연 이들의 맞대결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경기로 꼽는지 30여년전으로 돌아가 보자!
1,최동원
1958년 5월 24일 부산에서 태어나 2011년 9월 14일 사망했다.
경남고를 거쳐 연세대학교를 나왔으며, 1983년 롯데자이언츠에 입단했고, 프로야구선수협의회를 구성하다 1988년 삼성라이온즈로
강제 트레이드 되어 1990년 은퇴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생기기 전부터
최고의 강속구 투수로 부상하여 1984년 롯데자이언츠가 삼성라이온즈를 물리치고 우승하는데 혼자 4승을 챙기는 등 전설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다만 최동원 선수가 프로야구 감독이 되지 못한건 그의 아버지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고 전해진다. 아들사랑이 대단했던 아버지 때문에 박철순 선수가 미국프로야구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최동원보다 고참이었던 박철순이 최동원에게 손찌검을 했고,
이에 최동원의 아버지가 나서 일이 커지면서 쫒기듯 박철순이 떠난게 미국이었고, 미국프로야구(메이저리그는 아님)
에서 너클볼을 배워 한국에 온 박철순은 한국프로야구 개막과 동시에 최고의 투수가 된다.
2,선동렬
1963년 1월 10일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다.
광주일고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85년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했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일본 프로야구단 주니치드래곤즈에서
뛰며 '나고야의 태양' 으로 군림했다.
선동렬은 술을 잘 마시기로도 유명한데, 에피소드하나.
MBC 청룡은 잠실구장에서 선동렬이 선발로 예정된 경기에 앞서 새로운 작전을 구사한다.
선동렬과 고려대학교 동창인 정삼흠 투수를 시켜 등판전날 술을 먹일
계획을 세운 것!
감독에게 두둑한 술값을 받아낸 정삼흠이 새벽2시까지 선동렬 선수를 끌고다니며 소주, 맥주에 양주까지 먹였는데, 그날 낮경기에서 선동렬을 예정대로 등판해 단 1실점도
주지 않고 완봉승을 거둔 것!
전날 과음한 정삼흠 선수는 경기장에 오지도 못했는데, 선동렬 선수는 수비가 끝나고 벤치에 오면 한 주전자씩
물을 마셨다고....
3)1986년 4월 19일 (토)요일 부산 사직구장
최고의 투수를 한 경기장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경기장은
역대 최다 관중 신기록을 기록했다.
두 투수는 관중에 보답하듯,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이며 9회까지 완투했다.
3회초 해태의 재일동포 타자 송일섭의 솔로홈런으로 해태가 1:0으로 승리했다.
선동렬 투수는 9회 6피안타 완봉승
(점수를 1점도 주지않고 경기를 혼자 완투하는 것)
최동원 선수는 9회 5피안타 1실점 완투패하며 1985년부터 이어오던 12경기 연속 승리를 마무리했다.
경기가 끝난후 최동원 선수는 인터뷰에서
"투수 최동원이 투수 선동렬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해태타이거즈 선수단에게 1실점했을 뿐이다."
라늘 말을 남겼다.
※ 다음 날인 1986년 4월 20일에는 선린상고 친구로 전성기를 함께했던 OB베어즈의 박노준과 MBC청룡의 김건우 선수의 투수 맞대결이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2:1로 MBC 청룡의 김건우가 승리~
(4) 1986년 8월 19일
(화)요일 부산 사직구장
4개월 동안 복수의 칼을 갈던 최동원이 승리했다.
2:0 롯데 자이언츠 승리
최동원이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었는데, 선동렬도 이 경기의 방어율은 0점이었다.
수비의 실수로 비차책 2실점.
5) 1987년 5월 16일 (토)요일 사직구장
한국 프로야구 36년의 경기중 최고의 경기가 멸린 날이다.
전년도 1승1패의 두투수를 보기 위해 관중은 구름떼를 이루며 만원관중을 돌파했다.
2회말 롯데가 먼저 2점을 뽑아냈다. 최동원에게 2점이란 승리 공식이었다. 그러나 3회초 해태가 곧바로 1점을 쫒아갔다.
2:1 로 지루한 경기가 이어 갔다. 3회말부터 9회초까지 전광판에는 0이라는 숫자만 표기되었다.
9회초 최동원이 경기를 마무리 하려는 순간, 해태의 김응룡 감독은 대타 김일환을 투입했고, 극적으로 터진 적시타로 2:2 동점을 기록했다.
9회말 선동렬은 실점을 하지 않고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10회 연장전!
모든 야구인들은 투수 보호를 위해 구원투수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프로야구 경기는 연중 계속 되는 경기이고, 양팀의 에이스들이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그건 구단에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중과 TV를 시청하던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끝장을 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사직구장의 팬들은 10회초 해태타이거즈의 공격이 시작되자 기립박수를 보냈다.
10호초에도 변함없이 최동원 선수가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10회 말에도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위해 일어나야했다.
해태에서도 선동렬 선수가 교체하지 않고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이후 15회까지 양팀의 투수는 모두 무실점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2:2 동점.
최동원 선수는209개의 공을 던졌고, 선동렬선수는 232개의 공을 던졌다.
경기가 끝난 후 두 투수가 손을 잡았다.
그날 최동원 선수가 경기를 계속하자고 농담을 던졌고, 선동렬 선수도 그러시죠 라는 말로 받았다고 한다.
(6) 그날 이후
그날 이후, 양팀 감독을 투수를 혹사 시켰다는 욕을 먹어야했고,
양팀 감독들은 두 투수의 고집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보통 훌륭한 선발 투수들이 1경기에서 100여개의 공을 던진다.
한경기 232개의 공을 던진 선동렬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 이듬해인 1988년 최동원 선수는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선수협의회창단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삼성의 김시진 선수와 강제로 맞트레이드 되는 불명예를 맞이한다. 삼성 유니폼을 입은 최동원 선수는 뮌가 어색한 느낌을 팬들에게 보이다
1990년 은퇴를 하게되고,
더이상 그들의 맞대결은 없었다.
ㅡ하준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