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라졌어요”… 길 잃은 치매노인 올해 8200명
실종신고 매년 느는데… 가족들 기댈 건 ‘실종 경보 문자’뿐
신지인 기자
입력 2022.09.03 03:00
울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강모(51)씨는 작년 12월 한밤중에 어머니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치매 3급 판정을 받은 일흔아홉 어머니는 해가 지면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면서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일몰 증후군’을 겪고 있다. 치매 3급은 가족과 대화는 할 수 있지만 가끔 알아보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정도를 가리킨다. 다행히 주변 시민의 신고로 어머니는 3시간 만에 발견됐지만 강씨는 그 뒤로도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일러스트=백형선
강씨 어머니처럼 전국에서 치매를 앓는 60세 이상 환자는 5년 전인 2017년 72만명에서 지난 3월 기준 91만명까지 늘었다. 치매 환자 실종 사건 역시 가파르게 늘고 있다. 밖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는 것은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사라진 어르신을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가족들 사연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치매 노인 실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 길 잃은 치매 환자를 찾아 달라는 신고가 연 7650건 접수됐지만, 2019년 1만2479건까지 늘었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2020~2021년은 증가세가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도 1~7월 8444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97%가 60세 이상 노인이다.
경북 김천에 사는 조모(56)씨는 12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 김모(88)씨를 돌보고 있다. 물건을 던지거나 욕설을 종종 해 다른 사람에게 돌봄을 부탁하기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바람 쐬러 가겠다”란 말을 많이 하는 게 걱정이다. 조씨는 “집 근처에 산비탈이 있어 위험한 데다 가족들이 24시간 지켜볼 수도 없고 불쑥 혼자 나가버리실까 봐 걱정이 크다”고 했다.
현재 실종 치매 노인을 찾는 방법은 경찰에 신고하는 게 거의 유일하다.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경찰과 가족들이 일일이 찾아나서는 식이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긴급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면 작년 6월 도입한 ‘실종 경보 문자’도 활용한다. 특정 지역의 주민 휴대전화에 실종자 인상착의 등을 뿌리는 식이다. 하지만 전체 실종 신고가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올해 1~7월 치매 환자를 비롯해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실종 사건은 3만건에 육박하는데, 실종 경보 문자를 활용한 것은 1000여 건에 그쳤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경보 문자를 자주 발송하면 피로도가 커지고 민원이 다량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보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뾰족한 수단이 없다 보니 치매 환자 가족들은 위치 추적 기능이 있는 ‘GPS 팔찌’를 어르신에게 채우거나, 집에 ‘치매 도어록’ 등을 설치하는 등의 자구책을 찾기도 한다. 치매 도어록은 집 밖으로 나가려면 별도의 카드키를 잠금장치에 갖다 대야 문이 열리는 장치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박채아(38)씨도 치매를 앓는 아버지 박진수(77)씨가 작년 6월 거리를 배회하다 3시간 만에 주민 신고로 집에 들어왔다. 이후 GPS 팔찌를 사드렸더니 박씨가 답답해하며 팔찌를 끊어버리자 집 안에 20여 만원을 주고 치매 도어록을 설치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치매 어르신 인식표 부착, 지문 사전 등록 등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식표는 구(區)별로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에서 신청해 무료로 받을 수 있는데, 치매 환자 옷 안쪽에 다리미로 다려 붙이는 방식이다. 인식표에 있는 고유 번호로 보호자를 찾을 수 있다. 지문 사전 등록 역시 센터에서 할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7월을 기준으로 치매 노인 지문 사전 등록은 약 21만명이 마쳤다. 전체 치매 환자의 23% 수준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