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때 초교 입학부터 6년이라 세월이 늦으니 우리 친구들도 기억을 많이 할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는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낀다 . 몇 차례의 글에 흥미가 떨어지겠지만 같은 배를 탔던 이야기들이니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우리는 6학년 1반 유귀성 선생님이셨고 교실은 운동장에서 맨 앞 건물 첫 번째 칸 이였다. 교무실과 같은 건물 이였으며 배짱 좋은 애들은 교무실 문을 이용해 들어오곤 했다. 근데 난 한번도 그 문으로 들어와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선생님들과 부딪치는걸 어려워 했다. 유귀성 선생님은 바른생활 선생님으로 인자 따위는 없어 보였다. 하나 박미희는 유독 시어줬다. 미희엄마의 바람이 셌다. 6학년 후반기에는 중학교 시험 볼 사람만 별도로 남아서 공부도 했고 나머지 애들은 신경을 별로 안 쓰고 일찍 파해주곤 했다. 그런데 남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공부는 별로 안하고 머리에 쎅가리 뽑고 이 잡고 노는 게 일이였다. 그날도 머리에 이를 잡는데 탁이가 밧줄을 내 앞에 던져 이게 오해가 되서 왜. 왜, 왜 하며 여자들한테 놀림을 받았다. 나는 죄 없이 놀림감이 되어 놀림을 받는 게 챙피했고 어쩌면 탁이가 좋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싫치도 않을 때도 있었다. 당시에 김탁 은 도시에서 와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서 인기가 무척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교실로 들어오고 탁이는 바깥으로 나가려다 복도에서 단 둘이 맞닦쳐서 안 그래도 되는데 당시에 줄 던진 핀잔을 준다는 것이 “ 야 씨발놈아 ”했더니 탁이 얼굴이 벌개 졌다. 그 후론 조용했다. 여기서 전교 회장 선거를 거론 안 할 수 없다. 전교 어린이 선거는 당시나 지금이나 큰 대행사다. 1학기 때는 1반 길동이가 되었고 한번 하면 안나가는 모양 이였다. 2학기 선거는 2반 박기석 과 3반 김충광이가 붙었다. 우세는 당연 충광이였고 나도 용호동 같은 구림리고 해서 정도 있었다. 한데 후반에 갑자기 뜨기 시작한 박기석이의 누나들이 선거전에 적극 가담해 대단했다. 노트며 연필이며 심지어는 필통받은 애들까지 있었다. 나도 장소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암튼 어디선가 기석이 찍어달라는 조건으로 공책 몇 권을 받았다. 어떤 애들은 공책만 받고 다른 애 찍으면 된다고들 한다. 지금도 누굴 찍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충광이를 안 찍고 공책 받았으니 양심에 꺼려서 기석을 찍었는지 그 후 충광이를 보기가 어색했던 기억이 남는다. 지금이나 그때나 양심꺼리는 일은 하기 싫은가 보다. 이럭저럭하여 중학교 시험을 목포 군산 비금중등으로 보러 가고 오고 정신들 없었고 나도 중학교 시험에 합격하곤 있는데 서울서 내려온 오빠가 서울에서 야간이라도 보낸다고 해서 당시는 서울이라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가고 싶어 하던 도시생활 이였다 그래서 그 날로 바로 따라 올라와 버린 것이 잘못되어 검정고시로 중, 고를 맞추는 운명이 뒤 바뀐 사연이 되었다. 중학교 시험이 발표되고 마지막으로 내일 졸업사진 찍는 날 이여서 책보도 안 가져가고 사진만 찍고 오면 됐다. 무척 시원섭섭한 기분이였다. 우리는 수업이 파하고 불긋목 언덕 조금 지나 구기로 가는 언덕 햇빛에 모여 이 잡아주고 놀고 있는데 저쪽에서 와~하며 망동 애들이 한패거리 몰려오더니 나에게 덥다 말 한마디 않고 나 만 집중 공격해서 발길로 차고 발로 밟고 하며 패기만 해서 숨도 못 쉬고 매를 맞았는데 현식이 우리 작은 엄마 도움으로 애들이 나에게서 떨어져 도망을 갔다. 나는 다음날 졸업사진을 못 찍으로 갈 정도 일어를 못나고 엄마가 대신 학교를 쫓아갔는데 탁이에게 욕한 댓 가를 몇 달이 흐른 후 학교가 끝나는 마지막 날 복수를 받은 것이다. 탁이 자석 쾌 꽁하고 있었던가봐 그런 이유로 난 졸업사진에 없다. 지난번에 탁이도 무엇 때문에 나를 그리 때렸는지 모른다며 남자로 태어나 여자를 그렀게 때려본 기억이 없다며 킬킬거렸다. 자식 나는 죽다 살았는데 웃어마. 내가 비가 올라치면 온 삭신이 쑤신 것은 아마도 탁이 때문이다 싶어 크~ 이렇게 해서 내 개인적인 생각이나마 한배를 탔던 친구들도 공감 되었으리라 믿고 조잘거려 봤는데 이것을 게기로 좀더 재미있는 얘기가 나오는 매개체가 되길 바라며 좋은 뜻으로 해석 바라네. 정림이 수다 여기서 마치네 ㅋㅋㅋ..... |
첫댓글 정님아 수고했다. 6학년 전교회장 선거와 탁이 사건이 주 이슈인 마지막회 잘 읽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런데 회장선거 이야기도 그렇지만 탁이 이야기는 좀더 씁쓸하구나. 나도 기석이 지원유세를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당선후 내가 걔네 집에 초대받아 저녁먹고 스웨터를 선물받았던 기억이난다. 철부지였던 시절의 다큐필름을 덕분에 잘 봤다. 고맙다.
너도 2반이고 선거운동원이였구나 당시에는 반대양상이였어 그래서 1반을 집중 공세했던거야 그시절 세타 무지 큰 금품이여.....
총명한 내친구야 ! 네 덕택에 과거로 돌아가서 함께 노닐었단다. 생각하면 엊그제 같은데...마지막회로 막 내리지 말고 가끔씩 또다른 추억이 생각 나거든 연재 하렴...고마워 친구야 !!!함께 울다 웃다 했단다.....
그냥 있었던일들을 써보았는데 이제는 문학반 에 들어가 배워볼까 방송국에서 운영하는데 있다더라 ㅎㅎㅎ
정말 친구는 기억력이 좋구먼! 난 이런 세세한 기억이 없으니 웬참 !!!! 감동있게 잘읽었고 글속에 나오는 길동이도 귀국했으니 연말에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함께 할걸세...
친구는 남자니까 국직하지 넌 시험을 무척 잘보았지 문중도 장학생으로 들어 가고 ...
그런 일 들이 있어구나. 기석이가 회장이였다는 것은 알았는데 선거운동원이 활동했다는 사실은 몰랐네. 금품 부정선거로 고발하면 우리내 인생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갔까?====정림아! 고맙다 추억들을 선물하여===
돌아 가면 좋은데 충환이와 기석이 구속되지 않을까?.
추억속에 묻힌 이야기 잘보았네. 그때 우리는 4,5,6 학년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후보자의 정견 발표 연설도 했고 각반 지원 연사 해용,충완,기송이의 연설도 듣고나서 선거를 치룬 결과 내가 기석이 에게 9표 차로 지고 말았지.그런데 정림이 글 읽고 보니 내가 8표 차로 질수도 있었겠구먼. 적극 지원해도 시원찮은데 니가 기석이를 찍었는지 춘광이를 찍었는지 모르다니 내가 될리가 없지, 반성 해라. ㅋㅋㅋ 아뭏든 화가 나신 유규성 선생님은 나를 달래 시려고 이미 반장 이었던 나를 학급 회장까지 겸임 시켜서 다른 친구들의 질시를 받았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유규성 선생님에 대한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네. 고마우이.
글 읽고 내가 조금틀렸는지 너가 1학기 해용, 충완, 기송, 충상 이와 대결해서 너가 1학기 회장이고 나머지 2반과3반 경쟁인것 같은데 아니였나봐 내가 누구찍은 기억이 안나는데 서운해 말어 우리 반도 나갔으면 우리반 찍었겠지 의리가 좀 심하게 강한 성격에 손해 보고살거든 암튼 어찌됐던 재미있게 나도 그시절 일을 착각 할수도 있겠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