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9. 설교문
탁종
신앙고백
찬송 358,아침 해가 돋을 때
대표기도
성경말씀 요한일서2:12~17
찬양
설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광고 예배를 요양원2층에서 드립니다. 예배 시간은 10시30분입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은 6시입니다.약국 임대를 위해 기도 부탁 드립니다.
찬송 499,저 장미꽃 위에 이슬
축도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
입춘이 지났습니다.
이제 새 봄이 시작 되었습니다.
기지개 활짝 펴고 하품도 맘껏 풀어 봅시다.
어떻습니까?
이제 봄을 맞을 준비 되었습니까?
저는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아직도 맘이 설레입니다.
우리 요양원 뒤편에 있는 철로 길에서 기차가 칙칙폭포 기적소리 울리며
마치 봄의 새 소식을 가지고 뛰어 오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마음으로 기쁜 소식을 가지고
밤새 사도요한과 같은 심정으로 뛰어 왔습니다.
12절입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절,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절,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비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에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편지는 진정으로 사도요한의 가슴앓이를 느끼게 합니다.
마치 군대에 간 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쓴 엄마의 편지 같기도 합니다.
왜? 사도요한이 이토록 애타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썼겠습니까?
사도요한이 이 편지를 쓴 에베소?는
로마제국시대 에게해의 항구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부산과 같은 국제상업도시입니다.
대부분 이러한 상업도시는 퇴폐문화, 미신이 찌들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희랍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 학문을 이어온
전통적인 로마제국시대의 최대의 도서관도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부유한 대도시
상업과 학문의 중심지
이것이 로마제국시대의 에베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사람들의 가장 큰 자랑이자 자긍심이었던
희랍신화의 최고의 신 제우스의 딸인 아르테미스Artemis여신을
모신 아르테미스신전도 에베소의 명물이었습니다.
이 아르테미스신전은 전면이 70m, 길이가 130m, 높이가 20m의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세계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곳에 3년여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용해 돈버는 사람들의 방해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적인 도움과
바울이 아들처럼 사랑했던 디모데의 헌신적인 힘으로
아르테미스 신전 도시에 에베소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화엄사 절간 마당에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이때가 아마 서기 50년경입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장에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예수님의 어머니를 부탁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탁을 받은 애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살았던 집은
에베소 옆에 있는 파타야 파풀로 산속에 있는 작은 교회가
성모 마리아 집터였다고 하여
지금도 성지로 기독교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퇴폐도시가 어디라고 생각 하십니까?
퇴폐적인 나라 일본과 가장 가까운 부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항구도시 부산에서 목회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퇴폐문화와 미신이 찌들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에베소?에서 퇴페적이고 미신이 찌들어 버린
도시를, 세상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는
사도요한의 심정을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익히 별주부전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토끼가 왜? 용궁에 갔겠습니까?
자라의 감언이설甘言利說 때문이었습니까?
그러나 토끼는 자라에게 강제로 끌려 간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따라 갔습니다.
세속적인 욕망,
아니면 자질구레한 현실 도피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자라를 따라간 용궁이 천국인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탐욕적인 용왕,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한 간신배들의 비정한 세상이었습니다.
토끼는 아찔한 세상에서 다행히 제 정신을 차리고 거짓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훼손된 자존과 양심의 간은 반드시 다시 회복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떨어지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40이면 불혹不惑이라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는 말입니다.
50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늘의 뜻을 안다는 말입니다.
60이면 이순耳順이라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살아보았으니 맞는 말입니까?
50을 훌쩍 넘긴 저는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야 불혹의 입문에 발을 들여 놓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야말로 칠삭둥이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들어갑니다.
본문을 다시 읽습니다.
12절,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절,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절,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비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에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자녀들아(초신자들아),
청년들아(아직도 미숙한 자들아),
아비들아(믿음이 장성한 자들아),
바로 영적인 연령의 차이를 두고 쓴 말씀입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10년, 20년 신앙생활을 했었도 마냥 어린아이들처럼
삐치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도
어둠에 거했던 비겁한 우리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이제라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무진 노력을 하며
얼마나 울었습니까?
~♬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 왜? 이런 슬픔 찾아 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 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잇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을 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어섭시다!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저도 다시 일어나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강보에 싸인 예수님을 지금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들의 병을 고쳐 주셨고
바로 그분이 나의 허물과 못된 행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습니까?
믿습니까?
그러고도 부족해서 부활 후 디베랴 바다에서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요21:5)
헬라어로 ‘파이디아’라고 말씀 하십니다.
도덕적으로 결핍되었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이 적은 자들아!
7가지 표적을 기억하느냐?
물이 포도주가 되었던 사건을 기억하느냐?(요2:1~11)
이와 같이
이제 너희도 본질적으로 변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38년동안 반신불수였던 난치병을 고쳐 주지 않았느냐?(요5:1~9)
시간이 좀 더딜지라도 기다려야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어린 소년의 점심에 불과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의 무리를 먹이고도 12광주리나 남지 않았느냐?(요6:1~14)
너희들이 지금까지 무엇으로 먹고
무엇을 입고 살았는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소경돤 자의 눈을 뜨게 하지 않았느냐?(요9:1~12)
불행이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다투지 마라.
힘들다고 원망하지 마라.
죽었던 나사로도 살리지 않았느냐?(요11:1~46)
그리고 가나에서 20마일이나 떨어진
가버나움에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까지도 고치지 않았느냐?(요4:46~54)
거리가 멀다고
함께 있지 못하다고
그리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그리고 많고 적음에 울고 웃는 인생들아!
나를 보고 믿느냐?
17절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오늘 제목의 말씀입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날,
다윗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반지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그리고 세공은 멋진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글귀를 새겨야 할지 고민 하다가
솔로몬에게 찾아 갔습니다.
솔로몬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곷은 떨어지되
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입니다(벧전 1:24-25)
그렇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쉬 지나갑니다.(요일2:17)
황지우님의 뼈아픈 후회입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중략)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생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켜야 할 때 내 간을 지키고
내줘야 할 때 내 간까지도 내 줄 수 있는 사랑
그것을 위하여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