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감자
김 난 석
‘지슬’ 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몇 해 전 영화가에 상영되었던 오열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제주 4.3 사건을 바탕에 깔고 국군토벌대의 남로당원 색출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되어가는 양민들의 실상을 그려나갔다.
영화 속의 그 상처들이 언제쯤이면 말끔하게 씻겨
아름다운 풍광만의 기억으로 남으려는지...
화면이 열리자 안개인지 연기인지 모를 자욱한 연무 속에
이리저리 흩어진 제기(祭器)들이 오버랩되면서
분위기는 슬픔과 해원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한다.
영화 내내 수묵화의 화면에 맴도는 안개는
허공에 떠돌 원혼들을 떠올리게 하고,
영화의 구성도 제례의 순서를 본떠
신위(神位), 신묘(神廟), 소지(燒紙) 세 마당으로 나누어
위령의 의미를 품고 있다.
뜨거운 감자라 하면
선뜻 나서기는 저어하더라도
누군가가 주목하거나 다뤄야 할 이슈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감자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그저 기갈이 감식이라 할 연명의 음식일 뿐이다.
죽어간 어머니 곁에서 데굴데굴 굴러 나오는 장면의 감자들은
우리가 그 하나하나를 따뜻하게 쥐어보아야 할
그 무엇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오리무중이라면 현재도 앞날도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인데
다른 한편 오리가 춤추는 중이란 우스갯소리도 한다.
같은 물에서는 한데 어울려 흥겨운 춤을 출 수 있어야 하거늘
서로 다른 물갈퀴 질을 해대면
서로 다른 엇박자의 춤을 출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람의 삶과 도새기의 삶을 구분할 것도 없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구분할 안목도 없이,
그렇다고 자기변명할 주변마저 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동굴 속에서 움막에서 혼거 하는 양민들에게
앞을 가리는 안개가 몰려들면서 환란은 시작됐던 것이다.
그 안개 말끔히 걷어내어
같은 바탕에서 같은 물갈퀴 질을 하며 살아가도록 만드는 게
살아남은 자들의 임무가 아닐까 싶다.
아는 자 아래를 내려다보고, 미처 깨닫지 못한 자 눈을 비벼 뜨며
함께 소통해나갈 일이다.
그것만이 그들만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만드는 일이요,
그래서도 안개를 걷어내자고 해본다.
70년대 중반이었다.
서귀포 남원 인근 개발 금지된 토지를 마구 훼손해
160 동의 방갈로를 짓고 있다는 기사가
제주 지방판 신문에 두어 줄로 났다.
그 실태를 알아보아야 할 상황이 되어 접근해 들어갔지만
아무도 그 부당성을 깨닫거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던 기억이다.
개발이 금지된 토지를 훼손하려면 국토이용 기본법은 물론이요
다양한 법령들을 동원해야 하는
어려움과 복잡한 절차가 있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중앙행정기관과의 소통이나 협의도 없이
일사천리로 훼손해 건물을 짓고
수도권의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에게 모두 분양했던 것이다.
도지사를 포함한 지방행정관료들과 업자 사이에
무슨 곡절이 있을 법도 했건만
누구도 속 시원히 말문을 여는 이가 없었던 기억이다.
관계자들을 일시 미뤄놓고
주변 상황을 살펴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비교적 좋은 곳에 위치한 방갈로에 그 문이 굳게 닫힌 채
안에 모 장관의 이니셜이 수 놓인 골프 모자가
걸려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핵심적인 실마리가 풀려 모 장관은 물러나고
관계자들 모두 혼이 났다.
방갈로는 해체되어 지금의 중문 관광단지가 들어서게 되었지만
당시도 지방의 행정환경에 어두운 안개가 드리워진 탓에
애먼 실무 공직자들도 희생되지 않았나 하는 아픈 기억도 떠오른다.
칠월의 안개여, 말끔히 걷히고 맑은 하늘이어라.
제주도에서 지슬이라 불리던 감자는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식물이었다.
올벼가 수확되기 까지는 보리와 함께 그걸로 연명해야 했다.
대지주들이나 부잣집들에선 그렇지 않았지만
감자를 수확하기 전엔 씨감자도 눈을 떼어내고 쪄먹었다.
슬픈 가난의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족애가 왜 없었으랴.
먹을 수 없었던 걸 먹게 해 주던 할머니의 손길.
참 아련한 사랑의 모습이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캐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캐보나 마나 자주감자...
우리들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동요지만
감자떡 먹는 건 가난한 아이
알아보나 마나 가난한 아이
쌀떡 먹는 건 부잣집 아이
알아보나마나 부잣집 아이...
시대는 변해 이젠 그리 말하지 않는다.
쌀을 외면하고 감자를 찾는다.
당분이 적고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감자,
할머니의 손이 그걸 알았을 리 없었겠지만
아픈 추억을 달콤하게 해주는 것이다.
지슬과 감자, 그게 그거지만
쪄먹든 구워 먹든 튀겨먹든
두 손으로 따뜻하게 쥐어 볼 일이다.
2022. 7. 25.
첫댓글 제주에선
지슬이라 부른다는 감자
지슬감자 이야기 처음들어요
감잘를 가난한 아이들.ㅎㅎㅎ
석총 고문님..좋은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네에 고마워요.
이글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역사속에 억울한 사람으로 낙인찍혔지요,
지금이라도 누명을 벗겨주고 아울러 미군이 저지른 만행은 또 기억행야 될것입니다,
미군의 명령으로 동족살생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 여순반란 사건의 주모자들은
애국자이며 민족주의자로 올바른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하고. 순수한 제주주민을
학살한 미군과 그 동조자들이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지요
글 참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문학을 이야기하는 곳이니
되도록 문학에 집중하는게 좋지요.
제주 4.3 사건이나 여수사건에 대해 여기서 왈가왈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 지슬도 영화예술에 집중했데요.
@석촌 아, 맞아요
그러네요
문학적인 면으로 접근하여 지슬을 말하여야겠네요
죄송합니다,
@호반청솔 ㅎㅎ
감자 고구마 귀리 귀한 생명 구한 식물이지요
고구마 보다 감자는 물리지 않은 음식이고요
그 담백한 맛에 물리지 않았는지
고구마를 밥에 넣어 지으면 들큰한 맛에
영 식욕이 덜 나는데 감자를 넣어 밥을 해서 주걱으로
툭툭 터뜨려 밥처럼 먹으면 든든하지요
구황식물 중에 최고는 감자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조선 전기 명종임금때 나라에 기근이 극심해 도둑이 성하고
도둑 중에 임꺽정이란 놈이 나타나 굶주린 백성을 더 괴롭게
했지요 명종이 뭔 힘이 있나요 할일없이 책이나 펴냈는데
그 책 이름이 구황촬요 기근때는 이런 거라도 먹어라
먹어서 죽는 거와 죽지 않은 풀뿌리 나 열매
감자 고구마도 없던 시대였던가 라는 생각도 들고요
긴 글로 화답해주셨네요.
구황촬요, 오랜만에 보는 이름입니다.
석촌님의 감자 소환이 저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감자바위라는 놀림을 군에 입대했을 때 많이 들었고 춘궁기에 감자를 많이 먹은 탓으로
한동안 감자를 먹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도는 농산물입니다.
그 감자의 이름이 지슬 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요, 그 이름도 괜찮게 들립니다.
오늘은 감자를 쩌서 그 구수한 냄새를 깊이 마시고싶습니다.
저는 어제 감자를 쪄먹었는데
도회사람들은 찔 줄을 몰라요.
그 옛날 어머니가 쪄주시던 감자가 맛있었는데요..
예전엔 하지에 먹는다 하여 하지감자라고 불렀어요.
알은 작지만 참 맛이 있었는데 요즘 감자는 등치는 크지만
예전 감자 맛이 안 나더군요. 먹는 입도 옛날 입은 아니겠지만..^^
입맛이 많이 변했으니까요.
역사 이야기 와 감자 잘 보았어요
네에 고마워요.
제주 4.3사건에서 지슬이란 명칭의 감자가 오버랩 되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네에 고마워요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십시오.
네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