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四 章 伏派堡의 壯觀 3
이 때 별안간 대청 안에 소란이 일어나면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대청 문을 두 사람의 청년이 들어서더니, 요백삼의 앞으로 걸어가서 읍하면서
『두 소년이 보주를 만나 뵙자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요백삼은 말을 듣자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우뚱하면서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갑자기 대청의 옆문이
『삐이꺽---』
하고 긴 여음을 끌면서 열리더니 홍안의 영롱한 두 소년이 의젓하게 요백삼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요백삼은 두 소년을 보자, 앉았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당황한다.
소년은 그의 앞에 공손히 읍하고
『요보주, 별고 없으셨습니까?』
요백삼도 읍을 하여 답례를 하니 좌중은 다시 소란하여진다.
『무림삼영---』
누구의 입에서인지 이 말이 떨어지자 운학도 찔끔하고 놀랐다.
『무림삼영이라고! 그렇다면 반드시 노대(老大)와 노이(老二)가 틀림없을 거야!』
홍안의 두 소년은 좌중의 여러 사람은 자기들의 안목 외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는지 거들떠보지도 않고
『요보주! 우리들은 귀댁의 영매(令妹)를 만나려고 왔소이다.』
요백삼은 갑자기 몸에 소름이 오싹 끼침을 느끼고 간신히 미소를 지으면서 공손한 태도로,
『정노제(程老弟)께서 야반에 갑자기 왕림하시니 마중을 못나간 저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요백삼의 이 말로 미루어보아 먼저 말한 홍안의 소년은 무림삼영 중의 우두머리 철필수사(鐵筆秀士) 정작(程綽)임이 분명하다.
운학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팔굽이 떨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황방륜을 내가 죽였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정작은 얼마 동안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 있다가 고개를 들면서
『보주는 황방륜(黃方倫)의 주검을 알고 계십니까?』
그는 일부러 음성을 높여 말을 하면서 요백삼을 노려본다.
신권금강 황방륜의 주검이 강호에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러나 무림삼영 중의 우두머리가 친히 그 주검의 원인을 떠들어대는 것은 분명히 뒤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운학은 조용히 서 있으면서 마음의 동요를 진정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요백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오지도 않는 마른기침을 하며 무엇인가 깊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작의 옆에 서 있던 추운비(追雲狒) 나적우(羅廸宇)가 나지막한 소리로
『황방륜의 주검에 대해서는 영매(令妹)께서 잘 알고 계실 텐데?』
그러나 요백삼은 신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기왕 그렇다면 응당 나의 사매(師妹)가 말씀을 올려야지요!』 (작업자 주: 원문은 사매(師妹)가 아닌 사매(舍妹, 누이동생)임)
정작이 다시 공손히 읍하면서
『우리 형제는 먼저 보주께 감사를 올립니다.』
요백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사매가 바로 말을 할지? 본인은 감당을 못하겠소이다.』
이 말이 끝나자 나적우의 얼굴색이 싹 변하더니
『보주께서는 어찌 이런 말을 하십니까?』
요백삼은 묵묵부답 머리를 흔들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두 놈이 찾아온 뜻으로 보아 필경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흥,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너희들 같은 햇병아리에게 넘어갈 것 같으냐?
결론을 내린 요백삼은 다시 나지막하게 다정한 소리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되시리라!』
정작과 나적우가 서로 눈길을 모아 쳐다보니 앞에 서 있던 요백삼은 어깨를 쭉 펴고 위엄을 보인다.
이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좌중의 사람들은 무림삼영이 이 복파보의 흠을 찾아내려고 온 것이라는 것은 눈치 채지를 못하였다.
운학의 가슴 속에서는 여전히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만약 저 소년이 끝내 억지를 부려 요백삼에게 덤빌 때는 내 반드시 나타나서 간섭을 하리라---
결심이 서자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니,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다.
대청 안은 이 세 사람의 대화로 봐서 분명히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모두가 긴장에 싸여 있었다.
이 때 갑자기 대청 밖에서 요란하게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모진 바람 소리가 들리니 대청 안에 있던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깜짝 놀랐다.
그러자 다시 천지를 진동하는 사나운 기합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에서 나무 부러져나가는 소리가 조용한 밤공기를 뒤 흔든다. 마치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 기합을 지른 사람의 내공(內功)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수인 모양이다.
『철컥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청 앞의 큰 전나무 한 그루가 부러져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심오(深奧)한 내공의 힘을 내고 있을까?
요백삼은 얼굴색이 백짓장같이 되더니 대청 문으로 다가서면서 소리를 높여
『능상 노선배(凌霜老先輩)께서 기왕 오시려면은 조용히 오시지 수목(樹木)에 화풀이를 하실 게 뭣이오!』
요백삼의 이 말로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완전히 알 수가 있었다.
요백삼은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었으나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대청 앞마당에서는 기문진법(奇門陳法)을 써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으니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허공을 마치 평지처럼 날고 있었다.
그 사람은 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양이 마치 마귀할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같이 보였다.
그는 지팡이로 정원의 백화이목(百花異木)을 삽시간에 온통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지팡이를 휘두르니 땅위에서는 충천하는 폭풍이 일고 다시 힘을 주어 신이 나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정원의 나무는 십중팔구가 부러져 쓰러져 버렸다.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은 멀거니 밖을 내다보다가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화산파(華山派)의 보보고승(步步高昇)이다.』
이 때,
『휘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공중에 떠 있던 사람이 대청 안으로 들어선다. 자세히 보니 의외에도 머리가 허옇게 센 노파가 아닌가!
복파보의 요백삼은 과히 좋은 안색은 아니었으나 웃음을 가장하면서 공손히
『선배께서 왕림하심을 알지 못하여 마중을 못 하였습니다.』
노파는 거만한 태도로
『이렇게 많은 영웅호걸께서 모이셨으니 우리와 같은 이런 폐물이야 부를 수가 있겠소?』
여러 사람은 이 노파의 말뜻을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오직 운학만이 내심으로
(아하아, 이 사람이 요원의 사부(師父)로구나!)
하고 짐작을 하였다.
노파는 다시 입을 씰룩거리면서
『그런데 누가 우리들 화산파를 스스로 이어 나가지 못하게 하였소? 요백삼, 자네 왜 나의 도제(徒弟)를 죽이게 하였나?』
노파의 말은 얼음같이 차고 얼굴에는 노여움과 살기가 어려 있었다.
비로소 요백삼이 입을 연다.
『사매가 스스로 공동파의 하마를 도망치게 하였습니다. 확실히 사지(師旨)를 어긴 것이오나 선배께서는 하마를 가두어야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배인 제가 어찌 부화뇌동하였겠습니까---』
노파는 화를 버럭 내면서
『흥 말은 잘 한다. 네 녀석이……』
요백삼은 다시 입을 열어
『다시 말해서 선배께서 이 요백삼이 귀파의 도제를 죽였다고 하시지만 후배가 무슨 덕과 능(能)이 있어 무림삼영의 호수(虎須)를 다치게 하였겠습니까?』
대청 안의 여러 호걸은 요백삼의 누이동생이 이 노파의 도제(徒弟)라는 것을 알았고, 그렇다면 요백삼도 자연 그의 후배이련만 이렇게도 노파를 대하는 언사가 강경 담백할 수가 있을까 하고 모두가 저도 모르게 의아심을 품게 되었다.
노파는 크게 노하면서,
『요백삼, 빨리 원아(畹兒)를 내어 놓기 바란다. 이 늙은 몸이 산으로 데리고 가서 사문의 규칙대로 처치할 터이다. 자네는 이 복파보에 용호(龍虎)가 잠복하여 있는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내 눈으로 봐서는 거미집 같이 밖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야!』
요백삼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뒤를 바라보면서
『원아! 빨리 나오너라!』
하고 호령한다. 화가 잔뜩 나 있는 그의 목소리는 대청을 쩌렁쩌렁 울렸다.
후면의 발이 걷혀지더니 요원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그는 겁에 질려서 요백삼의 뒷면에 서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요백삼의 으리으리하게 큰 몸집과 요원의 작은 몸매는 아주 대조적인 인상을 풍긴다.
대청 안 사람들은 멍하니 이들을 쳐다보면서 사태의 귀추를 주시하고 있을 뿐 누구하나 기침 한 번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방평, 오비, 공백안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문제가 머리에 떠올랐다.
---방금 이 요백삼이 말한 것으로 미루어 봐서 공동파 하마가 제멋대로 도망가서 사문에 죄를 졌다는 말인데---
그러나 하마(운학)와 노파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도 아무런 동정이 없는 것을 보고 버럭 의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기들과 같이 이곳에 온 하마가 가짜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노파는 생긴 그 모양대로 능구렁이와 같았다.
자기의 호통을 듣고 고분고분 자기의 누이동생을 불러내는 것을 보고
---이 놈이 완전히 내 기세에 눌렸구나---
생각하고, 만족한다.
그러나 그때 돌연 요백삼이 큰 소리로
『누구든지 나의 사매에 손을 대려면은 우선 나의 일 장의 맛을 보고 나서 하여라!』
그의 눈에서는 무서운 광채가 쏟아져 나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품이 대단히 위엄이 있게 보였다.
예상이 뒤집힌 노파는 그래도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요백삼을 노려보는 눈매에는 싸늘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대청 안의 여러 사람은,
『흠, 역시 복파보주로서의 이름이 헛되지 않았군!』
하며, 감탄하였다.
드디어 노파가 짚고 있던 지팡이로 대청마루를
『탕!』
하고 치면서
『이 젖비린내 나는 놈아! 너는 무엇을 믿고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느냐!』
노파의 입에서 침이 사방으로 튀어간다. 몹시 화가 난 모양이다.
노파는 재빨리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한편 왼손을 뻗쳐 요원을 낚아채려고 한다.
요백삼은 손바닥을 펴서 세워가지고 노파의 손을 내려치니 그 동작의 날램이 비길 데 없이 빠르다.
여러 사람은 요백삼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노파는 일순 당황하는 듯하였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거두면서 이를 부득부득 간다. 모든 사람의 몸에는 소름이 끼친다. 노파는 요백삼을 노려보며
『이 녀석 봐라! 너 감이 어른을 범하겠단 말이지!』
요백삼은 짙은 눈썹을 찡긋거리면서
『후배가 어찌 감히……』
『그렇다면, 너는 빨리 이 자리를 비켜 서거라!』
자못 서슬이 퍼렇다. 그러나 요백삼은 물러서지 않는다.
『능상 선배, 사람 너무 무시하지 마시오.』
노파는 다시 이를 갈면서
『오늘은 내가 너를 요절내겠다. 설마하니 요문선(姚文宣)의 늙은 귀신이 나를 찾아오겠니?』
그러자 요백삼의 얼굴은 갑자기 파랗게 질리면서
『아버지 아버지!』
하며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곤륜파의 네 검객은 이 말을 듣고서 요문선이란 바로 요백삼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화산파 능상 노파와 요가(姚家)와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가는 알 길이 없었다.
노파의 얼굴이 점점 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하면서 틈만 있으면 요백삼을 치려고 하나, 요백삼은 두 손을 정중히 모으고 뒤꿈치를 모아 서 있었으니 그 동작은 적의 공격을 언제라도 막을 수 있는 몸가짐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라 대청안의 공기가 자연히 긴장되고 있었다.
그 때다. 이 무거운 공기를 깨뜨리고
『황방륜은 내가 죽였소이다!』
여러 사람 틈에서 운학이 불쑥 뛰어나오며 소리치니, 만당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요원이었다.
그녀는 어찔해서 쓰러질 것 같은 자세를 가까스로 바로잡고 앞으로 나오면서 그 말의 주인공을 찾느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노파도 깜짝 놀라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운학을 노려보며 무엇인가 말하려 할 때다. 돌연 무서운 기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운학의 앞으로 와서 우뚝 섰다.
『웬 놈인데 내 형제를 죽였어?』
다른 한 사람이
『꾼 빚은 돈으로 갚고 살인은 목숨으로 받는 법이다.』
가을날 서릿발같이 차가운 음성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
그들은 무림 천하에 이름을 날리던 무림삼영 중의 철필수사(鐵筆秀士) 정작과 추운비 나적우다.
이 많은 무림의 호걸 영웅에 끼어선 운학을 한 가닥의 사나운 장풍이 급습하니 그는 순간 몸을 꼿꼿이 세우고 무림삼영 아닌 무림이영을 힐끔 쳐다보았다.
등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서움에 떨고 있던 요원은 그제서야 마부였던 운학을 보고 마음 든든함을 느꼈다.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운학의 모습은 마치 한 거인(巨人)의 풍모였으니 그것은 일러,
振衣千仞崗 진의천인강
濯足萬里流 탁족만리류
천길 산등성이에 옷을 날리고
만 리 계곡에 발을 씻는도다.
운학의 불세출(不世出)의 자태를 말함이다.
철필수사 정작은 싸늘한 눈초리로 운학을 훑어보고서는 남루한 옷차림에 놀랬는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자네 따위가 우리 삼제(三弟)를 죽일 수가 있었을까?』
빈정대는 말투였다.
운학은 어떻게 대답을 할까, 망연히 서 있다. 그러자 노파가 한 발 썩 나서며,
『너희들은 비켜! 이 놈이 우리 도제를 죽였어! 이 늙은이가 저 놈을 죽여야만 속이 풀리겠다!』
무림삼영 등은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고수였지만 이 괴물 노파에게는 선배로써 대우를 할 뿐 아니라 늘 공경하는 태도를 보여 오던 차라, 그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던지 두어 발 뒤로 물러섰다.
능상 노파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넌 도대체 어디서 온 놈이야!』
하며 한 발 나선다.
운학은 늙은 노파의 방약무인하는 태도에 화가 나서 눈을 치뜨고 노파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옆에 있던 화문객 방평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온가에게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오? 하형(何兄)은 화산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하던데, 어째 저 노파가 하마를 몰라볼까?』
공백안이 이 말을 듣고 한참 생각을 하다가 무엇인가 짐작이 간다는 듯이
『그렇다! 하영은 별명이 신룡(神龍)이라 그 수미(首尾)를 볼 수 없는 사나이지! 오래 전에 공동파에는 얼굴을 바꾸는 묘법이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하형이 그의 용모를 바꾸었나, 보구려! 그러니 노파인들 알 도리가 있나?』
공백안의 이 말에 모두들 그제야 깨달은 듯이
『하아.』
하고 자기 나름의 감탄사를 보냈다.
능상 노파는 운학의 옷차림이나 멀거니 서 있는 꼴을 보고 대단치 않은 것으로 봤는지
『너, 이 노인 앞에서 돼먹지 못한 수작을 부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 그러나 너 같은 놈이 감히 나의 도제를 죽여!』
운학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 곧지 않은 눈초리로 노파를 잠시 노려보고 나서
『저 역시 이상하더군요. 그렇게도 강호에 이름을 날리는 화산파의 고제가 두서너 번의 초식에 이 젖비린내 나는 어린 녀석에게 죽어 넘어 갔으니 말입니다.』
노파는 온 몸에 경련이라도 이는 듯이 몸을 떨면서 그 하얀 백발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운학의 말소리는 마치 제三자의 일전을 관전평(觀戰評)을 하는 것 같으니 노파의 노여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또한 이 한 마디는 방평 등의 예상을 뒤엎은 말이라 그들 역시 어리둥절하여 버렸다.
---이상한걸! 황방륜이 이 하마에게 피살되었다면 이 하마가 벌써 선천기공(先天氣功)을 단련하여 이루지를 못하였을까?---
능상 노파가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뭐라고? 네가 서너 초에 나의 고제를 죽일 수가 있었다고?』
노파는 화가 치밀어서 그런지 말도 제대로 하지를 못한다.
『뭘 그리 대단하다고 놀라시오. 나는 그를 노상에서 만났을 뿐이오! 그 놈이 내 감정을 자꾸 치근덕거리기에 죽여 버렸는데……』
이 말을 듣자 무림삼영 중의 철필수사와 추운비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호통을 치면서 운학에게 덤벼든다.
능상 노파 역시 천지를 요동시키는 소리를 지르면서 펄펄 뛰고 있었다.
이 노파는 젊었을 때 자기 일신상에 심하게 상심한 일을 당하고 나서부터는 천성에 순하고 착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괴벽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이 노파는 무공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무림 중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한편 또한 노파를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는 운학의 미친 사람 같은 소리와 풍자를 듣고는 일 장을 쳐서 날카롭게 운학을 공격하였다.
노파의 일 장은 독하고 매웠다.
노파의 공격이 시작되자 무림삼영의 두 사람은 자기들이 손을 쓰는 것이 무엇인가 비겁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남루한 운학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음인지 그들을 지켜보고만 서 있었다.
노파는 대갈일성(大喝一聲) 지팡이를 사방으로 흔들며 바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지팡이에서는
『휙---휙---』
바람이 일더니 대청 안의 등잔불을 모조리 꺼 버렸다.
요백삼은 멀거니 운학을 쳐다보고 있다가
---저 노파의 솜씨가 맵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인데 저 사람은 꼭 해를 입게 될 것이니…… 그러니---
생각에 잠겨 있던 요백삼은 별안간 소리를 지르면서 한꺼번에 쌍장(雙掌)을 휙 뒤집고 전광석화처럼 두 손바닥을 펼쳐 내어 한 손으로는 능상 노파를 치고 한 손으로는 운학의 몸을 뒤로 둘러서게 하여 운학의 급소가 습격당하는 것을 막아 놓았다.
과연 요백삼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적중하였다.
능상 노파의 지금 운학을 향한 일격은 화산문중의 칠십이로장법(七十二路杖法) 중에서 가장 음독(陰毒)한 초식이었으나 요백삼이 먼저 기선을 잡고 반격을 하니 능상 노파는 노한 고함을 지르면서 반걸음을 후퇴하였다.
그러나 요백삼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운학을 향하여 쳐나간 그의 일 장이 보기 좋게 정지를 당하면서 그가 꼼짝도 하지 않을 뿐이 아니라 오히려 요백삼의 몸이 흔들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운학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상대방 소년 역시 자기를 노려보고 있음을 보고는 눈길을 딴 곳으로 돌려 버렸다.
능상 노파는 지팡이를 잠깐 대청마루에 놓더니 옆에 있던 벽돌을 한 장 들고서는 손으로 비비니 벽돌이 으스러지며 가루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마, 이 동작은 그의 감정이 극도에 도달했다는 것을 시위하는 모양 같았다.
노파는 사지를 와들와들 떨면서
『요백삼! 너, 내 일 장을 받아라!』
요백삼은 몇 발 뒤로 물러서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후배가 어찌 노선배의 적수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능상 노파는 서슬이 시퍼래서
『안 돼! 설마, 자네 선친을 믿고 그러는 건 아니렷다?』
요백삼은 깜짝 놀라면서도 후퇴한 그대로 서 있었다.
능상 노파는 한바탕 요백삼에게 노여움을 털어 놓는다.
노파는 지팡이를 다시 들고 흔드니 검은 빛이 대청 안을 뒤 덮으면서 요백삼을 향하여 쳐 몰아갔다.
요백삼의 몸이 한 번 뒤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사냥꾼에게 몰린 토끼처럼 깡충 뛰면서 몸을 피하였다.
노파는 다시 몸을 돌리며 벼락 치듯이 다시 일 장을 쳐 내렸다. 길고 육중한 지팡이는 그의 손아귀에서 칼날처럼 가볍게 영기(靈氣)롭게 움직이니 지팡이에서 쏟아져 나온 강풍은 대청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칼로 얼굴을 베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였다.
복파보주는 강호에 발을 디딘 적이 없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깊고 높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때 대청 안의 여러 사람은 숨을 죽이고 요백삼이 이 노파의 공격에 어떻게 배겨나는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철필수사와 추운비까지도 운학의 일은 잊어버린 듯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요백삼은 노파의 십 초 이상의 공격을 피하며 싸웠다.
능상 노파의 지팡이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한 초식마다 독하고 매운 술법으로 변하여 가고 있었다.
요백삼을 순식간에 위험한 경지로 몰아넣으면서 능상 노파는 잠시 환각에 잠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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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화산(華山)의 산정(山頂)이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황혼이 물들고 화산 산정에는 저녁 안개가 자욱이 끼여 있었다. 자기는 지팡이를 흔들면서 한 소년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노파가 아니었다.
다만 나이가 찬 아가씨였다. 긴 머리털을 바람에 날리며 청춘의 꽃다운 향기를 풍기는 처녀였다. 공격을 당하는 소년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는 애원을 한다.
그러나 그의 지팡이는 갈수록 사나와지고 급하게 춤을 춘다.---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이곳의 정경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모양이었다.
환상(幻想)일망정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런 환상에서 깨어난 노파는 미친 사람과 같이 날뛰었다.
끝내는 월고성삽(月苦星澁)을 써서 지팡이의 그림자는 세 개로 쪼개져서 요백삼을 공격한다.
요백삼이 노파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음에도 그는 계속적인 공격을 하였다.
순간, 요백삼을 궁지에 몰아넣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전광석화처럼 공간에서 밑으로 내려오며 노파의 지팡이 그림자 속으로 몸을 날려 왔다.
능상 노파는
『흥!』
하면서 지팡이를 한 번 번쩍 들었다.
대청 안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면서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사람의 몸은 정말 절묘하도록 빠르게 노파의 지팡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노파의 공격을 막아낸다.
대청 안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무림중의 고수들이지만 이렇게 정묘한 신법을 구경한 적이 없었다.
운학은 이 사람을 우두커니 보고 있다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면서
『사여안(査汝安)!』
하고 소리치니 대청 안에 있던 사람이 입을 모아
『일검쌍탈진신주(一劍雙奪震神州)다!』
하고 놀란다.
지금 능상노파를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운학과도 일수를 부딪쳐 본 일이 있는 사여안이었다.
능상노파는 이 말을 듣자 지팡이 쥔 손에 더욱 사납게 힘을 주어 공격하니, 사여안 역시 손을 앞뒤로 뒤집어가며 장풍을 일으켜 반격을 한다.
『펑!』
하는 소리가 대청에 울려 퍼지니 두 사람의 장풍이 공간에서 맞부딪치는 소리였다.
그러나 분간할 수 없는 승부임을 알자 두 사람은 부동자세로 우뚝 서서 마주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 이름이 무림에 떠들썩하게 알려진 일 검쌍탈진신주 사여안이 놀랍게도 바로 정상 고수도 당할 수 없는 한낱 소년이었다는 것이 이 자리에서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보니 천하 고수가 다 한 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운학은 비록 얼떨결에 복파보에 끌려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주위의 공기로 봐서 분명히 불상사가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능상 노파는 자기 고제의 죽음을 당하자 요원을 욕보이기 위하여 이곳에 왔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운학은 고개를 들어 요원을 쳐다보았다. 시선은 공교롭게도 운학을 쳐다보고 있던 요원의 눈길과 마주 쳤다.
서로의 눈길에는 무엇인가 그리움이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운학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요원에게 마음이 사로잡혀가는 듯한 혼미 속에서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복파보가 적이란 말이냐? 또는 친구냐?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다. 운학아! 요가(姚家)는 너의 철천지원수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귓가에는 능상 노파의 노하고 꾸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노파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사여안을 꾸짖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다시 다음과 같은 생각에 잠긴다.
---만약에 요원이 노파의 손에 당하게 된다면? 그러나 그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이 여기서 멎자 그는 다시 요원을 쳐다보았다.
이때 요원의 조그만 얼굴이 백짓장같이 변하고 있었다. 보니, 요원의 뒤에는 어느 틈엔가 무림삼영 중의 정작과 나적우가 나타나서 그를 납치하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