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말씀
유재봉씨가 다수에게 보내면서 저에게도 전달: 형식으로 보내온 문자 내용 중에 올바르게 알아야 할 분분이 있어서 말씀 올립니다.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8.15 조회수:27
댓글12
제목 :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되어 남묘호렌게쿄 제목의 행자답게 창제근본으로 실천하면서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금강불괴의 불계의 생명상태를 유지하면서 어유명대로의 입정안국의 세계광선유포를 제대로 실천해가야 하는 이유와 올바른 일념정하기
유재봉씨가 다수에게 보내면서 저에게도 전달: 형식으로 보내온 문자 내용 중에 올바르게 알아야 할 분분이 있어서 말씀 올립니다.
혹시나 같은 글을 받으신 분이 계실지도 몰라서 망설이다가 쓰게된 글이니 참고하세요.
이 어서를 쓰신 39세 때의 시기는 반듯한 사원도 없었고 발적현본이나 본격적인 본존도현을 하시기 전에 쓰신 어서말씀이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지금의 서울포교소를 염두에 두고 예시글로 잘못 언급하고 있고 또 각론에 있서도 짚어야 할 부분이 있어서..
유재봉씨의 문자내용
8.14. 12:34
전달 : 행의(行儀)는 본존(本尊)의 어전(御前)에서 반드시 좌립행(坐立行) 할지어다.
도량(道場)을 나와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가리지 말지어다. 일상(日常)의 소행(所行)은 제목(題目)을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일게(一偈)․일구(一句)라도 봉독(奉讀)할지어다. <창법화제목초 >
(통해 ‐ 유재봉기술)
(자행에 대한)수행의 격식은
본존님 앞에서 반드시 정좌(반듯하게 앉아서)할지어다.
정해진 수행의 장소를 나와서는
일거수 일투족인 일체의 행동마다
언제든지 가리지 말고 일상의 삶 어느 경우에서든 남묘호렌케쿄라고 봉창하여야 한다.
또한 이럴(행주좌와)경우 능력이 되는 사람은 법화경의 일게 일구
(즉 방편품과 자아게등)라도 독송할지어다
염려되는 부분들
1. 유재봉씨의 좌립행(坐立行) 해석 : (자행에 대한)수행의 격식은
본존님 앞에서 반드시 정좌(반듯하게 앉아서)할지어다.
38세 쓰신 다른 어서말씀에 나오는 좌립행(坐立行)의 정의된 내용은
'좌립행(坐立行)이란 사위의(四威儀)를 싫어하지 않으며..'
좌립행(坐立行)의 의미 :
사위의(四威儀) = 행 (行) ‧주(住) ‧좌(坐) ‧와(臥)를 싫어하지 않고 포함함.
사전 상에 나오는 좌립행(坐立行)의 의미는
좌립행(坐立行)의 좌립(坐立)은 앉음과 섬으로 '반드시 정좌(반듯하게 앉아서)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앉거나 서서 행하는 행동이나 자세까지를 포함하고 있음.
참고 어서
"좌립행(坐立行)이란 사위의(四威儀)를 싫어하지 않으며 일심(一心)이란 정(定)의 일심(一心)이 아니고 이(理)의 일심(一心)도 아니며 산심(散心) 중(中)의 일심(一心)이니라."
수호국가론 守護國家論 가마쿠라에서 38세에 술작 55쪽
2. 유재봉씨의 '본존님 앞에서 반드시 정좌(반듯하게 앉아서)할지어다.' 의 본존님 앞에서에 대한 의견
유재봉씨가 언급한 어서말씀은 39세 때 쓰신 어서말씀이기에 본존님을 도현하시기 전의 어서로 지금의 서울포교소를 염두에 두고 언급하는 것은 지나침이 있다고 보여짐.
유재봉씨가 언급한 같은 어서 앞부분에 나오는 본존(本尊)에 대해 언급하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본존(本尊)은 법화경(法華經) 팔권(八卷) 일권일품(一卷一品) 혹(或)은 제목(題目)을 써서 본존(本尊)으로 정(定)할지어다"
"또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석가여래(釋迦如來)·다보불(多寶佛)을 쓰거나 만들어서 법화경(法華經)의 좌우(左右)에 이것을 세워 모실지어다."
"또 감당(堪當)할 수 있다면 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현보살(普賢菩薩) 등(等)도 만들고 써서 받들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대로 본존님을 본격적으로 도현하시기 전이라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각자가 본존을 쓰거나 만들어서 본존으로 모실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행의(行儀)는 본존(本尊)의 어전(御前)에서 반드시 좌립행(坐立行) 할지어다. 도량(道場)을 나와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가리지 말지어다 . 일상(日常)의 소행(所行)은 제목(題目)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내용을 보시면 당시나 지금이나 보통의 절에서는 합장하고 앉거나 서서 예배행을 하는 실제모습을 상상해 볼 때 유재봉씨가 언급한 '본존님 앞에서 반드시 정좌(반듯하게 앉아서)할지어다.' 라는 해석은 사견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좌립행(坐立行)은 '본존님 앞에서 반드시 정좌(반듯하게 앉아서)할지어다.' 라는 유재봉씨의 개인적인 주장과는 달리 대어본존님을 모신 본당이나 가정의 본존님 안치장소라도 유연하게 의자에 앉아서 하든 양반다리 자세로 하든 서서하든 모두 현실적으로도 가능할 것이며 '좌립행(坐立行)이란 사위의(四威儀)를 싫어하지 않으며..' 대성인의 말씀처럼 사위의(四威儀) = 행 (行) ‧주(住) ‧좌(坐) ‧와(臥)를 싫어하지 않듯 행 (行) ‧주(住) ‧좌(坐) ‧와(臥)를 가리지 않아야 할 것이며, 사전 상의 의미로 봐도 좌립행(坐立行)의 좌립(坐立)은 앉음과 섬으로 앉거나 서서 행하는 행동이나 자세이기에 '반드시 정좌(반듯하게 앉아서)를 해야만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지나친 주장으로 보여집니다.
참고한 어서말씀의 전후내용
"물어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본존(本尊)과 행의(行儀) 그리고 일상(日常)의 소행(所行)은 어떻게 해야 하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제일(第一)에 본존(本尊)은 법화경(法華經) 팔권(八卷) 일권일품(一卷一品) 혹(或)은 제목(題目)을 써서 본존(本尊)으로 정(定)할지어다 라고 법사품(法師品) 및 신력품(神力品)에 쓰였느니라. 또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석가여래(釋迦如來)·다보불(多寶佛)을 쓰거나 만들어서 법화경(法華經)의 좌우(左右)에 이것을 세워 모실지어다. 또 감당(堪當)할 수 있다면 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현보살(普賢菩薩) 등(等)도 만들고 써서 받들지어다. 행의(行儀)는 본존(本尊)의 어전(御前)에서 반드시 좌립행(坐立行) 할지어다. 도량(道場)을 나와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가리지 말지어다 . 일상(日常)의 소행(所行)은 제목(題目)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일게(一偈)·일구(一句)라도 봉독(奉讀)할지어다. 조연(助緣)에는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다보불(多寶佛)·시방제불(十方諸佛)·일체(一切)의 제보살(諸菩薩)·이승(二乘)·천인(天人)·용신(龍神)·팔부(八部) 등(等) 마음에 따를지어다, 우자(愚者)가 많은 세상(世上)이 되면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관(觀)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며 그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습학(習學)하여 이를 관(觀)할지어다."
창법화제목초 唱法華題目抄 가마쿠라에서 39세에 술작 12쪽
3. 유재봉씨의 '능력이 되는 사람은 법화경의 일게 일구 (즉 방편품과 자아게등)라도 독송할지어다'를 현재상황을 빗댄 본인의 의중대로라면 법화경의 일게 일구는 '방편품과 자아게등'라기 보다는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어서말씀들을 읽는 것으로 실천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기타 참고할 내용과 어서말씀들
"부처가 기록(記錄)하여 가로되 「나의 멸후(滅後)·정상二천년(正像二千年)이 지나서 말법(末法)의 초(初)에 이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만을 홍통(弘通)하는 자(者)가 출래(出來)하리라 <중략>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말법(末法)의 초(初)에 일염부제(一閻浮提)에 홍통(弘通)이 되실 서상(瑞相)으로서 니치렌(日蓮)이 앞장섰느니라." 어서 910쪽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며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어서 1124쪽
대어본존님과 하나되어야 하는 이유 :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야 하는 이유 :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창제행 =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불러내어 하나되는 순간 =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각자가 본불.지용보살들로 발적현본하게 되는 이 순간 순간의 일념을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로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되면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금강불괴의 불계의 생명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중생소유락'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 본인묘의 신심 즉 즉신성불의 신심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고, 시시로 성도하고 시시로 현본하면서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행복감을 만끽하게 되는 현증을 실감하면서 마음껏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일생성불초 384페이지에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라고 자행의 실천 방안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어의구전 794페이지에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이 홍통(弘通)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체(體)이고 심(心)이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용(用)이고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조행(助行)이며 제목(題目)은 정행(正行)이니라.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운운(云云)."라고
위 어문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행에다 조행을 포함시켜야 한다라고 확언하시고 계십니다. 정행을 하면서 조행을 더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이미 정행 즉 제목 안에 조행이 포함되어 있다고 단언하시고 계십니다.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어서 1124쪽
"일념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어의구전 790페이지)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만 봉창하면 멸하지 않는 죄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이 있겠는가. 진실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성우문답초 497쪽
"三十三의 액(厄)은 전환되어 三十三의 행(幸)으로 되시리라, 칠난즉멸(七難卽滅)·칠복즉생(七福卽生)이란 이것이니라, 나이는 젊어지고 복은 쌓일 것이외다." 시조깅고전부인답서 1135쪽
"이 경(經)은 즉 이는 염부제(閻浮提)의 사람의 병의 양약이니라, 만약 사람이 병이 있는데 이 경(經)을 들을 수 있으면 병이 곧 소멸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하리라" 오타입도전답서 1010쪽
"일체중생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이외에 유락은 없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중생소유락 운운 이 글월 어찌 자수법락이 아니겠느뇨 <중략>
유락이란 우리들의 색심 의정 함께 일념삼천 자수용신의 부처가 아니겠느뇨
법화경을 받드는 이외에 유락은 없으며 현세안온 후생선처란 이것이니라" 시조깅고전답서 1143쪽
"법화경의 본문의 간심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삼세제불의 만행만선의 공덕을 모아서 五字로 하였으니 이 오자(五字) 내외 어찌 만계의 공덕을 포함하지 않겠느뇨
그러나 이 구족의 묘계는 한번 가진후 행자가 파하려고 해도 파해지지 않으니 이를 금강보기계 라고 말한다. <중략> 삼세제불은 이 계를 갖고 법신 보신 응신 등 어느 것이나 무시무종으로 부처가 되셨느니라" 교행증어서 1282쪽
"대지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을 동여매는 자는 있을지라도 · 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의 행자의 기원이 성취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기도초 1351쪽
"니치렌(日蓮)등의 동류의 본회는 무상(無上) 無上(무상)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무상 중에 극무상이니라. 이 묘법을 가르켜서 무상보취라고 설하셨느니라. 보취란 삼세제불의 만행만선의 제파라밀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하는 신심이며 불구자득이란 이것 이니라." 어서 727쪽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니치뇨부인답서 1244쪽
"그러니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해도 용(用)의 부처이며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야말로 본불(本佛)이시니라. 경(經)에 가로되「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 이것이로다. 여래비밀(如來秘密)은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이고 신통지력(神通之力)은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인 것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인 것이며 부처는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이니라. 그러므로 석가불(釋迦佛)은 우리들 중생(衆生)을 위해서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갖추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처에게 삼덕(三德)을 갖게 해 드린 것은 범부(凡夫)이니라,"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1358쪽
"그러므로 아부쓰보(阿佛房)가 바로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바로 아부쓰보(阿佛房)이며 이것 이외(以外)의 재각(才覺)은 무익(無益)하니라. 문(聞)·신(信)·계(戒)·정(定)·진(進)·사(捨)·참(慙)의 칠보(七寶)로써 장식한 보탑(寶塔)이니라. 다보여래(多寶如來)의 보탑(寶塔)을 공양(供養)하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신(自身)을 공양(供養)하시는 것이며 자신(自身)이 또한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니라. 이렇게 믿으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하시라. 이곳이 바로 보탑(寶塔)의 주처(住處)이니라." 아부쓰보어서 1304쪽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당체라 함은 법화경을 믿는 니치렌(日蓮)의 제자 단나 등의 부모소생의 육신 바로 이것 이니라. 정직히 방편을 버리고 오직 법화경을 믿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 업 고의 삼도가 법신 반야 해탈의 삼덕으로 전하여 삼관 삼제 즉 일심(一心)에 나타나서 그 사람이 소주(所住)하는 곳은 상적광토니라." 어서 512쪽
"한 번 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면, 일체의 불·일체의 법·일체의 보살·일체의 성문(聲聞)·일체의 범왕(梵王) · 제석(帝釋) · 염마(閻魔) · 법왕(法王) · 일월(日月) ·중성(衆星)·천신(天神)·지신(地神)·내지(乃至)·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수라(修羅)·인천(人天)·일체중생의 심중의 불성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은 무량무변하니라. 나의 기심의 묘호렌게쿄를 본존으로 숭앙하고, 나의 기심 중의 불성·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제석의 불성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의 불성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 557쪽
법체(法體)의 혈맥(血脈)을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주시는 어서말씀 : "법체(法體)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중략> ..법체(法體)란 심(心)이라는 것이고 법(法)이란 제법(諸法)이며, 제법(諸法)의 심(心)이라는 것인데 제법(諸法)의 심(心)이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어서 709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는 남녀(男女) 공(共)히 여래(如來)이고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여여래공숙(與如來共宿)의 자(者)이니라, 부대사(傅大士)의 석(釋)에 가로되 「조조(朝朝)·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 시시(時時)로 성도(成道)하며 시시(時時)로 현본(顯本)함이라」라고 운운(云云)." 어서 737쪽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과거(過去)의 생사(生死)와 현재(現在)의 생사(生死)와 미래(未來)의 생사(生死)·이 삼세(三世)의 생사(生死)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법화(法華)의 혈맥상승(血脈相承)이라고 하느니라..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어서 1337~8쪽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어서 13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