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경기도의 어느 양반 집이 있었습니다.
이 집 부부는 혼인한 지 10년이 넘도록 설하에 자식이 없었죠.
그래서 마음속으로 늘 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랜 기다림 끝에 부부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죠.
양반 집안에서 염원하던 아이를 가졌으니 이왕이면 아들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부부는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제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죠.
날이 차고 다리 차 어느 추운 겨울밤 안방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문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남편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급한 마음에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물었죠.
“아들이요?”
그러나 산모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무 대답도 안 하다가 낯을 찡그리면서 대답했습니다.
“딸이에요.”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천장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부부가 그렇게 지성을 들여 양반가의 대를 이을 아들을 원했건만 딸이 태어나니 적잖이 실망한 것이죠.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이 지나자 남편은 딸도 자식이지 않은가 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아내를 찾았습니다.
“부인 이제 딸자식이 생겼으니 드디어 우리도 아버지 어머니 소리를 듣게 되었구려”
남편의 말에 부인도 마음이 뭉클해졌죠.
그리고 태어난 딸 아이에게도 미안했습니다.
”그래요. 딸도 우리 자식이니 한번 잘 길러보도록 하지요.“
어느덧 세월이 흘러 딸 아이는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집 안에는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전답이 많아, 먹고 사는 걱정은 없었죠.
이웃 고을의 시문에 능통한 서당 선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모셔다가 딸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 먹은 아이가 얼마나 영특한지 훈장님은 부모에게 딸 아이의 총명함을 늘 칭찬했죠.
부부도 그런 딸이 너무도 이뻐 늘 우리 딸 우리 딸 하며 키웠습니다.
딸의 이름은 연희였지요. 열둘이 되자 얼굴은 양귀비 같고 지혜는 총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고을 일대의 집마다 마마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지더니 결국 연희도 그 병에 걸려서 마침내 얼굴이며 코며 눈이며 모두 헐고 이지러져 곰보가 되고 말았죠.
그 어여쁜 얼굴이 남이 보기에 추하게 되었으니 부부의 실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공부라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연인은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바느질 길쌈에도 으뜸이었죠.
얼굴은 얼어서 박색이나 제주는 크게 뛰어나 인근 고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습니다.
연희가 나이 열아홉이 되자 부부에게는 딸 아이를 출가시킬 근심이 더해졌죠.
어디서 혼인 말을 하다가도 딸 아이의 얼굴이 박색임을 탓하며 파혼하니 딸 연희는 연희대로 상처를 입었고 그 부모 또한 날로 근심이 더해져만 갔습니다.
부부는 아무래도 딸의 집에서 늙게 될 것이라며 한숨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딸 연희 또한 부모에게 근심을 주는 것이 괴로워 남모르게 울며 세월을 보냈지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집안사람이나 남들과 대면하지 않기로 하고 후원에 떨어져 있는 초당으로 가서 혼자 글공부했습니다.
후원에는 몇백 년이나 묵은 행화 나무가 울창해 산속같이 고여 있습니다.
박새 우는 소리 벌레 소리 행화 나무 잎새가 바람에 우수수하고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왔죠.
연희는 이곳에서 홀로 지내다 혼자 몸으로 늙어 생을 끝마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달 밝은 밤에 자리에 누워 있을 때 두견새 우는 소리 풀벌레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곤 했죠.
저런 미물들도 쌍쌍이 우는데 왜 나는 하며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죠.
어느덧 사내에 대한 그리움도 마음속에 밀려 들어왔습니다.
연인은 그날도 동물들의 짝 찾는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이불을 푹 쓰고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리움과 원망의 감정만이 뒤섞여 올라왔습니다.
정신은 시퍼렇게 날카로워지고 뜨겁게 밀려 올라오는 원망의 감정에 연인은 미친 사람처럼 이불을 차고 일어나 창을 열어 젖었습니다.
”하늘이시어 나를 왜 이리 못생기게 만들었소?“
때는 10월이라 하늘에는 은 싸라기 같은 샛별이 반짝이고 단풍 든 행화 나무 잎새가 바람에 살랑했습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다지도 못 나게 얼굴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게 무정한 세월은 가고 연희의 나이 서른 살이 되는 봄이 왔습니다.
연희 아비는 창문을 열고 후원을 바라보며 오늘도 딸 생각에 긴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이리 오너라“
밖에서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전혀 본 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신데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오?“
”나는 양평에 사는 김득생이라 하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사랑방으로 갔습니다.
제가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니라 주인장께 혼기를 넘긴 따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혼인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랑은 한양에 사는 이원영 댁입니다.
연희의 아버지는 혼인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뛰었지만, 한편으로는 워낙 여러 차례 파혼의 상처를 받았기에 웬만한 말은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원영 대감님은 쉰의 마나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제들이 대감님이 홀로 계심이 민망해서 시골에서 참한 후취를 구하옵기에 신붓감을 찾아 헤매다 이댁 따님이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데 나이 서른이 넘도록 혼인을 하지 못했다 하기에 찾아뵌 것입니다. 혹시 후취라도 괜찮으시다면 한 번 중매해볼까 하는데 괜찮으실는지요?“
”그러시군요. 나이 과년한 딸이 되어 천생 후취밖에는 혼처가 없을 테니 이 대감께 말씀 한 번 해보시지요.“
”그럼 제가 돌아가서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중매인은 돌아갔습니다. 연희의 아비는 중매인을 돌려보내고 가만히 생각해보았죠.
귀여운 딸을 나의 신이나 되는 사람에게 후취로 보내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후취 자리든 뭐든 아무래도 좋으니 처녀라는 이름만이라도 면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중매인은 한양 이원영 대감 댁에 가서 이원영 대감의 아들을 만나 혼인에 관한 얘기를 낱낱이 전했습니다.
작은 대감은 득생의 말을 듣고 도통 미심쩍어하며 물었죠.
”어찌하여 여자 나이 서른이 되도록 시집을 못 갔단 말이오. 필시 무슨 결점이 있어서 아니겠소?“
“아마 신랑감을 고르고 고르다가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때를 넘긴 것이 아닐까요.“
중매인은 문필과 재덕이 장하다는 소문만을 듣고 그 연희의 얼굴에 흠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죠.
작은 대감은 그래도 믿기지 않아서 업둥이 할멈을 보내 슬며시 가서 그 여인이 어떤가를 보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며칠 뒤 업둥이 할멈은 연희의 집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대청마루로 들어가며 마치 지나가던 길손 모양으로 마루에 털썩 앉았죠.
”아이고! 다리야!“
그러자 연희의 어머니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뉘시오?“
지나가던 길손이올시다 해는 지고 다리가 아파 하룻밤 쉬어가려고 염치 불고하고 들렀습니다.
연희의 어머니는 노인이 가엾은 생각이 들어 말했습니다.
”아이고! 노인분이 오죽이나 다리가 아프겠소? 방으로 들어오시오. “
업둥이 알몸은 제가 꾸민 연극이 잘 되어간다고 좋아하며 방에 들어가서 세간을 살피는 척하고 속으로는 이 집 딸의 행방을 살폈습니다.
서른 살 난 처녀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렸으나 처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님 집 치장도 잘하시고 사시는군요. 그래 자식은 몇이나 두셨습니까?“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뿐이지요.“
”아이고! 귀한 외동 따님을 두셨군요. 그래 출가는 시켰습니까?”
“아이고! 올해 나이가 서른인데 연분이 없어서 아직 못 보냈답니다.”
“제가 좀 볼까요. 제가 보고 중매를 서둘겠습니다.”
“아니요. 그 애는 남이 보면 부끄러워서 후원 초당에 늘 숨어 살 듯하고 있지요.”
연희의 어머니는 딸을 선보이는 것이 싫어서 업둥이 할멈의 말을 막았습니다.
그래도 업둥이 할멈은 어떻게든 딸을 보려고 연희의 어머니를 설득했지요.
결국 업둥이 할멈은 후원 행화 꽃이 가득 핀 정원 가운데에 있는 초당으로 갔습니다.
연희는 한문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밖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내다 보니 웬 노파가 걸어오고 있었죠.
연희는 얼른 보던 책을 덮고 벽을 향해 돌아앉았습니다.
연희는 멍석같이 얽은 제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사람이 찾아오면 돌아앉는 습관이 생긴 것이죠.
노파가 연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잘 빗어 내린 머리는 윤기가 잘잘 흐르고 목이 길고 키도 그만하면 알맞아 보였습니다.
“참 아씨! 어쩌면 머릿결이 저렇게 좋으신가요? 그러지 말고 돌아앉으시오.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 그럽니까?”
연희에게는 돌아앉으라는 말이 죽으라고 하는 말보다 싫은 말이었죠.
연희가 돌아앉지 않자 업둥이 할멈은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연희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멈 한양서 왔지?”
아씨께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 다 아는 수가 있지”
업둥이 할멈은 도적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어리벙벙해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멈 이번에 혼인이 되고 안 되는 것은 할멈에게 달렸소 만일 혼인이 성사되면 나도 그 은혜를 잊지 않겠소”
업둥이 할멈은 연희의 말을 듣고 다시 정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하여간 얼굴이나 좀 봅시다.”
“할머니 내 얼굴 보면 놀랄 텐데?”
연희는 업둥이 할멈을 향해 돌아앉았습니다.
얼굴이 무섭게 얽고 눈과 입술이 이지러져 있었습니다.
그 얼굴은 형태는 있었으나 흉으로 가득해 도저히 쳐다보고 있을 수 없었지요.
연희는 업둥이 할멈에게 천천히 말했습니다.
“내 얼굴이 이 모양으로 생겨서 나이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갔지만 대신 내 재주를 좀 보아주시오.”
연희가 명주와 모시를 내어 보이는데 그 손재주가 참 놀라웠습니다.
얼굴을 볼 때는 마음이 서늘했으나 그가 짠 명주와 모시를 보니 서늘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다른 욕심이 생겼습니다.
“아씨 이번 혼인을 성사시키면 이것 한 필과 돈 삼백 양만 주시오. 그렇다면 내 힘닿는 데까지 혼인을 성사시키도록 힘씁지요.”
“그야 문제없지.”
연희가 쾌히 승낙하자 재보다 잿밥이라고 명주와 모시에 욕심이 생긴 업둥이 할멈은 혼인이 되게 한다고 장담을 하고 돌아갔죠.
업둥이 할머니 이원영 대감 댁에 가자, 대감의 아들은 새어머니 깜이 궁금해 어떻더냐고 물었죠.
“양반 가문인데다가 시골이라도 예법이 있고 재덕이 넓어 인근에서 칭찬이 잦아하옵습디다.”
“그래 얼굴은 예쁘시던가?”
“예! 사람은 많이 보았어도 그렇게 놀랍기만 한 얼굴은 처음 보았습니다.”
예법이 있고 재덕이 장한데 얼굴까지 놀랍다는 말을 들은 작은 대감은 아버지에게 얼른 혼사를 맺자고 아래였습니다.
“얘야 그만둬라. 늙은 게 장가는 무슨 장가냐.”
대감은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고개를 가로저었지요.
결국 이튿날 아침 일찍 이원영 대감의 사주단자와 납치문을 준비하고 중매쟁이와 하인을 연희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정혼은 전격적으로 성립이 되고 곧 잔치하기로 했죠.
잔칫날 대감은 말 등에 높이 안고 앞에서는 마부가 길을 고이 모시고 연희의 집으로 갔습니다.
연희는 비녀를 머리에 꽂고 족두리를 쓰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유모와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나서서 예를 올렸습니다.
대감은 답례를 했습니다.
연희가 부채로 얼굴을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예를 드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조례가 끝나자 대감이 방으로 들어가자 신부도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신부는 손에 들었던 부채를 천천히 내렸죠.
대감은 신부 얼굴을 보고 싶어서 고개를 돌려 곁눈으로 슬슬 보았습니다.
“에이 이게 무슨 일인고? 망신이다. 망신이야.”
대감은 기절초풍을 하며 밖으로 뛰어나가 하인들을 불러놓고 큰 소리로 호령했습니다.
“이놈들아 어서 말을 준비해라 지금 곧장 떠날 테다.”
하인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주저했지요.
“이놈들 냉큼 준비하라니까 말이 안 들리느냐!”
대감이 호령하는 소리는 맑은 하늘의 벼락같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참 박복한 운명입니다. 연희는 신랑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소박당할 처지가 되었으니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연희의 아버지는 그런 딸의 모습을 보다 못해 소박하고 나간 대감 사위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소위 일국의 재상이 되어서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신부를 소박하는 법이 어디 있소.
사위가 말을 타고 하인들과 길을 떠나자 신붓집은 마치 서리를 맞은 들풀처럼 모두 넋을 잃고 있었죠.
연희의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려다 서둘러 가마를 준비하라 하고 딸에게 말했습니다.
“예를 치렀으니 너는 그 집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그 집에 가서 쫓겨나더라도 네 신랑을 따라가거라.”
그러고는 연희를 가마에 태워 신랑 이원영 대감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 업둥이 할멈이 밖에 나갔다가 멀리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 유심히 보았습니다.
대감이 오는 것이 분명했지요. 업둥이 할멈은 무슨 큰일이나 나지 않았나 하고 마음을 졸이며 바라보는데 대감 뒤로 가마가 따라오고 있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대감이 씩씩거리며 곧바로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집안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죠.
“아니 어째서 벌써 돌아오시지?”
사람들은 중얼거리면서 뛰어나가 이원형 대감을 맞았습니다.
대감은 안채로 들어가지 않고 자기 침실로 들어가서 벽을 향해 들어 누었죠.
“애고 늙은 것이 장가가려다 이게 무슨 망신인지.”
대감을 따라온 신부의 가마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온 집안사람들은 호기심에 서로 앞을 다투어 모여들었죠.
“신부가 예쁘냐?”
신부의 얼굴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은 신부가 나서는 것을 보고 별안간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떤 이는 입맛을 다시기도 했죠. 그중에서도 가장 실망한 사람은 대감의 아들이었죠.
나이 많은 아버지께서 혼자 계시는 것이 안 돼 보여 후처를 얻어 들인 것이 박색이었으니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화가 나 업둥이 할멈을 대감 방으로 불렀습니다.
업둥이 알몸은 대감과 작은 대감 앞에 무릎 꿇고 앉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뵐 면도 없고 업둥이 할미에게 속은 것만 같아 화가 난 작은 대감은 소리쳤죠.
“진정 신부의 얼굴을 보고 온 것이 맞는가? 어찌하여 박색한 신부가 예쁘다 거짓으로 아뢨는가?”
“제가 무슨 죄가 있사옵기에 호령을 하시옵니까?”
“나를 속인 것이 죄가 아니냐?”
화가 나 있던 대감이 거들었습니다.
“저는 조금도 속인 것이 없는데요.”
“죽어도 속였다고 하지 않을까?”
“제가 무어라고 여쭈었습니까? 예법이 있고 재덕이 장하다고 했습지요. 그리고 얼굴이 예쁘냐고 물으시기에 박색이라고 여쭙기는 너무나 황송하여 그러한 놀라운 얼굴은 처음 보았다고 여쭈었지요.
어디 얼굴이 잘났다고 하였습니까?”
대감이 할 말을 잃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달이 지났지요. 대감의 아들들은 박색 계모를 깔보며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행화집이라고 불렀지, 그러던 하루는 연희가 집안의 장남인 작은 대감을 불러다 앉혔습니다.
“내가 대강과 혼례를 치루었으니 이 집 어른이 맞지?”
조선은 예를 중시하는 나라 아니겠습니까? 순간 당황한 작은 대감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내키지 않는 대답을 했죠.
“예, 그러하옵니다.”
“그럼 내가 하라는 대로 순종하겠는가?”
어머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작은 대감은 저도 모르게 어머니라고 불렀죠.
“아무쪼록 집안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부탁하네.”
작은 대감은 박색 계모에게 꾸중 아닌 꾸중을 듣고 나와서는 형제들과 모여 입을 삐죽거리며 계모를 업신여기는 말을 서슴지 않았죠.
그러나 이원영 대감은 이 같은 말을 우연히 듣고 빙그레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꼴만 볼 게 아니로군.“
대감은 어떻게 하나 보려고 박색인 새 부인에게 살림살이를 맡겨 보았죠.
그랬더니 얼굴은 못났어도 소문과 같이 재주가 뛰어나고 똑똑해 집 안의 하인들이며 세간이며 잘 관리해 식솔들이 모두 평안하기만 했지요.
이때부터 집안에 웃음이 감돌고 박색 얼굴도 늘 보아서 익숙해지니 며느리들도 어머님이라고 깍듯이 불렀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이제는 이 집 살림도 알았으니 내가 맡으라 하고 큰 며느리에게 열쇠를 도로 내주었지요.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조정에서 임금의 득남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려 대신들이 모두 모였죠.
이원영 대감도 참례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원영 대감은 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었죠.
게다가 새 마님이 진짓상을 본 이후로 대감은 음식이 너무 맛있어 과식이 잦아 위장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도 신하 된 도리로 어찌하겠습니까.
대감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궁궐의 연회에 참석하였죠.
부인은 대감이 더위를 못 참고 설사를 할 것 같아서 홑바지와 버선 그리고 걸레를 하인에게 주며 일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갔다가 혹시 대감께서 찾으시면 드려라.“
그날 연회 자리에서 대감은 더위를 못 이겨 속이 뒤틀리고 배가 살살 아파 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대감은 얼굴이 벌게지며 참다못해 변소로 가다 그만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대감은 하인을 불러 지시했죠.
”너 냉큼 집에 가서 홑바지와 버선 좀 가져오너라.“
”대감마님 여기 있습니다.“
하인이 마님의 부탁으로 가지고 왔던 것을 얼른 내놓자 대감은 놀람과 동시에 반가웠죠.
걸레로 씻은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실수한 옷은 하인에게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경쾌한 마음으로 연회를 마칠 수 있었죠.
연회가 끝난 뒤에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대감은 부인을 괄시한 것을 후회하며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오늘은 안방에 들어가서 사과하고 지난 일을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겠구나.’
대감은 집에 돌아오자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부인에게 말했죠.
”부인 내가 설사할 것을 어찌 알고 옷가지를 보냈소? 이렇게 현명한 부인을 그동안 괄시해서 미안하오.“
대감이 부인과 한자리에 마주 앉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해 봄 조정에서는 관리들에게 관복을 일제히 새로 지어 입고 들어오라며 비단을 한 필씩 내렸습니다.
이원영 대감의 집은 작은 대감 삼 형제와 대감을 합해 내 벌의 옷을 해야만 할 텐데 공고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아 걱정이었죠.
그래서 장안을 돌며 침모를 구했으나 갑자기 얻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며느리들은 할 수 없어 제 어머니에게 말했죠.
”왜 진작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
새 마님은 관복을 지을 천을 펴놓고 이리 재고 저리 제고 하더니 나흘 만에 네 벌의 옷을 모두 만들었죠.
바느질을 빨리하는 사람도 관복 하나 지으려면 사나흘씩 걸리는데 참으로 대단한 솜씨였습니다.
거기에 대감 작은 대감 형제들에게 입혀보니 몸에도 꼭 맞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튿날 이 대감과 작은 대감 삼형제는 관복을 입고 예식에 참석했죠.
그러던 중 임금이 대감과 아들 셋의 관복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이 대감과 아들들의 관복은 참으로 잘 지었소. 다른 재상들은 날이 급해 속히 하느라고 솔기가 우글쭈글한데 이 대감의 관복은 흉배에 수를 넣은 것이라든가 바느질한 솜씨가 참 신묘하오.“
임금은 이 대감 부인의 재덕이 장함을 알고 칭찬을 무수히 하면서 정경부인이라는 직첩을 내렸습니다.
그 후 정경부인은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 두 형제 모두 기골이 장대하고 제주가 높아 과거에 급제해 이름을 세상에 날렸다 합니다.
첫댓글 못난 얼굴도 재능과 인덕 앞에선 가려지는군요
해피엔딩이라서 편안하게 읽고 갑니다
사람은 외모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이 맞는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