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선 (滿船)
어김없이 내 잠을 설치는 알람시계의 요란함에 오늘도 부스스 눈을 떴다 감아본다. 잠결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느껴진다. 내 방에 (나름대로 햇빛이 많이 들어 올 거라는 추측 하에 엄마보다 앞서서 잡은 방이지만 그다지 햇빛은 들어오지 않는다.) 있는 유리 창문을 통하여 커튼을 거치고도 전혀 곱게 되지 순화되지 못하고 산산이 부셔진 햇빛 조각이 그대로 내 몸 위로 박혀왔다. 자연의 순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저항이라 일컬을 만한 내 행동은 고작 이불을 머리카락 한 올도 술래인 햇빛에 들키지 못하도록 이불을 뒤집어 쓴 일 뿐이다. 이불에 돌돌 쌓여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방 한쪽에 살아있는 생명체다. 언뜻 느끼기에 잠에서 깬지 많은 시계바늘이 숫자를 지나갔을 거라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제야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아까 느끼던 햇살의 따가움은 훨씬 강한 거 같다. 내가 항상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으레 커튼을 주름잡아 내 방에 햇빛을 물씬 담아두는 일이다. 누구나 일어나면 하는 일이겠지만, 내겐 우선순위가 꽤 큰일이다. 파스텔 톤의 연둣빛 배경삼아 커다란 잎사귀모양의 무늬가 어찌 보면 무질서하게 찍혀 있는 듯하면서도 꽤 매력적이다. 세공의 섬세함 앞에서 헛기침도 가능할 만한 솜씨의 촘촘히 박힌 바느질은 어느 하나 틈 잡힐 곳이 없다. 시선을 좀 더 아래쪽에 둔다면, 실크로 한껏 멋스럽게 장식되어있는 커튼의 끝자락을 발견할 수 것이다. 위쪽에 사용된 파스텔 연둣빛보다는 좀 더 짙은 색으로 물든 커튼의 끝자락에서 마치 커튼에 무늬로 박혀있는 잎사귀들의 진이 아래로 쏠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커튼을 거꾸로 단다면 잎사귀에 다시 진이 스며들 것이라는 장담은 못하겠다.
커튼을 주름잡아 가르마를 내었다. 커튼 자락을 젖히니 커튼에 막혀 그 곳에 축적되어 있던 햇빛이 한번에 내 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햇빛 탓인지 유난히 널찍해 보이고, 그 속이 더욱 알차 보이는 빨간 장미 집게가 다가오는 커튼의 무늬인 입사귀가 마치 제 짝인 양 능글맞게 입을 벌려 커튼을 집어 물었다. 왼쪽도, 오른쪽도……. 이제 몇 걸음을 물러나 보기만 하면 된다.
“음 ……. 역시나 오늘도 오른쪽이 말썽이군.”
아침에 일어나서 아마 처음으로 입을 열어 내뱉은 말인 듯싶다. 오른쪽 커튼 뭉치가 왼쪽보다 더 풍성해보이니 나로서는 용납되지 못할 일이었다. 집게의 머리 부분을 엄지와 인지를 이용하여 힘껏 집어 들었다. 장미집게가 내가 지 색시라도 억지로 떼어 놓는 듯 뻑뻑함이 절로 느껴졌다. 다시 몇 걸을 물러나 보니 이제야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룬 듯싶다. 어제 저녁에 자기 전, 화장대 위에 꺼내놓았던 커피향초가 내 방안에 온 구석을 맴돌고 있었다. 못 느꼈을 뿐, 자면서도 내 콧구멍을 들어갔다 나갔다 했을 커피 향에 은근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커튼을 걷어 젖힌 후, 항상 창문을 열어젖히던 내가 오늘은 웬일인지 창문은 굳게 닫고 있었다. 은연 중 이것을 느낀 이유가 내 방으로 길목을 들려 한 햇살들이 마치 지들의 진로를 방해라도 한다는 듯, 쉴 새 없이 창문을 두드린 소란함 때문일까?
창문을 열어 보니 바깥 공기가 꽤 매섭다. 오늘이 마침 비번이라 출근길 고생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은근히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커피 향과, 쌀쌀한 바깥공기는 순식간에 교차되었다. 머리가 아파도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찬 공기보다는 나았는지 금세 커피향이 그리워진다. 그렇다고 커피 향초을 계속 두긴 싫었다. 그래서 새로운 향초를 꺼내기 위해 화장대 첫 번째 서랍을 열어보니, 색색 깔의 고운 향초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랍 안에 괴어있던 온갖 뒤섞인 향내에 식전부터 속이 쓰려왔다.
“음 ……. 오늘은 어떤 향이 좋을까?”
질문한 나를 무안하게 하려 모두 작정한 듯, 아무도 대답이 없다. 그저 집 밖에서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뿐 ……. 하지만 그것들도 내 질문에 대답하는 거 같진 않았다.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어쩌면 이런 날 놀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이솝우화처럼 하느님이 새들 중 왕을 뽑으려 할 때의 새들의 자태도 이렇게 고왔을까?
온갖 뒤섞인 냄새 중에서도 특히나 강한 장미향이 내 손끝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아니다. 좀 더 고개를 내려보니 샛노란 색으로 어쩜 강해보일 향이지만, 사실 은은하고 푸근한 향내를 풍겨오는 민들레 향초가 눈이 띄었다. 손으로 집어 드니 마침 그때 강한 햇살줄기가 민들레 향초에 핀 조명처럼 쏟아졌다. 빛을 받아 더욱 고와보이는 색과, 흰색 심지가 가릴 것도 없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향초가 꽤 매력적이다.
오늘은 비번이라 꽤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한 거 같다. 그러나 내 방이 아닌 다른 공간에선 누군가가 분주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침 청소하랴 식사 준비하랴, 몸 사릴 틈이 없는 바쁜 발자국 소리이다. 방문을 열자마자 내 온몸을 덮치려 든 간 고등어 조린 냄새에 정신이 없다.
방에 있을 때는 그나마 내 방문이 차단역할을 하고 있었나보다
“엄마. 내가 아침엔 기름으로 요리하지 말랬잖아. 이게 뭐야. 온통 집안에 간 고등어 탄 냄새 뿐이잖아.”
내 원칙은 그렇다. 우리 집은 아침에는 절대 김을 굽거나, 생선을 튀기지 않아야 한다. 학교 다닐 때는 교복에 냄새가 밸까봐 노심초사였고, 이젠 직장에서 여직원 옷에서 향수냄새가 날망정 생선 냄새처럼 구수한 냄새를 풍기기엔 아직 내 나이가 어리다.
“오늘 비번이라면서. 웬일로 일찍 일어나셨어? 밥 차려 놨으니까 빨리 씻고 밥 먹어.”
평소에는 아침에 열댓 번은 넘게 부르고 흔들어도 겨우 눈을 한번 떳다 감는 것으로 일어난 시늉을 하던 내가 오늘은 스스로 일어나 방문을 나서니 꽤 신기했던 모양이다.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틈 없이 머리를 감쌌다. 이유인 즉, 혹여 간 고등어 냄새라도 밸까봐 하는 우려감이 전부다. 끝이 반쯤 풀린 갈색 머리카락이 바닥에 군데군데 떨어져있는 꼬락서니가 심란하다. 샤워기의 물을 크게 틀어 바닥 위로 부어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있던 머리카락 들이 이제는 물과 함께 물 빠지는 구멍으로 모여 들었다. 화장실내화를 신은 채 발에 물을 부어서인지 실내화 안쪽엔 물이 가득하다. 신발을 비스듬히 세워 물기가 빠지도록 한 후,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나름대로 완벽하다는 생각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니 거울로 비친 내 모습도 웃고 있다.
완벽함과 깨끗함. 그저 내 생활의 신조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신조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세상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칭하는 명칭도 있다. 결벽증 . 썩 맘에 내키는 일컬음은 아니다. 그저 난 내생활의 신조에 충실할 뿐, 유세 떤다는 만큼의 얘기를 듣기엔 불쾌감이 있다. 인간이 옛 시절부터 깨끗한 곳 보다는 안전한 곳에 살았고,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짐승들이 깨끗하다는 이유가 아닌 살이 제대로 오른 것을 골라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인간에게서 깔끔함이 완전히 무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간혹 ‘결벽증’(내가 원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날 그렇게 부른다. 이 글을 읽을 이들에게 좀더 명확한 이해를 돕고자 위해 하는 수 없이 내 스스로를 일컬을 명칭이다.) 이란 이유로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때도 있지만, 어쩌면 내가 있어 그들 스스로의 주변이 깨끗해지는 것을 망각하고 있을 그들의 무지함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추억을 즐기는 편이라 손 때 묻은 앨범을 꺼내면 나도 애초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내 입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질질 흐르는 침을 엄마가 손으로 닦아주는 모습, 방바닥에 흘려져 있는 엎드려서 우유를 핥는 모습. 어릴 때 캠프장에서 땟자국이 줄을 잇는 모습 등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난 ‘결벽증‘이라는 통속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던 것이다. 어쨌든 그 이유인즉슨, 좀 더 후에 말해두고 싶은 일이다.
내 머리에는 여전히 수건이 감싸진 채 아침식사를 위해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냄새로 이미 파악된 간 고등어는 식탁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최근 엄마가 홈쇼핑으로 큰 맘 먹고 구입한 고등어이다. 쉽사리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상품구입을 하지 않던 엄마가 웬일인가 보니 역시 앞집의 경숙아줌마 때문인 거 같다. 남편 잘 만나서 팔자 제대로 폈다며 술만 먹으면 푸념처럼 늘어놓던 아줌마에 대한 부러움에서 인지, 아니면 같은 동창으로서의 괜한 열등감 때문인지 …….
“윤주야. 엄마는 우리 딸만 믿고 사는 거 알지? 우리 딸. 사랑해.”
와락 끌어안으며 어쩔 땐 나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며 애쓰지만 결국 엄마의 금테 안경 사이로 흐르는 눈물도 내 눈엔 왜 그리도 선한지 모르겠다. 퇴근 후 심신이 지쳐 내 나름대로의 몸도 겨누기 힘들 때, 엄마의 한 맺은 푸념까지 들어주고 나면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나도 모를 역함과 분노는 어디에서 나오는 지, 결국 그 모든 활촉은 아빠라는 사람이다.
“여기서 살겠어? 사람하나 얼씬거리지도 않는 길바닥에 애 학교는 어떻게 다니고, 또 쥐콧구멍만 한 슈퍼마저도 산 너머 들 너머에 있으니 이제 우리 고생길도 훤하다 훤해.”
고창으로 그러니까 10년 전, 그나마 읍내라는 곳으로 난생처음 용달차를 타고 이사라는 것을 간 곳이다. 비포장도로에 대전에선 찾기도 어려울 저층 건물은 왜 그리도 많은지 고개만 살짝 위로 젖히면 시야가 트였다. 읍내라는 곳이 대낮 2시가 되어도 땅에 사람 발뒤꿈치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과연 시골은 어떤 곳일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엄마가 강하게 쏘아 붙인 말소리에 아빠는 이 모든 잘못에 뒷구멍이 번쩍 들릴망정 쥐구멍크기마한 구멍에 미안함이 역력한 낯짝을 숨기고 싶었는지 애꿎은 땅만 신발주둥이로 긁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이 주변에선 고가라는 소위 주택지대에 도착하니 예전엔 TV 보던 판자로 대충 칸막이 해둔 집이 눈앞에 보인다. 용달차 운전자는 지금 엄마의 속처럼 구불거리는 자갈길을 막 지나며
“아저씨 네는 그래도 이 동네로 왔구먼요. 아 그래도 저 곳이 단감도 많이 나고, 철 따라 장관이구먼요. 근디 어째 사모님은 멀미 나시나그려.”
그때 마침 돌부리를 바퀴가 훑었는지 차가 들썩했다. 뒤따라 짐칸에 실린 몇 개 되지 않는 짐들도 뒤따라 늦장단을 맞춘다. 말 건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아무 대꾸 없는 엄마의 싸늘함이 아빠는 괜히 멋쩍었는지 이내 말을 받아친다.
“아 그래요? 우리 식구가 단감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자연 경관도 멋지고 좋네요…….”
말끝을 살짝 흐리는 아빠도 그제 서야 엄마의 눈총을 받았었나보다.
“아 그람요. 내가 우리 임자를 저 산 언덕에서 만났답죠. 아 긍께 그이서부터 활활 불이 붙어서 말 이제요. …….”
“아저씨. 말 좀 삼가시죠. 여기 애도 있지 않습니까.”
냉랭하고 또랑또랑 엄마의 말소리에 기분이라도 나쁘다는 듯이 한껏 불쾌함을 드러내려 또 한번 돌부리 위로 차를 지나 갔는 줄도 모른다. 네 사람의 몸이 들썩, 또 한 박자 늦는 뒤 칸의 짐들의 늦장단 끝에 이어지는 엄마의 따끔한 눈총세례를 이따금 받은 아저씨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서 밤에 보면 기겁할 정도의 울퉁불퉁하게 생긴 아저씨가 엄마 아빠 틈 사이에 껴 있던 날 그제 서야 발견했는지 씩 웃어 보인다.
“아가야. 넌 몇 살이라야?”
아가라면 아마 날 불렀던 거 같다. 소위 닭살 돋는 말이 이 대목에서 생각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아저씨가 웃어 보일 때 살짝 비친 은 이빨의 섬뜩함 때문인 거 같다. 척보면 딱 이라는 말처럼 어찌 그리 아빠는 내 맘을 잘 알았는지 이내 엄마의 대답을 대신 받아 친 것처럼 내 대답까지도 대신 받아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죠. 참, 이 근처에 중학교 있나요? 급하게 오는 바람에 전학 신청도 못하고 왔는데 …….”
“요 아저씨 여기를 완전 촌구석으로 보셨구먼, 허허. 우리 애새끼들도 이제 중학상들여요. 아자씨네 주소랑 우리랑 엇비슷한 거 보니께 아마 같은 중핵교 다니겄구만. 이제 2학년이라구야? 아쿠 그럼 우리 큰놈이랑 같은 친구고, 작은 놈한테는 누나네.”
누구 맘대로 친구, 동생이라는 호칭을 함부로 붙여댔는지 하는 엄마의 못마땅한 마음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났다.
“아무튼 말을 말아야지.”
들리지 않게 한 말이라 하지만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드려왔다. 아무튼 우리 엄마는 그렇다. 친구들과 모여도 단순히 입만 모여 수다만 떠는 만남이 아니라 고상하게 즐길 수 있는 십자수라든지 퀼트등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그래야만 남에 대한 험담마저도 남 걱정이라 곱게 취급될 수 있다며 얘기하던 아줌마들의 대화가 얼핏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이렇게 무의미 하게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대화는 엄마에겐 전혀 흥미대상이 될 수 없던 것이다.
몇 번의 돌부리 언덕을 거쳐 굽길 여행도 이제 끝이 났다. 차의 시동이 꺼진 후. 용달차 운전 아저씨는 제 먼저 내려 마치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선행 순찰을 나섰다.
뒷짐 지고 팔자로 걷는 폼이 꼭 옛 시절 양반의 행태를 모방하려 얼추 비슷해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 양반이 아닌 사람의 행동과 눈대중으로 들여다보니 비슷해보였다. 뒷 창은 떨어진 듯 하고 운동화 앞발은 다 헐었으니 그야말로 걸레 중 걸레였다. 풍기가 있는지 다리는 제대로 뻗지도 못하고 그저 한발로 지지하면 다른 한발은 앞으로 끌려가는 걸음걸이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제 서야 그 운동화 사연을 얼추 알 거 같았다.
“주소 보니께 저 퍼런 색 지붕아래 집인거 같어요. 한번 내려가 볼꺼나요?”
물어보고 이젠 제 멋대로 장단이다. 아까부터 심기가 불편해 보인 엄마의 눈총세례에 아마 오기가 났나보다. 아빠는 뭐 그게 좋다고 똥내나는 뒷 꽁무니를 밟아댄다.
대개 집은 낮은 지대에 위치하지 않는 법이라는 걸 나도 사회시간에 익히 들어서 아는 지식이지만 이 곳은 이상하다. 도로변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가뜩이나 산도 많은 곳에 산사태라도 나면 그대로 묻히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참으로 이 곳이 못 마땅 한가보다. 아까 아저씨가 운동화 밑창으로 일으킨 먼지바람에 하이힐 구두앞발에 먼지라도 묻었는지 발을 굴려 먼지를 털어 내려 한다. 까짓 거 허리만 조금 숙여 닦아내면 댈 것을 구둣발로 쿵쾅거리며 마치 이사 온 것을 알리려는 양 아직도 제자리걸음 중이다.
“여보, 윤주야. 여기 맞는 거 같다. 한번 내려와 봐.”
난생처음 이사라는 것을 하고 있는 내게는 삶의 기억되고 싶은 한 과정의 절차이다. 그러나 엄마에겐 잊고 싶은 과거의 추억으로 썩혀두려는 듯, 썩 내키는 표정은 아니다. 생각보다 계단이 꽤 널찍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계단에서 그대로 나뒹굴어버릴 거 같다는 두려움과 처음 이사를 한 집에 대한 벅참의 대조된 느낌에 영 발 맞추기가 힘들었다. 내 바로 뒤를 따라오는 듯한 엄마의 구두소리는 여전히 거슬린다. ‘딱 딱’ 거리며 한 발 한 발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폼이 안 봐도 뻔할 뻔 자 이다. 설령 바지 끝자락에 흙가루라도 묻어날까 양 손으로는 바지 주름대로 잘 잡아서 살짝 위로 들어 올렸을 것이고, 높은 곳을 내려 갈 때는 버릇처럼 항상 옆으로 걸어내려 가는 엄마의 버릇 아닌 버릇의 자태로 조심스레 구둣발 소리를 내면서 걸어오고 있겠지.
예닐곱 정도의 숫자, 그러나 폭이 깊어 그 사이에 계단을 또 놓아도 될 듯한 험한 계단 길을 내려오니 페인트칠이 벗겨져 녹슨 철구조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꼴사나운 대문과 니스 칠을 여러 번 한 듯, 하지만 덩어리져 뻑뻑한 대문을 밀어 젖히니 기분 나쁘게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귀에 째질 듯한 소리가 들렸다. 주인은 마치 우리의 입주를 대 환영 하는 듯, 분칠 가득한 낯짝에서 한눈에 띄는 시뻘건 주둥이로 나불거린다.
“어머, 여까지 오시느라 수고 꽤 하셨구먼요. 방 다 닦고 벽지도 새로 발라 내었응께 이제 새집이구먼요.”
이제 막 청소가 끝난 듯, 집안엔 분주함이 가득했다. 마당에 흐트러져 있는 벽지 쪼가리들과 풀을 잔뜩 먹혀 둔 페인트 붓과, 주인 네가 방금 빨고 있던 걸레가 바로 우리 가족의 환영을 분주함으로 대처하려 했던 하나의 계획이었던 거 같다.
차마 집 앞 까지 용달차를 대령하기엔 여유지 않아 할 수 없이 그 비탈진 곳으로 올라가 짐을 내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지붕은 하나인데 방문은 세 개였다. 그러더니 가운데 방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양 쪽 방문에선 사람이 무슨 일인가해서 빠끔히 문을 열고 소의 눈처럼 껌벅이고 있었다.
“아 이 사람들 좀 보래. 사람이 새로 왔으면 후딱 나와서 인사해야 할 거 아녀. 어째 그래 낯짝만 들이 밀어댔어.”
주인댁의 닦달에 왼쪽 방에서는 내복인지 사복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복장의 또래 남자 아이와, 오른쪽 방에서는 눈대중으로 보니 나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듯 한 여자아이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대전에서 사정상 이사 온 식구들입니다. 정겹고 좋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겉으로 봐도 분명 아빠보다 낮은, 아니 나만한 나이 들일 텐데 고개를 숙여 들입다 인사를 하니 모를 노릇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소민이라고 해요. 새로 이사 오셨나보네요. 옆집인데 잘 부탁 드려요.”
“난 철진이.”
오른쪽 편에 살고 있던 여자아이는 꽤 서울 말씨답게 인사치레를 했다. 그러자마자 왼쪽 편에 서 있던 남자아이도 자기도 제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앞뒤상황 다 잘라내고 보니 제일 중요한 게 제 이름이라 생각했나보다. 꺼벙한 눈길로 이사 기념 차로 엄마가 사준 빨간 구둣발이 꽤 눈에 밟혔는지 아까부터 뚫어져라 응시 중이었다.
아직 벽지 붙이기가 미완료인지 주인아저씨는 우리의 인사를 받고서는 금방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어디선가 코끝이 화한 느낌이 있었지만 대강 풀냄새이거니 하고 넘겨 버렸다. 용달차에 있는 저 짐들을 이곳까지 내리려면 꽤나 지칠 일을 생각하니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여기 화장실은 어디 있어요? 손부터 좀 씻어야겠어요.”
이 쪽 사람들에겐 눈길 조차 머무르지 않던 엄마가 이내 던진 말은 화장실 여부이다. 집은 좁다 해도 그래도 최소한 욕조는 없더라도 수세식의 변기여야 한다며 아빠에게 강력히 주장해오던 엄마의 확인작업이 시작된 셈이다.
“저기 파란문 보이시나? 그쪽으로 가시면 화장실이라우.”
주인 아저씨는 벽지 바르기에도 추수기처럼 바쁠 텐데, 용케도 엄마의 말을 받아치고 있었다. 동시에 주인아줌마의 보기만 해도 따끔거리는 족제비 같이 째진 눈깔로 분명 아저씨를 째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우아한 구두를 들썩이며 발걸음 해가서 보니 세면대는커녕 수세식도 아닌가보다. 돌아올 때는 이건 아니라는 듯, 입을 쭈뼛거리며 마당 안을 쩌렁쩌렁하게 구둣발로 울려대고 있으니 말이다. 하이힐 구두에 좌변기란 먼가 모를 모순이었다.
“아가. 내가 우리 애새끼들한테 들은 소리이긴 헌데, 여기는 소금길이여. 근디 넌 벌꿀길이라고 허라. 안 그럼 느그반 애새끼들 장난질이 험할 것이여.”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할 것이다’ 라는 예언적인 말투에 온몸이 오싹해졌다. 사실 아까부터 자꾸 ‘아가’라고 부르는 거부감에서부터 오는 소름이라고 하고 싶다.
“그게 무슨 말이나요? ”
한동안 육성회장으로 우리 학교에 있었고, 또 아이들 간의 사이에서도 늘 귀를 귀울이고 있던 엄마의 귀에
“장난질이 험할 것이여”
라는 말은 곱게 들릴 리가 없었다.
“아 그냥 아그들이 쓸따리 없이 허대는 말이어요. 집구석 형편은 벌꿀길이 더 낫다나…….”
“무슨 어린애들이 집 형편을 따지고 들어요? 참나. 이 동네 물이 안 좋구나. 그게 다 부모의 영향력이야. 어쩜 애들이 그래.”
쓸데없이 흥분한 엄마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의 시선을 한데 엄마에게로 모이기에 충분한 기세였다. 조금은 멋쩍었는지 아까의 아저씨의 모습처럼 뒷짐을 쥔 채,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그러나 엄마에게선 양반 분위기가 날 뿐, 전혀 양반의 행세를 따라하는 어색한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짐을 힘겹게 나른 후 모두들 고단했는지 파란 지붕아래의 세칸 방에는 모두 불이 꺼졌다.
정말 학교 교문 앞에 서면 눈에 뚜렷하게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왼쪽으로 가는 길은 벌꿀길, 오른쪽으로 가는 길은 소금길 이라 한다. 소위 아이들만의 은어와도 같은 것이다. 나도 왜 아이들이 이렇게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전학 왔을 때부터 아이들은 이런 소리를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벌꿀길에는 풀도 무성하니 보기에도 걷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지만 왠지 소금 길은 영 아니다.)
교실을 들어서니 아마 전학 올 날 위해 갖다놓은 거 같은 키맞춤이 높게 된 책상과 걸상이 교실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소개는 간단하게 이름소개로 끝낸 후, 곧바로 책을 펼쳐 들고 따분하게 수업으로 들어갔다. 내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인사할 말들은 순간 모두 비눗방울이 되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대전에서는(그러니까 시골이 아닌 도시 같은 경우는) 처음 전학 온 아이에게
“너 이름은 뭐야?”
“언니나 오빠 있니?”
“인형 좋아해?”
물어봤음직도 해서 이 시골에. 그것도 ‘도시에서 온 내가 꽤 궁금하겠지’ 아이들은 분명 내 존재에 대해 알아갈 질문들을 던질 거란 추측 하에 나름대로 대답을 준비했지만, 이 곳 학교에선 생뚱맞게 던지는 질문이
“넌 벌꿀길이냐, 아니면 소금 길이냐?”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주변을 빙 둘러 콧물 흐르던 자국이 말라 허옇게 뜬 아이들, 몇 명은 부황이 들었는지(도시 아이들처럼 많은 것을 먹어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 부풀대로 불어 오른 배지를 내 쪽으로 밀쳐대고 우물우물 거리는 내 입술만 낯 뜨겁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만약 이 아이들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왕따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며, 그저 소금보다는 벌꿀이 더 좋아보여서, 단지 그 이유로 선택해버렸다.(사실은 교실의 이중 창문의 스테인리스강이 보이니 어제 용달차 아저씨의 은 이빨이 생각나며,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난 벌꿀길…….”
“와와.”
수업 도중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러댔고, 담임선생님은 날 둘러싸고 있던 무리 중에서 가장 맷집이 좋게 생긴 아이를 골라내서 책을 돌돌 말아 대갈통이 터지도록 휘둘려 대고 있었다. 순식간에 찬바람을 맞은 아지랑이처럼 아이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줄었고,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책만 손으로 쥐어짜며 교실에 곱게 울려 퍼지는 책 휘둘리는 요망한 소리를 감상 중 이었다.
망할 놈의 담임선생님의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은 내 신원 파악은 ‘안심‘으로 끝나기라도 했다는 듯, 지들만의 놀이 공간으로 날 초대했다. 서먹할 텐데도 곧 잘 내게 소속감을 불러 일으켰다.
집에 갈 때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실 문을 나섰다. 혼자 가야겠거니 하는 생각 중에 교실 뒤 문간에서 그나마 교실에서 꽤 깔끔해 보이던 여자 세 명이 내게 같이 가자는 반가운 제안을 해왔다. 난 그 자리에서 바로 찬성이었고, 반가운 얼굴을 감출 역력은 전혀 없었다.
교문 밖을 나오니 정말 두 갈래길이 뚜렷하게 분간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왼쪽 길, 그러니까 내가 심한 갈등 끝에 선택한 벌꿀길로 발걸음을 향했고, 소금 길로 가는 아이들은 눈에는 점으로 보일 정도로 벌써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애새끼야. 가서 니 동생들 귀저기 나 빨아라!
“저 새끼는 발에 모타가 달렸나, 지대 빠르구먼.”
벌써 길 위의 점이 되서 사라져 버린 아이에게 하는 말 같았다.
“어우. 쟤네는 매일 저래. 어쩜 집에 가는 길도 요란하니.”
“저기. 근데 왜 아이들은 저러는 거야?”
빨간 구두를 신어서인지 뒤꿈치가 쓰라려 오니 교문 앞에 서있던 지도 꽤 오래인 듯싶다. 항상 신발을 사면 아빠가 망치로 뒤 굽을 두드려 빳빳한 뒤 굽을 부드럽게 해줬지만, 어제는 짐 나르기에 정신이 없어 그럴 새도 없었다. 빨리 집에 가자는 의미부여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드디어 내 말에 대답을 해주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응, 그게 벌꿀길은 옛날부터 양반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래. 그런 쓸데없는 이유로 벌꿀길 아이들은 참하고 선하다고 말하고, 소금 길은 벌써 이름부터 짜지 않니? 옛날에 정말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이 유배 오는 곳이기도 했대. 애들은 그것 때문에 벌꿀길을 더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애들은 소금 길에 살아도 항상 벌꿀길로 지나가서 뺑 돌아가지.”
난 그제야 이해가 갔다. 어제 아저씨의 말이 말이다. 그리고 등굣길에 소민언니가 내게 길목을 정 반대편으로 가자고 잡아 끈 이유도 말이다. 아이들과 얘기하다보니 은연 중 어느새 나도 벌꿀길목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소금 길에 살 거라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는 가보다.
“대전은 어떤 곳이야? 내가 사회책에서 본 대전은 광역시라던데. 그곳에 엑스포도 있다면서. 맞지?”
아이들에게 들어온 아이가 이 아이인가 보다. 130여 정도의 전교생 중 그래도 1등으로 선생님들의 관심의 대상이고, 소위 아이들 사이에서는 ‘왕재수’로 통한다는 그 아이 말이다. 만약 이 아이에게 제대로 대답이라도 안하면 제 검은 뿔테안경을 살짝 들어올리는 두터운 손가락에 쥐어 잡힐 듯해 난 얼른 대답을 해버렸다.
“응. 맞아. 그래서 ‘과학의 도시‘라고도 불러.”
내가 지보다 하나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아이에겐 꽤 불쾌했는지
“그건 나도 알아.”
말의 억양 하나 붙이지 않고, 차갑게 내뱉은 말에 내가 말실수라고 했다 싶었다. 아니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내가 아닌, 번데기인 내 앞에서 주름잡아 보려 깝치던 굼벵이가 제 스스로 몸이 돌돌 말려 일어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꼴이 되 버린 것이다.(이제 131명이 된 전교생 숫자 중에서 난 전학 후 첫 시험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으니까.)
“우리 노래나 부르자. “
제일 왼쪽 편에 서있던 나를 건너, 내 옆의 ‘왕재수’를 건너에 있는 꽤 예쁘장한 아이가 건넨 말이었다.
“그래”
동시에 아이들은 흔쾌히 수락 후 , 노래를 시작했다. (난 당연 동요를 부를 거라는 생각에 목청을 가다듬고 있었다.)
“벌꿀길의 단내가 코를 찔러요. 단내가득 이 길에는 영지네집, 소영네집, 인주네집. 윤주네 집이 있어요. 벌꿀길의 단내가 코를 찔러요…….”
집과는 정 반대 길로 들어서는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아이들이 불러준 노래가사 속에 내 이름도 포함되어 있으니 안심이다. 사실 이 아이들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노래 오른쪽부터 거슬러 이름을 붙인 거 같았다. 하나 둘 제 집으로 들어가 이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길목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저 두려운 마음만 앞섰다. 하는 수 없이 거슬러 온 길을 다시 먼지가득 묻은 빨간 구두로 도로 핥아 내려 갈 수밖에…….
한참을 내려오니 드디어 교문이 보였다. 3학년들은 이제야 끝나는 지 소민언니가 재빨리 교문 밖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소민언니. 지금 끝났어? 같이 가자.”
“윤주야 빨리.”
냅다 내 손을 잡아채서 소금 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이들의 쓸데없는 놀림을 피하기 위해서 인 거 같았다. 논두렁을 벗어나니 이젠 학교도 내 엄지손톱에 가릴 만큼의 크기가 되었다. (사실 소민언니가 오른쪽 눈을 감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은 왼팔로 학교를 가리는 모습에 나도 따라해 본 것이다.) 강아지풀을 꺾어 인중위에 올려 콧수염을 만들어 내 이름을 부른 언니의 모습이 시골에서 느껴지는 풋풋함이 그대로다. 체력장 때 안간힘을 써서 턱걸이에 힘겹게 턱을 걸치고 버티는 모습과 비슷하게 저 쪽 이웃하고 있는 산 틈에 걸친 해가 꼭 그 모양이었다. 산길을 지나오는 내내 짙푸른 풀냄새에 한껏 취해 발걸음은 느글느글 거리고, 아까 아이들이 부른 벌꿀길 노래도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마당을 들어서니 아직 어른들은 초저녁인 듯, 제 일터에서 아직 아낙한 집구석으로 들어오지 않은 게다. 집안에는 철진이 뿐,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제 엄마가 그립기라도 한 듯, 눈은 크고, 땡그런 눈알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제 엄마라고 본판과는 다르게 눈은 크게 그려 놨다.
온몸에 물씬 베어 있는 풀냄새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들어오니 코끝이 화해진다. 맞다. 이사 올 때도 느꼈던 화한 느낌이다. 알고 보니 소민언니네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에서 풍겨오는 향이었다. 박하 향처럼 산뜻하기도 했지만, 왠지 코끝이 시큼해 지는 게 아직은 풀 냄새가 더 좋은 거 같다.
호적에는 20평짜리 집으로 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10평 도 채 되질 않는다. 그저 말만 20평일 뿐, 판자대기로 두개의 벽을 세워 억지로 나눠 놓은 한 칸방에 지나질 않는다. 처음으로 이사 왔을 때, 소민언니에 아빠가 한 말이 기억난다.
“저 영감은 지 마누라한테 꽉 쥐여살고, 저 아지매는 지독허게 억척스럽제.”
내가보기엔 소민언니네 아빠도 만만치 않은 거 같았다. 뚜렷한 직장도 없이 엄마의 눈칫밥은 제대로 받아먹고 살고 있는 우리 아빠와 처지가 똑같기 때문이다. 유유상종이라고, 요새 아빠와 아저씨가 부쩍 이도 친해진 거 같다. 밥을 먹고 항상 식후담배는 필수인 아빠와 아저씨, 마당 한 구석에서 뭐 그리도 다정하게 주고받는 얘기인지, 얼굴엔 활력이 가득해있다. 철진이와 마당에서 그리고 놀 만한 나뭇가지를 찾기위해 뒤뜰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여보게, 저쪽 오동도로 내려가면 만선 하나면 이제 우리는 때부자 되는것이여.”
“글쎄……. 근데 그게 가능할까요? 지금 식구들 부양하기도 힘든데, 어느 세월에 만선이 될 거라 믿고 있어요?”
“아 이 답답한 양반아, 그게 아니지. 지금 식구들을 여수까지 다 끌고 갈 셈이여? 그게 아니란 말여. 당신이랑 나, 이렇게 둘만 가서 만선해서 돌아오면 되는 것이지 ”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할 일 같네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는 아빠의 손이 불안해 보인다. 그때 만약 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아빠가 깊게 내쉰 한숨이 우리와 멀어질 징조였다면 소민언니네 아저씨를 입으로 물고 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빠를 잃은 기분, 예전의 엄마의 참모습을 잃은 기분, 내 둘도 없던 소민언니의 존재감마저 이젠 거부감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따야, 놀랬잖냐. 철진이랑 앞마당에서 놀지 뭣허러 이 뒷마당까지 들여대?”
아저씨의 말에 아빠는 내게 보이고 있던 옆모습에서 앞모습으로 돌린다.
“윤주야. 아빠 아저씨랑 철진이랑 나가서 놀아.”
급하게, 아주 급하게 내뱉어 버리고는 금세 뒤를 돌아버린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옆모습마저 이젠 멀어 진게다. 뭔가 모를 불안감에, 아빠가 그렇게 냉랭한 말투로 뱉은 말이 내겐 여간 슬픈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벅차오른 감정을 그땐 나도 주체 할 수 없었나보다. 난 큰소리로 울어 제꼈고, 놀란 아빠와 아저씨는 마치 제들의 계획이라도 적군에게 들통 난 듯, 노심초사였다.
아저씨는 마치 미리 준비해둔 양 호주머니에서 박하사탕 몇 알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윤주야. 금방 올껴. 울제 말고 니 아빠 부자 되면 같이 살어라.”
지금도 같이 살고 있는데 통 무슨 소린지 모를 일이었다. 아빠도 마치 선잠 들어있던 아이를 깨워 어찌할 바 모르는 초보 엄마보다 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가 억지로 내 입안으로 쳐 넣은 박하사탕에 난 금세 눈물이 그쳤다. 사탕이 맛있어서가 아닌 코끝이 화한 그 느낌이 벌써 3번째 인고로 꽤 익숙해진 이집 분위기인 듯,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러나 그건 일종의 환각이었다. 만약 그 사탕으로 느껴진 진정으로 인해 아빠가 오동도로 떠나 버릴 그 발목을 쥐어 잡고 있던 내 손에 힘이 풀렸다면 말이다. 아니, 만약이 아니라 실로 그랬다. 내가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 사탕을 아빠가 담뱃불을 끄듯이 빨간 구두로 짓눌렀을 텐데 말이다. 어리석게도 그땐 몰랐다 …….
별로 울지도 않았는데 꽤 목이 칼칼했다. 자기 전에 항상 물이 가득한 물 단지를 머리맡에 두고 자지만, 오늘은 왠지 방 안인 건조한게 단지 안에는 메마름만 가득한 거 같다. 잠결에 들으니 내 왼편에서 자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아빠가 수차례 벌컥벌컥 들이 킨 모양이다.
“당신 오늘 저녁 짜게 먹었어? 왜 그렇게 물배를 채워요.”
눈은 감고, 몸은 뒤척이고 잠꼬대인지, 실로 아빠한테 건네는 말인지 분간되지 않을 엄마의 말이었다.
“그런가? 오늘 꽃게장이 좀 짜긴 했지?”
아빠의 물음에 방에는 적막함이 가득한 걸 보니 역시나 엄마의 말은 잠결에 한 말인 듯 싶다. 물을 마시러 곧장 눈을 떳다가 아빠의 숨소리가 센 걸 보니 아빠는 아직 잠에 들지 않았나보다 하는 생각에 곧장 도로 잠을 청했다.
“윤주야, 빨리 학교가자.”
오늘따라 가래 가득 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민언니의 목소리에 깨어 머리맡에 있는 시계를 보니 ‘어이쿠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겉잠을 자서인지 몸도 뿌드드 한 게 영 개운치 않았다. 아빠랑 엄마는 언제 일어났는지 베게 두 개와 솜이불 뿐 나 외에 아무런 생명체는 없었다. 이제 막 아침상을 챙겨 오는 듯, 엄마는 방문을 발로 박차고 들어왔다. 이사 왔을 초기에는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구두를 하루에 두 번 꼴로 바꿔 신고 다니더니만, 이제는 그 생활도 꽤 귀찮아졌나보다. 이제는 앞이 막힌 파란색 욕조실내화도 제법 신고 다닐 줄 알고, 밑이 멋스럽게 퍼진 나팔바지가 줄을 잇던 엄마의 옷장에도 어느새 밑 끝이 고무줄 처리된 요란한 프린트가 잔뜩 인 바지도 몇 벌 옷장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지도 꽤 되었다.
“니 아빠는 언제 나갔기에 깜깜 무소식이라니…….”
문득 어제 아저씨와 아빠와의 대화내용이 생각났다. 뭔가 모를 찝찝함에 이불을 걷히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큰일이다. 밖에선 소민언니가 불러대고, 어제 아저씨가 준 사탕을 그냥 주머니에 넣고 잤더니만 사탕이 바지주머니에서 녹아들어 씻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 같았다. 칠칠맞다는 엄마의 핀잔에 괜스레 짜증을 토로하고 싶어 방문을 박차고 문 앞에 서있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먼저가, 나 좀 씻고 갈게”
“응 그래. 언니 천천히 가고 있을 테니까 나와.”
“정윤주. 빨리 안 씻고 밥 안 먹어?”
대전에선 길가면서 큰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사람마저 교양 없다며 쓸데없이 핀잔을 늘어 놓던 엄마도 이젠 제법 소리도 지른다. 바지를 갈아입고 씻었는데도 찐득거림은 여전하다.
“제대로 씻었는데…….”
혼잣말을 되뇌며 마당 수돗가에 서있던 내게 대문 틈으로 아빠가 얼굴을 비쳤다.
“아빠.”
반가워 외치는 소리에 아빠는 두지를 치켜세워 재빠르게 입으로 갖다대었다. 문득 어제부터 느껴지는 아빠의 냉정함에 아침부터 눈물이 나려 했다. 그러고는 이내 자기 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해보였다.
“윤주야. 아빠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윤주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거야. 아빠 보고 싶어도 쪼금만 참아.”
눈시울이 차오를 대로 차오른 아빠의 눈 속에서 쓸데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아빠 어디가?”
“아니. 금방 올 거야. 윤주 그때동안 엄마 말씀 잘 듣고. 아프면 안 되고, 엄마 말씀 잘 듣고 , 아프면 안돼…….”
그러더니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빠의 칙칙한 검은 잠바에서 왠지 모를 박하 향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 바지에서 나는 냄새일지도 모르겠지만 …….
“아빠 이제 가야겠다. 윤주 잘 있어.”
“엄마는 안보고 가? ”
“…….”
“엄마한테는 인사 안 하냐고요.”
“했어. 아빠 갈게”
내가 손 흔들려 들은 손이 부끄럽게 아빠는 그렇게 뒤를 돌아봤다. 바삐, 마치 소금 길의 아이들이 방과 후 뛰쳐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아빠는 뒤를 돌아보았다. 바지에 날카로운 칼 주름이 잡혀서 인지 아빠의 걸음이 모진 바람에도 불구하고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빠. 잘 가. 안녕……."
내가 지켜본 소금 길의 아이들, 점처럼 멀어질 때 까지 그렇게 대문 앞에 서서 인사치레를 끝내고 들어오니 엄마는 차려놓은 밥상을 무색하게 누워 있었다. 어깨가 규칙적이게 들썩이는 걸 보니 뭔가 이상했다.
“엄마. 밥 안 먹어?”
“……. 빨리 먹고 학교 가.”
“엄마는 ?”
“있다가 먹을 테니까 빨리 먹고 가라고. …….
그 사람은 어촌이 뭐가 좋다고 이 산촌을 떠나.”
어제 아빠가 뱉은 냉랭한 말투, 과연 엄마도 같았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푸념에 갑자기 확 밀려드는 짜증으로 교복을 급하게 갈아입은 후, 집을 나섰다.
그렇다. 어제 마당 뒤에서 아빠랑 아저씨랑 하던 얘기가 바로 그 얘기다. 마치 떠나기를 예고하듯이 그렇게 모두 발걸음을 서둘러 떠난 것이다. 제길……. 쓸데없이 눈물바람이다. 투벅투벅하게, 늦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어가는 길 앞엔 소민언니가 보인다. 큰 덩치가 작은 가방이 무색하다. 앞서서 가는 소민언니가 잔뜩 일으킨 먼지바람이 내 빨간 구두 앞 발에 그대로 가라앉는다. 그게 싫었다. 소민 언니가 나보다 앞서가는 게 ……. 그래서 냅다 달려갔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우리 아빠가 니 아빠 따라 간 거라고. 너 미워. 미워”
소민언니도 이미 알고 있었나보다. 벌써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급하게 훔쳐대던 언니의 두터운 손바닥이 아직도 기억난다. 더 달려가려 했지만 힘이 없었다. 달릴 때 마다 느껴지는 박하향도 싫었다. 들입다 주저앉아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고기에 배 가득하게 채우시면 집에 오신대. 윤주야. 언니랑 그때까지 같이 살면서 기다리자. 응?”
정신없이 목 놓아 울었다. 그러다가 그래도 지쳤나보다. 꽤 깊은 잠을 잤는지, 어제 잤던 선잠보다 훨씬 개운했다. 모두 알고 있었는데, 왜 나만 몰랐을까 하는 배신감과 증오감이 차오를 대로 차올라 독기 가득했지만, 이내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아빠가 밉다며 아빠의 손때 묻은 물건을 만지려 들지도 않았고, 평소에 둥글둥글한 성격의 아빠라 그리 깔끔하게 집을 치우지도 못했다. 그렇다. 모두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그러니까 아빠가 떠난 중학교 2학년의 겨울 이후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날 통속적으로 일컫는 ‘결병증’에 걸린 셈이다. 실 핀을 꽂아도 비스듬히 꽂는 법이 없었으며, 참빗으로 곱게 내려 빗은 머리카락이 혹여 바닥에라도 떨어지면 그것들은 곧장 손으로 쓸어 담겨 마당으로 던져졌다.
처음 이사 올 때 엄마는 유별나게 우리 집에서 깔끔했다. 그래서 집안일이 수북해도 언제나 구두 소리를 내고 다녔고, 처음 좌변기를 보고 기겁하던 엄마의 표정이 생생하다. 그런 엄마가 이제 순박한 시골 아줌마가 다 되어버렸는데, 정작 난 엄마의 깔끔함이 전이되었는지 옆에 있는 사람마저 피곤해 질 정도이다. 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를 겪어봐서 알고, 내 스스로도 피곤함을 느끼고 있으니 ……. 어쩔 수 없다. 아빠라는 존재를 잊기 위해선, 그리고 엄마를 시골 푸근한 아줌마로 지켜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2년 전 고창을 떠나 이 곳으로 온 것이다. 엄마는 밤낮 가리지 않고 부업도 여러 개 두어 술로 자신을 달래고 달래어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대전으로 다시 올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없이, 그렇게 소리 없이 떠나왔다. 소민언니를 보면 또다시 차오를 눈물도, 연민감도 이젠 모두 쓸모없는 휴지조각이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끝낸 후 한참 청소중인 엄마를 도와 보지 않는 책들을 정리하러 창고로 들어갔다. 그 곳엔 추억이 서려있는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선반 위에 자리하고 있던 통기타가 눈에 띄었다. 아직 내 방은 청소가 시작되지 않은 터라 먼지 묻은 통기타를 들고 가도 환영받을 만 했다. 풀어진 줄을 조이고, 물기 있는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내니 이제야 좀 통기타의 자태가 드러난다. 6개의 줄을 한번 손끝으로 긁어보니 아직은 꽤 쓸만한 소리다. C 코드를 잡아 보니 얼핏 ‘벌꿀길’노래가 생각난다.
“벌꿀길의 단내가 코를 찔러요. 윤주네집…….”
“딩동 딩동”
현관 초인종 소리가 오랜만에 들리는 거 같았다.
“윤주야. 엄마 세탁기 보니까 나가봐. ”
엄마는 지금 베란다에 있는지 소리를 키워 외치고 있었다. 치던 통기타를 내려놓고 현관문을 열었다.
“소포 왔는데요. 여기 도장 좀 찍어주세요.”
마침 어제 은행갈 때 입은 바지를 입고 있어서 주머니 속에 있던 도장을 꺼냈다.
“수고하세요.”
형식 같은 인사를 건넨 후, 현관문을 닫았다.
“누구야?”
문 닫힌 베란다에서 엄마가 외친다.
“소포인데.”
주소를 보니 우리 집은 맞다. 그런데 보내는 주소가 명확하지 않으니, 좀 이상했다. 여수에서 보내온 물건인데, 주소는 여수가 전부일 뿐, 대신 낯익은 번호가 찍혀있었다.
“끝자리가 2456…….”
말끝을 흐리다 보니 기억이 났다. 고창에서 살았을 때의 집 전화번호와 끝자리가 같았다. 문득 고창생각이 나니, 논두렁의 짙은 풀냄새와 박하 향이 코끝으로 전해졌다. 궁금한 터라 급하게 포장지를 찍어봤다.
거기엔 낯익은 필체로 적힌 내 이름이 있었다.
“윤주야, 아빠 만선 했어…….”
뒤로 이어지는 글자는 많은 거 같은데 , 눈에 쓸데없는 것이 뿌옇게 차 올랐다. 그래서 읽지 못했다 . 그래서 불렀다.
“엄마 …….”
제가 이 소설을 다른곳에 응모하고자 합니다 .
쓴 평가도 마다하지 않고 지적해주셨으면해요 .
그리고 소설 제목을 만선 보다는 좀 더 다른 것으로 했으면 하는데 ..
추천부탁드립니다 .
첫댓글 제목 괜찮은데요???? ㅇㅁㅇ...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라든지 묘사의 숙련도라든지 하는 면에 있어서 상당히 잘된 작품입니다. 다만 소설을 쓰자면 긴 호흡을 감당해낼 수 있는 끈기와 인내가 필수적인데, 그런 면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느껴집니다. 중간중간 정확치 않은 문장(특히 긴 문장일수록)이 눈에 띕니다. 완성하고 나서 힘에 부쳐 다시 꼼꼼
히 다시 들여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결국 제목과 관련되는 문젠데), 결정적으로 작품의 힘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선을 이루고 싶은 거야 당연한 꿈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거꾸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행복한 결말을 맺고 싶다는, 그래서 이 사회가 그래도 살만하
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소설은 구체적인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결말 처리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인 희망사항을 무리하게 끼워 넣은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비루하면 비루한 대로 그려내야겠죠. 삶의 무게가 그렇게 쉽게 풀리는 건 아니거든요.
묘사의 숙련도와 이야기의 짜임새 에 상당히 괜찮은 작품입니다. 단어도 적절히 이용하셨고.... 중-고가ㅏ 이정도 실력이라면 굉장하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