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의 행복
목련화
어렸을 때 부모님의 가르침은 늘 ‘정직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공무원이신 아버지는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5남매 중 위로부터 세 남매를 무릎 꿇려 앉히시고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이나 잘못한 일이 없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우리가 잘못한 일이 없거나 학교에서 상을 받아온 날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붕어빵이나 호떡, 잡채 튀김을 사주시는 등의 적절한 보상을 해주시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어렸을 적 이야기다.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는 동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셨고,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학비가 없어서 학교 교정이나 학교 텃밭을 가꾸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꽁보리밥에 칠게가 도시락 반찬의 전부여서 도시락을 꺼내면 책가방이 온통 게장 국물로 뒤범벅이 되는 난처한 상황이 여러 번이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농사꾼이신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늘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믿고 노동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 공무원이 되셨다고 하셨다. 그러니 너희들에게는 아버지의 가난과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고 대학까지 보내서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시겠노라 강조하셨었다.
아버지는 또 초등학교 고학년인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에게 TV 프로그램인 장학 퀴즈에 나오는 문제를 맞혀 보게 하시거나 글씨는 바른 마음에서 나오는 거라 말씀하시며 신문지를 4절로 오려서 시커먼 철끈으로 묶어 붓글씨 쓰는 연습을 많이 시키셨다. 나는 가끔 붓글씨 쓰는 시간이 싫어서 배가 아프다거나 어떤 이유를 대어서 그 시간을 회피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가르침 중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자신 있게 외울 수 있는 것은 주희 선생의 ‘권학문’의 일부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 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 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 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 이추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못가에 돋은 풀이 봄 꿈에서 깨기도 전에
섬돌 앞 오동나무 잎 벌써 가을 소리로구나.”
아버지께서 강조해서 풀이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내용을 그때부터 중얼중얼 반복적으로 외웠던 것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시간이 훌쩍 지나 되돌아봐도 아버지의 교육 방법은 모두 옳았다. 일찍부터 학문에 때가 있다는 것과 시간이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미리 경계하신 의도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나는 4~50대의 그때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를 더 먹었다. 두 딸을 둔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훌륭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나처럼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자식 교육을 하고 있거나 해왔는지 스스로 묻고 싶다. 당장의 현실적인 좁은 시야로 아이들에게 깊이 있는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해주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든다. 아버지의 정직하게 살라는 교훈은 지금도 나의 정신을 붙잡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해 주신 아버지는 57세라는 너무나 젊은 연세에 우리 곁을 떠나셨기에 내 생각은 작은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도 71세에 우리를 떠나셨고, 같이 피를 나눈 둘째 오빠는 52세에 우리 곁을 떠났다. 절통한 마음이 아직도 아물지 않아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 건강해지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버지도 일 욕심이 많으셔서 토요일 오후 늦게까지 과로하셨던 이유로, 둘째 오빠도 아버지랑 똑같이 과로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탓에 일찍 이 세상을 뜨셨기에 나는 어느 때는 건강 염려증 내지는 건강 지상주의자처럼 생각할 때가 무척 많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여유 있는 삶일지라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을 잘 추스르고 건강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지 않을까?
첫댓글 글로 만나는 목련화님은 일촌도 잘 쪼개어 쓰는 부지런한 분이라 느껴집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이제 알겠습니다. 훌륭하신 아버님의 교훈을 거름으로 큰 나무로 당당히 서 있는 분 같습니다. 속히 만나 뵙고 싶습니다.
네! 선생님!
부지런하지는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삽니다.
응원 글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선생님 뵐 수 있겠지요?
저도 어서 뵙고 싶답니다.
새로 오픈 하신 2호점 대박 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지금 이자리까지 오셨군요. 많은 제자들에게도 그 가르침을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야 하겠습니다. 추운 겨울 아직은 운동신경도 좋고 젊지만 조심하세요. 내 자신을 많이 아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