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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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3층에서 내려다본
경천사 10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3층에 있는
일본 전시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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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있는 불교 사찰인
뵤도인(平等院)
뵤도인(平等院)
완공 1052년
뵤도인(平等院)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있는 불교 사원이다.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후기 헤이안 시대에 지어졌으며, 17세기 이래 정토종과 천태종을 겸했고, 현재는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불교 사원이다.
역사
뵤도인은 본디 헤이안 시대인 998년에 고위 관리였던 미나모토노 시게노부의 시골 별장으로 지었다. 그가 죽은 이후 후지와라 일족의 가장 강력한 권력자 가운데 하나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시게노부의 아내에게서 이 별장을 사들였고, 이후 미치나가 아들인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이를 1052년에 불교 사원으로 바꾸었다. 뵤도인은 일본의 세계유산들 중 하나로서, 약 1,000여 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한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열반에 든 이후의 시대를 3개로 나누어 이를 삼시(三時)라 칭했는데, 그 중 부처의 가르침이 쇠퇴하고 혼란이 가중되는 마지막 3번째 시대를 말법시(末法時)라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1052년을 말법시의 시작으로 보았고, 이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결과적으로 권력자들과 일반 서민들은 불도에 더욱 귀의하는 성향이 강해졌고, 극락 정토로 향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수행하였다. 이같은 사회적 풍토로 인하여 당시 뵤도인이 사찰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뵤도인은 2.4m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 아미타 대불을 그 안에 모신 형태로 지어졌다. 참고로 이 아미타불은 헤이안 시대 당시 가장 저명한 불상 조각가였던 조초가 제작하였다.
1180년, 미나모토노 요리마사가 막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결국 뵤도인 안으로 쫓겨 들어가 안에서 할복 자살하였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처음으로 할복 자살을 한 사례였고, 이 이후부터 할복이 명예로운 죽음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1336년에 아시카가 일족과 맞서 싸우던 사무라이,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사찰 주변에 불을 놓았고, 이로 인하여 대부분의 경내 건물들이 사라졌다.
뵤도인은 가마쿠라 시대 동안 거대한 사찰로 변모한다. 이 때 사찰을 복구하기 위하여 1496년에 정토원, 1640년에 나한당이 새롭게 세워진다. 1670년에는 평등원의 중심 건물인 봉황당이 정문을 갈아끼우는 등의 작업을 거치며 완전히 재증축되었다. 당시 정토원은 불교 정토종이 관할하고 있었고, 나한당은 천태종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 두 종파는 서로 협력을 통하여 뵤도인을 지극정성으로 관리하였다. 1698년, 교토 우지에 큰 불이 났고, 뵤도인도 크게 훼손되었다. 봉황당의 벽과 문들이 타 무너지는 등 피해를 입었으나, 오히려 이 사건 이후로 사람들이 뵤도인을 다시 세워 부처님의 공력을 빌려 혼란을 극복하겠다는 마음을 먹어, 거의 즉시 복구되었다.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 동안 뵤도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봉황당과 아미타불은 1951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특히 봉황당은 10엔 동전의 도안에도 들어갔다. 이후 뵤도인의 종, 구름 속에서 기도하는 보살상, 벽과 문들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도 국보로 지정되었다. 뵤도인은 1994년에 고도 교토의 문화재들 중 일부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그 이후에도 정원의 개축, 아미타불, 봉황당 등에 대한 공사가 헤이세이 시대까지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뵤도인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봉황당(鳳凰堂)이다. 1053년에 처음으로 건설되었으며, 고요한 연못에 둘러싸여 있어 인상적인 시각적, 심미적 효과를 준다. 현재 뵤도인 경내에 본 모습을 유지하며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이기도 하다. 참고로 1053년에 이와 함께 지어진 건물들은 1336년에 모두 불에 타 전소하였다.
봉황당
뵤도인의 주 건물인 봉황당은 중당과 좌우의 복도, 중당 배후의 미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당에는 아미타 여래상이 놓여 있으며, 봉황당의 지붕에는 금빛 봉황상이 서 있다. 봉황당은 일본 역사상 가장 문화가 크게 진보했던 후지와라 섭정기의 대표적인 문화재들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가장 화려한 건물로 인정받기도 한다. 봉황당은 당시 후지와라 섭정기 시대의 불당의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중당, 좌우의 L자형 복도와 그 뒤의 미랑으로 이어진 불당과 그 앞에 자리한 거대한 인공 연못이 주요한 건축 양식이었다. 에도 막부 시기 초부터, 봉황당의 지붕에 황금 봉황이 놓여있기도 하고, 특히 봉황당이 양 옆에 있는 복도를 날개로, 후면의 미랑을 꼬리로 하는 거대한 봉황의 형상과 닮았다 하여 이 건물을 '봉황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봉황당 내부에는 아미타불상이 높은 연단에 놓여 있다. 아미타불상은 편백으로 만들어졌고 금으로 덮여 있다. 이것은 당대 가장 유명한 불상 제작자 조초가 만들었는데 그는 이 불상을 만들 적에 새로운 금속 조합 비율과, 불상의 재료가 될 나무들을 서로 정교하게 깎아 안쪽에서부터 완벽하게 짜맞추어지게 하는 '요세기'라는 이름의 공법을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불상은 머리부터 무릎까지 약 3미터 높이이다. 등을 아주 약간 굳힌 채로 명상을 취하는 자세를 하고 있으며, 몸에서는 긴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부처상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인소'라고도 하는데, 이는 양 손을 모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은 위쪽을 향하게 한 후 엄지와 검지가 맞닿게 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는 지혜와 명상, 그리고 집중을 상징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불상의 이마 사이에 있는 백호(하얀 점)은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하며,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내려보며 이를 구제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불상이 고요히 띠고 있는 옅은 웃음은 해탈의 평온함을 나타낸 것이고,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로 인하여 이를 올려다보는 관람객들의 마음 속에 편안함과 자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다. 불상의 머리카락은 짧은 곱슬머리이다.
봉황당의 벽에는 보살들을 묘사한 조각들이 있는데, 이는 이 보살들이 아미타불이 고통에 빠진 중생들의 영혼을 구제하러 극락정토에서부터 내려오는 길을 함께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평등원의 목조 문 위에 그려준 그림들은 아미타불이 세상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야마토에 그림들의 초기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그 외에도 옛 교토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봉황당의 앞에는 조도시키 정원과 호수가 있다. 1997년에는 고고학적 목적으로 발굴되기도 하였다. 봉황당이 동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고려하면, 이 연못을 지나야만 극락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상징으로 보는 해석도 존재한다.
관음당
관음당은 수수한 외관을 지니고 있으나, 문화적 중요성으로는 봉황당에 못지 않다. 1230년 가마쿠라 시대 초에 사찰의 본전 터에 세워졌으며, 서까래가 2단으로 된 덴표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답습하고 있다. 현재에는 보수 공사로 인하여 관람객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 건물을 복도의 남쪽 끝 연못가에 세우는 건물은 쓰리도노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양림암 서원
양림암 서원은 경내의 부속 건물이다. 에도 시대 초기에 세워졌으며, 노송나무의 껍질로 지붕을 이었다. 이 건물은 옛 모모야마 성의 일부였던 것으로 짐작되며, 이 곳의 벽화는 가노 산세쓰의 작품으로 우지 시 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또한 그 앞의 정원은 호소카와 산사이가 만들었으며, 교토의 명승지들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봉상관
1965년에 개관한 옛 뵤도인 박물관이 점차 노후화됨에 따라, 뵤도인 봉상관이 새로운 뵤도인 박물관으로 2001년 3월 1일에 개관했다. 봉상관은 전 박물관에 비해 훨씬 더 나은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뵤도인에서 나온 다양한 역사 유물들을 최상의 상태로 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곳에서 전시하고 있는 유물들로는 뵤도인 사찰의 종, 구름 위에서 기도하는 26개의 보살상들, 봉황당의 지붕 위에 있던 2개의 황금 봉황상 등이 있다. 이 봉상관은 종교 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박물관이며, 건물 대부분은 지하에 묻혀 있어 박물관은 현대적인 신식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보면 주변의 봉황당 등 옛 건물들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외에도 뛰어난 설계 디자인 덕분에, 이 안에는 충분한 양의 햇빛이 공급되고, 인공적인 빛들도 잘 꾸며져 있어 관람객들이 전시품들을 감상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였다.[5] 일본인들은 장수와 절의 문화적 중요성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10엔 동전에는 뵤도인 봉황당을, 1만엔 지폐에는 봉황당의 지붕 상에 장식되어 있는 봉황을 디자인해 놓았다.
현재 보됴인의 입장료는 성인 600엔이며, 이는 정원과 박물관의 입장료까지 포함한다. 다만 봉황당으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300엔을 추가적으로 더 받으며, 문 주변에서 구매할 수 있다. 투어는 완전히 일본어로만 되어있으나, 다만 영어 가이드북이 옆에 놓여있기는 하다.
뵤도인 찻집
뵤도인 경내에는 녹차 등을 파는 찻집이 있다. 이 곳에서 파는 차들은 우지 시나 인근 농장에서 재배한 것들이며, 인증받은 차 전문가들이 이 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최상의 질과 서비스로 차를 대접한다. 이 찻집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지만, 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10시부터 16시 30분까지 영업하며, 16시에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
교토의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1052년에
별장을 불교 사원으로 바꾼
뵤도인(平等院)
교토의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1052년에
별장을 불교 사원으로 바꾼
뵤도인(平等院)
약 3m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아미타 대불을
그 안에 모신
아미타당
마치 극락의 연못에 떠 있는 궁전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물 위에 비추고 있는
아미타당
1951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아미타불
1994년에
고도 교토의 문화재들 중 일부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뵤도인(平等院)
[에도 시대 초기부터
봉황당으로 불렸던 아미타당]
정면에서 바라본 지붕의 모습이
날개를 펼친 봉황과 같다고 해서
봉황당으로 불리게 된
아미타당(봉황당)
지붕 위에
봉황 1쌍의 조형물을 설치한
아미타당(봉황당)
1053년에 만들어진
아미타여래좌상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 조각가인
조초의 작품으로서
현재 남아 있는 조초의 유일한 작품
이 불상을 만들 적에
새로운 금속 조합 비율과,
불상의 재료가 될 나무들을 서로 정교하게 깎아
안쪽에서부터 완벽하게 짜맞춘
'요세기즈쿠리'라는 공법을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아미타여래좌상
일본 조각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
조초의
뵤도인 아미타여래 좌상 제작 기법
[부처상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인소'라고도 하는데,
이는 양 손을 모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은 위쪽을 향하게 한 후
엄지와 검지가 맞닿게 하는
자세를 말한다.]
제작에 목재 여러 개가 사용된
아미타여래좌상
품위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정적인 특징을 보이는
아미타여래좌상
헤이안 후기 불상 양식의 기준이 된
아미타여래좌상
아미타여래의 머리 위에는
꽃잎이 여덟 개 달린 꽃 모양의 큰 거울과
총 66개에 달하는 청동거울이
달려 있다.
거울은
법당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
저녁에는
거울에 법당 안의 촛불까지 반사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미타여래 주위에는
52구의 공양보살상이 'ㄷ'자 모양으로
불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52구의 공양보살상도
1053년에
조초의 공방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52구의 공양보살상은
현재 뵤도인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52구의 보살상 중에서
운중 공양보살상의 모습
박물관에 전시 중인 보살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거나,
물건을 들거나,
합장을 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보살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거나,
물건을 들거나,
합장을 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보살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거나,
물건을 들거나,
합장을 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보살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거나,
물건을 들거나,
합장을 하고 있다.
헤이안 시대의 [속본조왕생전]에는
'극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면, 뵤도인에 가보라'라는
기록이 있다.
헤이안 시대의 [속본조왕생전]에는
'극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면, 뵤도인에 가보라'라는
기록이 있다.
헤이안 시대 사람들은
뵤도인을 극락정토로 여겼다.
뵤도인은
극락세계를 현세에 나타내고자 했던
헤이안 시대의 불교 신앙을
잘 보여준다.
여성용 가마인
온나노리모노
온나노리모노에 관한
설명
일본의 혼례도구
화장도구 수납함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칠]
화장도구 수납함에 관한
안내문
손잡이가 달린 거울 수납상자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칠]
손잡이가 달린 거울 수납상자에 관한
안내문
이를 검게 물들이는 오하구로 화장 도구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칠]
이를 검게 물들이는
오하구로 화장 도구에 관한
안내문
손톱 다듬는 칼 수납함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칠]
손톱 다듬는 칼 수납함에 관한
설명
2024년04월02일(화요일) 서울 [국립 중앙박물관&새남터 순교성지] 탐방기 탐방지 : 서울 [국립 중앙박물관&새남터 순교성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National Museum of Korea, 國立中央博物館) 대한민국의 가장 큰 보물 창고 소재지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휴관일 1월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이용 시간 월ㆍ화ㆍ목ㆍ금요일 09:00 ~ 18:00, 수ㆍ토요일 09:00 ~ 21:00, 일요일ㆍ공휴일 09:00 ~ 19:00. ※2017년 7월 1일부터는 개관시간 9시→10시로 조정. 목차 30평 아파트 1300채 규모의 거대한 박물관 70만 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가장 빠른 타임머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한국의 미소, 반가사유상 역사의 부침에 따라 수난을 당한 사연 많은 탑 눈길 닿는 모든 것이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 명작 박물관 밖도 국보와 보물 천지 체험의 즐거움으로 왁자지껄한 어린이박물관 스마트한 관람을 위한 사전 준비는 홈페이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넓고, 크고, 깊다. '국립', '중앙', 그리고 '박물관'. 그 이름에서도 품위와 무게가 느껴진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보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각지 박물관의 종합관 격이다. 게다가 역사 연표와 영상 등을 활용해 유물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우리 아이의 '역사 공부'에 이만큼 훌륭한 교과서도 없다. 30평 아파트 1300채 규모의 거대한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에 터를 잡기 전까지 숱하게 이전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는 조선총독부 건물(사진에서 광화문 뒤로 보이는 건물로 1995년 철거)을 사용했다. 총 33만 점의 국보급 유물을 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 순위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지 면적이 약 9만 평(30만m²), 총면적(한 건축물의 각 층 바닥 면적의 합계)이 약 4만 1000여 평에 이른다. 계산상으로는 30평 아파트 1300채를 합친 면적이다. 이를 하루 만에 모두 섭렵하겠다는 '욕심'은 접어두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은 다가갈수록 살며시 고개 드는 남산과 서울타워, 국립중앙박물관이 세수하러 나타나는 거울 연못과 박물관 녹지 공간 속 야외석조물정원, 종각, 전통염료식물원, 이웃한 용산 가족공원 등 볼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할아버지 격인 '국립박물관'은 100년 전인 1909년 창경궁에서 태어나 1995년 현재 용산에 자리 잡기까지 전국각지로 피난민이 보따리를 싸듯이 숱하게 이전해왔다. 셋방살이를 견디며 흩어졌던 유물들이 이 자리에 모여 대가족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은 더욱 크다. 70만 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가장 빠른 타임머신 열린 마당 오른편으로 상설전시실이 모여 있는 으뜸홀이 있다. 세 개 층을 어우르며 웅비하 듯 높이 뻗은 천장이 박물관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으뜸홀은 총 여섯 개의 관과 50개의 실로 되어 있다. 이곳에 상설전시된 1만 2000여 점의 유물은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방문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두고 틀린 그림 찾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으뜸홀의 내부는 마치 연극에서 무대의 장막이 걷히고 조명이 환하게 비추는 순간과 닮았다. 으뜸홀 가운데로 곧게 뻗은 '역사의 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전시실이 자리해 있다. 1층에는 선사·고대관과 중·근세관이, 2층에는 서화관과 기증관이, 3층에는 아시아관과 조각·공예관이 있다. 특별히 정해진 관람 순서는 없다. 기호에 따라 선택적으로 하면 되는데, 대부분 1층의 선사·고대관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꼭 챙겨볼 것은 고구려에 관한 전시다. 고구려 땅은 북한과 중국에 걸쳐 있어 우리가 볼 수 있는 유물의 수가 백제와 신라보다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1층의 비밀은 관람객의 동선이 곧 역사의 흐름이라는 점이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현재에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그 세월은 가늠하기 힘든 약 70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부터 불과 100여 년 전의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휴대폰에 있는 스톱워치로 입구에서 1층 끝까지 관람 시간을 재보자. 70만 년의 세월을 얼마나 빠른 타임머신을 타고 지나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삼국시대 전시실에 놓인 영산강 지역의 대형 독널(옹관)을 아이와 함께 살펴보자. 설명에 앞서 아이에게 질문을 건네보자. "거꾸로 뒤집어져 있는 이 항아리는 무엇에 쓰였던 걸까?" 독널은 항아리나 독 두 개를 맞붙여 만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관했던 관(館)이다.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도 우리 조상들은 독을 관으로 이용했다. 대형 독은 높이가 어른 키만 하다. 전시된 독널은 삼국시대 영산강 인근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땅에 묻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본래 독 두 개가 입구를 맞대고 캡슐처럼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독널의 크기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행사하던 권력의 크기를 대변한다. 독널을 통해 아이에게 죽음과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려줄 수 있다. 아이는 열 살이 넘으면 죽음에 대한 실제 개념을 형성한다. 이때 '죽음'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회피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주자. "떠나버렸어"와 같은 모호한 말보다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국의 미소,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았으면 하는 것은 바로 반가사유상이다. 서양에 모나리자의 미소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금동일월식삼산관사유상(국보 제78호), 금동연화관사유상(국보 제83호)의 미소가 있다. 이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동시에 만나볼 수 없다. 둘을 교체하며 전시하기 때문인데, 자주 방문해 두 반가사유상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은 여성미가,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은 남성미가 감돈다. 이름은 머리에 쓴 보관의 형태에 따라 붙여졌다. 두 반가사유상 모두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위에 포개 얹고 오른손은 뺨에 댄 채 명상에 잠겨 있다. 입가에 머금은 생기 있는 미소, 살아 숨 쉬는 듯한 표정, 부드럽고 유려한 옷 주름, 상체와 하체의 완벽한 조화, 손과 발의 섬세하고 미묘한 움직임 등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 국보 제78호, 제83호 반가사유상은 동양불교 조각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물 중 하나다. 역사의 부침에 따라 수난을 당한 사연 많은 탑 역사의 길을 따라 중앙통로에 보이는 거대한 석탑은 1348년(고려 충목왕 4년) 건립된 경천사 십층석탑(국보 제86호)이다. 경기도 부소산 경천사 터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다나카 미쓰아키가 불법으로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져갔었다고 한다. 다행히 일제강점기가 끝나기 전에 탑을 돌려받았으나, 그 후 오랫동안 경복궁에 방치되어 있었다. 1960년에 탑을 다시 세우고 1995년에 복원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신라 탑의 형식을 따르되, 고려 말 유입된 원나라 문화도 반영되어 있다.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전체적인 균형감이 뛰어나고 우아하다. 마치 이곳의 모든 문화재를 호위하는 무사 같기도 하다. 눈길 닿는 모든 것이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 명작 2층 서화관은 서예, 회화, 불교회화, 사랑방 등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 명작을 관람할 수 있다. 문인과 선비들은 글씨가 정신과 인격을 반영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서예는 예술 활동이면서 동시에 정신을 수양하는 과정이었다. 서예 작품을 보면서 선의 기세에 따라 달라지는 감흥을 아이와 이야기해보자. 회화실은 전시품이 가장 자주 교체되는 전시실이다. 조선시대의 회화를 풍속화, 초상화, 산수화, 화조·동물화, 사군자화, 궁중장식화와 민화 등 그림의 소재에 따라 세분화하여 전시하고 있다. 관람 전 아이와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꼽아보기로 하는 것도 좋겠다. 3층 공예·조각관에는 백자실, 분청사기실, 청자실, 금속공예실 등이 있다. 불교조각실에서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한국 불교 조각의 시대적인 흐름과 함께 불교 도상에 따른 주제별 특징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밖도 국보와 보물 천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귀중한 유물은 이중삼중으로 안전장치를 하고 실내 유리관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박물관의 야외 석조정원에도 국보와 보물이 가득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팔각 집 모양의 승탑인 염거화상 탑(국보 제104호)을 비롯해 고려 태조 왕건이 가장 공들여 세운 흥법사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제365호), 개성에서 옮겨온 것으로 고려 석탑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남계원 칠층석탑(국보 제100호),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종으로 알려진 보신각종(보물 제2호) 등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 문화재의 백미로 손꼽힌다. 체험의 즐거움으로 왁자지껄한 어린이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또 다른 자랑은 어린이박물관이다. 상설전시장에 전시된 유물을 어린이들이 직접 만져보고 즐길 수 있도록 복제하여 전시해 놓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여섯 번 매회 한 시간 20분씩 300명이 선착순 입장한다. 100명은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받고, 200명은 현장에서 표를 배부한다. 어린이박물관은 아이들 세상이다. 다소 엄숙한 느낌의 상설전시장보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곳이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집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따끈따끈, 삶의 보금자리', 농기구의 발전과 생활 양식의 변화를 학습해보는 공간인 '밥을 담는 그릇', 시대별 다양한 장신구, 금관, 복식 등을 체험하고 과거 사람들이 입었던 옷을 살펴보는 '고운 우리 옷', 음악을 통해 문화를 배우는 '마음과 영혼의 소리', 전쟁에 사용된 무기와 갑옷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무기와 무사들', 동력을 이용한 에너지 생성을 직접 체험해보는 '자연 에너지 놀이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밖에 책도 읽고 박물관 신문도 만들어볼 수 있는 '작은 쉼터, 어린이들의 도서공간'이 있고 박물관 선생님들과 함께 즐거운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어린이 교실' 등 다양한 체험 거리도 준비되어 있다. 어린이박물관에서는 기념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매표소 맞은편에는 '도시락 쉼터'가 있으니, 허기를 달래가면서 신 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미리 먹을거리를 준비해와도 좋겠다. 스마트한 관람을 위한 사전 준비는 홈페이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해설은 대표 유물과 전시관별로 구성되어 있고, 오전 오후 각 2회 정도 열린다. 야외 석조물 해설은 봄가을 매주 토요일에만 진행된다. 이 밖에 예약이 필요한 '박물관 명품 유물 산책' 해설과 '이야기가 있는 전시 해설 스마트 큐레이터'도 꼭 들어봄 직하다. '이야기가 있는 전시 해설 스마트 큐레이터'는 관장이 추천한 국립중앙박물관 명품 유물 속에 담긴 숨은 이야기 등 유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 당장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하고, 회원 가입도 미리 해두자. 예약과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서 회원 가입은 필수다. 또 홈페이지에는 미리 살펴볼 자료가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다. 알차게 구성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만 참여해도 우리 아이의 역사, 문화 교육은 별도의 학습이 필요 없을 정도다. 스마트폰 이용자라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해설 '스마트 투어 가이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가면, 안내데스크에서 따로 음성안내기를 대여하지 않아도 된다. 박물관 영상·음성안내기는 관람 전날까지 예매해야 대여할 수 있다. 관람시간 월, 화, 목, 금, 일요일: 10:00 ~ 18:00 (입장 마감: 17:30) 수, 토요일: 10:00 ~ 21:00 (입장 마감: 20:30) 옥외 전시장(정원)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휴관일 및 휴실일 휴관일: 1월1일, 설날(2.10.), 추석(9.17.) 상설전시관 정기휴실일: 매년 4월, 11월(첫째 월요일) 상설전시관 내 특별전시실 휴실 기획전시관(특별전시 미운영시 휴실), 야외전시장은 정상 개관 2024년 휴실일: 4.1.(월), 11.4.(월) 관람료 : 무료 상설전시관, 어린이박물관, 무료 특별전시 해당 유료 : 유료 특별전시 해당 관람권 구입하는 곳: 기획전시실 앞 매표소 관람권 판매시간 :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학생단체관람 안내 초·중·고 학생단체(30명 이상)의 박물관 관람은 사전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사전예약하지 않은 학생단체는 입장 불가) 상설전시실 층별 안내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장은총 7개의 관과 39개의 실로 구성되어 9,884점의 유물을 전시하여 제공하고 있으며 전시물은외부전시일정 및 유물의 보존 상태를 위하여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상설 전시장은누구나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1층 ○중·근세관 ○선사·고대관 중·근세관 고려, 조선, 대한제국실로 꾸며진 북쪽 전시공간은 당시의 역사자료를 관람객이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사·고대관 인류가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남북국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통사적 전시 공간입니다 2층 ○서화관 ○사유의방 ○기증관 ○실감2관 서화관은 서화, 불교 회화, 목칠공예 등 선과 색채로 발휘된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유의 방은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입니다. 기증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문화재를 전시하여 기증자들을 기리며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공간입니다. ※VR체험 예약 (디지털 실감 영상관 2) ※ 온라인접수는 서버시간을 기준으로 합니다. 1 VR체험은 디지털 실감 영상관 2관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별도 관람료는 없습니다. 2 VR체험은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가상현실(VR) 체험을 제외한 디지털 실감 영상관 콘텐츠는 예약 없이 관람 가능합니다. 3 예약은 관람일 30일 전부터 가능하며, 회차 당 이용 인원은 6명입니다. 4 예약은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회원 가입 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5 1회 예약 가능 인원은 최대 4명입니다. 6 아이디 당 1일 1회의 예약만 가능합니다. 7 00:00~00:30에는 시스템 점검으로 당일 예약을 할 수 없습니다. 8 예약과 취소는 회차 시작 전까지 가능합니다. 9 예약 시간 이후 도착하실 경우, VR 체험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10 VR체험은 1회 1종만 가능하며 입장 순서에 따라 콘텐츠 주제 선택에 제한이 생길 수 있습니다. 11 VR 체험은 이용자 안전과 원활한 체험을 위해 8세 이상, 키 130cm 이상인 경우만 가능합니다. 12 VR 체험은 양 손 및 몸의 움직임이 필요한 체험이므로 이용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13 장비 소독 및 기기 교체 등 쾌적한 체험 환경 유지를 위한 1일 2회(12:30-13:00, 15:30-16:00) 점검 시간을 운영합니다. 14 문의전화 디지털 실감 영상관 2 ☎ 02-2077-9093 3층 ○조각·공예관 ○세계문화관 조각·공예관은 한국 불교조각과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 등의 도자공예 그리고 금속 공예문화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공간입니다. 세계문화관은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인도•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전시한 공간입니다 지하철로 오는 방법 : 경의중앙선(문산-용문) 이촌역 2번 출구로 나와서 국립 중앙박물관까지 도보로 468m 이동 탐방코스 : [이촌역 2번 출구~국립 중앙박물관 서문~거울못 청자정~국립 한글박물관~석조물정원~미르폭포~보신각종~국립 중앙박물관 으뜸홀~전시동 2층 [사유의 방&목칠공예 전시실&불교회화 전시실&서화 전시실]~전시동 3층 세계문화관 [일본 전시실&고대 그리스ꞏ로마 전시실]~국립 중앙박물관 열린마당~국립 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의 [스투파의 숲 –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특별전시~이촌역 2번 출구~(전철)~용산역~(도보로 이동)~새남터순교성지~(도보로 이동)~용산역] 탐방일 : 2024년04월02일(화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서울시 용산구 최저기온 8도C, 최고기온 23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4시간41분 소요) 11:15~12:02 구산역에서 6호선을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가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여 이촌역으로 간 후 이촌역 2번 출구로 나옴 [47분 소요] 12:02~12:04 서울 용산구 용산동5가 17 번지에 있는 이촌역 2번 출구에서 탐방 출발하여 국립 중앙박물관 서문으로 이동 12:04~12:06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9 번지에 있는 거울못 청자정으로 이동 12:06~12:10 거울못 주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사진촬영 12:10~12:12 국립 한글박물관을 지나서 석조물정원으로 이동 12:12~12:16 석조물정원을 사진촬영 [석조물 정원에는 국보 99호인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보 100호인 남계원 칠층석탑, 보물 166호인 홍제동 오층석탑, 보물 282호인 고달사 쌍사자 석등, 보물 358호인 영전사 보제존자 사리탑 등의 유물들이 야외 전시되어 있다.] 12:16~12:17 미르폭포로 이동 12:17~12:21 보신각종으로 이동 12:21~12:25 보신각종을 사진촬영 12:25~12:31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동의 으뜸홀로 이동 12:31~13:45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동 2층으로 이동해서 [사유의 방&목칠공예 전시실&불교회화 전시실&서화 전시실]의 동선으로 관람 13:45~14:30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동 3층으로 이동해서 세계문화관의 일본 전시실과 고대 그리스ꞏ로마 전시실을 관람 14:30~14:45 국립 중앙박물관 열린마당으로 이동하여 간식 14:45~15:41 국립 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로 이동하여 [스투파의 숲 –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특별전시를 관람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 전시명칭 :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 전시요약 :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특별전으로,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가득찬 남인도 불교미술품 97점을 국내 최초 공개 ○ 전시기간 : 2023. 12. 22.(금)~2024. 4. 14.(일) / 113일간 ○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 출품유물 : 아마라바티, 나가르주나콘다, 파니기리 등 기원전 2세기~기원후 4세기 남인도 지역 불교미술품 97점 ○ 담당부서 : 전시과 류승진(1688-0361) ○ 공동개최: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 관람 시간: 월, 화, 목, 금, 일 10:00 ~ 18:00 [입장 마감 17:30, 발권 마감 17:20, 관람 종료 18:00] / 수, 토 10:00 ~ 21:00 [입장 마감 20:30, 발권 마감 20:20, 관람 종료 21:00] ○ 휴 관 일: 2024.1.1 / 2024.2.10.(설날 당일) 끓어오르듯 뜨겁고 활기찬 나라, 인도 남쪽에서 온 생명력 넘치는 신들의 미술과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원전 5세기,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아래에서 태어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불교는, 수백 년에 걸쳐 데칸 고원을 넘어 남인도로 전해졌습니다. 석가모니의 고향과는 기후도, 풍습도 다른 그곳에서 불교는 생명력 넘치는 신들과 마주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남인도의 윤택한 환경 속에서 싱그럽고 풍만한 미술을 꽃피웠습니다. 기원전 2세기, 아직 석가모니를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나무(보리수)나 발자국만으로 그의 존재를 대신하던 시대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불상이 만들어지던 기원후 4세기까지, 낯설지만 신비로운 이야기로 가득 찬 남인도 불교미술품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옵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함께 준비한 이번 전시에는 뉴델리국립박물관 등 인도 12개 박물관의 소장품 61점을 비롯하여, 영국박물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독일 아시아예술박물관, 그리고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4개국 18개 기관의 소장품 총 97점이 출품됩니다. 21세기 들어 새로이 조사된 파니기리(Phanigiri, Telangana) 유적의 출토품을 포함,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남인도 불교미술품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전시장 내부 혼잡도에 따라 대기 시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전시 해설 - 큐레이터와의 대화(격주 수요일 18시 이후 진행 예정,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참고) - 모든 전시품 설명은 모바일 전시 안내프로그램에 음성으로도 제공됩니다. * 개인 이어폰을 지참하셔야 합니다. ※ 주요 전시품의 상세한 설명은 오디오가이드(유료)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사설 전시해설은 반드시 송수신기를 사용하셔야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자원봉사자 정규 해설: 1월 8일(월) ~ 4월 14(일) 매일 오전 11시, 오후 3시 ] 15:41~15:46 걸어서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이촌역 2번 출구로 이동 15:46~15:52 이촌역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경의중앙선 전철 승차 대기 15:52~15:56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이촌역에서 용산역으로 이동 15:56~16:11 걸어서 용산역에서 서울 용산구 이촌로 80-8 번지에 있는 새남터순교지로 이동 [새남터 성격 : 가톨릭 순교성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지금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앞 한강변의 모래사장으로, 일명 ‘노들’ 또는 한문자로 음역하여 ‘사남기(沙南基)’라고도 한다. 조선시대는 연무장(鍊武場)으로 쓰였으며, 때로는 국사범 등 중죄인의 처형장으로도 사용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이곳에서 처형당한 뒤로 많은 천주교신자들의 순교지가 되었다. 즉, 1839년 기해박해 때 앵베르(Imbert, L.M.J.)·모방(Maubant, P.)·샤스탕(Chastan, J.)이, 1846년 병오박해 때는 첫 한국인 신부이었던 김대건(金大建)과 현석문(玄錫文)이, 1866년 병인박해 때 베르뇌(Berneux, S.F.)와 도리(Dorie, P.H.) 등 6명의 서양인 신부들과 정의배(丁義培)·우세영(禹世英) 등 많은 한국인 신자들이 이곳에서 군문효수에 처하여졌다. 이렇듯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으므로 한국천주교에서는 1950년에 처형지로 추정되는 인근의 땅을 매입하여 순교기념지로 지정하는 동시, 1956년 ‘가톨릭순교성지’라는 기념탑을 세웠고, 1957년부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성지 관리를 맡았다. 1984년에는 새남터순교기념대성전을 착공하여 1987년에 축성식을 거행했는데, 이 성전은 종래의 서양식 교회건축양식을 탈피한 순 한국식 건물로 설계되었다.] 16:11~16:27 새남터순교지를 탐방 16:27~16:43 걸어서 용산역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6:43~16:58 용산역에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가는 경의중앙선 전철 승차 대기 16:58~17:27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가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역촌역으로 이동 [29분 소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안내도 새남터 순교성지 위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