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명자』 (한국문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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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화분의 식물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럭저럭 버티던 관음죽도 살았는지 죽어가는지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맛이 갔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 많이 정리한 터라, 난 화분 몇과 오랜 시간 어머니의 정성이 배인 작은 화분 네댓 개가 고작이었으나 이제 보니 제라늄 하나만 잎이 파릇하고 녹색의 기운이 집안에서 다 빠져나간 듯하다. 제라늄의 꽃말은 ‘애정’이라고 한다. 애정은커녕 정성껏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빛이 적은 이 한겨울까지 문득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제라늄이 애틋하고 고맙다.
평범한 황토 화분에 심어진 것으로 비록 아직 꽃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꽃대들을 올리고 있어 운이 좋으면 머지않아 싱싱한 꽃을 만날 수 있을 것도 같다. 제라늄은 ‘일 년 내내 붉은 꽃을 피워대는’ 여러해살이풀이며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라고 한다. 내 보기엔 빼어나게 아름다운 꽃이라 할 수는 없겠는데, 아마 어머니도 사철 붉은 꽃을 피운다는 그 매력 때문에 제라늄을 집에 들여놓았을 것이다. 시인 역시 그랬으리라 짐작되며 그 모던한 꽃 이름에 끌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개념 없는 나는 세상의 모든 꽃이 음의 여성성을 지니고 있다고 대충 여겼는데, 뜻밖에도 시인은 ‘주렁주렁 붉은 성기들’이라며 남성성으로 제라늄을 보았다. 음의 소굴(?)에 들인 양의 붉은 생식성이라니 화끈거릴 만 했겠다. 그런데 조금만 유의한다면 이러한 인식은 은유가 아니라 사실을 은폐시키지 않은 곧이곧대로 진술임을 알 수 있다. 박방희 시인도 ‘꽃’이란 제목의 시에서 ‘꽃은 식물이 몸속에 은밀하게 감추었다가 비로소 내놓은 내장된 성기라 할 만하다’고 했지만, 그건 새로운 시안의 발견이기보다는 구체화된 과학적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