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여록(餘錄)
최 달 천
통영시 연안 부두 여객선 터미널은 새로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보기가 좋다. 바다와 잘 어울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바다의 색깔도 깨끗하여 종전에 느낀 선착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안 부두는 좁고 지저분하다는 선입관을 확 바꾸어 놓아 기분이 좋다.
바다가 좋아 동행하는 사람도 없이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좀 두렵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지만 좋은 물 때를 날려 버리기가 아 쉬워 결행한 것이다. 1박 2일을 예정하고 대구서 첫차로 이곳을 향하였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여 우선 아침밥 집에 들러 바다 정식을 시켰다. 싱싱한 생선 매운탕에 곁들여 나온 멸치젓갈이 강렬하게 입맛을 자극하였다.
욕지도행 여객선 두둥실 호에 몸을 실었다. 여객선을 탈 때마다 나는 배 안 객실보다 갑판 위에 마련해 둔 좌석을 좋아한다. 배가 달릴 때 웬만한 비바람쯤은 상관하지 않는다. 망망한 대해를 보는 것도 좋고, 시원스럽게 배 주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들의 비행 모습을 좋아한다.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뱃전을 부딪쳐 날아오르는 하얀 물보라도 좋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맞은편 끝으로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도 잠깐 작은 섬들이 앙증스럽게 이웃처럼 다가와 있다. 고기잡이배 한 척이 우리 배 옆을 지나가 우리가 탄 여객선이 잠시 기우뚱거렸다. 저쪽에서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우리도 따라서 손을 흔들었다. 인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본능적으로 그런 것일까?
긴 시간을 운항한 것 같았으나 고작 40분을 달려 욕지도 부두 선착장에 닿았다. 통영서 꽤 떨어진 이곳 선착장은 통영 부두에서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생선 비림과 갯가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로 우리를 격하게 맞이해 주었다.
섬 안의 구석구석으로 운행하는 유일한 버스가 막 출발 신호를 울렸다. 덮어놓고 올랐다. 우선 섬을 한 바퀴 구경해 보려는 생각이 앞서 버스에 올랐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낚시에 정신이 팔려 섬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멋대로 하리라고 마음을 정하니 기분이 홀가분하여 좋다.
낡은 버스는 언덕을 오르며 독한 연기를 뿜는다. 터덜터덜 굴러간다. 차창은 아예 닫을 염두도 못 낼 정도로 녹슬어 있다. 십 분쯤 굴러가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바닷가 동네가 나왔다. 더없이 반가웠지만 갑자기 외로움이 온몸을 적신다.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다시 못 돌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 어떠했을까? 비록 문명의 혜택은 못 받아도 소음과 공해가 없는 이곳에 살자는 내 뜻을 얼마나 따라 줄까? 자신 있는 대답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인생을 웬만큼 산 나와 아내는 그렇다 쳐도 아직 공부하는 아이들이야 도시가 더 좋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거센 파도와 망망대해밖에 없는 자연은 아이들에게는 유배지나 다름없을 것이다.
사랑과 행복과 자유의 꿈이 없는 곳은 어디나 다름없을 것이다. 굳이 어촌이나 산촌을 가려서 뭐 할 것인가. 그러니 내 마음속의 낙원을 누구에게 강요할 권리는 내게는 없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나의 낙원이고 아이들이 좋은 곳은 그들의 낙원인 것이다.
나를 내려놓은 버스는 산모퉁이를 돌아간다. 데리러 온다는 기약도 없이 가버렸다. 천천히 걸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서 반달같이 그려진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자꾸만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서 수많은 모래알과 주둥이를 맞대고 섞인다. 해안에 총총히 선 소나무와 잡목들이 울창하다. 곳곳에 기름진 고구마밭이 꿈틀거렸다. 제법 알이 굵을 그것으로 보인다. 고구마 줄을 당기면 금방 주렁주렁 달려 나올 고구마 한 개를 풀밭에 쓱쓱 문질러 베어 먹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언덕바지에 풀을 뜯는 염소 떼들이 사랑스럽다. 들판 한가운데로 흐르는 개울을 거슬러 가니 지붕이 나지막한 집들이 멀뚱거리게 나를 반긴다. 대문도 없는 돌담에 담쟁이덩굴이 새름새름 기어오른다.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지 텅 비어있다. 그곳을 지나 이어진 동백 숲에서 푸드덕 새들이 날아간다. 해풍을 받아 반짝이는 동백 잎은 눈 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다.
산뜻한 공기를 호흡하고 나니 배에서 내릴 때의 미열도 어느새 싹 가셨다. 이곳 공기는 선착장의 공기와 다르다. 작다고 생각한 욕지도는 다른 섬들과는 다르게 면 소재지이며 초 중학교도 있고 파출소도, 우체국도 있어 있을 것은 다 있는 큰 섬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철에 맞추어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끝나면 훌쩍 떠난다는 곳이다. 이곳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사람들의 애환을 아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언제나 뱃사람들의 노랫소리는 떠돌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 또한 한 마리 철새가 되어 그림 같은 욕지도에 잔뜩 취하였다. 섬에 첫발을 디딜 때는 풍성한 조황을 거두어 친구들에게 자랑하리라던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낚시도구는 풀지도 못한 채 섬 안을 마구 헤매고 있었다. 1박 2일의 날짜를 어기고 하루를 더 묵고 두둥실 호에 빈 몸을 실었다. 나의 적요(寂寥)한 일상은 언제나 욕지도 생각을 하면 팔딱 이는 생선처럼 생동하리라고, 시리도록 푸른 바다의 갯바위와 동백 숲과 이름 모를 새들이 노니는 지상 낙원을 그리는 마음도 변하지 않으리라.
첫댓글 _()(]()_
감사합니다.
욕지도는 적요할까요?
몇년전에 가본 섬이 의외로 북적이고 수다스러웠거든요. 뱃시간에 맞추어 타고 내리니 동선이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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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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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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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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