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우리 이 말을 잊으랴
-손 영 일-
4300여년 전에는 한자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없었다. 단군(檀君)이 나라를 세운 곳이 “아사달(阿思達)”이었고 당시 아사달(阿思達)은 국호 겸 도읍지 명칭이었다. 고대에는 국호와 도읍지 명칭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거주하고 있는 곳의 명칭이 곧 국호였다.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한자(漢字)가 상용화된 후 BC5세기경에 “아사달”을 한역(漢譯)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국호이다.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 저술된 『관자(管子)』에 처음으로 “발조선(發朝鮮)”이라는 한문식 국호가 나타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 9년조」에 숙신(肅愼), 연(燕), 박(毫), 오북토야(吾北土也)라고 하여 “박(毫)”이라는 국호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고대 동이계 상족(商族)이 산동성과 하남성에 세운 은나라의 도읍지 명칭도 “박(毫)”이었다.
조선이라는 국호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 중국학자들도 여러 가지 견해를 제시하였다. 『조선열전』을 기록한 『사기(史記)』를 주석한 『사기집해(史記集解)』에는 “장안(張晏)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가 있는데 그 세 물이 합쳐서 열수(洌水)가 되었다. 낙랑과 조선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따온 이름인듯하다(원문: 朝鮮有濕水, 洌水, 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 朝鮮取名於此也)”고 하였다. 당시 중국인들은 “선(鮮)”을 “산(汕)”이라는 물 이름에서 따온 단어로 보았다. 조선(朝鮮)이 위치한 곳은 물이 많이 흐르는 곳이었고, 중국 송(宋)나라 인종(仁宗)이 AD1040년에 명하여 만들게 한 병서(兵書), 『무경총요(武經總要)』에 나오는 조선하(朝鮮河)는 지금의 조백하(潮白河)인데 북경 북쪽의 단주(檀州)로 흐르는 강이었다. 이곳에 백단산(白檀山)이 있고 특산물이 박달나무로 만든 단궁(檀弓)이었다.
한편, “아사(阿思)”는 “아침, 밝음, 동방, 처음”을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을, 또 “달(達)”은 나지막한 산이나 고원(高原)을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을 한자로 음차한 말이다. 중국기록에 나오는 조선의 '선(鮮)' 역시, 물 이름에서 취한 것이 아니라 아침햇살이 비치는 야산(山, 原)을 의미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천황가의 조상은 고천원(高天原)에서 살다가 열도(列島)로 강림했다고 하는데 그 고천원(高天原)은 “아사달”의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사는 곳을 가보면 중심지에는 광장이 있고 나지막한 언덕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신전(神殿)을 지어 놓았다. 그것 또한 “아사달”이다.
춘추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인 『시경(詩經)』과 선진(先秦)시대의 사적(史籍)인 『일주서(逸周書)』에 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 용례가 있다. 『일주서(逸周書)』에는 “왕께서 마침내 상나라(은나라)를 도모하여 언덕에 이르셨네”라는 “왕내출도상(王乃出圖商), 지우선원(至于鮮原)”이라는 내용이 있고, 주(註)에는 “작은 산을 선이라 한다(小山曰鮮)”고 적고 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皇矣) 편」에도 “작은 산과 언덕을 헤아려, 기산의 남쪽에 터를 잡으셨네”라는 뜻의 “탁기선원(度其鮮原) 거기지양(居岐之陽)”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렇게 “선(鮮)”은 작은 산 또는 고원 등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환웅(桓雄)이 우리 민족의 시원지(始原地)라고 하는 흑수(黑水)와 백산(白山) 사이에 하강하여 세운 나라는 “밝”이었고 한문으로는 “환(桓)”이었다. 그 “밝”에서 “밝달”이 나왔고 한자로 음차하여 “배달(倍達)”이라고 썼다. 따라서 “아사달”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운 단군은 “밝달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는 “붉은 영웅”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서의 “바토르(baatar)는 밝달, 영웅, 지도자”로도 통한다.
지금 내몽골에 있는 적봉(赤峰)시가 우리말로 밝달, 붉달이고 요령성 조양(朝陽)시가 아사달의 한역(漢譯)이다. 이런 어의(語義)를 놓고 볼 때 환웅(桓雄)과 단군(檀君)이 나라를 세운 곳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만주 송화강과 백두산 일대가 아니라, 하북성 북부와 내몽골 일대로서 청나라 때의 명칭은 열하(熱河)였다.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 학자였던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중국의 북경(당시의 연경)에 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쓴 견문기,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열하(熱河)가 바로 “하북성 북부와 내몽골 일대”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마한, 진한, 번한과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의 기원지도 모두 하북성 일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중국의 하북성 북부와 내몽골 일대를 무대로 하여 밝달 민족이 세웠던 나라라는 말이 되고, 아사달(阿斯達)이라는 당시의 수도는 “세상을 밝히는 태양이 떠오르는 작은 언덕”이라는 말이 되고, 한족(韓族)이란 “큰 꿈을 가진 민족”이라는 말이 된다. 이를 재해석하면, “우리 한민족은 큰 꿈을 가지고 아시아 대륙의 심장부를 거점으로 하여 태양처럼 밝은 세상을 만드는 민족”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는 예부터 그렇게 온 세상을 밝히는 민족이라 불리었다. 아~ 아~, 어찌 우리 이 말을 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