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 ‘붉은 포도밭’, 1888년, 75.0×93.0㎝, 푸시킨 미술관, 러시아 모스크바
배달 앱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며
휴일에 아이들에게 외식을 제안하자, “코로나 19로 나가서 먹기 불편하니 시켜 먹자.”는 대답을 합니다. 시켜 먹는 음식이야 짜장면, 피자, 치킨 정도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지난번에 갔던 그 햄버거 집 맛있지 않았니?” 하고 되묻자, “그 집 배달돼요.” 라고 합니다. ‘설마’ 하고 머뭇거리는 나에게 아이들은 배달 앱을 휴대폰에 깔아주면서 직접 검색을 해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필자도 배달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태서 줄서서 먹는 맛집 거의 전부가 배달이 가능했습니다. 어느 틈에 아이들이 제 신용카드 정보까지 배달 앱에 입력을 해놔서, 검색 후 클릭 한 번으로 주문이 완료됐습니다.
전화로 동, 호수 알려 주고, 기다리다 늦으면 다시 전화해서 너무 늦는다고 얘기하면, “출발했습니다.”라는 의례적인 답변을 듣던 일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주문 접수 → 준비 중 → 배달원이 음식을 수령했습니다 → 거의 도착했습니다 → 배달 완료’의 모든 과정을 앱으로 받아보면서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배달료가 청구되기는 하나, 일정 금액 이상 주문하면 배달료가 할인되거나 무료인 곳도 있어서 서비스 대비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직접 찾아가서 먹을 경우 발생하는 주차비 등의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문득, 과거 필자의 칼럼 중, 한 구절에 대한 독자의 의견이 떠올랐습니다. 2019년 3월 19일 칼럼, <카풀을 반대하는 이유>에서, ‘배달 앱이 결과적으로 치킨 값을 올린 꼴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카풀 같은 IT 기반 서비스와 기존 택시 서비스의 공존 또는 융합이 또다른 비용을 발생시키고 결국은 국민들의 주머니만 털어가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라고 저는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한 독자께서 ‘글 중에 배달 앱이 치킨값을 올렸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 것 또한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편리함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줄 모르는 공짜 좋아하는 이기심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디지털 생태계에 대해 조금 공부를 하신 다음 이야기하시지요’라는 댓글을 다셨습니다.
필자의 원칙 중에 ‘댓글의 댓글, 즉 대댓글을 달지 않는다’가 있습니다. 저의 주장에 반대하는 댓글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럴수록 대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 주장이 반드시 옳다는 확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통해 양보와 타협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칼럼은 의제를 제시하는 역할로 충분하며, 과정의 시작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결론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쓴 글 이상으로 부연해서 주장을 펴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가 둘 있는데, 팩트에 관련한 경우와 저를 잘 알고 있는 연로하신 선배님께서 올리신 안부를 물으시는 댓글에는 대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대댓글을 달지는 않지만, 비판적인 댓글에는 많은 고민을 합니다. 팩트가 정확한지, 주장에 논리적 오류는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필자의 글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지도 고려 대상이 됩니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프레임에 변화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옳고 그름의 기준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나, 성소수자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20~30년 전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나 홀로 ‘결사반대’를 외친다면, 앞뒤가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위의 칼럼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배달 앱이 치킨 값을 올렸다’입니다. 사실 당시 칼럼을 쓰면서 ‘치킨 값’에 대해서 이렇게 짧게 언급해도 될까?’라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치킨 값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주제로 칼럼 여러 편이 가능할 정도로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치킨 값은 병아리부터 시작해서 사료업체, 양계농가, 거대 가공업체와 프랜차이즈 외식 업체까지 총망라해야 윤곽이 잡힙니다. 그래야, 산지 가격이 폭락해도 사 먹는 치킨 값이 오르는 문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배달 앱으로 인한 인상 요인만을 고려했던 것이고, 그 비교 대상은 과거에 전화로 주문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글을 쓸 때는 앱의 편리성을 체험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즉, 편리성을 고려하지 못한 판단을 내렸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배달 앱이 생긴 이후, 전화로 주문하는 고객에게도 배달료를 청구하기 시작했는데, 과거의 소비 플랫폼, 즉 전화 주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치킨 값이 인상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하는 질문입니다. 배달 앱의 편리함을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배달료를 똑같이 지불해야 된다면, 당연히 불만이 생기지 않을까요? 배달 앱이 생기면서 업주가 자체 배달 직원을 고용하지 않게 되고 결국, 모든 배달 주문에 배달료를 받게 된 건데, 기존의 아날로그 세대들에겐 동일 서비스에 치킨 값만 오른 꼴이 된 겁니다. 물론 기존 치킨 값에 배달료는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다음은 이번 국정 감사에도 나온 내용인데, 과도한 배송 앱 서비스의 수수료 문제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이 배달 앱 수수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치킨 한 마리 당 원가에서 배달 관련 비용이 20%를 차지하는 걸로 나옵니다. 하루에 40마리를 판매하는 치킨집 사장이 배달 앱에 가입하고 이전만큼 수익을 올리려면 하루에 100마리를 튀겨야 한다고 합니다. 노동의 강도는 높아지고 돈은 덜 버는 상황이 된 겁니다. 배달 앱은 소비자에게서도 배달료를 받고 자영업자들에게서도 광고비와 중개료, 결제 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21세기형 봉이 김선달인 셈입니다. 그러니 배달의 민족이 세계 1위 배달 업체인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 7,500억 원에 매각된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가입자가 많은 배달 플랫폼을 가지고 있으면 땅 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과거에는 치킨 값이 100원이면 그 돈을 치킨집 사장과 배달 직원이 나눠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치킨 값 100원을 배달 앱 회사와 배달 직원 그리고 치킨집 사장이 나눠 갖습니다. 파이는 변함이 없는데 중간에 나눠 먹는 사람이 생긴 겁니다. 그러다 보니 100원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서 치킨 값이 110원으로 오릅니다. 하지만 치킨집 사장이나 배달 직원의 살림살이는 나아진 게 없습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배달 앱을 통해 본 세상의 모습입니다.
필자는 배달 앱을 쓰면서 아직까지는 개인 소비자 입장에서 배달료가 합당하게 책정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현재 배달 앱 서비스 업체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소비자들이 얻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출혈경쟁 시기가 지나고 한두 개 업체로 배달 앱 시장이 과점체계로 접어들면 분위기는 달라질 거라는 우려가 생깁니다. 소비생활의 패턴이 바뀌어 배달 앱이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배달 업체 간의 출혈경쟁이 끝나면, 자영업자나 소비자 모두 ‘을’의 위치에 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통신요금이 올라도 스마트폰을 계속 쓰는 이유와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 별일이 없는 한,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사 먹게 될 것 같습니다. 배달료에 대해서는 당연히 지불해야 하지만, 너무 오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생활의 편의를 제공해서 얻는 기업의 이익이 사람들의 삶의 질을 파괴할 정도로 탐욕스럽게 변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우월적 지위의 경제 주체에겐 세금 받아서 일하는 사람들의 공정한 감시와 견제가 늘 가깝게 뒤따라주기를 바랍니다.
[옮겨온 글] / 출처; 2020년 10월 21일 (수)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박상도(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어느 기업의 '마음 방역' 백일장
백일장(白日場)은 600여 년 전 조선 태종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즉석에서 시를 짓게 한 데서 기원했다. 명칭에 대해서는 달밤에 시를 겨루는 망월장(望月場)과 달리 ‘밝은 날(白日) 재주를 견준다’는 의미와 ‘글 짓던 장소를 뜻한다’ 등 다양한 얘기가 있다. 지금도 전국 백일장에 응모자가 수백 명씩 몰린다.
최근 첨단 배터리 제조기업인 삼성SDI가 ‘마음 방역’을 주제로 사내 백일장을 개최해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한 백일장에는 200명 넘게 응모했다. ‘코로나’를 머리글자로 삼은 삼행시도 포함됐다.
시 최우수작인 장경호 씨의 ‘아들에게 쓰는 편지’에는 집 안에 갇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네 살배기 아들을 향한 애틋한 부정(父情)이 짙게 배어 있다.
‘신나게 뛰어놀던 너의 모습이/ 바로 어제처럼 눈에 선한데/ 맑은 공기마저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지금 너의 모습이 나는 아프다.// 해가 뜨면 밖에 나가고 싶은 너의 마스크가 되어줄게./ 바람 불면 춥지 않게 너의 바람막이가 되어줄게./비오는 날 뛰어놀 수 있게 너의 우비가 되어줄게.// 마음껏 놀지 못해 힘들겠지만 널 위해 되어줄게.// 나는 너의 아버지니까.’
시 ‘고마운 마스크’로 우수상을 받은 김창남 씨는 ‘처음엔 익숙지 않은 불편함으로/ 답답했던 너였는데…// 너와 함께하는 일상이 어느덧 자연스러움으로 변해버린 지금/애인 부르듯 오늘도 나는 너를 찾는다// 너를 쓰고 보니/거친 내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며 방역의 상징인 마스크를 고마움의 대상으로 의인화했다.
‘코로나’ 삼행시 부문에도 ‘코리아를 찾아온 코로나야/ 로터리 한 바퀴 휙 돌았으니/ 나비처럼 훨훨 날아 떠나거라’(최우수작, 김현선), ‘코스모스가 길가에 만발하는/ 로맨틱한 가을이 왔지만/ 나는 꾹 참고 내년 가을까지 인내하련다’(우수작, 김민수) 등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노래한 작품이 많았다.
심사위원 나태주 시인은 “경험에서 우러난 삶의 진정성이 잘 스며있다”며 응모자들을 격려했고, 수상자들은 “창의와 상상의 나래로 힘든 시기를 함께 잘 넘자”고 다짐했다.
전기차 배터리 세계 4위 기업인 삼성SDI가 기술과 문화의 접목을 통해 옛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꽃피우는 모습이 보기 좋다. 회사 안팎의 호응이 뜨거워 내년부터 백일장을 정례화할 계획이라니 더욱 기대가 된다.
[옮겨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20.10.21. 00:32
‘불량금’ 판치는 금시장 정상화해야
통일된 도량형은 국가의 근간 / 금 순도 속이는 것 명백한 사기 /
허술한 세금・관리감독은 공범 / 더 이상 소비자 피해는 없어야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량형의 통일이었다.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던 단위를 하나로 정리하고, 이를 어길 시 사형에 처할 정도로 엄하게 다스렸다. 전국 어디서나 같은 척도와 기준이 적용돼야 사회적 혼란을 막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도량형 통일의 역사는 깊다. 세종대왕은 1446년 도량형 단위를 통일하고, 다섯 가지 종류의 척(황종척, 주척, 영조척, 포백척, 조례기척)을 만들었다. 당시 탐욕에 눈이 먼 관리들은 엉터리 측정기구로 세금을 더 거둬들이고, 나라에는 정량을 바치는 수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암행어사들은 마패와 함께 다섯 가지 척이 새겨진 직육면체 형태의 ‘유척’을 들고 다니며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를 가리고 증명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07년 비법정단위 도량형을 금지하고 적발 시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돈, 평, 말, 근 등 일상생활에서 쓰던 단위를 g, ㎡, ℓ 등 국제표준에 맞춰 사용하게 했다. 정부도 도시계획을 발표할 때 평 대신 ㎡를 사용하는 등 민간으로 확산을 독려했다.
도량형은 국가의 근간이다. 모든 경제활동은 도량형을 기본으로 하는 신뢰에서 출발한다. 고깃집에서 판매하는 저울이 정확할 것이라고, 고기에 불순물을 섞어 팔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마련이다.
최근 본지가 보도한 ‘금의 배신’ 기사를 위해 지난 한 달여간 취재한 우리나라 금 시장은 이 같은 신뢰를 산산조각냈다. 서울 종로 일대 귀금속 거리에서 판매되는 순금(24K) 반지 10개 중 7개가 함량 미달의 ‘불량금’이었다. 금의 순도를 속이는 일은 도량형 표기를 ‘1돈’ 대신 ‘3.75g’으로 쓰도록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불량금을 판매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다.
금은 화폐처럼 통용된다. 순도를 속이는 것은 5만원을 받고 4만9000원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들이 불량금을 팔고 사들일 때는 분석료라는 명목으로 또 수수료를 뗀다. 물론 세금은 안 낸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거치면 1돈짜리 돌반지 하나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연금술이 따로 없다.
그러면서 오히려 당당하다. 순도 99.9%와 99.5%가 큰 차이 없다고 주장한다. “99.9%짜리 만들려면 세공비가 올라서 소비자만 손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편다. 땜이 들어가지 않는 금제품의 순도는 99.9%여야 한다는 규정은 안중에도 없다. “얼마 차이 안 나니 상관없다”거나 “수십년째 계속해 왔는데, 뭐가 문제냐”고 큰소리다.
순도 조사를 위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모은 금제품은 돌반지, 목걸이같이 저마다의 사연이 녹아 있다. 99.9%여야 하는 돌반지의 순도가 사실은 97%대였다는 조사 결과를 들은 지인은 분노했다. 순도가 2%나 부족한 금은 더 이상 ‘순금’이라 부를 수 없다. 사기를 당했지만 마땅한 대책도 없다. 몇 천원 때문에 고소를 할 수도, 그렇다고 신고를 하기도 애매한 게 사실이다. 이런 점을 노려 누군가는 수십년째 소비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며 부를 축적해 왔다.
종로 귀금속거리가 불법과 편법, 사기가 만연한 ‘그들만의 세계’가 된 데는 관계 당국의 책임도 크다. 이상한 세금체계와 허술한 관리감독은 사기의 공범 역할을 했다. 한 세무사는 “이 상황이 변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여러 권력관계가 밀접하게 엮여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금 업계에서 이제라도 순도를 정상화하자는 자정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지금 이대로’를 원하고 있다. 기사가 나간 뒤 업계 관계자 700명가량이 속해 있는 밴드에는 “비밀 카톡방을 나가고, 노출된 업체는 거래를 중지하라”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올라왔다.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오는 26일은 계량측정의 날이다. 세종대왕의 도량형 통일을 기념해 1970년에 만들어졌다. 도량형은 갖췄지만 관리가 안 된다면 국가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마패와 척을 든 암행어사가 종로에 출두해야 한다.
[옮겨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안용성(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장) / 2020-10-21 00:10:34
금문고량주
[전쟁과 경영]
대만을 대표하는 술이라 불리는 '금문고량주'는 대만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진먼도에서 생산되는 술로 58도라는 높은 도수를 자랑한다. 2015년 마잉주 전 대만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할 당시 중국 측은 중국의 대표 술로 마오타이주를 올렸고, 대만에서는 금문고량주를 올리면서 양안 간의 화해와 협력을 상징하는 술로 불려왔다.
하지만 정작 이 술은 양안 간의 화해가 아닌 충돌 속에서 탄생한 술이다. 1958년 중국과 대만 간 수십만 발의 포탄을 주고받은 '진먼 포격전'의 참호 속에서 태어났다. 6ㆍ25전쟁이 마무리된 이후 1954년부터 시작된 중국과 대만의 국경분쟁은 1958년 접경지역인 진먼도에서 44일에 걸친 치열한 포격전으로 이어졌다. 많게는 하루 6만발씩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대만군은 60도를 넘나드는 독주를 병사들에게 지급해 사기를 북돋았다고 하는데, 이것을 민간에서 상품화한 것이 금문고량주다. 전력 열세에도 진먼도 방어에 성공한 대만은 국체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이 술은 진먼도의 상징이 됐다.
진먼도는 원래 대만해협에서 푸젠성의 성도인 푸저우로 들어가는 관문에 위치한 곳으로, 명나라 때 왜구가 푸저우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세운 요새였다. 그래서 철벽처럼 굳건하라는 의미로 '진먼(金門)'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일제가 중국 전역을 침략한 1937년 중일전쟁 당시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었다.
진먼도의 주요 특산물로 알려진 금문고량주의 모습.[이미지출처=대만 진먼도 관광청 홈페이지/https://kinmen.travel]
막상 이 섬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49년 국공내전 이후 1979년까지 30년간 이어진 중국과 대만 간의 교전이었다. 대만정부는 진먼도 전체를 거대한 요새로 만들고 섬 지하에 주요 사령부와 방어기지를 설치해 중국군이 30년간 수차 도발했음에도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다. 현재는 대만과 세계인들에게 양안 간 분단 현실을 알려주는 살아 있는 안보교육장이자 대만의 최전선기지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올해 진먼도는 1979년 미ㆍ중 수교 이후 양안 간 가장 날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23일 대만주재 미국 대사격인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텐슨 미국재대만협회(AIT) 회장이 차이잉원 대만총통과 함께 미국 대표로는 처음으로 진먼포격전 추모식에 참여하면서 중국을 크게 자극했다. 뒤이어 미국정부가 대만에 각종 첨단무기 판매를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중국정부는 미국이 '대만 요새화'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고 반발했다. 이어 주요 미사일 전력을 진먼도로 돌려놔 양안 간 대치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양안의 대표가 다시금 금문고량주를 마주하며 화해와 협력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올지, 아니면 30년 포격전이 재개될지는 현재로선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다. 진먼도를 바라보고 있는 대만해협은 가을과 함께 다가오는 전운의 폭풍 앞에 서 있다.
[옮겨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 / 이현우(아시아경제 기자) / 2020.10.20 11:33
바위떡풀
AI에 대한 심각한 오해
코로나 시국이 지속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는 인공지능, 즉 AI다. 앞으로 비대면 상황이 대세가 되면 AI가 그동안 인간이 하던 많은 것을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AI와 관련해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어 이번 기회에 밝혔으면 한다.
사람들은 앞으로 AI가 발전하면 인간처럼 생각하고 심지어는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가 돼 인류를 절멸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공포가 컸던지 이 주제를 다룬 영화도 적지 않게 나왔다. 예를 들어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과 같은 영화가 그것인데 이런 영화에서 인공지능 로봇들은 인간에게 집단 항명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사람들은 AI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가질 줄로 믿는 것 같은데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동물이 있다. 그 가운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거두절미하고 인간은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존재다. 이것은 인간만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어를 갖고 있고 문화를 만들어 냈다.
동물은 이 같은 능력이 없다. 그들은 느낄(sense) 수는 있으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언어도 없고 문화도 없다. 그들의 언어는 기호 같은 것이지 인간처럼 추상화된 언어가 아니다. 또 그들은 본능에만 충실할 뿐이지 인간처럼 본능을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한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인간 출현의 시기를 대체로 200여만년 전쯤으로 잡는데 인간 출현이라는 사건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려면 지구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지구 역사에는 두 번의 큰 전환점(turning point)이 있었다.
첫 번째 전환점은 생명의 탄생이다. 지구에는 30여억년 전에 생명이 생기는데 사람들은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모르는 것 같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 수많은 가설이 있지만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아직 없다. 이 설명들은 매우 복잡하게 돼 있지만 간단하게 보면 이런 것이다. 무생물만 있던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질에서 생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확률에 대해 켄 윌버는 매우 재밌는 비유를 들었다. 무생물에서 생명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은 원숭이가 타이프를 치다가 햄릿 같은 소설을 쓸 확률이거나 폐차장에 있는 자동차 부속품들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가 롤스로이스 같은 명차로 조립될 확률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이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제로(0)다. 따라서 생명이 생길 확률도 제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든 그 일이 일어났다. 일단 생명이 생기자 그다음 진화는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동물까지는 생명이 꾸준하게 진화했다. 이 단계까지 온 것도 대단한 일인데 그 복잡한 것은 생략한다. 감각을 가진 동물까지는 진화했는데 아직 의식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의식은 앞에서 언급한 자의식을 말한다. 그러다 200여 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자의식을 가진 동물이 나타났다. 드디어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생명의 출현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 인간의 출현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 의식이라는 것이 어디 있다가 이렇게 늦게 나타났는지 알 수 없다. 동물과 인간은 불연속적인 관계에 있다. 그러니까 원숭이가 진화해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이 점은 진화론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지구는 물질에서 생명이 생기고 또 의식이 생기는 진화 과정을 거친 것을 알 수 있다. 의식을 가진 인간이 나오기 위해 지구는 그 전체 역사를 소비했다. 그런데 AI는 어떤 수준인가? 그것은 물질에 불과하다. 그것에는 생명도 없고 더군다나 의식은 아예 없다. 진화로 보면 인간보다 2단계 밑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AI가 인간처럼 의식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옮겨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최준식(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 2020-10-16 01:56
말의 주소
우리말 톺아보기
큰골, 살갗, 힘살, 가로막…. 교과서가 개편될 때마다 사라진 우리말이다. 이 말들은 대뇌, 피부, 근육, 횡경막으로 한자어로 대체되었다. 사전에 의학 용어라 되어 있는 데도 과학 교과서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우리말은 깊이 있는 지식을 담지 못한다고 여겼던 탓이다.
교과서에 한자어가 채택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화성암, 수성암, 화강암, 편마암 등은 일반인이 교과서에서 처음 만나는 말이다. 개편 전 과학 책에서 화성암은 ‘불에 된 바위’, 수성암은 ‘물에 된 바위’, 이암은 ‘뻘돌’, 사암은 ‘모랫돌’이었다고 한다. 마치 그림 한 장처럼, 우리말 이름에는 돌이 된 배경과 과정이 새겨져 있다. 물론 전공자가 보기에 이암과 뻘돌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과서란 어린 학생이 모르는 것을 배워가는 책이니만큼 뜻도 모른 채 그냥 외워야 한다면 그것이 더 불행한 일이다. 어려운 말은 누구에게든 공평해야 할 교육 기회를 해치고 만다.
마침표, 쉼표, 느낌표, 물음표는 교과서에서 배워서, ‘하루의 마침표, 오후의 쉼표’와 같이 확장해서도 맵시 있게 쓰인다. 이와 달리 ‘이름씨, 그림씨, 움직씨, 어찌씨’는 명사, 형용사, 동사, 부사와 같은 한자어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다행히 한동안 방치한 우리말을 다시 챙겨 쓰는 데가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복륜, 주두처럼 어려운 말을 ‘가장자리무늬, 암술머리’로 고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견갑골을 ‘어깨뼈’로, 선통을 ‘쏘는 통증’으로 부른다. 말의 덩이에 우리말 조각들이 들어가니 비로소 뜻이 보인다. 말에는 주소가 있기 때문이다.
[옮겨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이미향(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 2020.10.21 04:30
부부는 닮는다?
흔히들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실제 주변을 돌아보면 사진만 보고도 부부라는 것을 맞힐 수 있을 정도로 외모가 닮은 한두 커플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들도 있다. 1987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결혼 25년이 지난 부부 12쌍의 얼굴 변화를 사진으로 비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의 외모 유사성이 커진다는 게 결론이다. 부부가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표정을 흉내내게 되면서 얼굴 모습이 바뀐다는 가설로 설명했다. 행복하다고 답변한 부부일수록 얼굴 유사성이 더 컸다고 했다. 2006년 영국 리버풀대 연구진도 부부는 살수록 닮아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최근 조금 다른 분석이 나왔다.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최근 부부가 닮는다는 건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517쌍의 부부 사진을 수집해 신혼 때와 20~69년 후를 비교했다. 판정단 153명은 물론 인공지능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 부부의 얼굴은 살면서 서로 닮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약간 더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대신 비교 대상자를 실제 배우자 및 무작위로 선정한 다른 5명과 비교한 결과 부부의 얼굴이 상대적으로 더 닮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부는 살면서 닮아지는 게 아니라 원래 닮은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이다. 가끔 청첩장을 받아보면 ‘이 커플 참 닮았네’ 하는 생각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는 주장이나 원래 닮아 있었다는 주장은 모두 통계적 분석을 통한 가설일 뿐이다. 중요한 건 두 가설의 공통분모인 부부는 닮은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오래된 부부를 보면 닮은 건 얼굴만이 아니다. 비슷하게 생각하고, 가치관을 공유하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다 보면 풍기는 인상도 닮아가기 마련이다.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비슷하다 보니 앓는 질병도 닮는다. 한평생 함께 생활한 노부부는 신체능력 저하 같은 노쇠가 함께 찾아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몇십년을 함께하면서 서로 닮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부부는 닮아야 잘 산다는 옛말도 외모의 유사성보다는 서로를 인정하고 닮아가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하는 게 맞다.
[옮겨온 글] / 출처; 경향신문 / 박영환(경향신문 논설위원) / 2020.10.20 21:04
SK의 인텔 반도체 인수
경기 이천의 특산물을 묻는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반도체’라고 써낸 답안이 있었다. 선생님이 기대한 답은 아마도 쌀 도자기 복숭아 정도였을 것이다. 틀렸을까 맞았을까. 채점 결과는 모른다. SK하이닉스가 제작한 가상의 광고 스토리다. SK하이닉스 본사는 이천에 있는데 이천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기업이고 고용 인원도 2만 명 정도로 가장 많다. 이천시로선 특산물을 넘어선 보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SK하이닉스의 반도체가 세계적 특산물이 될 것 같다.
▷어제 SK하이닉스가 인텔과 90억 달러(약 10조2591억 원) 규모의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 그중에서도 낸드플래시 분야다. 초창기 반도체 구분법은 데이터를 저장하지 못하지만 처리가 빠른 비메모리 ‘램(RAM)’과 늦지만 반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롬(ROM)’이었다. 저장과 속도를 통합한 것이 D램과 낸드플래시다. 둘 중에서도 속도는 D램, 저장은 낸드플래시가 장점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의 메모리 용량이 512GB(기가바이트)까지 갈 수 있는 것은 낸드플래시, 카메라가 빛을 순간적으로 전자신호로 바꿀 수 있는 것은 D램 덕분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다. SK하이닉스는 D램은 2위, 낸드플래시는 5위였다. 이번 인수로 낸드플래시도 2위에 올라서게 됐다. 이제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에서 1, 2위가 한국 기업이 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그래픽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는 올해 8월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을 소프트뱅크로부터 4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구글도 자체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나섰고, 테슬라는 AI 반도체 칩을 개발해 자율주행 차량 신모델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는 굴곡의 역사를 갖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빅딜에서 정부가 전경련을 통해 LG반도체를 떼어내 현대전자로 합병시켜 버렸다. 이후 현대하이닉스는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왔고, 공개 매물로 나와 있던 것을 10년 뒤 SK그룹이 도박에 가깝다는 말을 들으면서 인수했다.
▷SK하이닉스의 제2공장은 충북 청주에 있는데 청주국제공항의 활주로가 시작되는 마을 이름이 비상리(飛上里)다. 조상들이 마치 공항이 들어설 걸 예견하고 지은 것처럼 우연치고는 참으로 절묘하다. 인텔 메모리 사업 인수를 계기로 SK하이닉스가, 나아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K반도체’로 한 단계 더 비상(飛上)하기를 기대해 본다. 우연을 만든 것은 하늘의 일이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옮겨온 글] / 출처; 동아일보 / 김광현(동아일보 논설위원) / 2020-10-21 03:00
관계의 온도
[마음 읽기]
관계의 깊이는 온도로 표현돼 / 몸이 따뜻할수록 세상을 신뢰
따뜻한 공간이 힐링의 시작점
‘레이저 눈빛’을 쏘아대던 사람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보는 사람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차가운 눈빛을 발사해서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타인의 감정에 어떤 공감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인정이 없고 냉혹한 사람들을 극단적으로는 냉혈한(冷血漢)이라고 부른다. 오죽하면 차가운 피가 흐른다고 표현할까. 창자마저 차갑다는 의미에서 냉장(冷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짓는 미소는 냉소(冷笑), 그들이 타인을 향해 내뱉는 독설은 냉어(冷語)라고 부른다. 영어권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불친절한 사람들을 ‘콜드 피쉬(cold fish)’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냉어(冷漁)가 아닌가.
주변에 온통 이런 사람들뿐이라면 세상은 온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음 지옥일진대, 다행히도 우리 주변에는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뜨겁게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온화(溫化)한 미소를 보내주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삶의 온도는 늘 36.5도다. 그들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우리를 절벽에서 돌려세웠고, 그들이 건넨 따뜻한 손이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의리의 친구가 곁에 있다면 밤길도 두렵지 않다. 친구 간의 뜨거운 맹세는 우리 마음을 얼마나 든든하게 만들었던가. 노년기의 여유는 젊은 날의 열애(熱愛)의 기억 때문 아니던가. 어머니의 따뜻한 집밥은 영원한 영혼의 음식이 아니던가.
이처럼 관계의 언어는 온통 온도로 가득 차 있다. 관계의 언어는 온도의 언어다. 관계라고 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소통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효과적인 은유가 온도다. 물론 ‘거리’의 언어를 통해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가까운 사이라거나 먼 친척이라는 말들로 관계의 깊고 얕음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차갑다’ ‘따뜻하다’ 등의 온도의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생존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적정한 체온이다. 체온은 우리 몸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체계다.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가장 먼저 스스로 체온부터 확인한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 체온을 재는 행위야말로 인류가 체득한 고도의 생존 기술인 셈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타인을 기술할 때 가장 원초적으로, 그리고 가장 빠르게 사용하는 판단 기준이 따뜻함(warmth)이다. 타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의 사진을 잠깐만 보면 그의 온화함 정도를 추측해낼 수 있다. 사람을 평가하는 수많은 기준 중에서 온화함이 으뜸이라는 점은 관계의 언어가 온도의 언어일 수밖에 없음을 지지해준다.
결국, 인간에게는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온도에 따라 구분하는 특기가 생긴 것이다.
최근의 뇌 과학 연구는 온도를 경험하는 뇌의 영역과 관계를 경험하는 뇌의 영역이 중복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인간의 뇌에 있는 대뇌섬(Insula)은 위험과 불확실성에 관여하는 영역인데, 이곳이 몸이 차가울 때도 활성화된다고 한다. 체온이 낮아지면 대뇌섬이 작용하여 주변의 위험과 불확실성에 대하여 경계하는 모드로 돌입하고, 체온이 높으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고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한 불안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몸이 따뜻한 순간에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가 가깝다고 느끼고, 몸이 차가운 순간에는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가 먼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몸이 따뜻해졌을 때 타인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늘어난다는 참신한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마음이 외로우면 괜스레 춥게 느껴지고, 날씨가 추우면 왠지 모르게 외로움이 밀려오는 듯한 우리의 경험이 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체온을 관리하는 것이 관계를 관리하는 길이 될 수 있다니 온도에 각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다.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의 마음을 열고 싶다면 그들을 맞이하는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이 이미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언어가 온도의 언어라는 점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부모님에게 따뜻한 보일러를 놔드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옮겨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최인철(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2020.10.21 00:38
노숙자(盧淑子, 1943년생, 서울대학교 회화과 졸업) / 으아리 / 60.5 x 73, 종이에 채색,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