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영감 받아 티베트엔 위로 중국엔 평화 전해
60년대 요가·인도음악·티베트불교 관심 미니멀리즘 대표주자
달라이라마 세인트존더디바인 성당 입장 때 오르간으로 연주
일정 패턴 느리게 반복한 구조로 독특한 음색·음향세계 보여줘
필립 글래스와 달라이라마.
불교에서 가장 큰 명절은 단연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이다. 고타마라는 한 인물의 탄생을 기념하는 부처님오신날은 모든 불자들에게 가장 큰 의미를 주는 날이다. 출가재일은 수행자로의 삶으로 내딛는 두 번째 탄생을 뜻하는 날이다. 싯닷타 태자가 왕궁을 떠나 주어진 모든 현실을 버리고 더 나은 것을 위한 선택, ‘위대한 포기’를 결심한 역사적인 날은 또 다른 의미의 탄생이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부처님오신날이다. 성도재일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탄생일이다. 진정한 의미의 ‘깨달은 자, 붓다’의 탄생이야말로 새로운 의미의 부처님오신날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깨달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은 붓다의 열반은 ‘우리에게 오신 진정한 부처님의 탄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궁극적인 완성의 의미를 가진 ‘열반’ 역시 또 하나의 탄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양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면 곧 성도재일이, 설날과 정월대보름을 지나고 경칩 무렵이면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이 차례로 다가온다. 따뜻한 봄날 맞이할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다. 기대와 설렘과 함께 색다른 음악을 들어보면 어떨까. 매우 적은 양의 소재로 작품 전체를 완성하는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1960년대의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열풍이 불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4분 33초’로 유명한 존 케이지의 ‘장착된 피아노(prepared piano)’를 위한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장착된 피아노의 밀도가 낮은 음조직으로 표현되었던 ‘자아를 내려놓는’ 아이디어에서 일부 작곡가들은 상당한 영감을 얻었으며, 동시에 극단적인 전위음악가들이 보여준 불확정성과 집착적인 실험성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또한 ‘반복’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반복은 음악이 성립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다. 단순한 소리와 음악을 구분하는 기준의 한 예가 되는 것이 반복의 패턴이다. 예를 들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단순히 소리일 뿐이지만 그것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일정한 패턴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음악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계의 소음과 같은 소리들도 반복을 통해 패턴을 지각하면 작품으로 발전 될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의 절대적인 요소인 반복의 구조는 어느 시대에나 전통적으로 사용되었지만, 20세기의 작곡가들은 특별히 그것을 강조하여 ‘미니멀리즘’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냈다.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이다. 시카고대학에서 수학과 철학, 줄리어드 음대에서 플루트와 작곡을 전공한 그는 파리에서 나디아 블랑제(1887~1979)를 사사하며 자신만의 양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음악 작업을 하며 알게 된 인도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에 요가, 인도음악, 티베트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필립 글래스는 “서양음악이 빵을 한 조각씩 썰 듯 시간을 쪼갠다면, 인도에서는 작은 단위나 ‘박자들’을 결합시켜 더욱 큰 시가(時價)로 만들어 간다”고 했다. 인도음악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리듬 구조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독자적인 미니멀리즘을 구축해나갔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Mad Rush(1979)’다. 1979년 11월, 달라이라마가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대중 연설을 한 것을 기념하여 작곡한 곡이다. 60년대부터 인도 음악에 큰 영향을 받은 필립 글래스는 불교 사상에 깊은 음악적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 했다. 티베트인들을 위한 위로와 중국을 향한 평화적인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는 이 곡은, 달라이라마가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으로 입장할 때 오르간으로 연주되었다. 제목은 직역하면 ‘미친 질주’로 해석되어 언뜻 보면 음악과 제목이 역설적이다.
일정한 패턴을 느리게 점진적으로 반복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이 곡은 약 15분 정도 진행 되는 동안 리듬과 형식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고 독특한 음색과 음향세계를 보여준다. 최소한의 소재를 점차적으로 변형시켜 강렬한 리듬과 선율에 도달하고 다시 사라지는듯한 악상으로 마무리 되며 명상적이면서도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담고 있어 오히려 ‘미친 질주’라는 제목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초연 당시에는 오르간으로 연주되었지만 주로 피아노로 연주되며, 때때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하기도 한다.
그의 미니멀리즘에 충실한 또 다른 작품 중 하나는 건반악기를 위한 ‘Two Pages(1968)’ 이다. G,C,D,Eb,F의 다섯 음으로만 이루어진 패턴의 반복으로 음의 첨가와 삭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고, 화성, 리듬, 음색, 다이나믹의 변화가 없다. 무수한 반복과 미세한 변화를 통해서 팽창과 수축의 기법을 거듭하고 임의의 패턴을 계속 증강시키는 초기의 ‘미니멀리즘’을 철저하게 고수했던 필립 글래스는 반복형식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했다. 전통적인 반복의 형식에 반해서 매 순간 새로운 고유한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동일성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차이’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적 사유를 표현한 것이다.
필립 글래스는 80년대를 지나면서 극음악과 영화음악 등 여러 장르에서 대중들과 호흡하며 현재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작품 활동 초반부터 비서구권 음악에 몰두했던 그는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제14대 달라이라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쿤둔(Kundun, 1997)의 음악을 담당했다.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이었던 영화 ‘트루먼 쇼(1998)’의 주인공이 잠드는 모습이 대형 모니터에 나타날 때, 방송국 스튜디오 한 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2013)’의 영화음악에도 참여하는 등 알고 보면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작곡가이다.
스스로 “내 목표는 언제나 더 많은 대중을 찾아나서는 것이었다”고 말할 만큼 전통과 진보 사이에서 비주류와 주류를 넘나드는 유리(glass)처럼 다양한 행보를 보여준 그의 “관습 밖을 질주(Mad Rush)”하는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 작품들을 불자들에게 한 번 쯤은 권유해 보고 싶다. 음악적 내용으로도 그의 작품의 배경으로도 이렇게 불교와의 접점을 가진 클래식 작곡가는 드물 것이다.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을 맞아 부처님의 ‘새로운 탄생’을 기념하며 많은 이들이 기도 정진하는 이른 봄, 필립 글래스의 작품들을 함께 하며 평온함과 에너지를 동시에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김준희 피아니스트 / 법보신문
첫댓글 소중한 정보와
음악등 무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불제자 됨에 감사가 충만한 날이었는데
피아노 선율과 상세한 내용 고맙습니다
춘수님께서 복 짓고 계십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