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에 가공식품 부가세 인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감정적 느낌은 거의 이 정도다. 조세이론과 우리나라 조세체계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나랑 비슷한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가공식품 부가세 인하는 우리나라 세법과 법률체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개헌만큼 어려운 완전히 불가능한 생각이다. 실제로 부가가치세법이 제정된 이후 10% 세율이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사이에 헌법도 바뀐 적이 있고 진지하게 개헌 논의가 된 적도 여러번 있다. 그러나 부가가치세 세율 인하는 진지하게 논의된 적조차 없다. 개헌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럴까?
첫째, 소비세 체계에 맞지 않다. 우리나라 소비세 체계를 일반소비세, 특별소비세, 특특별소비세로 설명해보자.
우리나라의 일반소비세는 부가가치세다. 모든 물품과 용역을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10% 세율로 부과한다. 매출세입에 매입세입을 공제하여 납부하는 단순한 부가가치세 체계는 우리나라 조세 인프라의 기본이다. 즉, 소득세, 법인세 소득파악의 가장 기본은 바로 부가가치세 납부구조를 통해 과표가 양성화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세율은 10%로 동일하다. 0세율과 면세만 존재하고 저세율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품목은 10%가 아닌 다른 세율을 적용하고 싶을 수도 있다. 사치품이나 공해를 불러일으키는 재화처럼 부정적 외부효과가 존재하는 곳에는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싶기도 한다.
그래서 특소세(특별소비세)가 존재한다. 특별소비세는 사치품 등 일부 열거된 품목에 한해서 각각의 다른 세율을 적용할 수 있는 소비세다. 우리나라 특별소비세는 개소세(개별소비세)로 존재한다. 개소세는 과거의 특소세가 이름만 바뀐 거다.
혹시 특소세는 들어봤는데 개소세가 낯선 분이 있을까? 특소세가 개소세로 바뀐지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이미 15년 전에 개소세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개소세보다 특소세가 더 익숙하다면 본인의 연식을 반성해야한다. ㅋㅋ(모 반성할 것 까지야...)
암튼... 개소세와 같은 특별소비세법보다 더 특특별한 소비세를 부과하는 것도 있다. 바로 주세, 담뱃세, 유류세(교통에너지환경세) 같은 거다. 술, 담배, 휘발류 같은 물품의 소비는 또 다른 세율을 적용하고 또 다른 재원이 된다.
결론은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는 세율의 차등이 없이 모든 물품에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일반소비세다. 모든 조세인프라의 가장 밑바닥, 기본이 되는 일반소비세로 이를 흔들면 우리나라 전체 조세 체계가 흔들린다.
둘째, 경기 조절을 하는 세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기는 예측가능하지도 않고 즉각적으로 변한다. 반면, 세법은 예측가능성이 핵심이고 법개정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율 등을 통해 경기조절을 하면 안 된다.
과거에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라는 유일한 경기조절용 세제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경기조절효과가 0 또는 마이너스라는 컨센서스때문에 폐지되었다. (지금은 무덤에 있던 임투공제를 변형하여 한시적으로만 적용하는 한시투자세액공제를 재도입하긴 했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으로 도입하고 일몰 할 예정으로 도입한거지 경기 상황에 따라 투자세액공제율을 조절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경기가 안좋아서 투자가 필요할 때 오랜 국회 논의를 통해 공제율을높이고, 이때쯤에는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공제율을 낮추면 그사이 경기는 나빠지는 것의 반복 ㅠㅠ
그래서 만약 탄력적으로 경기를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시행령등을 통한 탄력세 체계는 존재한다. 즉각적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법개정을 통해 본법을 바꾸어 경기를 조절하는 세제는 없다. 총선 끝나고 국회에서 법을 도입한다 쳐도 그사이 물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셋째, 세율을 인하해도 물가 안정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반대 논리다.
세율을 내리면 줄어든 세금 만큼 가격에 그대로 반영될까? 아니면 가격은 그대로고 생산자의 이윤만 커질까?
조세이론과 실질에 따르면 조세 전가는 가격 탄력성에 반비례 한다. 이게 뭔소리냐면... 가격이 조금만 변해도 소비량을 조절할 수 있으면(소비탄력성이 높으면) 세금 인하 혜택을 소비자가 먹을 수 있다.(조세 전가를 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생산자가 독과점이어서 가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으면(생산 탄력성이 높으면) 세금 인하 혜택을 생산자가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공식품 구조는 어떨까? 몇몇 개의 일부 독과점 업체가 높은 브랜드 파워로 존재하는 영역이라면 세금을 내려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왜 이슈가 된 대파와 같은 신선식품 부가세 인하가 아니라 가공식품 부가세 인하일까? 신선식품은 다수의 생산자(농민)가 있다. 그리고 대파는 아무리 비싸도 먹어야 한다. 난 대파가 집에 없으면 우울해 질정도다. 아무리 비싸도 사먹는다는 얘기다.
이렇게 생필품이면서 소비탄력성이 낮은 대파와 같은 제품은 부가세율을 낮추면 그만큼 가격이 낮아진다. 근데 왜 대파가 아니라 가공식품 부가가치세를 낮출까? 답은 간단하다 현재 부가세법에 따라 미가공식품은 어차피 면세다. 가공식품부터 부가세가 부과된다. 그래서 흰유유는 면세고 쵸코우유는 과세다.
그런데 가공식품은 상당부분 독과점 업체가 많다. 세금을 인하해도 가격이 안내려 간다. 만약 세금을 인하해서 가격이 내려가려면 소비자가 가격이 비싸면 안사먹으면 그만이다.
생각해보자. 어떤 가공식품이 생필품이 아니라면, 비쌀때 안사먹으면 그만이라면, 굳이 가격을 내릴 필요가 없다.
반대로 어떤 가공식품이 생필품이라면, 비싸도 사먹어야 한다면 세율을 내려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생산자의 이익만 늘어난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열받는 것은 한 위원장, 대통령실, 그리고 언론이다.
야당도 아니고 여당 위원장이 이렇게 조세의 근본을 흔드는 조치를 그냥 선거에 정파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실 누군가는 기재부 팔을 비틀어서 추진한다고 연기를 핀다. 그리고 언론은 기재부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대한민국 기재부가 그리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대통령실이 고려하라고 시키면 "고려하겠습니다"라고 말은 하겠지만 사실상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할 꺼다. 정부 법안으로 추진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언론은 대통령실 누군가가 기재부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그냥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한 일을 큰 뉴스로 만든다.
참.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렇게 중대차한...말도안되는 일에 흔들리고 시장의 예측가능성까지 흔들리게 반응할 정도로 취약한 나라가 되었나보다.
========== p.s. 참참 생각해보니 의제매입세액공제율을 그냥 높이면 비슷한 효과를 내지않나? 현재 의제매입세액공제율은 부가가치세법에 있지만 이를 시행령을 통해 탄력적으로 한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럼 그냥 가공식품 부가세 부담을 부가세율을 바꾸지 않고도 그냥 시행령만 바꿔서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낮출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럼 이건 너무 큰 헛발질인데?
만약 가공식품 부가세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난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냥 손쉽고 법체계상 아무 문제 없는 현실적 방안이 있는데 왜 한시적 세율인하라는 말도 안되는 방안을 택했을까?
기재부는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를 상향하겠다하고 이를 결과적으로 한동훈 치적으로 돌릴 수 있긴 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 맞다. 의제매입세액공제! 아까 열받아서 안떠올랐는데... 생각해 보니 기재부는 한동훈의 황당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마치 아이의 미숙한 그림을 멋지게 완성시켜주는 일러스트 아빠 처럼.
만약 가공식품 부가세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면(난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주 손쉬운 방식이 있다. 현세법 체계를 그대로 따르고, 법개정도 필요없이 그냥 시행령을 통해 손쉽게 가공식품의 부가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의제매입세액공제를 높이는 거다.
가공식품 부가세 부담을 이렇게 현 세법 틀 안에서, 국회 동의도 필요없고 줄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이미 있는데 왜 부가세율 인하라는 황당한 (그냥 대학생이 술자리에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할 만한 수준) 방안을 제시했을까?
그냥 아무 조세전문가에게 가공식품 부가세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물어보면 다들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를 높이면 됩니다 라고 말했을 텐데... 그렇다면 너무 큰 헛발질이다. 여당 대표가 이정도 술자리 수준의 설익은 아이디어를 아무런 전문가 말을 듣지 않고 내놓을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착각하고 있나? 너무 이상해서 마치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게 있는 것 같다.
================ 의제매입세액공제가 무엇인지 궁금한 분이 있다면...
부가세는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빼고 낸다. 내가 물건을 팔면(나의 매출은) 상대방은 물건을 산다(상대의 매입이다.)
나는 세금을 덜 내고자 매입세액 금액을 높여야 한다. 내 세금을 아끼려고 매입세액 세금계산서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상대방의 매출을 투명하게 만든다. 이것이 부가세의 조세인프라 확충 기능이다. (이 구조 처음 만든사람은 천재 오브 천재다)
그런데 미가공 농산물인 흰우유는 부가세 면세품이지만, 가공식품인 초코우유는 부가세 낸다. 초코우유 가공업자는 우유를 사서 가공하고 초코우유를 판다.
그런데 흰우유를 사도 젖소짜는 목동이 세금계산서를 안끊어준다. 부가세를 내지 않으니 세금계산서를 끊어줄 수가 없다. 결국 초코우유 업자는 매입세액공제를 하나도 받지 못하고 그냥 매출액 전액에 대한 10%를 부가세로 낸다.
그래서 '의제매입세액공제'제도가 있다.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매입세액으로 의제해서 공제를 해준다. 물론 매입세액공제율은 부가가치세법에 정해저 있다.
그런데 시행령을 통해서 의제매입세액 한도율을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다. 그냥 국회 동의도 필요 없고 현행 법체계에 부합한 방식으로 가공식품의 부가세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방법론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럼 한동훈은 그냥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를 높이겠다(이말이 어려우면 가공식품 부가세 부담을 줄이겠다) 라고 말하면 아무 문제 없다. (물론 가공식품 부가세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책적 논란정도는 있다.)
근데 왜 부가세율을 낮추자는 황당한 얘기를 했을까? 무려 여당 위원장 주변에 전문가가 아무도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