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여명이 밝아옵니다.
일요일... 전날 오후, 타오르는 예술혼을
주체하지 못한 댓가로 집안을 락카향 테러로 몰아넣은
죄인은 안방과 딸래미 방 동태부터 살핍니다.
내 나이 낼모레면 어언... 지천명,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침부터 빡침이 오지만,
그건 집안에서의 제 안위와,
저의 원대한 마스터피스의 미래만
불투명 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천명이 눈 앞이니, 현명해져야 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cafetop/sticker_cafe_kakaotalk/m_132.png)
파란색 락카통과 작업용 피자판 두 개,
일회용 비닐 장갑, 파란색을 뿌릴 것이므로
팀과 나이키, 언더아머 로고,
그리고 곧 샤방하게 재탄생 될 헬멧을 챙겨들고
어제 그 작업 장소로 달려갑니다.
입주민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안전한 곳이기는 하지만,
CCTV에는 동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라,
관리실 요원들은 ‘일요일 아침부터 피자 판 펼쳐놓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저 변태는 누구인가?!!’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 하지만,
꾹 참고 임무에 집중합니다.
쉬이익-쉬이익- 비장하면서도 재빠른 손놀림입니다.
아아... 잘 된 거 같애. 조그만 더...
집안 두 여자가 깨기 전에 돌아가야만 합니다.
아침부터 이랬다는 걸 들키면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할지
가늠이 안 됩니다.
그리고... 자정 넘긴 신데렐라 눈썹 휘날리듯
작업물을 챙겨들고 뛰어와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탑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cafetop/sticker_cafe_kakaotalk/m_116.png)
엘리베이터 기계음을 배경 삼아
한손에 들고 있는 헬멧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ㅅ ㅅ ㅣ ㅂ ㅓ ㄹ... 사진을 안 찍었잖아!!!”
급한 마음에 사진 찍는 걸 깜박했습니다.
된장헐...
![](https://t1.daumcdn.net/cafe_image/cafetop/sticker_cafe_kakaotalk/m_153.png)
그렇게 돌아와 다시 헬멧을 잘 감춰두고
시치미를 떼며 TV 시청을 하고 있는데...
(마음만은 당연히 저 밖 헬멧에 가 있지요)
마누라랑 딸은 일어나자마자 아직도 집에서
락카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갈구기 시작합니다.
조금 전 헬멧을 다시 숨기기 전에 거실에서 잠시
작업상태를 확인했던 게 원인이었나 봅니다.
저는 청문회 증인 모드를 발동합니다.
“난 그 냄새 원인은 잘 몰라. 뭔 냄새가 난다 그래?!!”
오히려 쬐끔 센 척까지 해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늘은 정말 돕는 자를 돕나 봅니다!
아 글쎄 마누라가 애만 뎃고
외출을 한다는 게 아니겠어요!!
애 친구 엄마랑 마트에서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빡침과 환호가 이렇게 단시간 내에 오가다니...
헬멧 도색 하다가 조울증이 오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cafetop/sticker_cafe_kakaotalk/m_120.png)
아무튼 제 머리는 알파고 보다 빠른 속도로
시간과 작업 간의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두 여자가 현관을 나서고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는 순간,
빛의 속도로 달려서 헬멧과 락카통, 피자 판 등등을
챙겨들고 비운의 작업장소 공조기실로 다시 향합니다!
‘이젠 챙만 칠하면 되기 때문에 어제 같지는 않을거다’
‘어차피 냄새가 좀 나도 어제 핑계를 대면 된다’
뭐 그런 전략도 짜 놓았지요.
그리고...
![](https://t1.daumcdn.net/cafeattach/1XhUy/d0521bb42669d69a1d616008652c11530ffa0893)
싸-한 파란색 락카 입자가 코를 타고
목구멍까지 진격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 영롱한 블루를 보세요...
사진도 여유롭게 찍습니다.
역시 작업은 안에서 하는 게 옳아요.
그후, 저는 다시 집안 창문을 모두 열고
증거인멸을 시도합니다. 완전범죄!!!
4월인데도 왜이리 추울까요...
하지만 꾹 참습니다. 고지가 눈 앞에 보입니다.
그날 밤!!
![](https://t1.daumcdn.net/cafeattach/1XhUy/179ab1e4758f5fbfbaa1a74e7e134a98d0d6d12d)
아아...뭔가 울컥함이 마음 속에 차 오릅니다.
비록 자세히 보면 비겁하게 타협한 사포질의 결과로
곳곳에 울퉁불퉁 거친면이 눈에 걸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니 제가 처음 머리에 그렸던
그 샤방한 썸머 스페샬 버전에 아주 가깝게 왔습니다.
이제 남은 작업은 저 로고들을 붙이는 작업 뿐...
3M 사의 77 스프레이 접착제를 옆에 놓고 음미합니다.
어떤 놈을 먼저 붙여줘야 이 성대한 작업의 피날레가
그 화려함을 더할 수 있을까... 말이죠.
그리고... 헬멧 좌측은 일전에 ‘퍼펙트수비’ 님이
보내주신 팀 패치 스티커가 당연히 붙을테고...
오른쪽은 언더아머로 가느냐... 나이키로 가느냐...
또다시 저는 햄릿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아... 괴롭습니다.
어떤 걸 붙여야 잘 붙였다고 소문이 날까요...
마음 속 결정을 합니다.
과감히 저는!!!
아, 헬멧 도색에 쓴 메인 락카는 바로 요놈들입니다.
마트에서 7,500 원에 겟 할 수 있는 놈들이지요.
요 화이트는 쌩 화이트가 아니라
좀 중후한 아이보리 느낌을 줘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밑색은 2,500 원 짜리 싸구려 제일 락카 화이트를
썼습니다)
![](https://t1.daumcdn.net/cafeattach/1XhUy/ffb1d934be44c4c73bda4382cc972798a78f0988)
결정은 바로!!
마누라한테 기는 걸 봐서 짐작들은 하셨겠지만,
저는 권력친화적 인간입니다.
때문에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개인적으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이이기는 하나,
사야친 대장님이 언더아머 매니아란 사실만은
어디서 줏어들은 관계로 과감하게
언더아머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다음이 결과물입니다.
회원님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노고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홈런 치고, 삼진 열 개 씩 잡고...
그런 시즌 보내시기를 기원할게요.
저도 이 헬멧들 기분따라 바꿔쓰며
상쾌한 여름 보낼거예요.
***덧붙임: 괜히 무모하게 쎈척하며 빡치지 말고
약은 약사에게 헬멧은 세븐팩토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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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afeattach/1XhUy/d6275be7b3b10035883f0e05ba8c7c5b070c5ef8)
![](https://t1.daumcdn.net/cafeattach/1XhUy/7d0136615573479e026121e360ea30714d0d5f2d)
![](https://t1.daumcdn.net/cafeattach/1XhUy/d065ed8940b0bcdf0cac6a758f9e31218f41bfd3)
고맙습니다. 야구나 잘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
이거..넘 고퀄 아입니까?..수고하셨어요..뿌듯하실듯^^
네, 뿌듯하기는 합니다. 장비 가방에 안 넣고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감상하고 있는 거 보면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