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경남중.고 27회 동기카페
카페 가입하기
 
 
 
 

자주가는 링크

 
등록된 링크가 없습니다
 
 

카페 통계

 
방문
20240708
127
20240709
86
20240710
163
20240711
114
20240712
184
가입
20240708
0
20240709
0
20240710
0
20240711
0
20240712
0
게시글
20240708
1
20240709
1
20240710
2
20240711
1
20240712
3
댓글
20240708
21
20240709
5
20240710
20
20240711
7
20240712
34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나도한마디♨ 어떤 블러핑(Bluffing)!
玉忠錫 추천 0 조회 175 24.07.04 14:56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4.07.04 16:50

    첫댓글 휴가나온 친구들 일일이 케어...대단하셨어.
    글고 월 1회 동기 4명(옥자가 잘 아는 이들)이 훌라를 하니 시간맞춰 서울오면 함 붙읍시다.산내로 4명이 내려가면 더 좋은데 22일 모일때 이야기는 해보겠음.

  • 작성자 24.07.05 11:06


    경고하우스'에 가기전에
    그동네 인근 자취집에서
    고 조경환 동기와 룸메이트로 자취를 시작했다.
    그집에는 몇개의 자취방이 있었고
    한 곳에는 '서울미대' 가시나들인지, 가시나 혼자인지
    자취하는지 뭐하는지 거주하는 방이 있었다

    간혹 아침에, 그가시나 방문앞에,
    군화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사태를 짐작하곤 햇는데,
    어쩌다 마주치면,
    우찌 그리 예쁘던지
    그 가시나를 살펴본 기억이 아스라하다.

    당시 서울미대가 공대 캠퍼스내에 있었으니
    멋진 가시나들이 같은 정문을 들락거렸는데
    촌놈중의 촌놈인 우리, 특히 나는
    간혹 가시나 들과 마주칠때
    언감생심(焉敢生心) 이였던 같다

    X팔, 세상와이리 불공정하노?
    저래 잘빠지고 저래 놀아나는 년놈들은 뭐꼬
    홍길동 못지않게
    시대를 원망(?)하고
    신세를 탓(?)하며
    오직 주(酒)님을 벗삼아 개판(?)으로 살았던 것 같다.

    자취시작 첫날 저녁,
    아마 라면으로 한끼를 떼우고
    소주 큰병으로 밤을 거진 세운 기억이 난다

    밤마다,
    인근 술집이나 음식점(주로 중국집)에서 소주,
    방에 들어와서 소주…
    술로지새우다
    이후 한학기가 다가는 6개월동안
    한번도 방을 청소해본적이 없었다

  • 작성자 24.07.05 09:41

    경환이나 나나 어지간히 게을렀던 모양이다.
    당시는 실내 담배가 일상이였지 싶은데,

    어느듯 눞는 자리 두 곳만 빼고 온천지에
    담배 꽁초, 담뱃재, 라면봉지, 휴지, 빨래거리
    발디딜틈이 없었다.
    거기다 반년동안 싸인 먼지까지…

    이후, 각자회사를 거쳐, 1990대 중반에 조경환을
    내가 다니는 회사에 소개하여 같이 근무하게 된다
    그러고 2010년 7월
    그는 자기만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못된 친구)

    '경고하우스'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조경환이와 같이한 시절이 덩달아...

  • 24.07.04 18:35

    옥자의 옛 이바구 정말 재미있네...언제 산내 함 가야 되는데,,,일단 서울오면 연락하소~

  • 24.07.04 22:59

    거 참 이상하제? 나도 대학시절 포커 첨 한 날이 생각나는데 패가 엄청 잘 들어와 돈을 얼마간 땄음. 다른 사람들 첨 한 날도 몇개 기억나는데 다 승률이 높았음.
    가만 생각해보니 '노름神'이 사람들을 노름판으로 꼬드킬려고 첫날 왕창 패를 몰아주지 않나 싶어...

  • 작성자 24.07.05 09:53


    당시
    24회정도 선배는 하늘같았고
    그런 형이 왜 졸업을 빨리안하고
    캠퍼서 인근에서 맴도는 지
    교련과목을 이수해놓고
    다시 교련을 신청해서
    교련 한과목 이수한다고
    한학기를 하숙하며 보낸 선배를
    '형', '형'하고 따랐던 것 같다

    당시
    서너살 선배를
    늙구렁이로 생각했지 싶은데,
    늙구렁이라 하더라도
    지가 늙구렁이라면 얼마나 늙구렁이였겠나?
    내가 지금 생각하니
    고만고만한 20대들의
    앞서거니 뒷서거리
    도토리키재기 뿐이였겠지만
    당시에는, 그 중에서도
    나름대로 경륜의 서열이
    의미가 있는 나이였으니

    모두들 순진무구하고
    모든 게 초짜던가
    초짜 수준에서 오십보백보...

  • 24.07.05 03:20

    공릉동 이야기가 나오니 추억이 떠오르네요. 나도 대학 1학년 교양학부를 공릉동에서 했고 그 동네에서 하숙을 몇 달 동안 한 적도 있어 분위기를 알고 있지요. 그때 김양화 하고 같이 하숙했는데, 양화는 요새 뭐 하능교? 이쪽엔 얼굴을 잘 안 내미는 것 같네요?
    그때 교정에서 옥선사도 가끔 마주친 것 같은데..., 나도 그에 못지 않은 촌놈인지라 부산에 왔을 때부터 문화충격이랄까, 글 서두에 바로 와닿는 부분이 적지 않네요. 특히 팝송 문화나 노름 같은 것이 이질적이라 반감 비슷한 느낌까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작성자 24.07.05 09:35

    ㅎㅎ,
    이법사는 안면이 있어
    고딩대 같은 반이 된 적이 있었다고
    이해하고 있었더니
    공릉동 캠퍼서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었군요?

    김양화는
    거제도 성포면이라고
    고려의종이 무신들에게 쫓겨
    감금되다시피 하여 살면서
    왕정복귀를꾀했던
    패왕성이라는 유적이 있는 동네로
    (하도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동네 출신이였지요

    공대졸업후 행정관련 공부를 하였는지
    부산대 법대?의 행정학과 교수를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네요
    90년대 중반에 부산에서 한번씩 만났던 기억이 있는데
    30년도 넘게 세월이 지나
    그것마저도 가물가물 합니다

    그때 마지막 만남시 술마시면서
    3~4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양화의 임담에 놀아났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이 양화교수 밑에서
    고생을 많이 하겠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수년전, 재민이 박사랑 서토거사가
    우리집 방문 했을 때
    우리집 뜰에서
    서토의 입담에 놀아났던 때와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였지요

    양화는
    온라이든, 오프라인이든
    동기회 출입은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요
    온라인은 확실한데
    오프라인에는 혹시...
    (백총장이 알지도)

    은퇴후는,
    부산옆 기장 철마에
    전원생활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하도 오래되어
    가물가물....

  • 24.07.05 10:18

    @玉忠錫 대학교수는 친구, 동기들도 학생으로 생각해 말이 많고 아랫 사람으로 여김...판검사는 친구를 범죄인 취급해 말 힘부로...좋게 보면 직업의식이지만 나쁘게 보면 갓뗌!^^

  • 작성자 24.07.05 11:12

    @김수인
    꼭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직업마다의 의식' 보다는
    물론 그런 것도 당연히 영향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마다의 의식,철학'
    '사람마다의 수양정도' 의 차이라 해야겠지요

    서토거사가
    노가리줄로
    재민이 박사나 나를 꼼착 못하게
    동여맨(꼼짝않고 묶여준)것이나

    대학시절
    나의 노가리에
    서울본토배기
    (경복고 출신 )내 친구가
    1학년 여름방학때부터
    홍도, 흑산도, 완도, 거제도를
    무전여행하다시피
    따라 다닌 (?)경우를 볼라치면...

    작년에 모처럼 울산서
    부부동반으로 그친구를 만났는데

    "그때, 왜그랫어요? 뭐가 좋아
    초가집에 모기 천국인
    시골을 8번이나 다녀가고..."

    내 이야기를 듣고,
    우리 할매가
    그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나가 씨부르는 것을 보니, 나에게)뭔가 있다.
    (내가)신기해서..."

    캤다던데,

    그리 순수하고 착하고 순진한 그 친구는
    서울대 교수를 지내고
    지금 은퇴하여 잘 살고 있지요

    서토거사나
    우리친구 사례로
    미루어 볼 때....
    ㅎㅎ

  • 24.07.05 10:52

    @玉忠錫 물론 지각있는 교수와 판검사가 있지요...대체로 그렇다는거 ㅎㅎ

  • 24.07.06 01:53

    @玉忠錫 양화 소식 고맙소이다.
    양화는 잇과인 공대생이었는데도 정치에 참 관심이 많아서 당시 그런 문제에는 초짜인 나를 여러 번 일깨워 주었지요. 하숙방에서 밥 떠 먹으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접은 신문 정치면을 들고 읽을 정도였는데 '니는 이런 것도 모리나? 와 그래 관심이 없노?' 하며 한심하단듯이 핀잔을 주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 모두 일흔 줄의 늙은이가 돼 버렸네요. 대학 졸업 후 결국 문과로 전향했나 보네요.
    입담이 서토와 비등했다니 서토, 분발해야겠심다! 하하하.

  • 24.07.05 09:31

    양화는 몇년전 아들네따라 부산 용호동에서 영종도 공항부근으로 이사하여 살고 있으며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에서 교수로 정년퇴직했지요.
    용호동에 살 때 한두번 만나 얘기를 나누곤했는데, 얼마전 통화했더니 다시 부산으로 내려올 생각이라네요^^

  • 작성자 24.07.05 09:54

    행정학과가 아니고
    사회교육과였군요
    양화랑 32년전쯤에
    부산대 권순홍교수, 김갑환 교수랑
    같이 만났던 게
    마지막 만남이였으니
    하도 오래되어...

  • 24.07.06 01:47

    강호 선비, 댓글 대하니 반갑소이다. 잘 지내고 있지요? 양화 소식 고맙네요.
    언제 내가 부산 갈 일 있으면 양화와 더불어 다같이 차 한 잔 했으면 좋겠네요. 그럴 기회가 있겠지요. 나는 양화를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못 봤어요. 혹시 선이 닿으면 안부 전해 주소.

  • 24.07.05 16:08

    포커 이야기가 나오니 또 엣날 생각이 나는군요.
    기숙사에서 포커판을 자주 벌리다 기숙사비를 날려.. 이를 보충하느라
    여동생 친구들에게까지 손을 벌리는 부끄러운 행각이 벌어지기도-^^

    그런데 나중에 듣고보니 그 패거리가 사기포커를 했더군요.
    둘이서 미리 짜고 판에 끼여.. 이저리 서로 올려치기를 하며 상대의 돈을 긁어간 것.

    경복고 출신으로 나보다 두 해 선배였고 같은 동에서 지내다 보니 안면이 있어 한 것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같은 학우끼리 그럴 수가 잇나 생각되어 많이 놀라기도 햇지만..

    역시 당시 서토는 어리버리한 부산 촌놈이었고..그들은 세상물정이 많이 앞선 서울사람들이엇다는
    뼈저린 사실을 많이 자각한 계기가 됩디다.

  • 24.07.05 13:17

    그런데 더욱 희안한 사실은 나중에 나성에서 근무할 때 보니
    그는 이미 미국에 건너와 동포사회에서 자동차 판매딜러로 크게 성공해 있더군요

    큰 교회에 장노로 재직하며 동포사회에 기여도 많이하는 멋진 사업가가 되엇습디다.

    역시 사람이 돈을 크게 벌자면..무언가 머리회전이 빨라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또한 알게 되엇지요.

    어쨋건 간에..포커에서 승율을 올리자면 어찌해야 하는 것이 유리한 지를 이미 일찌기
    깨달아 잇던 사람이엇으니..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밖에- ^^

    지금은 그가 과연 우찌 지내고 잇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 24.07.05 14:00

    북한 건은..이제 돌이키기가 어렵게 되어버려..우찌해 볼 여지가 없다 보아야-
    옥자 말대로 킬체인이건 핵개발이건 밀어부쳐서.. 같이 한 번 붙어보는 수 밖에 없겟지요.

    참으로..안보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천금같은 좋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햇는데
    결국 전임 문통이 그런 큰 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어이 무심히 깽판을(?) 쳐놓는 바람에..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엇다 하겟슴미다.

    무엇이 그리 두렵고 떫은 지는 몰라도.. 이제와서 가리늦게사 핵개발을 하려 합네 마네 할 바에야
    적절한 싯점부터 북한처럼, 미국을 상대로(?) 하여 핵개발을 줄기차게 추진해왔다면 더 낫지 않앗을까요.^^

    그간에.. 말이 통하는 같은 동족을 무심하게 대하며..밉다하여 무조건 계속 무시해 온 작금의 결과를 보며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 지를 되짚어 볼 생각은 전혀 하지않고..

    지금이라도 같이 핵개발하여.. 누가 먼저 죽나 한 번 붙어보자는 식의 언행을 지금에 와서도 모두들
    내보이고 잇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지 않은지요? ^^

    이제 우리 세대들은 손을 떼고...마음 편하게 후대들에게 맡겨야 할 때가 온듯 합니다.

  • 작성자 24.07.05 22:24


    블러핑 이바구에
    서토거사가 마이 심기가 맑지 않은듯
    그렇다면,
    서토거사가
    블러핑 고수?
    블러핑 피해자?
    우옛거나
    그짜서 끙끙 앓지말고

    마, 구룡포로 돌아오소

    구룡포 앞바다가
    유전개발로 산전벽해되마
    돌아오고싶어도 몬 돌아오고
    돌아와도 누울자리 없을 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씰데없이
    남북아해들 드잡이질에
    신경쓸 시간이 마이 없지 싶웁니다

  • 24.07.06 01:08

    블러핑 이바구야.. 그런대로 재미가 있는 내용이지만

    어쨋던 남북관련 사항이..핵개발 운운해야 할 정황에 이르렀으니
    씁슬한 심정이 안 될 수가 없지요.

    사실 세상 모든 일을.. 대개는 자기 중심의 편익으로 보게되는 것이라

    은퇴하면..어릴적 고향 구룡포에 거처를 마련하고..팔도강산을 구비 다니며..
    젊을 때 잘 몰라 무관심 했던 고국의 여러 곳을 찾아다녀 보리라 카고 잇엇는데..

    북쪽은.. 마음편히 다닐 여건이 마련되지 않게 된다니..우찌 마음이 편하겟슴미까요.

    이 모두가 옥자 때문이니(?)..일부라도 책임을 지도록 하소. ^^

  • 24.07.06 01:07

    돌아가는 판이 마음에 들지않아.. 근자들어 북쪽관련 이바구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차 일체 함구하고 잇는데..

    옥자가 또 이야기를 꺼내니..그냥 넘어가게 되면.. 서토가 마이 사랑하고 있는
    옥자가..행여라도 섭섭하게 여길까 우려되어..조금이나마 답을 한 것이니..
    참조해주기 바라요.^^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돌아가는 정치판 형세가 극히나 유사하여
    이 곳 사람들의 심기도.. 별로 좋지 않슴미다.

    이전부터..드렌스 젠다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게 될 것이란 말도 잇어왓고요-

  • 작성자 24.07.06 09:14


    '돌아가는 판이 마음에 들지않아..'

    그래 우짜겠는교?

    머가 그리
    미련이 남고
    맘에 안들마
    전쟁도 불사하는 세상인이데
    마, 그런 거는 속된 아아들한테,
    저거 살 세상이니
    찌지든 볶든
    쌩으로 묵던 내삐두고

    여기 '벌떡주' 한병 보내니
    많이 갖고 있는 '마음 편히 酒'
    섞어서 잡사보소

    마음도 달래고,
    거시기도 달래가며

  • 24.07.06 18:25

    '벌떡'주 묵고 부화나 '벌컥'내라 는 뜻으로 들리능군요.^^

    하지만 옥자가 귀하게 챙겨준 약주라 하니..고마운 마음으로
    한모금 마시고.. 씁슬한 마음을 달래 보겟슴미다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