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高(부산고)하우스' 에서의 추억>
1970년대 초반, 성북구(지금은 노원구?) 공릉동 서울공대앞에는 경남고 출신들이 주로 하숙하는 이른바, ‘경고하우스’, 부산고등학교 출신들이 주로 하숙한다는 ‘부고하우스’ 라 불리는 하숙집이 몇십m 떨어져 위치하고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에 입주해 있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기숙사에 입주하지 못한, 기숙사에 입주하지 않은 학생들이 이런 하숙집을 이용했다.
나는 입주과외다 자취다 하면서 떠돌아 다니다, 하숙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이후, 아마도, 대학 1학년말 or 2학년 초~3학년때는 ‘경고하우스’에, 대학4학년 이후부터는 ‘부고 하우스’에서 하숙을 했다. 왜 경고하우스에서 부고하우스로 하숙집으 옮겼는 지는 기억에 없다
내가 시골중에서도 시골인 곳에서 자라, 도회 고등학교부터,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이른바 ‘탈북민’들 못지 않는 생소한 경험들을 하고 적응하는 데 애를 먹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다.
북한 사람들이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정착해나가는 기사나 유튜브들이 제법 인기가 있다. 그 속에 등장하는 탈북민이 북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경험들을 접하고 당황하고, 적응과정에 1년이상 걸렸다는 이바구들을 종종 접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학초년시절에도, 포커, 훌라, 당구…등의 게임이나 오락이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에서 접하듯이 생소했다.
내가 대학 기숙사에 못 들어간 이유는 ‘입주경쟁’도 심했지만, ‘기숙사비’ 때문이다. 당시 대학 졸업이 가까워질 때, 기숙사비가 4~5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기중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 중 일부를 다음학기 기숙사비로 제껴 두지만, 항상, 그 돈이 모여지지가 않았다. 고등학교나 대학 친구들은 그런대로 내 사정을 고려하기도 하였지만, 시골친구들은 돈을 써야할 경우, 일방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했다.
이를테면, 전방에 군대를 간 시골친구들이 휴가 때가 되면, 거제도 저거 집에는 안가고, 내한테로 와서 내 핑계대며, 하숙집 밥을 얻어 묵고, 나랑 자거나 빈 방에 자고, 밤마다 술처먹고 하다 보니 언제나 내 하숙비마저도 탕진하고, 심지어 하숙비도 외상으로 하숙생활을 하는 원인 제공을 하기도 한 것이다. 심지어는 귀대할 때는, 직속 상관(아마 ‘선임하사’라던가?)에게 담배 한 보루라도 사다줘야 한다면서 내 땀이 배인 돈을 뜯어(?)가곤 했다. 고향으로 가봐야, 가난한 집안 꼴에 오고가고 차비라도 낭비다 싶어서였겠지. 군대휴가 내내 내곁에 머물다가니, 저거 집에서 해줄 군대 뒷바라지를 내가 대신해준 친구가 너댓명이나 되었다. 정작 나는 군대를 안가고, '방위산업체에서 군대근무를 대체하였다.
학교를 졸업을 몇달 앞두고, 창원소재 업체에 취직하여 근무하다, 졸업 때가 되어, 아마도 졸업식이 1979년 2월모일인가, 직장의 어느 현장관리 친구가 어렵게 살아오느라, 서울구경 못해봤다 해서 “그래 내가 구경시켜 주께” 해서 데리고 하숙집까지 와서 하루를 자고, 옷을 빌려 입고, 졸업식을 끝내고,
그 친구에게 “자 이제 서울시내 돌아다니다가 내려가자’ 카며, 하숙집 아지매한테 인사를 드릴려는 데, 그 하숙집 쥔 아지매, 내 멱살을 잡으며,
“OO이 학생, (밀린)하숙비 내고 가라:” 칸다
하숙비가 8개월치가 밀려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 하숙집아지매도 그럴만하다. 점잖았던 하숙 집 분들이기에 그 정도지 안그랬으면, ‘하숙비 안내고 도망갔다’ 정도로 고발을 당해도 크게 당했지 쉽다.
하숙비 주고 나면, 모처럼 서울 구경시켜준다고 데리고 온 친구는 우짜노 싶어
“봉급받으면 보내 주께요” 캤더니
일부만 갚고, 나머지는 뒤에...캐도
“지금 안 갚으면 못 갚는다. 그만 다 내고 가라.”
카며 멱살을 놓지를 않는다. 말은 웃으면서 했지만, 참 단오했다. 그 어진 쥔 아지매의 단오함에 풀이 죽어, 하는 수 없이, 지갑을 열고, 하숙비 외상을 다 갚았다. 당시 봉급이 30만원정도? 하숙비가 1만오천원~2만원정도? 밀린 하숙비는 당시 돈으로 10만원정도였던 것 같다.
하숙비가 8개월치나 밀렸다는 것을 알았으면, 회사봉급받아 조금씩, 모아서 졸업 때 올라가서 갚을 생각을 해야지, 그라고 그 친구를 데리고 가지 말던지 해야지, 아이마, 졸업식에 참여하지 말던지, 서울 구경시켜준다면서 서울역으로 바로 가지 않고, 늦은 밤에 대전역에 내려 주변 환락가에서 미리 돈을 많이 탕진한 것이 화근이였다. 당시는 참 앞뒤 안재고 닥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았던 탓이였지 싶다
그 때의 성북구 공릉동은 부근에 불암산, 수락산 남쪽 자락 어딘가에 있었는데, 육이오때 중공군 사령부였다나? 많은 건물에 난 자국이 총탄자국이 였다는 소릴를 들은 것 같다. 그곳은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을 거쳐 한참 가야 하기 때문에, 늦은 시각에 서울 역에 도착하면 서울역 뒤쪽 아마 ‘만리동(?)’ 인근의 여관에 자야 했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대전역에 내려 한잔하고 아침에 올라가자 카며 대전역 부근에서 1박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참으로 제멋대로 개판으로 산 생활이었는데, 그게 회사생활 몇 개월째로, 오래동안, 그 개판치듯 생활한 버릇이 수이 벗겨지겠는가? 그 연장으로, 대전역에서 탕진하고, 밀린 하숙비 다 갚고 나니, 창원으로 내려갈 차비밖에 안 남는다. 당시는 신용카드같은 것도 없었는 지, 그래 우짜노? 버스 타고 서울 역으로 오면서, 저곳이 ‘동대문’, 저곳이 ‘삼일빌딩’, 저곳이 ‘남대문’… 차장 밖으로 뵈는 건물을 눈으로라마 구경시키고 돌아왔다. 데리고 온 친구가 그 현장을 생생히 지켜보고, 수십년이 지날 때까지 그때의 사건을 회상시키곤 했다.
술로서 세월을 보내던 하숙시절, 아마 당구나 바둑은 대학1~2학년때 배운 것 같고, 훌라와 포커는 하숙을 하면서 24~26기 선배 선배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포커게임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기본 틀은, 받아드는 카드조합의 등급을 이미 확보하거나, 쥘 것으로 예측 또는 기대하여, 배팅을 해나가면서, 상대의 카드조합의 등급을, 예측하여, 게임에서 이길 수 있겠다 혹은 지겠다 판단하여 상태의 배팅에 따라 가거나(Call), 죽거나(Drop), 받아치거나 선택하여야 한다.
배팅과정에서 상대의 미세한 심리변동이나 기세변화를 이용하여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읽은 상대의 기세를 이용하여, 유리한 판세라면, 더욱 크게 상대를 끌어드리기 위해, 불리한 판세면, 유리하게 유도하여, 게임을 이기게 하기도 하지만, 불리한 판세나 유리한 판세라도 적절한 Drop 작전으로, 상대에게 나의 패턴이나 기세를 읽히지 않도록 연막작전을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막작전은 작은 것을 잃어주며, 큰 판을 노리는 일종의 성동격서전법을 쓸 수도 있고, 동일한 배팅 패턴을 흐트러뜨려 ‘혼수모어’작전으로 상태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거나 잘못 읽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처음 포커라는 게임에 참여한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경남고 24회선배와 내가 ‘부고하우스’에 하숙을 할 때이다.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부고 25회(경고 26회와 동년배) 선배가 같이 하숙을 하고 있었는 데, 어느 날, 아마도 KIST인지 ADD인지 근무를 하였던, 그 부고 25회 선배의 동기들이, 먼저 졸업을 하였지만, 졸업을 않하였는지, 못하였는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성이 정 씨라는 것만 기억나는 정모씨의 하숙집인 우리 하숙집으로 그분친구들이 놀려와서 포커를 한 것이였다. 경고 24회선배는 평소 잘 어울렸던 것 같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부고25회와 경고 24회 선배한테 게임룰을 배워 게임에 참여 하였다.
몇 번의 판이 돌다, 내가 첫 포커를 배우고 첫 포커판에서 대박을 내게 된다.
멤버들이 내가 초자인 것을 이미 알았다. 초자일 터이니, 대충 배팅하면 판을 거둘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따라온다. 얼마의 판돈을 걸어도 ‘Call’, 어떤 때는 크게 받아치다가 ‘Drop’ 저 초자놈의 녀석의 평소 포커판에서의 행동패턴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도저히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리 생각했을 듯 싶다.
다행히, 나로서는 첫날부터 운이 좋았다. 패가 절묘하게 들어왔던 것이다. 한번은 스페이드(♠) 무늬의 ‘AAAA’가 들어왔다. 물론 ‘AA’, ‘AAA’를 거치면서 들어온 것이다. ‘AA’때는 평범하게, “AAA’가 되었을 때는 제법 크게 배팅을 했다. ‘AAA’외 페어(Pair) 카드가 있으면 ‘ACE 풀하우스, 이는 ‘2222(2 Four card)’다음으로 높은 패이기 때문이다. 그런 패는 환상적인 패다.4카드(포커)중에 제일 낮은 '2222' 패 바로 아래등급이기 때문이다. 같은 번호가 4장이 들어가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그런데 그 다음 패로 또, ‘A’가 들어온다. ‘AAAA’가 되었다. 세상에 이보다 높은 패는 동일무늬의 카드가 연속순번으로 5장이 들어오는 경우인 스트레이트 플러시 밖에 없다(아마도 그럴 것이다). 스트레이트 플러시 주에 제일 노픈 것은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이다, 이것은 같은 무늬의 'A,K,Q,J,10 카드' 5장을 포함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스페이드(♠), 다이아먼드(◆), 클로버(♣), 하트(♥) 4종류의 무늬별로 1번씩 존재하는 천지大패이다. 그 4가지 중에서도 스페이드 무늬의 것이 젤 높다는 것으로 아는 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무엇이 두려우랴?” 미친 듯이 배팅이 이어졌다. 이때, 두 사람이 받아 첬다. 그래서 한동안 엄청난 배팅이 이루어 진 것이다. 그리고 패를 오픈하는 순간 세상에 ‘2222’, ‘J J J J’ 그리고 나의 ‘AAAA’. 3인이 4카드(포카)였던 것이다
상대 중 일부는 이른바 내가 판을 키울 때, 처음 포커라는 게임룰을 배운 놈이 ‘블러핑[ Bluffing ]’ 이겠거니, 이런 못된 것부터 배워가지고 미친 배팅을 하는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블러핑은 포커게임에서 자신의 패가 좋지 않을 때, 상대를 속이기 위해, 허풍을 떨거나, 자신의 패가 좋을 때, 상대를 끌고 가면서 판돈을 키우기 위해, 교묘하게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의 패가 약한 것처럼 보이게 하여, 역시 역허풍을 떠는 매우 흔한 전략이자 기본전략이다.
포커판에서 이를테면, ‘AAAA’를 쥐고 있으면서 ‘AAA’+1 Pair인 '풀하우스' 나 ‘AA’+1 Pair인 '에이스 2 Pair' 냄새가 은근히 나게 해서 '에이스 2 Pair' 보다 높은 패나 .풀하우스.보다 높은 패를 쥔 쪽이 흥분해서 배팅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AA’+1 Pair인 '에이스2 Pair'이면서, 풀하우스 냄새나 그보다 높은 패를 쥔 것처럼 상황관리를 하여 ‘AA’+1 Pair보다 높은 패를 Drop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아무 족보도 없는 패를 들고 그보다 높은 패들을 Drop 시키는 경우도 있다. 'AAA' 나 'KKK'같은 높은 트리플 같은 아까운 패도, 심지어 낮은 풀하우스, 이를테면 'J J J+1Pair' 같은 풀하우스도 'Drop'시킬 때도 있다.
처음부터 만들어진 패가 들어오는 것은 드물고, 후속 패를 받으면서, 작전을 구사하여야 한다. 우선 패를 받는 과정에 가능성이 있는 패가 잘 들어와야 하고, 배팅자금이나 배짱, 상황관리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 이런 역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구사하기 힘든 작전들이다. 그날 나는 이런 역량도 없으면서, 운좋게, 우짜다가 ‘AAAA’가 조기에 들어와서, 다른 4카드패를 막판까지 상황관리를 하며, 끌고가기 쉬웠고, 포카드를 제압하고 나니, 내 기세가 하도 등등, 내가 대충 받아치면, 상대가 Drop하기 일쑤였다. 정착 그 환상의 ‘AAAA”에 기가 꺾인 때문인지, 나에 대한 정보가 엉켜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부터 나의 이른바, ‘블러핑’도 꽤나 잘 통했던 것이다.
그날, KIST인가 ADD인가에서 원정 온 도박패(?)들은 돌아갈 택시비를 내가 대준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내 포커 놀음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도리, 훌라로 바뀌는 바람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어쨋튼, 짧은 내 포커게임 역사 속에서 첫날의 환상의 패나 강렬한 게임운영 같은 기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뾰록난(?) 도요타의 ‘블러핑’ 전략>
‘전기차 열등생’ 도요타, 배터리 승부수 주가 급등’
‘전기차 열등생’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잰 걸음을 놀리고 있다.
올해 1월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한 뒤 지난 4월 ‘전기차 전환을 공식 선언’한 데 이어 이번에는 전기차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꼽혀온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내놨다.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전고체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의 양산 시점이다. 도요타는 이날 공개한 자료에 그 시점을 2027~2028년으로 적시했다. 도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현 기술 수준에선 전고체 배터리의 제조 비용이 오늘날 전기차 배터리의 주류인 리튬이온 배터리에 견주어 4~25배가 높은 점을 염두에 두면, 앞으로 3~4년 내에 가격 경쟁력이 있는 수준까지 제조 기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 한다. 일본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는 “도요타가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면 전기차 시장 판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car/1095833.html(2023년8월)
수년전, 세상에 전기차 붐이 일어 세게적 관심이 활활 타오를 때, 도요타는 2050년까지 엔진 자동차를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로 대체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에 공개한 전고체 배터리도 당시에는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차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도요다 미래전략에 ‘전기차는 없다’ 라는 메시지를 강렬히 내놓은 것이다
이에, 뉴욕타임즈 등 외신들은 보도했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기술에 집중하다보니 전기차 기술에는 소홀했고 부족한 전기차 기술 경쟁력을 가리기 위해 전기차 대중화를 늦추려 했다. 전기차 도입을 지연시키고자 로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도요다는 나름대로 논리를 제시하였다. 일종의 핑계(?)라면 핑계다..
'모든 차량이 다 전기차로 바뀌면 극심한 전력 부족 사태를 초래할 것'
(https://blog.naver.com/tech-plus/222551284555 )
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2020년에 꿈의 배터리라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릿드 차에 탑재하겠다고 계획을 공개한 것이였다.
하지만, 지난4월, ‘전기차 전환을 공식 선언’한 데 이어 이번에는 전기차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꼽혀온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그 시점을 2027~2028년으로 적시했다
뉴욕타임즈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도요다는 부족한 전기차 기술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술 수를 쓴 것’으로 이해할 만하다. 특히,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하거나 시작해놓고,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릿드차에 적용할 것이다' 고 하는 것은 포커 게임의 블러핑 같은 술수였다.
지난 20여년동안, 중국업체, 테슬라, 한국업체들, 벤쯔, BMW등 독일 명가 등은 물론이고, 닛산, 혼다 등에서도 너도나도 전기차를 개발하고 상품을 내놓는다고 난리법석이였는 데,
자동차 명가로서 세계 제1위 도요타가 미래전략에 ‘전기차는 없다’ 카면서, 전기차는 언급도 안해왔는 데, 누구나, ‘이상하다 뭐가 있나?’ 했었다,
드디어, ‘전기차 전환을 공식 선언’을 선언한 것이다.
일찍이 나는 여러 글에서 전기차의 전망과 ‘도요타의 전략’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나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everroad/223498328936,) 중에서 이런 글(올린 날자가 최근으로 되어 있지만, 이 날짜는 이전의 블로그에소 옮겨온 날짜이다. 글은 훨씬전에 이전의 블로그에 올렸던 것 )을 발견 할 수 있다..
[도요타 전략은, '성동격서(聲東擊西)', '혼수모어(混水摸魚) '인가?
기존의 리튬배러리는 불안전하고,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고 보다 안전하고 주행거리가 늘어나는 '전고체'배터리' 를 개발했다? 전고체배터리 만으로는 세계의 기랴성 같은 추격자들을 뿌리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정적인 기술을 확보할 때까지 전략노출을 감추고, 혼선을 유발하여 그 와중에 독보적인 기술개발을 완성하고 그때쯤 되면, 짜장~~하면서 등장하는 영웅처럼 '우리는 이미 이런 수준의 전기차를 양산한다. (하이브릿드, 수소연료전지차는 이제 생산하지 않는다)' ]
이 내용은 동기카페에도 수차 소개된 부분이다. 내 예측대로, 짜잔하고 나타난 것이, 도요타의 올해4월, 전기차 전환을 공식 선언’ 하고,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 발표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가격경쟁력을 명분이 더해졌다.
‘가격을 싸게 만들 수 있다’ 는 명분을 들고 나왔는데, 그 동안 ‘전기차는 없다’고 한 것은 기술이 없어 그런 게 아니라 가격이 비싸서 그랬다. 이제 기술도 있고 싸게 만들 수 있는 기술 또한 우리 도요타가 세계 최초로, 개발, 확보했으니, 이제 전기차를 만들라 한다. 우리 잘하제? 그런 의미로 읽혀지도록 은근슬쩍 전략 수정을 한 게 아닌가?
그런데, 도요타가 ‘전략적 큰 실수를 한것’인지, 더 고도한 ‘혼수모어(混水摸魚) 전략이나, ‘블러핑 전략' 을 구사하는 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도요타 전략을 봤을 때,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 도요타의 행실로 봤을 때, 뭐 별 크나큰 전략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뉴욕타임즈 보도처럼, '하이브리드 기술에 집중하다보니 전기차 기술에는 소홀했고 부족한 전기차 기술 경쟁력을 가리기 위해 전기차 대중화를 늦추려 했지만, 지금은, 그 동안 세상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뒷구멍에서 준비해온 전기차 기술이, ‘도요타 답다’라는 평가를 자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신감을 회복할 자신이 생겼고, 더 이상 전기차의 대중화를 늦추다간, 1위는 물론이고, 자동차업계에서 존재감이 급격히 추락할 두려움이 겹쳐, 전략을 노출시킨 것' 아닌가 싶다.
바야흐로, 도요타가 ‘전고체배터리의 양산 싯점을 2027~2028년’ 으로 적시한 터이니, 발표만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2030년 초반’으로 예상한 ‘전고체배터리 양산 싯점’보다 수년이 앞선다.
발표대로라면, 전기차, 전고체 배터리 경쟁은 더욱 가속화 될 터이다. 도요타는 여전히 이 분야 First Mover로서 자존심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의 전자산업이 한국에 역전당하는 데는 1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도요타의 기술이든, 또 다른 블러핑 전략이든 아니든, 자동차 세상은 이제 도요타가 만만히 보던 시대가 아닌 것이다.
도요타가 ‘전기차는 없다’ 고 한 이유로,
‘모든 차량이 다 전기차로 바뀌면 극심한 전력 부족 사태를 초래할 것' 이였지만, 그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닌데, 이제와서, 전략을 바꾼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는 도요타의 블러핑이든지, 무지였던지 둘 중에 하나이다.
도요타가 그 점을 깨닫고, 이실직고하듯이, ‘전기차로 전환을 공식선언’ 하고,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선언’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배터리소재 및 전고체배터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동기카페나 내 블로그의 앞선 글 [금속배터리● 분산전원 ●전고체배터리
<https://cafe.daum.net/everroad/mysR/2426>를 참고 요한다.
<막장 ‘블러핑'들>
‘유사시 핵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大事變)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同族)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인 두 교전국(交戰國) 관계’
올해 연초 김정은 남쪽을 향해 온갖 거친 말을 쏟아냈다. 이 뿐만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공갈 협박을 해댄다. 여기에 김여정이도 가세하여 막말 대잔치, 막말 합창이다.
북은 상대를 제압할 확실한 패가 두가지 있다. ‘핵이라는 무지막지한 패'와 ‘이판사판 막가파 정신’이 그것이다. 여기에 핵역량 강국 러시아가 뒷배를 받쳐주고 있고, 중국이라는 강국이 여차하면 도와주거나 대신해줄 우군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핵무기는 이른바 상호확증파괴’ 무기로, 핵무기로 남을 당하게 하면, 나도 똑같이, 그이상으로 핵무기로 당하기 때문에, 나라의 소멸을 각오하고 사용하지 않는 이상,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다.
미.소 경쟁시대에, 미국이 2차세계대전 중에 핵무기를 개발하여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투하한 경험을 먼저 가졌다. 소련도 이어서 핵무기경쟁에 뛰어 들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하려 하자, 반대하는 미국에게, 소련이 미국을 공격하면, 프랑스를 대신 막아줄 것인가 그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 해서 핵무기보유국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핵부기 보유댓수를 AI에게 물어보니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등이 출처라면서 씨부린다
북은 20기에서 8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중국은 500기, 2030년까지 1,000기정도 보유예상. 러시아는 약6,000~7,000기, 미국은 5,500~6,000기, 그외 프랑스는 200~300기, 영국은 225개, 인도는 160~170기, 파키스탄 약165기, 이스라엘은 80~90기로 추정한단다.
소형 전술핵 무기인지, 전략핵무기인지, 수소핵융합핵무기인지 원자핵무기인지 구분은 안되지만, 세계곳곳에 대충 15,000이상의 핵무기가 보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도 핵무기 사용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한국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한국은 굴복 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 사용의 족쇄가 풀린 이상, 북도 핵공격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안정을 장담 못한다. 핵무기를 사용한 이상, 남쪽의 이판사판 죽기살기 총공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남은 군사력이 안 나서더라도, 미국등 동맹국들이나, 러시아나, 중국등 북의 동맹국들도, 그들을 온전히 그대로 둘 리 만무하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정은이 일당을 청소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핵무기를 쥐고 흔드는 것은 외부에 대해서건, 내부 단속용이다. 체제불안을 키우는 북의 MZ세대의 동요를 가라 앉히려 이들을 겁박하려는 양수겹장용 술수일 뿐이다. 그걸 바캍 세계, 특히 물렁한 남한을 향해 흔드는 것은. 일종의 큰 '블러핑'인 것이다.
그러나, 방귀자주 뀌는 놈이 똥을 싼다고, 자꾸 핵무기를 붙잡고 흔들다 보면 실수라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정은이의 블러핑이 불러핑으로 끝나도록 상황관리를 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포커게임이나, 운동경기나, 정치투쟁에서, 그 대응 수위, 대응방법이 다를 뿐 블러핑 수법은 흔하게 가동된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에서는 더욱 더 블러핑이 가동되기 마련이다.
때에 따라 ‘불러핑’임을 알아도, ‘블러핑’을 눈치 못 챈 것처럼, 블러핑이 아닌 것처럼, 대응 수위를 유지하는 것, 블러핑이 아니라 하더라도 블러핑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블러핑’이라는 것을 까발리는 것, 역시, 상황관리의 방편들이고 블러핑을 역으로 이용하는 기술들이다.
김정은는 스위스에서 공부를 했다더니 어디 도박판 다니면서 블러핑 기술을 배워왔나? 남쪽을 향해, 블러핑 수작을 거는 게 유치하기도 하고 무식하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상황관리는 우선, 김정은의 공갈협박에 ‘절마들이 자기내들 내부를 향햔 발악이구나. 그 발악을 어디까지 하나보다’ 라고 애써 무시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도 이런 패가 있다는 것을 은근히 내세워야 한다. 필요하면 우리도 '블러핑 전략'을 사용하여야 한다.
북의 미사일과 핵무기에 대해, 우리는 3축체계 전략을 이야기한다. 즉,
첫째, 킬체인(Kill chain)으로 적의 미사일발사 징후를 미리 포착하여 선제타격하는 시스템이다. 둘째, KAMD라 불리는 미사일 방어체계로, 발사된 미사일을 고도별로 요격하는 것이다. 셋째, KMPR 즉 대량응징보복이라고, 적의 공격이 발생하였을 경우 강력한 보복 공격을 한다는 개념이다.
말로서, 글로서는 몇줄로 표현하지만, 실전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이 소요되고 지속적인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어쨋거나, 3축체계가 거진 확립되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일반적인 개념의 전쟁이라면 통할 전략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이스라일 전쟁에서 보듯, 드론 같은 저가 공격무기의 대량 침공 같은 공격형태나, 핵공격 같은 경우의 대비는 완벽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많은 수정과 보완이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우주에 군사위성을 쌓아올려 촘촘히 배치하고, 장거리 무인정찰기, 고고도유인비행기 등으로 발사위치와 발사징후를 포착한다던지, 천궁2 부터 사드 등에 이르기까지 배치하여 발사된 미사일을 방어한다던지, 현무시리즈나 극초음미사일 등으로 원점타격이나 이동발차체, 지하벙커 등을 작살을 낸다고 하는 데, 그게 가능할 지, 블러핑은 아닌 것 같은 데, 문제는 ‘핵’은 쏘게 되면 한발에 도시 하나가 통째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비록 핵무기 사용한다는 발언이 ‘블러핑’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대비를 안 해둘 수가 없는 것이다.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사엘이 초반에 당한 것은 저가 로켓, 드론을 일시에 날려보내, 이른바 ‘아이언 돔’이라는 방어체계에 정보부하가 한계를 넘어 걸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북이 굳이 막장의 광기를 부려 핵을 사용하며 공격한다면, 하마스의 공격을 참고하지 않을까 싶다. 저가 미사일이나 드론을 대량으로 날려보내면서 그 중에 핵무기 탑재 미사일을 섞어 쏠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3축방어체계 만으로 가능할까? 당연히, 나라에서도, 그런 점을 심각하게, 신중히 검토하고 대비를 하여야지 싶다.
지금과 같은 세계정치.군사적 긴장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10년이내에, 한국도 핵무기를 무장 하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리되면 미국 전술 핵의 배치가 되던, 자체 개발이 되던, 순식간에 수십 기 내지는 수백 기의 핵무기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찰위성의 수도 충분히 증가 할 것이고 해상도도 높아지고 사용환경에 대한 제한도 해소될 것이다
한국의 3축체계의 보완과 고성능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중 하나가 '레이져 무기의 전력화'이다. 현재는 20KW급 레이저무기가 실전배치되어 있다. 항공기나 미사일을 파괴하거나 격추에는 300KW급이 필요하다 한다. 1MW 급 레이저가 개발되면 탄도미사일 요격에도 대응할 수 있다 한다. 레이져는 저렴한 비용에 대량발사가 가능하고, 타격속도가 빛의 속도로 빨라, 반복타격, 수정타격, 여러목표 물타격이 순식간에 이루어져 이를테면 1MW 몇대면, 어지간한 미사일 공격도 발사원점에서 주저 앉힐 수가 있을 것이다.
사용이 금지된 'EMP탄도 한국의 3축체계의 보완과 고성능화애 필수적'이다. EMP는 Electro_Magnetic Bomb으로 전자기 펄스폭탄이라 불리기도 한다. 인체에는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비살상무기이면서, 강력한 전자기 펄스를 방출하여 수 km내에 존재하는 전자기반시설이나 물체 이를 테면, 가전제품, 컴퓨터 등을 파괴하거나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컨테이너에 숨겨 사용할 수 있는 EMP탄 시스템은 러시아에서 개발되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발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EMP탄을 상공에서 터뜨리는 실험을 계속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2017년 11월 기사에 의하면,
미국 의회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전자기파, EMP 위원회를 부활시킬 전망이다. 허황된 주장으로 일축했던 북한의 EMP 공격 가능성이 부각된 데 따른 움직임이다.
2017년, 상하원이 합의한 2018~2019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은 약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국방예산 집행을 허용하고 있는 데, 법안에는 북한 등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할 요격 미사일 능력 강화와 무기 현대화 예산, 그리고 EMP 공격에 대비할 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담겼다.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각각 6명씩, 총 12명의 위원을 EMP 위원회에 임명하고 EMP 공격의 위협을 평가해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법안에 따르면 EMP 위원회는 향후 20년 동안 미국에 가해질 수 있는 EMP 공격이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공격 가능성을 평가하고 정기적으로 의회가 보고해야한다, 또 EMP 공격 위협에 대한 평가와 대비 전략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최종 보고서를 국방장관에 제출하도록 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시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자기파(EMP) 공격에 대비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EMP 공격으로 미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경고해 왔는데, 처음으로 EMP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지침이 마련된 것이다
2023년 12월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방부는 12일 ‘2025∼2028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한국형 3축 체계 강화 차원에서 초소형 위성체계와 군집(벌떼)·자폭드론, 전자기펄스탄(EMP탄), 정전탄(탄소섬유탄) 등의 개발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19일,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한국군이 개발하고 있다는 초고성능/초강력 무기에는 ‘EMP탄..’도 포함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1999년 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2000년대 중반에 메가와트급의 피해반경 300미터내의 초보 EMP탄을 개발했고, 2010년대 중반에 피해반경 1km대로 늘렸고, 최근엔 기가와트급의 피해반경 5km 폭탄으로 거의 개발완료됐다고 한다.
한국군이 개발한 FCG(Flux Compression Generator )방식의 EMP탄을 만들려면, 매우 정교한 기폭장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기폭장치는 원자폭탄의 우라늄을 매우 정밀하게 압축하는 기폭장치와 아주 유사하다. U235 덩어리를 3차원적으로 사방에서 압축하여 U235의 부피가 정확하게 30%만 줄어들게(압축되게) 만들면 곧바로 핵분열이 일어난다. 정확하게 이런 압축폭발 기폭장치가 FCG방식의 EMP탄에서 사용된다고 하며, 실제론 원자폭탄의 기폭장치보다 훨씬 정교한 압축 폭발이 FCG EMP탄에 요구된다고 한다. 즉, FCG방식의 EMP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은, 사실상 핵폭탄의 기폭장치를 이미 손에 넣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무기를 개발 하겠다’ 고 발표할 때는 이미 개발에 완료됐거나 완료에 가까워진 상태라는 것이다.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체계로 3축체계로 준비, 대응하여 오지만, 핵무기개발 제한에 걸려 재래식 무기개발에 집중할 수 밖에 업는 상황해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전략은,
[3축체계]를 더욱 고도화시키고, 도발의 징후를 24시간 1초도 놓치지 않고 추적.감시하는 군사정찰위성 등을 수단, 도발의 징후가 현저할 때, EMP탄, 고출력 레이져 무기 등을 이용하여, 도발자체가 불가하거나 도발 무기가 북의 상공이나 북의 지역에서 폭발하게 유도하는 기술, 북의 심장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현무4,5같은 이른바 괴물미사일, 여러 다층 여러 요격시스템 등을 대량으로 비축시켜대비하여야한다..
그동안 러시아의 정치.군사지도자들이 서방을 향해 쏟아낸 말들이, 상당한 ‘불러핑’임이 드러난 것이다. 완전 ‘황(荒)’패는 아니라도, 에이스 원페어(AA)정도 들고, 마치 풀하우스나 4카 정도는 되듯이 처신한 엄포에 놀아난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러시아’의 군사력의 실체가 들어 났다. ‘풀하우스나 ‘AAAA’를 쥐고 있는 상대는 기가찰 뿐이다. 그래도 혹시나 조심스러울 뿐이다.
이런 ‘불러핑’ 전략은 ’중국’ 도 이분야 대가이다. ‘성동격서’, 혼수모어’등 병법이 일상화되어 있는 중국, 미국에 맞 설 때까지 ‘백묘흑묘론’으로 버티고자 한 등소평 전략을 폐기한 것이 시진평의 전략일지, 실수일지. 아마도 실수라도 실수인 것은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실수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전략일 뿐’이라는 인상을 뿌려, 자신들의 실수와 허점이 노출되는 것을 감추려 할 것이다. 그것마져도 그들의 ‘블러핑’ 전략이다.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불러핑’대가들을 행님으로 둔 북한이 배운 짓거리 중에 그런대로 쓸만한 것이 ‘블러핑 전략’아닌가 싶다. 사용하지도 못할 핵무기, 사용한다면, 자기 들도 멸망할 것을 알면서, 핵무기 카드를 흔드는 북의 불러핑 전략.
24시간 정찰위성, EMP탄과 고성능 레이저무기가 다량으로 개발되어 이른바 3축방어체게에 더해진다면, ‘북의 불러핑 전략’ 마저 무용지물이 될 것 아닌가 싶다. 그게 팩트이든, 그거마저, ’불러핑’ 전략이든 한 10년정도만 상황을 잘 관리한다면, 핵무기보유나 발사자체가 스스로에게 더 위험하고, 위협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민생을 도외시하고 ‘핵과 미사일’개발에 올인 해온다는 북의 처지가 참 딱할지, 북의 블러핑이 '블러핑으로 끝나도록 대비하고 상황관리에 올인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딱할 지, 당대에 결판이 날 것 같으니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첫댓글 휴가나온 친구들 일일이 케어...대단하셨어.
글고 월 1회 동기 4명(옥자가 잘 아는 이들)이 훌라를 하니 시간맞춰 서울오면 함 붙읍시다.산내로 4명이 내려가면 더 좋은데 22일 모일때 이야기는 해보겠음.
경고하우스'에 가기전에
그동네 인근 자취집에서
고 조경환 동기와 룸메이트로 자취를 시작했다.
그집에는 몇개의 자취방이 있었고
한 곳에는 '서울미대' 가시나들인지, 가시나 혼자인지
자취하는지 뭐하는지 거주하는 방이 있었다
간혹 아침에, 그가시나 방문앞에,
군화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사태를 짐작하곤 햇는데,
어쩌다 마주치면,
우찌 그리 예쁘던지
그 가시나를 살펴본 기억이 아스라하다.
당시 서울미대가 공대 캠퍼스내에 있었으니
멋진 가시나들이 같은 정문을 들락거렸는데
촌놈중의 촌놈인 우리, 특히 나는
간혹 가시나 들과 마주칠때
언감생심(焉敢生心) 이였던 같다
X팔, 세상와이리 불공정하노?
저래 잘빠지고 저래 놀아나는 년놈들은 뭐꼬
홍길동 못지않게
시대를 원망(?)하고
신세를 탓(?)하며
오직 주(酒)님을 벗삼아 개판(?)으로 살았던 것 같다.
자취시작 첫날 저녁,
아마 라면으로 한끼를 떼우고
소주 큰병으로 밤을 거진 세운 기억이 난다
밤마다,
인근 술집이나 음식점(주로 중국집)에서 소주,
방에 들어와서 소주…
술로지새우다
이후 한학기가 다가는 6개월동안
한번도 방을 청소해본적이 없었다
경환이나 나나 어지간히 게을렀던 모양이다.
당시는 실내 담배가 일상이였지 싶은데,
어느듯 눞는 자리 두 곳만 빼고 온천지에
담배 꽁초, 담뱃재, 라면봉지, 휴지, 빨래거리
발디딜틈이 없었다.
거기다 반년동안 싸인 먼지까지…
이후, 각자회사를 거쳐, 1990대 중반에 조경환을
내가 다니는 회사에 소개하여 같이 근무하게 된다
그러고 2010년 7월
그는 자기만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못된 친구)
'경고하우스'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조경환이와 같이한 시절이 덩달아...
옥자의 옛 이바구 정말 재미있네...언제 산내 함 가야 되는데,,,일단 서울오면 연락하소~
거 참 이상하제? 나도 대학시절 포커 첨 한 날이 생각나는데 패가 엄청 잘 들어와 돈을 얼마간 땄음. 다른 사람들 첨 한 날도 몇개 기억나는데 다 승률이 높았음.
가만 생각해보니 '노름神'이 사람들을 노름판으로 꼬드킬려고 첫날 왕창 패를 몰아주지 않나 싶어...
당시
24회정도 선배는 하늘같았고
그런 형이 왜 졸업을 빨리안하고
캠퍼서 인근에서 맴도는 지
교련과목을 이수해놓고
다시 교련을 신청해서
교련 한과목 이수한다고
한학기를 하숙하며 보낸 선배를
'형', '형'하고 따랐던 것 같다
당시
서너살 선배를
늙구렁이로 생각했지 싶은데,
늙구렁이라 하더라도
지가 늙구렁이라면 얼마나 늙구렁이였겠나?
내가 지금 생각하니
고만고만한 20대들의
앞서거니 뒷서거리
도토리키재기 뿐이였겠지만
당시에는, 그 중에서도
나름대로 경륜의 서열이
의미가 있는 나이였으니
모두들 순진무구하고
모든 게 초짜던가
초짜 수준에서 오십보백보...
공릉동 이야기가 나오니 추억이 떠오르네요. 나도 대학 1학년 교양학부를 공릉동에서 했고 그 동네에서 하숙을 몇 달 동안 한 적도 있어 분위기를 알고 있지요. 그때 김양화 하고 같이 하숙했는데, 양화는 요새 뭐 하능교? 이쪽엔 얼굴을 잘 안 내미는 것 같네요?
그때 교정에서 옥선사도 가끔 마주친 것 같은데..., 나도 그에 못지 않은 촌놈인지라 부산에 왔을 때부터 문화충격이랄까, 글 서두에 바로 와닿는 부분이 적지 않네요. 특히 팝송 문화나 노름 같은 것이 이질적이라 반감 비슷한 느낌까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이법사는 안면이 있어
고딩대 같은 반이 된 적이 있었다고
이해하고 있었더니
공릉동 캠퍼서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었군요?
김양화는
거제도 성포면이라고
고려의종이 무신들에게 쫓겨
감금되다시피 하여 살면서
왕정복귀를꾀했던
패왕성이라는 유적이 있는 동네로
(하도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동네 출신이였지요
공대졸업후 행정관련 공부를 하였는지
부산대 법대?의 행정학과 교수를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네요
90년대 중반에 부산에서 한번씩 만났던 기억이 있는데
30년도 넘게 세월이 지나
그것마저도 가물가물 합니다
그때 마지막 만남시 술마시면서
3~4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양화의 임담에 놀아났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이 양화교수 밑에서
고생을 많이 하겠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수년전, 재민이 박사랑 서토거사가
우리집 방문 했을 때
우리집 뜰에서
서토의 입담에 놀아났던 때와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였지요
양화는
온라이든, 오프라인이든
동기회 출입은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요
온라인은 확실한데
오프라인에는 혹시...
(백총장이 알지도)
은퇴후는,
부산옆 기장 철마에
전원생활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하도 오래되어
가물가물....
@玉忠錫 대학교수는 친구, 동기들도 학생으로 생각해 말이 많고 아랫 사람으로 여김...판검사는 친구를 범죄인 취급해 말 힘부로...좋게 보면 직업의식이지만 나쁘게 보면 갓뗌!^^
@김수인
꼭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직업마다의 의식' 보다는
물론 그런 것도 당연히 영향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마다의 의식,철학'
'사람마다의 수양정도' 의 차이라 해야겠지요
서토거사가
노가리줄로
재민이 박사나 나를 꼼착 못하게
동여맨(꼼짝않고 묶여준)것이나
대학시절
나의 노가리에
서울본토배기
(경복고 출신 )내 친구가
1학년 여름방학때부터
홍도, 흑산도, 완도, 거제도를
무전여행하다시피
따라 다닌 (?)경우를 볼라치면...
작년에 모처럼 울산서
부부동반으로 그친구를 만났는데
"그때, 왜그랫어요? 뭐가 좋아
초가집에 모기 천국인
시골을 8번이나 다녀가고..."
내 이야기를 듣고,
우리 할매가
그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나가 씨부르는 것을 보니, 나에게)뭔가 있다.
(내가)신기해서..."
캤다던데,
그리 순수하고 착하고 순진한 그 친구는
서울대 교수를 지내고
지금 은퇴하여 잘 살고 있지요
서토거사나
우리친구 사례로
미루어 볼 때....
ㅎㅎ
@玉忠錫 물론 지각있는 교수와 판검사가 있지요...대체로 그렇다는거 ㅎㅎ
@玉忠錫 양화 소식 고맙소이다.
양화는 잇과인 공대생이었는데도 정치에 참 관심이 많아서 당시 그런 문제에는 초짜인 나를 여러 번 일깨워 주었지요. 하숙방에서 밥 떠 먹으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접은 신문 정치면을 들고 읽을 정도였는데 '니는 이런 것도 모리나? 와 그래 관심이 없노?' 하며 한심하단듯이 핀잔을 주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 모두 일흔 줄의 늙은이가 돼 버렸네요. 대학 졸업 후 결국 문과로 전향했나 보네요.
입담이 서토와 비등했다니 서토, 분발해야겠심다! 하하하.
양화는 몇년전 아들네따라 부산 용호동에서 영종도 공항부근으로 이사하여 살고 있으며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에서 교수로 정년퇴직했지요.
용호동에 살 때 한두번 만나 얘기를 나누곤했는데, 얼마전 통화했더니 다시 부산으로 내려올 생각이라네요^^
행정학과가 아니고
사회교육과였군요
양화랑 32년전쯤에
부산대 권순홍교수, 김갑환 교수랑
같이 만났던 게
마지막 만남이였으니
하도 오래되어...
강호 선비, 댓글 대하니 반갑소이다. 잘 지내고 있지요? 양화 소식 고맙네요.
언제 내가 부산 갈 일 있으면 양화와 더불어 다같이 차 한 잔 했으면 좋겠네요. 그럴 기회가 있겠지요. 나는 양화를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못 봤어요. 혹시 선이 닿으면 안부 전해 주소.
포커 이야기가 나오니 또 엣날 생각이 나는군요.
기숙사에서 포커판을 자주 벌리다 기숙사비를 날려.. 이를 보충하느라
여동생 친구들에게까지 손을 벌리는 부끄러운 행각이 벌어지기도-^^
그런데 나중에 듣고보니 그 패거리가 사기포커를 했더군요.
둘이서 미리 짜고 판에 끼여.. 이저리 서로 올려치기를 하며 상대의 돈을 긁어간 것.
경복고 출신으로 나보다 두 해 선배였고 같은 동에서 지내다 보니 안면이 있어 한 것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같은 학우끼리 그럴 수가 잇나 생각되어 많이 놀라기도 햇지만..
역시 당시 서토는 어리버리한 부산 촌놈이었고..그들은 세상물정이 많이 앞선 서울사람들이엇다는
뼈저린 사실을 많이 자각한 계기가 됩디다.
그런데 더욱 희안한 사실은 나중에 나성에서 근무할 때 보니
그는 이미 미국에 건너와 동포사회에서 자동차 판매딜러로 크게 성공해 있더군요
큰 교회에 장노로 재직하며 동포사회에 기여도 많이하는 멋진 사업가가 되엇습디다.
역시 사람이 돈을 크게 벌자면..무언가 머리회전이 빨라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또한 알게 되엇지요.
어쨋건 간에..포커에서 승율을 올리자면 어찌해야 하는 것이 유리한 지를 이미 일찌기
깨달아 잇던 사람이엇으니..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밖에- ^^
지금은 그가 과연 우찌 지내고 잇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북한 건은..이제 돌이키기가 어렵게 되어버려..우찌해 볼 여지가 없다 보아야-
옥자 말대로 킬체인이건 핵개발이건 밀어부쳐서.. 같이 한 번 붙어보는 수 밖에 없겟지요.
참으로..안보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천금같은 좋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햇는데
결국 전임 문통이 그런 큰 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어이 무심히 깽판을(?) 쳐놓는 바람에..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엇다 하겟슴미다.
무엇이 그리 두렵고 떫은 지는 몰라도.. 이제와서 가리늦게사 핵개발을 하려 합네 마네 할 바에야
적절한 싯점부터 북한처럼, 미국을 상대로(?) 하여 핵개발을 줄기차게 추진해왔다면 더 낫지 않앗을까요.^^
그간에.. 말이 통하는 같은 동족을 무심하게 대하며..밉다하여 무조건 계속 무시해 온 작금의 결과를 보며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 지를 되짚어 볼 생각은 전혀 하지않고..
지금이라도 같이 핵개발하여.. 누가 먼저 죽나 한 번 붙어보자는 식의 언행을 지금에 와서도 모두들
내보이고 잇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지 않은지요? ^^
이제 우리 세대들은 손을 떼고...마음 편하게 후대들에게 맡겨야 할 때가 온듯 합니다.
블러핑 이바구에
서토거사가 마이 심기가 맑지 않은듯
그렇다면,
서토거사가
블러핑 고수?
블러핑 피해자?
우옛거나
그짜서 끙끙 앓지말고
마, 구룡포로 돌아오소
구룡포 앞바다가
유전개발로 산전벽해되마
돌아오고싶어도 몬 돌아오고
돌아와도 누울자리 없을 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씰데없이
남북아해들 드잡이질에
신경쓸 시간이 마이 없지 싶웁니다
블러핑 이바구야.. 그런대로 재미가 있는 내용이지만
어쨋던 남북관련 사항이..핵개발 운운해야 할 정황에 이르렀으니
씁슬한 심정이 안 될 수가 없지요.
사실 세상 모든 일을.. 대개는 자기 중심의 편익으로 보게되는 것이라
은퇴하면..어릴적 고향 구룡포에 거처를 마련하고..팔도강산을 구비 다니며..
젊을 때 잘 몰라 무관심 했던 고국의 여러 곳을 찾아다녀 보리라 카고 잇엇는데..
북쪽은.. 마음편히 다닐 여건이 마련되지 않게 된다니..우찌 마음이 편하겟슴미까요.
이 모두가 옥자 때문이니(?)..일부라도 책임을 지도록 하소. ^^
돌아가는 판이 마음에 들지않아.. 근자들어 북쪽관련 이바구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차 일체 함구하고 잇는데..
옥자가 또 이야기를 꺼내니..그냥 넘어가게 되면.. 서토가 마이 사랑하고 있는
옥자가..행여라도 섭섭하게 여길까 우려되어..조금이나마 답을 한 것이니..
참조해주기 바라요.^^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돌아가는 정치판 형세가 극히나 유사하여
이 곳 사람들의 심기도.. 별로 좋지 않슴미다.
이전부터..드렌스 젠다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게 될 것이란 말도 잇어왓고요-
'돌아가는 판이 마음에 들지않아..'
그래 우짜겠는교?
머가 그리
미련이 남고
맘에 안들마
전쟁도 불사하는 세상인이데
마, 그런 거는 속된 아아들한테,
저거 살 세상이니
찌지든 볶든
쌩으로 묵던 내삐두고
여기 '벌떡주' 한병 보내니
많이 갖고 있는 '마음 편히 酒'
섞어서 잡사보소
마음도 달래고,
거시기도 달래가며
'벌떡'주 묵고 부화나 '벌컥'내라 는 뜻으로 들리능군요.^^
하지만 옥자가 귀하게 챙겨준 약주라 하니..고마운 마음으로
한모금 마시고.. 씁슬한 마음을 달래 보겟슴미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