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독서법 / 버지니아 울프 / 정명진 옮김(1)
버지니아 울프(1881~1941)
영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정명진
한국외국어대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중앙일보, 문화부를 거치며 20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칼
융 레드 북> <흡수하는 정신> <마리아 몬테소리> <부채,
5000년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머> <나는 왜 낯설까>
<티모시 윌슨>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
가지> <더글라스 무크> <상식은 어쩌다 포플리즘이 되는
가> <소피아 로젠펠트> <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 <노베르토 엔젤레티> 등이 있다
이책에 대하여
독서가 버지니아 울프
먼저 <버지니아 울프 독서법>은 영어로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버니지나 울프가 남긴 많은 에세이들 중에서 독서와 관련 있는 것말 골라서 단행본으로 묶은 책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 담긴 에세이들은 많은 독자들이 이미 다른 경로로 부분적으로 접했을 수 있는 글들입니다. 소설가와 에세이스트, 서평가, 출판업자, 페미니스트였던 버지니아 울프가 진정한 독서가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읽은 다양한 책들의 내용을 놓고 머릿속으로 격하게 토론을 벌이는 울프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오는 듯합니다.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주간 문학 비평지 TLS에 게재된 에세이가 주를 이룹니다.
이 책의 제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버지니아 울프가 나름대로 독서법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는 품지 않기를 바랍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독서와 관련해 제시하는 유일한 조언은 절대로 타인의 조언을 듣지 말라는 것이니까요. 어떤 책을 읽든, 자신의 본능을 따르고 자신의 이성을 활용해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버지니아 울프만의 독서법을 들여다보자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입니다.
이 책에 담긴 에세이 19편을 번역하면서 받은 인상은 울프의 독서 세계가 너무도 깊고 넓으며, 책을 소재로 한 글임에도 건드리는 영역이 대단히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에세이 모두가 한 편의 잘 짜인 단편 소설 같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책을 가까이하며 살고 있음에도 언제 한 번 버지니아 울프처럼 독서를 해볼 수 있을까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번역자의 입장에서, 울프가 영국인들이 러시아 소설을 읽는 현상에 관한 의견을 밝인 에세이 '러시아인의 관점'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울프가 그 에세이를 쓰던 당시(1925년)에 영국에서 제일 많이 팔렸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안톤 체호프 등을 지진이나 철도 사고로 인해 옷뿐만 아니라 예절이나 성격의 특성까지 잃어버린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고란 당연히 번역을 가리킵니다.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단어들의 소리와 무게와 억양, 단어들 상호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의미까지 어느 정도 바뀌지 않을 수 없으니,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이 문학적인 요소는 다 제거되고 어느 정도 훼손된 줄거리만 남을 뿐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문체가 눈부시고 유머 감각이 탁월하고 감수성이 특별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번역본에서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의미 훼손만은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그것도 영어 텍스트를 다시 읽을 때마다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으니 장담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정말 다행하게도 이 책을 다시 찍을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 훼손을 다시 조금이라도 더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설가가 쓴 독서 에세이이니, 웊르이 창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제닛의 비판을 반박하는 글이니까요. 이 에세이를 읽으면 울프뿐만 아니라 당시 모더니즘을 추구하던 작가들의 창작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놀드 베닛이 울프를 비판하는 내용의 비평을 쓴 것이 1922년이었으니, 딱 100년 전의 일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떤 작품이 훌륭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하는지 여부를 꼽고 있습니다. 옮긴이에게는 너무아 당연하겠지만, 이 에세이들도 다시 읽고 싶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다뤄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몽테뉴의 <수상록>,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도 꼭 다시 읽고 울프처럼 리뷰을 쓰고 싶다는 미음이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논란이 자주 일어나는데, 울프가 활동하던 당시의 페미니스트는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버지니아의 에세이에는 이런 등장인물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남자들은 운명의 명령에 맞서 바다 같은 확 트인 공간에서 투쟁을 벌립니다. 그들은 자연과는 갈등을 빚어도 인간들과는 평화롭게 지냅니다. 운명의 가혹함을 한탄하는 소리를 아 경멸합니다. 여자들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갖췄습니다. 여자들은 정신의 야비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잘못도 너그럽게 대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야비한 정신이란 높은 곳에 설 때 오만하거나 잔인하거나 하혹해지고 낮은 곳에 설 때 비열하거나 의기소침해지는 그런 정신을 말합니다.
끝으로, 지금 이 책을 읽을는 당신은 독서가일까요? 버지니아 울프의 기준은 꽤 까다롭습니다. 몇 개 분야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 사람은 독서가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는 전문가에 속합니다. 실용서 위조로 책을 읽은 사람도 독서가라고 할 수 없겠지요. 울프가 말하는 독서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울프는 당연히 독서가에게도 책을 읽을 때 지성과 상상력, 통차력을 두루 동원할 것을 요구합니다. 요즘 독서 경향이 갈수록 가벼운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은 아예 읽으려 들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독서를 통해 책읽기의 즐거움을 기대하는 것은 좀 민망할 듯합니다. 한 세기 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독서 세계를 탐험해보겠다고 생각하고, 그 자체가 즐거움일 수 있는, 진득한 책일기를 한번 시도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