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해넘이를 바라보며 내일을 향한 다짐을....전남 영광

[지존무상]

글, 사진 / 유정열 여행칼럼니스트

영광은 유구한 백제불교의 첫 도래지이며 근사한 해안 길과 생명이 움트는 갯벌, 천하일미 굴비의 고장이다. 12월 한 해를 정리하며 정다운 추억을 되새기고 내일을 향한 꿈을 기약하는 여행, 전라남도 영광 법성포에서 출발한다. 백제는 고구려에 이어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384년 침류왕 원년 불교가 들어온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 영광에는 불교 유적지가 풍부하다.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도 백제에 불교를 전하러 온 ‘성인 마라난타가 뱃머리를 댄 포구’라는 뜻에서 이름 붙은 곳이다. 백제 불교는 인도 간다라에서 출발한다.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옛 지명인 간다라는 인더스 강 중류에 위치한 곳으로, 당시 동양과 서양의 교역의 중심지였다. 간다라의 고승 마라난타는 간다라에서 출발해 돈황과 중국 장안, 남경을 거쳐 백제의 영광으로 들어왔다.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마라난타가 전한 불교와 불교 예술을 기반으로 만든 곳이라 인도의 진한 향이 스며있다. 도래지 안에 있는 간다라 유물관에 들어가면 대승불교 문화의 발원지이기도 한 인도 간다라의 불교 조각품과 역사, 마라난타의 여정을 살펴 볼 수 있다.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이자 대승불교 문화의 발원지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함께 돌아볼 곳은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불갑사다. 불갑사에는 수령이 700년 된 천연기념물 제112호의 참식나무 군락지를 비롯해 보물 제830호인 대웅전과 천왕문, 만세루 등 둘러볼 것들이 많다. 대웅전에서는 꼭대기에 얹혀있는 구슬 모양의 장식인 용마루의 보주가 눈길을 끈다. 인도 스투파 양식으로 남방 불교의 영향을 보여준다. 연화, 보리수 문양의 꽃 창살도 아름답다. 또 불단을 정면에 배치하지 않고 측면에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여정은 백수 해안도로로 이어진다. 백수해안도로는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9위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한 길이다. 백수해안도로는 영광 백수읍 백암리 석구미 마을에서 대신리를 거쳐 원불교 성지가 있는 길용리까지 이어지는 길로, 전체 길이는 16.5km에 이른다. 한쪽은 해안절벽, 한쪽은 넓은 바다, 그리고 그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멋진 바위들까지, 빼고 붙일 것 없이 멋진 풍경화 한 폭이 연출된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칠산정과 백암전망대, 노을전시관, 그리고 마파도 촬영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발걸음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칠산정이다. 바다에 옹기종기 떠 있는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일곱 섬에서 이름을 딴 전망대다. 이곳에 서면, 나고 드는 차와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 늠름하게 선 절벽과 절벽을 때리는 파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수해안도로는 드라이브로도 유명하지만, 바다를 보며 내려가는 건강 365계단도 꼭 걸어볼 만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길이 바다까지 이어져서 마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안겨준다. 건강 365계단 이외에 칠산정에서 노을전시관까지 이어지는 2.3km 구간의 백수해안도로 나무 데크 산책로를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노을전시관은 세계 속 노을의 모습과 노을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노을전시관 바로 앞에는 시원한 온천욕을 할 수 있는 해수탕이 있다.

백수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백수읍 광백사 염전을 지나고 함평 방향으로 내달리면 백바위 쉼터가 나온다. 단단한 해변 길을 거닐며 바다를 바라보면 오롯이 떠있는 칠산도를 비롯한 작은 섬들을 만나게 된다. 해변의 끝머리에는 백바위가 용틀임하듯 바다를 향해 우뚝 솟아 있다. 제방과 바위를 잇는 나무 데크를 지나면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백바위를 배경으로 멋진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무지개의 스펙트럼을 뿌려 놓은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며 내일을 설계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백바위 쉼터는 잘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도 많지 않아 고즈넉하다.
영광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두둑해진 배를 두들기며 그 맛을 추억하려 한 손 가득 들려있는 굴비다. 영광 법성포가 굴비로 유명해진 것은 바다가 안겨준 혜택 때문이다. 법성포 칠산 앞바다는 조기의 황금어장이었다. 지금은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조기잡이가 쉽지 않지만 건조방식은 여전하다. 굴비는 썩히지 않고 말리는 것이 중요한데, 법성포는 지리적인 여건상 건조가 잘되고 맛있는 굴비를 만들기에 적합한 습도와 기온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굴비(屈非)의 고장, 모싯잎 송편도 일품
여기에 하사리와 두우리 일대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으로 염장하는 제조 방식이 더해져 전국 최고의 굴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굴비’라는 이름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인종 때 법성포로 귀양 온 이자겸이 그 맛에 반해 이를 임금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아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 된 도리로 진상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굴비(屈非)’로 이름 지었다 한다.
굴비만이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다. 요새 새로이 각광받는 모싯잎 송편은 영광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로 발돋움하고 있다. 영광읍에 가면 모시송편을 전문으로 하는 떡집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모시송편은 여름철 모시옷의 재료인 ‘모시’의 잎을 삶은 뒤 쌀과 함께 찐 것이다. 섬유질이 풍부해 웰빙 음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떡의 속은 동부 콩이 통째로 들어간 ‘동부’와 콩가루가 들어간 ‘기피’ 두 종류가 있어 기호에 맞게 선택해 먹을 수 있다.
법성포의 굴비를 다루는 식당 대부분은 한정식처럼 나온다. 일번지, 명가어찬 등의 식당은 게장과 굴비, 제철 회가 한 상 가득 나오며 가격이 다소 비싸다. 법성포 입구에 있는 공원식당은 저렴한 비용으로 알차게 굴비정식을 먹을 수 있다.

온통 굴비천국인 법성포에서 벗어나 백수읍사무소 입구에 가면 바다 향이 가득한 백합죽을 맛볼 수 있는 백수식당이 있다. 고소한 죽에 조개의 시원한 맛이 합쳐진 별미로, 감칠맛이 그만이다. 백수해안도로에 있는 고두섬 횟집은 칠산 앞바다에서 채취한 싱싱한 석화를 밥에 비벼먹는 석화비빔밥이 괜찮다. 석화에 기본양념을 하고 밥에 적당히 덜어 참기름과 고추장에 쓱쓱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다.

맛집 정보
ㆍ공원식당(굴비백반, 061-356-0950) 전남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 650-103
ㆍ백수식당(백합죽, 061-352-7551) 전남 영광군 백수읍 천마리 608-1
ㆍ고두섬횟집(석화 비빔밥, 백합죽, 061-352-0001) 전남 영광군 백수읍 백암리 113
ㆍ만나떡집(모싯잎 송편, 061-351-1462) 전남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 579-2

여행 정보
ㆍ불갑사 : http://www.bulgapsa.org,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061-352-8097
ㆍ영광해수온천탕 : 전남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796, 061-353-9988

여행 팁
1. 영광에서 잠잘 곳은 영광 읍내에 모여 있다. 영광읍 녹사리에 위치한 영광글로리아호텔(061-351-8703) 외에 버스터미널 부근의 모텔들이 많다. 법성포에 들어선 매립지에도 새로 지어진 모텔들이 있다.
2. 영광에는 염산면 두우리의 기독교인 순교기념관, 영광읍내의 천주교인 순교지, 백수읍의 원불교 영산성지가 있다. 불교 이외에 다양한 종교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3. 겨울철 해넘이를 감상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바닷가라 체감온도가 무척 낮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옷을 두둑하게 입고, 필요하면 핫팩 등을 준비해야한다.
4. 영광군 해넘이 포인트로는 백수해안도로에서 고두섬 방향, 노을 전시관 앞, 백바위 쉼터, 계마항 등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