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나의 올드 오크>
1.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는 칸느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이엘 브레이크>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담고 있다. 영국의 장년 사내와 이주민인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영국 사회의 부조리와 쇠퇴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관련된 정서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영국 사회의 문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나의 올드 오크>는 이방인들을 대하는 영국 사회의 시선에 대한 문제 제기적 성격이 강하다.
2. 내전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한 시리아 난민에 대해 보내는 쇠퇴한 과거 탄광촌 사람들의 시선은 고울 수 없다. 국가가 부유한 동네 대신에 가난한 자신들의 고장에 난민들을 이주시킨다는 점에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난민들을 모욕하고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그들은 또한 단지 고향을 지키려는 생각임에도 인종차별주의라는 낙인이 붙는다는 점이 불만스럽다. 항상 새로운 것은 경계의 대상이다. 더구나 그것이 나보다 열등한 존재라면 경계는 혐오와 모멸로 전환되기 쉽다. 폐광촌 사람들의 시선은 난민들을 자신들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3. 하지만 <올드 오크>라는 술집을 40년 가까이 운영하는 사내는 그러한 사고를 거부한다. 자신의 마을은 페광된 이후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수많은 문제점을 배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불만을 힘없고 무력한 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술집에 있는 빈 공간을 난민들과 그 지역 가난한 사람들이 무료로 식사할 수 있는 장소로 제공하게 되면서 상황은 이중적인 의미를 띄게 된다. 먼저 같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어색함과 오해가 불식되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은 고의로 배관이 터지게 만들어 식당을 폐쇄시킨다. 화해와 대립이 동시에 폭발한 것이다.
4. 술집을 운영하는 사내는 배관 사고가 친구들의 고의적인 음모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실망과 배신 그리고 분노에 휩싸인다. 오랫동안 맺었던 우정에까지 금이 간 것이다. 갈등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무너지자 위기는 더욱 극대화된다. 하지만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리아 난민 소녀의 아버지가 시리아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은 진심어린 애정을 보이며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방문한다. 갈등의 고조가 급속도로 ‘죽음’을 계기로 연대의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다시 과거의 탄광축제를 재현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증오와 대립은 결코 세상의 평화와 안정을 줄 수 없다. 오직 연대와 협력만이 최선의 선택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5. 영화는 술집 주인 사내와 난민 소녀 사이의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내가 소녀의 부서진 카메라를 고쳐주고 그녀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서로는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각자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동질감을 공유한다.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살았고, 서로 다른 인종임에도 마음을 열고 이해한다면 누구보다도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영국 사회를 위협하는 난민 문제의 핵심은 ‘난민’ 그 자체가 아니며, ‘난민’이 영국 사회를 위협했던 것이 아니며, 난민이 결코 영국 사회의 장애물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고 이다.
6. 그런 윤리적,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너무 의미있게 강조되어서인지, 영화는 생생한 갈등과 화해의 무대라기보다는 조금은 도식적이고 상투적인 방식의 대립과 해결이 진행된다. 소수의 불평분자를 제외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난민들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변화했을 때, 실제적인 변화(영화 속에는 같이 식사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 변화)가 조금은 부족했음에도 난민 소녀의 아버지의 죽음에 온 마을 사람들이 애도하는 모습은 조금은 과잉된 연대의 모습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공통된 노력과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는 모습은 오히려 현실에 대한 환타지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난민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복잡한 성격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너무도 쉽게 깊은 애정으로 전환되는 장면은 조금은 과잉디ㅗ고 낭만적인 서사가 아니었는가 쉽다. 과잉은 오히려 문제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한다. 켄 로치가 평생 추구했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에서는 너무도 직접적이고 평면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7.우리의 삶은 하나의 가치가 일방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방식의 권고는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한다. 켄로치의 메시지는 너무도 숭고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당위성이 예술적 깊이를 잃고 도덕적 권고 수준에 머물었을 때. 메시지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영화의 의미에 대한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단순한 메시지에 더 크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좀 더 갈등을 증폭시킨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통해 인간 간의 연대와 화해를 추구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누가 켄 로치만큼 인간의 연대에 대하여 끊임없이 발언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행동하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 볼 때, <나의 올드 오크>는 충분히 관람할만한 작품이며 경청할만한 메시지일 것이다.
첫댓글 -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안타까운 상황들.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으로 뒤바뀌는 이기적 집단들. 내 것을 내놓아야 나눌 수 있는 해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