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chie Blackmore
1945년 4월 15일 리치 블랙모어는 영국의 웨스턴 수퍼메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상당히 온순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가 중학교에 입학하구서 부터는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 습니다. 그는 레코드와 기타교본으로 기타를 배웠다구 합니다. 이 외에 그에게 영향을 미친 기타리스트는 짐 설리번이란 사람으로 그는 톰 존스의 백업 기타리스트였는데 리치의 이웃에 살고 있었다구 합니다. 리치 블랙모어가 어느정도 기타에 대 해 알고 난 뒤부터는 그의 집에서 테크닉을 하나 하나 배워나가 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그는 항상 코드를 그린 종이조각을 주머 니속에 넣고 다니면서 틈틈이 코드를 익히고 다녔다고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런던으로 갔습니다. 당연히 기타리스트로 의 꿈을 가지고 말이죠. 그는 이미 기타 연주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런던에 갔었지만 간혹 세션맨으로의 활동을 했을 뿐 정식 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기회는 없었죠. 그런 리치는 1961년 독일 의 함부르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실 독일에 간다구 해서 뭐 특별힌 일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영국의 뮤지션 들은 독일과 영국을 넘나들며 활동을 하고 있었고 독일에는 영국에서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틀즈가 그러했듯이 그도 함부르크의 클럽에서 활동을 하며 실력을 쌓을 수 있었죠. 독일에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세션맨으로 일을 했습니 다. 특히 Tornadoes라는 연주그룹의 레코딩 세션을 맡아서 2곡을 연 주하게 되는데 그 중 한곡은 Jungle Fever였고 또다른 한 곡은 Telstar란 곡이었습니다. 그 중 Telstar는 큰 히트를 기록하 죠. 1962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션맨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63년 다시 함부르크로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Outlaws란 그룹에 가입을 하면서 그 그룹의 리드 기타리스트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Outlaws의 멤버중에 는 마이크 언더우드라는 드러머가 있었는데. 그는 얼마 후 런던 에서 Episode Six란 그룹을 결성했고 그 그룹의 리드 싱어가 이 언 길런이었고 베이시스트는 로저 글로버였습니다. 그는 Outlaws를 그만둔 후 64년 Heintz라는 그룹에 잠시 몸담았었지만 거의 활동다운 활동을 보이지 못한채 그만두고 대 산 Lord Sutch의 백 밴드였던 Savage에 가입합니다. 새비지에 들어가자 마자 그는 로드 서치의 독일공연을 위해 또 다시 함부르크로 갔습니다. 공연은 뭐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로드와 호흡이 잘 맞어 리치는 아주 즐겁게 공연을 할 수 있 었습니다. 게다가 로드는 스타로서 행동했지만 무대에서는 리치 에게도 좋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즉 제스추어를 써가며 기타를 연 주하는 쇼적인 플레이를 허락해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리치의 화려한 액션으로 인해 공연은 더 큰 인기를 얻어나갈 수 있었습 니다. 5월 부터 시작된 이 공연은 가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휴게실에서 기타를 손질하 며 휴식을 취하던 리치 블랙모어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코자 하니 참가바람. 곧 런던으로 와주시오'라는 내용의 전보를 받게 됩 니다. 발신인은 존 로드와 크리스 커티스 당시 유명했던 Searchers의 드러머였던 크리스 커티스는 리치와 서로 알던 사이 었지만 존 로드란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는 곧 이 새로운 밴드에 가입하기로 결성하고 전보를 받던 그날로 Savage 를 탈퇴하고 런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딥 퍼플의 시작이었죠. 이렇게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에 가입하게 됩니다.
68년에 존 로드 등과 함께 딥 퍼플을 결성하여 사이키델릭 전성기였던 당시의 록 씬에 등장했다. 초기에 있어서는 아직 리치가 머리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음악을 구체화 시키지는 못했었고 통산 다섯 번째 앨범인 <인 록>을 제작 할 때부터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인 록>은 철저하게 기타의 리프를 핵으로 하여 하드 록을 추구한 것으로 레드 제플린의 초기 작품과 함께 오늘날의 하드 록/해비 메탈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적인 것을 보지 않고 리치가 가장 높게 평가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역시 록 기타에 속주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일 것이다. 특히 72년에 발표된 역사적인 라이브 앨범 <라이브 인 재팬>의 <하이웨이 스타>나 <차일드 인 타임>의 기타 솔로는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풍화되지 않았다.
70년대 중반까지 딥 퍼플에서 록 기타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탈퇴 후 영광을 계속 이어나갔으나 80년대 이후엔 타성에 젖은 스타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99년 그는 또다시 자신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구사하며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는데, 중세 유럽풍의 어쿠스틱 음악으로의 변화이다. 한편 90년대 중반에 그는 레인보우를 잠시 재결성하기도 했다.
Deep Purple 그들의 역사를 말한다는 건 하드 록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과 같을 정 도로 그들이 하드 록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며 숫한 화제와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고 10명이 4기에 걸쳐 70년대의 록 뮤직을 대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Deep Purple 은 올갠주자 Jon Lord, 드러머 Ian Paice, 기타의 Rit- chie Blackmore를 중심으로 68년 2월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결성되었 다. 그때까지 이들 3인은 상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이었다.
리치는 11세에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여 곧 록으로 전환하였고 영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알아주는 기타리스트로서 부상하였다. 이언은 60년초에 여러 그룹을 전전해왔고 존은 역시 소년 시절에 클래식을 공 부한 후 3년간 연극 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음악으로 되돌아 왔다. 이 들 3인은 보컬리스트 Rod Evans와, 당시 영국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베이시스트 Nick Simper를 가입시켜 5인조로 출 발하게 되었다. 1집 앨범 'Shades Of Deep Purple'은 68년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컴 버랜드 호텔 주변의 파이 그룹의 드 레인 리어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 다. 이 무렵의 록계는 바닐라 퍼지, 크림, 도어즈 등의 그룹들에 의한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 해 9월에 선보인 퍼플의 데 뷔 앨범도 이러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그림자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 았다. 그러나 밴드의 멤버들이 지닌 독특한 개성이 조화롭게 표출된 명반이었다.
첫곡 'And The Adress'는 바닐라 퍼지가 즐겨 쓰는 건반악기와 보컬 로 시작되는 전주와 크림을 연상케하는 간주로 전개되어 또다시 바닐 라 퍼지 스타일로 끝나는 엔딩형식이 이채롭다. 그러나 바닐라 퍼지의 마크 스타인이 코드 중심의 애드립을 구사하는 반면, 존은 멜러디를 강조하는 연주를 했다는 사실이 이 앨범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또 이 곡은 국내 록 밴드들도 오프닝 곡으로 즐겨 연주하기도 했었다. 늑대 의 울음 소리가 인상적인 데뷔 싱글이자 출세작인 'Hush'(68년 8월 17 일자 빌보드 4위, 원곡은 조 사우스)가 이어진다. 뒷면에 실린 'Help' 는 원곡은 비틀즈의 곡인데 퍼플이 아트 록풍으로 멋지게 편곡하여 데 뷔 싱글 'Hush'와 경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당시의 록계는 비틀즈의 리바이벌 붐이 일어나 바닐라 퍼지가 'Ticket To Ride'와 'Eleanor Rigby'를, 예스가 'Every Little Thing'을 퍼플이 'Help'를 각기 연주 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중 퍼플의 편곡이 가장 좋았다는 평이었 다. 지미 헨드릭스도 즐겨 연주했던 'Hey Joe'가 리치의 플라멩고 터 치로 전개되어지며 첫 앨범을 마무리하고 있다. 첫 앨범 'Shades -'는 68년의 베스트 셀러 앨범 중 하나로 신인으로 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기적의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이 여세를 몰 아 퍼플은 최초의 미국 순회 공연에서 놀라운 스테이지를 보여 주었는 데 그들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이 지닌 이미지는 데뷔 시켰던 테트라그 라마톤 레코드사가 꾸며낸 이미지였다. 그 이미지란 것은 틴 에이저들 에게 인기를 끌만한 귀여운 풍의 것과 비교적 떠들썩한 록 팬이 좋아 하는 현대적인 록 뮤직의 중간 노선을 취하도록 유도했었다. 그러나 스테이지에 나타난 그들은 용모 및 의상에 있어서 틴 에이저에게도 인 기를 얻을 만한 충분한 요소를 지녔으나 그룹의 분위기는 레코드의 10 배 아니 100배는 거칠고 하드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Live in Japan (1973)/딥 퍼플이엠아이
1972년 |
1. Woman From Tokyo 2. Mary Long 3. Super Trooper 4. Smooth Dancer 5. Rat Bat Blue 6. Place In Line 7. Our Lady | 발매 당초에는 72년 8월 17일에 무도관에서 행해진 그들의 동경 공연을수록한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8월 15일과 16일에 행해진 오사카 후생 연금 회관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것이다. 이 앨범의 내용에 관해서는 새삼스럽게 다시 쓸 필요가 없다. 유일하게 쓸 말은 이 앨범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변함없이 록 씬에 있어서 최고의 라이브 앨범이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정식으로 발표된 이후 34년의 세월동안 내용과 연주에 있어서 이것을 뛰어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80년대 중반 2기 멤버들이 재결성 되었을 때 딥 퍼플이 라이브에서 들려준 연주는 70년대의 전성기 때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신격화된 리치 블랙모어와 신을 받춰주다가 때로는 도망가 버리는 4인의 멤버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시간이 경과한 지금도 신선하게 들려온다.
한때 국내에서는 이 앨범의 해적판이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CD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어 올드팬 들에겐 당시의 해적판이 큰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리치 블랙모어 이후 80년대 초에 등장한 스웨덴의 기타 영웅 잉베이 맘스틴도 가끔씩 자신의 라이브에서 <하이웨이 스타>를 연주하기도 하는데, 스피드에 있어는 블랙모어를 능가하지만 록 음악 팬클럽 그 누구도 잉베이의 연주가 오리지널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멤버들간의 경쟁적인 솔로 연주와 위협적인 스피드와 볼륨을 특기로 내세웠던 딥 퍼플(Deep Purple)은 스튜디오에서의 앨범보다는 스테이지에서 더 진가를 나타내는 스타일의 밴드이다. 비록 본작이 발표되던 시기의 라인 업은 아니었지만, 딥 퍼플은 이미 국내에서도 공연을 가진 바 있기 때문에, 그들의 스테이지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딥 퍼플의 진가는 라이브에 있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사실 이들의 스튜디오 앨범들은 오히려 딥 퍼플의 넘치는 에너지를 담아 내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반면에 설령 부틀렉일지라도 라이브 앨범에서 딥 퍼플은 한층 정열적이고 생동감 넘친 모습을 들려 주고 있다. 1972년의 일본 투어에서 채록된 라이브 앨범인 「Live in Japan」은 이들 최고의 전성기 시절의 스테이지를 수정 없이 담은 작품이다. 본작 「Made in Japan」은 일본을 제외한 국제용으로 제작 된 앨범으로 「Live in Japan」의 수록곡 중에서도 베스트 트랙만을 엄선한 것이다. 딥 퍼플의 전작을 통해서도 본작이 가진 에너지는 단연 첫 손에 꼽히는 것이다. 임프로바이제이션이 중심이 된 탓에 곡들은 대부분 원래 버전보다 훨씬 더 긴 런닝 타임으로 연주되고 있긴 하지만, 스튜디오 앨범에서보다 한층 가열화된 경쟁적인 연주와 정열적인 무대 연출은 단연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앨범의 첫 머리는 이들의 최고 히트 곡중의 하나인 <Highway Star>가 장식하고 있다. 쾌속 질주의 스피드감을 생명으로 한 곡답게 비교적 원곡에 충실하게 단숨에 끝내버리고 있다. 「In Rock」에 수록된 <Child in Time> 은 비록 스튜디오 버전만큼의 긴장감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어 아쉬운 감이 들긴 하지만, 뒤이은 <Smoke on the Water>는 예의 리프도 리프지만 존 로드의 두터운 해몬드 올갠 연주, 그리고 인트로의 리프에 따라 호응하는 관중들의 박수 소리등이 라이브의 생동감을 여과없이 전해준다. <The Mule>에선 이언 페이스의 드럼 솔로를 들을 수 있는 데, 이언 페이스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존 본햄(John Bonham)만큼의 파워나 후(Who)의 키쓰 문(Keith Moon)만큼의 박력을 가진 드러머는 아니지만 굉장히 깔끔한 연주 솜씨를 보이고 있다. 딥 퍼플의 곡들이 엄청난 볼륨을 지녔으면서도 난삽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언 페이스와 로저 글로버, 두 리듬 컴비의 산뜻한 연주력이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 것이다. 본작의 압권은 후반부에 포진한 <Strange Kind of Woman>과 <Lazy>가 차지할 것이다. 「Fireball」에 수록되었던 히트곡 <Strange Kind of Woman>의 리치 블랙모어와 이언 길런의 서로 주고 받는 애드립은 단연 압권이다. 여기서의 이언 길런의 보컬은 소름이 돋을만큼 날카로우며, 샤우트라는 단어 자체에 충실한 것이다. <Strange Kind of Woman>의 주인공이 이언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라면 <Lazy>의 주연은 단연 존 로드이다. 이 곡을 통해서 하드 록계 최고의 해몬드 올갠 주자인 존 로드의 두텁고 전율적인 올갠 연주를 만끽할 수 있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Space Truckin'>은 근 20분에 달하는 곡으로 최대의 임프로바이제이션이 발휘된 곡이다. 원곡의 긴장감이 소실된 듯한 느슨한 연주가 조금 지루한 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역시 멤버들의 기량은 단연 발군이다.
In Rock/딥 퍼플이엠아이
1970년 |
1. Speed King 2. Blood Sucker 3. Child In Time 4. Flight Of The Rat 5. Into The Fire 6. Living Wreck 7. Hard Lovin' Man 8. Black Night
| 리치 블랙모어가 존 로드를 누르고 처음으로 이니셔티브를 쥔 작품으로 현재의 하드 록/헤비 메탈의 기반을 만들어 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에 있어서는 최초의 스튜디오 앨범이기도 하다.
앨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스피트 킹>은 반드시 영국 오리지날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인트로가 있는 것을 듣기 바란다. 리치의 광기에 넘치는 트레몰로 워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밴드의 얼굴이 된 <차일드 인 타임>보다도 <프라이드 오브 더 래트>나 <하드 러빙 맨>등의 숨어 있는 명곡에서 당시의 퍼플이 지닌 저력이 보여진다. 2기 딥 퍼플은 이 앨범 이후 영곡 록계의 왕자로 떠오르며 바야흐로 블랙 사바스, 레드 제플린 등과 함께 하드 록의 삼총사로 군림하게 된다.
하드록 사운드의 교과서로 불리는 5집 'In Rock' (70년 9월 발매) 은 퍼플의 음악적 방향을 결정하 는 이정표가 된 앨범일 뿐 아니라 하드록이란 장르의 발전을 가져온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록과 클래식의 접합을 시도한 4집에서부터 출발 한 2기 퍼플은 길런의 강렬한 목소리와 리치의 폭발적인 연주로 이미 지를 굳혔고 존 로드의 영향력이 조금씩 퇴보하면서 더더욱 하드한 사 운드를 들려주게 되었다. 음악적 리더로서의 리치의 영향력이 앨범 전 면을 덮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앨범은 Black Sabbath의 'Paranoid' 와 함께 하드록계의 영원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하드한 가운데에서도 재즈 리듬을 탄 'Speed King'은 이 앨범의 첫곡 을 장식하는데 리치는 픽업을 프론트에 놓고 디스토션 볼륨을 좀 높이 하여 연주에 임하고 있다. 일련의 곡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리치는 기 타의 완벽한 사운드를 위해 트윈 선율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서도 그와 같은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데 주 멜러디 파트는 디스토션에 의한 맑고 깨끗한 음질로서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곡에서는 9번의 쵸 킹이 사용되고 Q.C도 한번 쓰고 있다. 또한 하드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테크닉인 Pick Portament Gliss(피크로 기타현을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으로 일직선을 이루며 긁는 주법)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어 더 욱더 사운드의 박력과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외에도 파워있는 플레잉 을 위해 꼭 필요한 트레몰로 암도 자주 쓰여지고 있다. 'Blood Sucker' 역시 8비트를 기본으로 하는 록이며 개방현을 포함한 리프는 리치의 록 기타리스트다운 재질을 다시 한번 엿보이게 해준다. 이 곡에서 프레이즈 하나하나에 나타나 있는 짧은 연주는 고도의 미묘 한 뉘앙스의 차이를 창조하기도 한다. 이 짧은 애드립 속에서도 역시 아밍이 여러번 시도되고 있으며 각 Phrase마다 아밍의 뉘앙스가 다른 데, 이 역시 하드 록에서 오해받게 될 '파워만 내세우는듯한 트레몰로 암'이라는 관념속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것을 그의 오소독스한 록 연주인 다운 센스가 잘 보충해주고 있다. 이 곡은 한마디로 말해서 압 축은 물론 집약된 박력을 표출해 준 연주이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곡은 리치의 수퍼 기타맨 다운 면모와 길런의 절 규, 존 로드의 3도에서 5도로 두드리는 신기에 가까운 하먼드 올갠 연 주가 어우러진 'Child In Time'이란 경이적인 넘버이다. 곡의 도입부 에 존 로드의 건반 터취는 매우 날카로운 음색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 것은 음을 더욱 샤프한 소리가 되도록 변형시키는 Ring Modulator 에 의한 것이다. 리치는 긴 쵸킹 비브라토로부터 애드립을 시작하는데 이 쵸킹 비브라토는 말하자면 앞으로 화려하게 펼쳐질 리치의 사자후적 기압 발산을 위한 단전 호흡의 단계(웬 무협지..)라 할 수 있다. 이 쵸킹 비브라토로서 듣는이의 가라앉은 마음을 서서히 동요시키는데 그 것은 마치 일출의 진경을 보기 위한 설레임과도 같은, 리치 특유의 일 종의 감상자에 대한 묵계이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몇몇 소절들은 서서히 그 도를 더해가며 앞으로의 연주 분위기의 스피디하고 드릴넘 치는 속성을 암시해 준다. 이어서 다시 처음의 긴 비브라토를 도입하 여 연주의 뉘앙스가 새로운 색채로 변형된다는 것을 예시하여 일단 서 두는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더불어 듣는 이에게 다음 Phrase에 대 한 무한한 기대와 설레임을 낳게 한다. 이어서 리치만의 독특한 쵸킹 스타일에 의한 빠른 픽킹의 시작으로 제 2 부 애드립의 화려한 난사가 시작되며 이 부분에서 그는 검지 손가락에 의한 쵸킹을 시도하고 있 다. 이것을 신호로 하여 몇분동안 절제하고 또 절제했던 그의 정열적 인 해머링 연주와 최고의 탄력을 자랑하는 Pulling Off 등이 화려하게 수놓으며 곡의 분위기 전체를 압도해 버린다. 이 곡에서 그는 쵸킹 역 사에 길이 남을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를 시도하고 있고, 그외에 개방 현이나 Q.C 등 그의 많은 장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Tone Control 또한 기가 막히다. 기관총 처럼 불을 뿜는 속에서도 픽업장치 를 동시에 리어에서 프론트로 다시 리어로 콘트롤하는 그의 음색 조절 은 가히 가공할 만한 것이다. 또한 왼손 운지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종류의 급소를 찌르는 날렵함을 보여 주었 다. 이 곡 'Child In Time'에서의 리치의 연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톤에서 위력적인 파워 스케일까지 진폭이 크고 예리한 감각 이 번뜩이며, 록 리듬에 장대한 표현과 그 내적 긴장의 지속력 그리고 연주인다운 치밀함을 대변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In Rock'에서 들려준 리치의 넘치는 생명력과 당당한 스 케일의 연주는, 미시적 관점에선 헤비 록커로서의 완전한 변모라 볼 수 있고, 거시적인 면에서는 당시의 록계에 위협적인 문제의식 즉 하 드 록 그룹의 기타연주 방법론을 제기 했다고 볼 수 있다.
Machine Head (1972)/딥 퍼플이엠아이
1971년 |
1. Highway Star 2. Maybe I'm A Leo 3. Pictures Of Home 4. Never Before 5. Smoke On The Water 6. Lazy 7. Space Truckin'
| 스위스의 몽뚜르에 있는 그랜드 호텔의 홀을 이용하여 녹음한 이 작품은 결정적인 라이브 앨범 [라이브 인 재팬]의 핵이 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완성도가 높은 이 앨범에는 퍼플의 운명을 바꾼 <스모크 온 더 워터>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홀에서 녹음되었기 때문에 각각의 악기의 세퍼레이션은 나쁘지만 그것이 상당히 플러스적인 요소로 작용하여 보다 박력있는 기타 사운드를 얻을 수 있었다.
유명한 곡들이 가득찬 작품이지만 라이브에서는 연주되지 않는 <픽쳐 오브 홈> 등을 지금 들으면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아주 단순한 주법으로 하드 록의 정의를 내려준 곡 <스모크 온 더 워터스>는 지금도 딥 퍼플의 명곡으로 기억되며 록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In Rock」에서의 성공 적인 변신 이후 딥 퍼플은 하드 록과 헤비 메탈계에 지워질 수 없는 앨범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1971년의 「Fireball」과 1972년 등장한 「Machine Head」는 「In Rock」과 함께 딥 퍼플의 헤비 메탈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앨범들이다. 딥 퍼플 최고의 전성기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 - 존 로드(Jon Lord) - 이언 길런(Ian Gillan) - 로저 글로버(Roger Glover) - 이언 페이스(Ian Paice)의 라인업으로 완성된 이 앨범들 중에서도, 「Machine Head」는 이제까지 쌓아 올린 농축된 파워와 속도가 폭발해 버린 앨범이다. 헤비 메탈의 송가라 할 수 있는 <Highway Star>, <Smoke on the Water>, 그리고 <Space Truckin'>등이 수록된 「Machine Head」는 1970년대 등장한 록 앨범 들중에서도 헤비 메탈이라는 용어에 가장 걸맞는 앨범 중의 하나이다. 이미 이 앨범에서 딥 퍼플은 80년대의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과 스피드 메탈(Speed Metal)을 예감시키고 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Highway Star>는 <Speed King>과 함께 스피드 광들의 주제가이며 헤비 메탈의 고전이다. 이언 길런의 터프한 샤우트와 리치 블랙모어의 비루투오조적인 화려한 기타 솔로가 빽빽한 리듬과 올갠이 다져 놓은 하이웨이 위를 날카롭게 질주하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Smoke on the Water>는 인상적인 리프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인트로가 단연 압권이다. 이 곡에서의 리프는 딥 퍼플 뿐만 아니라 헤비 메탈을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유명한 것이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Space Truckin'>은 딥 퍼플의 폭포수처럼 쏟아내리는 굉음의 물결이 인상적인 곡, 역시 헤비 메탈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곡이다. <Lazy>는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의 경쟁적인 솔로 연주가 단연 압권이다. 블루지하며 재즈적인 맛까지 풍기는 <Lazy>에서의 살벌한 솔로 경쟁은 단연 흥미 만점이다.
Rising/레인보우폴리그램
1976년 |
1. Tarot Woman 2. Run With The Wolf 3. Starstruck 4. Do You Close Your Eyes 5. Stargazer 6. A Light In The Black
| 실질적인 레인보우의 데뷔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이전에 발표된 <맨 온 더 실버 마운틴>은 리치의 솔로 앨범적인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은 76년에 발표되었다. 로니 제임스 디오와 코지 파웰이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손에 넣은 리치는 70년대초의 퍼플 재현을 여기에서 시험하였다. 이앨범이 지극히 <인 록>과 유사한 것은 리치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이것은 일단 성공적인 것이었다.
<타롯 워먼>, <스타게이저>, <어 라이트 인 더 블랙> 등 충실한 내용의 곡이 포함되어 있고 연주 수준도 매우 높다. 또 이언 페이스와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지닌 코지의 드럼은 지금까지의 리치와 다른 리듬감을 연출하는 것이 흥미롭다. 록 연구가들은 이 앨범을 레인보우 최고의 걸작으로 뽑는다. [참조] ▒ ▒ ▒ "퍼플 페밀리" 란? ▒ ▒ ▒
"퍼플 패밀리" 란무엇인가? 팝 역사상 신화적인 그룹으로 기록될 만큼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의 개척자적인 위업을 남긴 딥 퍼플, 그들은 팀이 해체되자 각자 자기들의 독자적인 그룹을 조직해 예전의 영광에 재도전하게 되는데, 그들 중 대표적인 팀들이 레인보우, 화이트 스네이크, 길란 등이며 이들을 가리켜 소위 "퍼플 패밀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치열한 인기 경쟁의 라이벌 그룹으로, 단 한번도 같은 무대에서 공연해 본적이 없다.
이들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그룹은 역시 리치 블랙모어가 이끄는 레인보우였다. 75년 6월에 딥 퍼플에서 나온 리치는 보컬리스트에 로니 제임스 디오를, 그리고 드럼에 게리 드리스콜, 베이스에 크레이그 그루버, 키보드에 미키 리 소울 등 5인조로 팀을 구성했다.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은 "Ritchie Blackmore's Rainbow"인데, 여기서 싱글 "Temple of the King"이 좋은 반응을 보여 레인보우의 출범은 순탄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너무도 잦은 멤버 교체로 레인보우는 곤혹을 치루게 된다. 6년간에 걸쳐 무려 18명의 멤버가 바뀌었는데, 기타에는 항상 리치 블랙모어가 버티고 있었다.
보컬리스트에는 최초의 로니가 블랙 사바스로 이적하고 대신 그레엄 보넷이 가입하였으나, 그 짧은 머리 때문에 리치와 잦은 충돌이 있었고 그룹이 추구하는 음악성의 견해차까지 겹쳐 결국 탈퇴하고 81년 새 보컬리스트인 조 린 터너가 입단하게 된다. 드러머에는 창설 멤버인 게리 대신 코지 파웰이라는 수퍼 드러머가 들어와 팀에 활기를 넣어 주었다. 그는 입단부터 탈퇴까지 레인보우에서 리치와 함께 그룹의 양대 기둥으로서 팀을 받쳐주던 중심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마이클 쉥커 그룹으로의 이적은 팬들에게 커다란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다. 적어도 그만은 계속 있으리라는 생각이 무너졌던 것이다.
코지 파웰 대신 본 론디네리가 들어오고 가장 멤버의 교체가 심했던 키보드 주자에는 최초의 미키 대신에 토니 케리가, 얼마 되지 않아 조 베스코비로, 다시 토니 커리가 들어왔으나 결국 데이비드 바스톤에게 바톤이 이어졌다. 그러나 데이비드 역시 음악성의 견해차로 나가고 돈 에일리가 그 뒤를 잇게 된다.
키보드 다음으로 교체 회수가 많은 베이스 파트는 크레이그 그루버에서부터 지미 베인, 마크 클라크, 봅 디즐리, 로저 클로버의 순으로 이어져, 이 그룹은 평균 1년에 세명의 멤버를 교체시켰다. 이같이 많은 멤버 교체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역시 리치를 사랑했다. 그것은 그가 곧 레이보우라고 생각했기 대문인데, 쟁쟁한 멤버들의 탈퇴에서 오는 아쉬움과 충격은 컸지만, 역시 리치없는 레인보우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레인보우는 1984년 그룹을 해체하고 만다. 10년의 활동 기간동안 레인보우는 다른 락 그룹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바로크 메탈의 시초 밴드로 거론될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레인보우를 거쳐간 그레엄 보넷의 바로크 메탈에서의 영향력만큼이나 레이보우의 업적은 컸던 것이다. [출처 : 야후블러그 "음악 사랑"과 "koreanroc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