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의 유래> | |
대구를 둘러싸고 있는 명산이 바로 비슬산과 팔공산이다. 비슬산은 팔공산과 높이나산세가 비슷하나 팔공산보다 비슬산이 훨씬 작은 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비슬산은 1083.6m인데 비해 팔공산이 1192.9m이니 두 산이 거의 같은 높이의 명산중의 명산이다. 그러고 보면 대구는 북으로 팔공산, 남으로는 비슬산이 감싸고 있어 이 고장에는 옛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들 한다. 그리고 정대쪽에서 비슬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수만평의 광활한 갈대밭이 대평원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흔히 갈대밭하면 창녕의 명산인 화왕산을 일컫지만 이제 비슬산 정상에도 화왕산 갈대밭에 뒤지지 않은 광활한 갈대밭이 대평원을 이루고 있어 등산객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뿐만 아니라 봄철에는 소재사쪽에서 비슬산 상봉으로 올라가면 참꽃이 온산을 불태우는 장관이 있어 좋다. 비슬산은 우리 지역주민들의 자랑일 뿐 아니라 귀중한 우리의 문화재요 관광자원이다. 또한 청도군이나 달성군에 속해 있는 학교들의 교가에 "비슬산 정기 받아 이룩한 우리"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학교는 거의 없다. 대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쪽에서 본 비슬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마치 앞산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관심 있는 이들에겐 결코 그렇지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구에서도 『남구의 노래』를 비롯하여 시내의 초.중.고의 교가에도 "비슬산 정기 받아"라는 말들을 자주 떠올리고 있다. 첫째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달성군지』에서는 비슬이란 말은 범어의 발음을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비슬의 한자의 뜻이 포(苞)라고 해서 일명 포산(苞山)이라고도 하는데 포산이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을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달성군에서 편찬한 『내고장 전통 가꾸기』(1981년 간행)에 보면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부를 때 일컫는 말이며 중국말로는 포산(苞山)이란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이 산을 구경하던 중 비슬(琵瑟)이라고 이름지었는데 그네들의 인도식 발음을 그대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로 비슬산은 천지가 개벽할 때에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는데 비슬산은 높아서 천지가 물이 다 차고도 남은 곳이 있었는데 그 때 남은 바위에 배를 매었다는 배바위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 바위의 형상이 마치 비둘기처럼 생겨서 『비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가 여기에서 『비슬산』이란 명칭이 생겨났다고 하는 주장이다. 다만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고와 연상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어느 것 하나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비슬산처럼 다양한 산명의 유래를 가지고 있는 산도 드문 일이라 생각되며 비슬산의 유래를 알려주는 세가지 유형의 견해들이야말로 비슬산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소중한 주장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산명의 유래를 가진 비슬산이 그만큼 우리 선현들 사이에서 숭앙을 받으면서도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 왔고 또한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천하 명산의 면모를 잃지 않고 후손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영원한 아름다운 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우리 모두가 아끼고 가꾸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비슬산 지역은 북위 35°40'에서 35°50'사이와 동경 128°31'에서 128°41'사이의 지역으로서 대구광역시의 남부에 위치하고, 행정구역은 대구광역시의 수성구, 남구, 달서구 및 달성군의 화원읍, 논공읍, 현풍면, 옥포면, 유가면, 구지면, 가창면과 그리고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풍각면, 이서면, 화양면과 경산시의 고산면, 남천면 그리고 경상남도 창녕군의 성산면에 각각 속하고 있다. 비슬산 일대의 지형은 태백산맥의 지맥으로서 대체로 장년기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최북단은 앞산(659m)과 산성산(658m)이 위치하여 대구분지와 접하여 있는 고산지대이며 동북단과 서북단에서는 구릉이 발달하는 노년기 지형을 이룬다. 따라서 고저의 차가 극히 심하여 표고 30m에서부터 1083.6m에 이른다. 높은 고산지를 형성하는 산은 비슬산(1083.6m)을 비롯하여 최정산(915m), 청룡산(793m), 앞산(659m), 병풍산(568m), 대덕산(602m)등이 있다. 이들 높은 산들은 대체로 지역내에서 중서, 남부에 편재해 있으며 불규칙적인 분포를 보여준다. 앞산, 최정산과 청룡산은 화산의 뿌리라고 생각되고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향력이 강한 안산암질 각락암의 침식노출부이다. 이 안산암질 각락암을 중심으로 하여 북부와 동부에서는 주변 암석들과의 차별 침식에 의하여 돔상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산암질 암류의 분포지역이 고산지를 형성하고,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화강암류의 분포지역에 큰 계곡들이 발달하여 작은 곡상분지를 만든다. 동남부에서 팔조령 삼성산이 산릉은 화산암층의 주향에 따라서 발달되어 있다. 비슬산 지역의 수계는 북류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금호강으로 유입되는 소지류군과 남류하여 청도천으로 유입되는 낙동강의 소지류이다. 동남부에서는 자양산 화산암층의 주향에 직교하는 계곡들이 발달하여 격자상 수계를 형성한다. 북부 운곡동 -사방산-달비골과 서북부 본리동-반송에서는 단층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지형 윤회는 대체로 장년기중 내지 장년기말에 속한다. 비슬산 지역은 경산분지중에서 소분지를 이루고 있는 유천 소분자의 북단에 있으며 백악기를 통하여 형성된 경상계 퇴적암층과 화산암층, 안산암질 암류, 화강암류와 암맥류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화산의 뿌리라고 믿어지는 관입안산암질 각락암체를 중심으로 하여 dome상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형상을 지닌 비슬산이야말로 한국의 명산 중에 명산임에 틀림이 없다. |
<비슬산 역사> | |
비슬산은 해발 1,083m의 정상부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와 가창면 정대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중심 봉우리와 연속된 산의 덩어리 곧 산괴(山塊)로서 존재한다. 이 비슬산괴(琵瑟山塊)는 그 사방이 동단 대구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청도군 이서면 팔조령), 서단 대구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 남단 경남 창녕군 성산면 운봉천, 북단 대구시 남구 봉덕 3동. 대명동에 이르고 있을 정도로 비교적 넓은 지역적 범위를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비슬산 지역에는 이른 시기부터 인간이 거주해 왔고, 나름의 특징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는데, 역사적인 전개과정에서 생활권이나 군현 편성등을 두루 감안하면 크게 3개의 권역(圈域)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첫째는 비슬산 주봉을 끼고 있는 현풍-창녕권이다. 이는 다시 현풍권과 창녕권의 2개의 소권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풍권에는 현풍을 비롯하여 구지, 유가, 논공지역 등이 포함된다. 둘째는 대구권인데 다시 3개의 소권역으로 나누어진다. 즉 화원권, 대구권, 수성권이 그것이다. 화원권은 화원, 월배를 포함한 달서구 일부, 옥포지역, 대구권은 대구광역시 남구와 달서구 일부, 수성권은 달성군 가창면과 수성구 일부가 해당된다. 셋째는 청도권으로 각북, 각남, 풍각, 이서 등지가 포함될 수 있다. 비슬산 지역에 최초로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현재까지의 분명한 고고학적 증거에 입각한다면 신석기시대를 그 상한으로 한다. 청도 오진리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신석기시대에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주민집단이 채집과 수렵, 어로에 크게 의존하면서 원시적인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0세기 이래 북방으로부터 다수의 주민집단이 서서히 남하 정착하면서 비슬산 지역에는 새로운 금속문화가 발전하였다. 소백산맥 이남의 영남지방 일반이 그러하듯이 청동기문화와 뒤이은 초기철기문화가 전개되었다. 이 새로운 금속문화를 발전시킨 집단은 본격적으로 농경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새로운 도구 사용에 힘입어 사회분화가 촉진되어 계급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비슬산 지역의 이러한 사회변동 상황은 각종 유물과 유적에 잘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비교적 대규모의 조직적인 노동력을 동원하여 축조한 무덤인 지석묘는 현재 세 개의 권역 어느 곳에나 공통적으로 남아 있어 비슬산 지역의 조그마한 정치적 사회가 성립, 성장해 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늦어도 기원전 1세기 중엽부터 영남지방 일원에는 본격적인 철기문화가 발전하였다. 한(漢)의 철기문화를 수용하여 독자적인 철기생산이 본격화되었고, 이를 토대로 보다 큰 규모의 정치적 사회가 형성되었다. 이른바 삼한시대의 읍락사회(邑落社會)의 출현과 소국의 형성이 그것이다. 몇 개의 취락으로 구성된 읍락사회는 그 내부에 계급분화가 이루어진 하나의 단위 정치체였으며 이것은 다시 가장 우세한 읍락인 국읍(國邑)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소국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립된 비슬산 지역의 소국으로는 청도지역의 이서국, 대구의 명칭 미상의 소국, 창녕.현풍지역의 비자벌국(비화가야)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소국들은 경주지역에서 성장한 사로국(신라)이 진출해오면서 4∼5세기 경에는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갔다. 신라왕조는 비슬산 지역을 초기에는 간접적인 지배하에 두었으나 6세기대에 전 영역에 대한 주군제(州郡制)를 시행하면서 지방행정구획인 군과 그 예하의 성촌(城村)으로 편제하였다. 곧 청도지역에는 추화군(推火郡: 현재의 밀양)에 예속된 오야산성, 경산성, 솔이산성등이 두어졌고 대구지역에는 위화군(현재의 창녕)에 예속된 추량화촌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이후 비슬산 지역은 신라와 가야 혹은 신라와 백제의 상쟁과정에서 신라의 군사적 요충으로 인정되어 현풍지역에는 삼량화정(三良火停)이라는 군사조직이 두어지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로 접어 들어 신라왕조는 다시 전국적인 지방제도의 정비를 단행했으며, 비슬산 지역에도 이에 따라 군현제가 시행되어 삽량주( 良州) 예하의 군이나 현으로 재편성되었다. 이후 경덕왕대의 지명개정으로 그 명칭이 바뀌기는 했으나 신라의 지방단위라는 위상은 변동이 없었다. 다만 통일신라 초기인 신문왕대에 비슬산 지역은 신라 왕경의 후보지로 부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문왕의 달구벌 천도 시도가 무산되면서 비슬산 지역이 역사의 중심지가 될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비슬산 지역이 불교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의상의 화엄 십찰 가운데 하나인 옥천사가 건립되었으며『삼국유사』의 포산이성(包山二聖)조를 통해 비슬산이 정토신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말에는 비슬산 지역에도 유력한 호족세력이 형성되었다. 대구지역의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이재(異才)라는 인물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는 10세기 초 대구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로서 군림했지만, 후삼국의 동란기에 이르러 몰락하고 말았다. 후백제와 고려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각축하던 920년대에 비슬산 지역도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고 말았다. 신라를 사이에 두고 고려와 후백제가 벌인 927년의 공산전후(公山戰鬪)가 그것이다. 비록 자세한 사료는 보이지 않지만, 양국의 각축장이 된 비슬산 지역은 극심한 전란의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의 재통일 이후 비슬산 지역에는 다시 고려의 지방행정구역이 편성되었다. 청도지역에는 밀성군에서 독립하여 청도군과 풍각현이 설치되었고, 대구지역은 수성군, 대구현, 팔거현, 화원현, 하빈현, 장산군 해안현 등이 두어졌으며, 현풍지역에는 현풍현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비슬산 지역의 군현은 현종 9년의 대대적인 지방제도 개혁에서 영속관계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대구지역의 수성군과 해안현은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 경주의 속읍으로 편제된 반면 대구현, 팔거현, 화원현, 하빈현은 상주목 경산부(京山府)의 속읍이 되었다. 한편 청도군과 풍각현 및 현풍현은 동경유수관 밀성군의 속읍이라는 위상이 주어졌다. 비슬산 지역에는 아직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읍이 하나도 설정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고려말에 이르기까지 대구현을 필두로 비슬산 지역 군현에도 현령관 혹은 감무 등이 파견되면서 주읍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 12세기 후반 무신집권기의 비슬산 지역에는 청도를 중심으로 농민봉기가 일어나 정부군과 농민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고 몽고 침입 시기와 고려말의 왜구 침입 시기에는 외적의 약탈로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비슬산 지역은 화엄신앙, 미타신앙, 천태신앙등 다양한 불교신앙이 발전했으며 『삼국유사』편찬한 고승 보각국존 일연이 전후 2차례에 걸쳐 무려 32년 이상을 머물며 수도할 정도로 불교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비슬산 지역에는 팔도체제의 시행과 더불어 다시 행정구역의 조정이 이루어졌다. 즉 대구군 수성현, 성주목 화원현, 말양부 풍각현과 현풍현이 그것이다. 비슬산 지역은 경상도 감영이 대구에 정착하는 1601년부터 경상도의 중심지로 그 중요성을 더해 갔다.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대구진관 관할로 정착 되었다. 한편 조선시대의 비슬산 지역은 영남사림파의 형성과도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현풍의 김굉필을 비롯하여 청도의 김일손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정치적 성장과정에서 사화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들의 사우 문인을 주축으로 한 사림파 세력은 결국 선조연간에 이르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임진왜란 당시에는 곽재우, 우배선 등의 의병활동이 빛을 발하였고, 조선후기에 이르러 비슬산 지역에는 도동서원을 비롯한 다수의 서원, 사우가 건립되어 사림세력의 중심지로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근대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비슬산 지역은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이 활발하였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주민들의 휴양지이자 관광자원의 보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
<비슬산의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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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의 자연 모습 비슬산(琵瑟山)은 높이 1084m로서 대구의 남부지역의 주산이다. 대구의 앞산에서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산성산(658m), 청룡산(794m)을 거쳐 비슬산에 이르게 된다. 비슬산에서 주 능선의 일부는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에서 ㄲ맺음을 하고 또 다른 주 능선은 동쪽으로 이어지면서 경북도와 대구광역시를 구분하고 있다. 남북으로 이어진 주 능선 서쪽의 수많은 계류들은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주능선 동쪽의 계류들 중에서 동서로 이어진 능선을 경계로 북쪽편의 것들은 용계천을 거쳐 신천으로 모여 흐르다가 금호강에 모이고 남쪽의 것들은 경북의 청도천으로 모인다. 비슬산 주 능선 서쪽은 달성군 영역으로서 1995년 3월 1일에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달성군에서 펴낸 <달성군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 1997>에서는 넓은 범위에서 비슬산지의 지리환경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비슬산지는 많은 계곡에 의해서 다수의 지괴(地塊)로 분할되어 있으나, 신천의 본류와 그 지류인 용계천에 의해서 3분된다. 즉 신천에 의해서 서쪽의 비슬산괴(비슬산맥,최정산괴)와 동쪽의 병풍산맥으로 2분되고, 비슬산괴는 다시 용계천에 의해 비슬산맥과 최정산괴로 분리되고 있다. ① 비슬산맥은 비슬산지의 주체이다. 비슬이란 말은 범어(梵語)의 발음을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비슬의 한자의 뜻이 '포(苞)'라고 해서 일명 포산(苞山)이라고도 한다. '포산'이란 말은 숲으로 덮혀 있는 산을 듯한다. ② 최정산괴는 비슬산지의 중앙에 독립하고 있는 산괴로 신천의 지류인 용계천에 의해서 서쪽의 비슬산맥과 분리되어 있다. 신천 서쪽은 가창면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최고봉인 최정산은 고도 886m로 비슬산과 더불어 달성군의 명산이다. 산형은 종형으로 어느 방향에서 봐도 균형된 모습이다. ③ 병풍산맥은 주봉인 용지봉(629m)과 병풍산(571m), 동학산(603m), 상원산(667m)을 연결하는 연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병풍산맥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경산군 남천면을 구분하고 있다.」 비슬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 동사면의 경사가 완만한 지역 약 30만평에는 진달래 군락이 넓게 형성되어 있어 그 경관이 빼어나다. 그런데 달성군에서는 1996년부터 참꽃제 무대를 조성하기 위해 이 지역을 크게 훼손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재사 부근에 자연휴양림을 조성하면서 계곡을 막아 사방 댐을 만들었고, 넓은 콘크리트 도로를 정상부근 대견사터까지 내었으며, 도로가에 배수구를 만드느라 콘크리트벽을 쌓고 토관을 놓았고, 도로를 따라 많은 지역을 절개함으로써 비슬산을 흉칙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참꽃제를 하는 날은 지나치게 많은 방문객 때문에 산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년간 방문객 수 또한 수년 전에 비해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경북 청도군 쪽의 비슬산도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청도군 각북면 용천사를 거쳐 비슬산을 오르는 길에는 고도 약 500m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락시설과 호텔이 들어서는등 지나치게 많은 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슬산의 동사면이 완만한 반면 서사면은 경사지고 큰 바위들이 계곡을 따라 무더기로 굴러내린 현상들로 인해 특이한 경관을 이루고 있으나, 포산(숲으로 덮힌 산)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원시림이 거의 없고 소나무, 잎갈나무, 아카시나무등의 인공림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그래도 1000m 이상되는 산답게 600m 이상 높이 올라가면 토양층이 비교적 잘 발달한 지역에서 신갈나무군락이 나타난다. 이 군락과 함께 흔히 관찰되는 것은 조록싸리, 병꽃나무, 꽃며느리밥풀, 대사초, 큰개별꽃 등이다. 그 외에 털진달래, 철쭉, 개옻나무, 생강나무, 노린재나무, 쇠물푸레, 산거울, 뱀고사리, 고깔제비꽃, 실새꽃, 애기나리등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이 산을 오르면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졸참나무, 까치박달, 쪽동백나무, 고로쇠나무, 당단풍, 작살나무, 생강나무, 개암나무, 대사초, 개옻나무, 국수나무, 고광나무, 산초나무, 층층나무, 산벚나무, 팥배나무 등이다. 비슬산 남쪽 능선을 따라가면 능선 일대에 풀밭이 전개된다. 그 곳에서 타래난초, 은방울꽃, 원추리, 여로, 비비추, 양지꽃, 오이풀, 범꼬리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정밀조사대상 식물로서 특히 보호관리되어야 할 설앵초, 솔체꽃, 시호등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 비슬산에는 멧돼지가 자주 목격되고 있고, 사향노루도 국밭골, 대견사 주위, 가재골 등에서 아직도 소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또 고라니도 발자국과 배설물이 확인되고 있고, 하늘 다람쥐도 목격된 바 있다고 한다. 특히 1996년 12월 눈위에 찍힌 호랑이 발자국이 주민(김명석)에 의해 목격된 바 있고, 다른 주민들(표기호, 변수용, 손중기등)도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제2차 전국자연환경조사-대구,달성(10-18)의 자연환경, 1997. 환경부) 봄과 초가을에 유가사쪽에서 비슬산을 오르거나, 비슬산의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가다보면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 휘파람새, 오목눈이, 쇠박새, 박새, 노랑턱멧새, 찌르레기, 꾀꼬리, 까치, 제비, 참새등을 관찰할 수 있다. 유가사 뒤편으로 나있는 소로를 따라 가다보면 집터로 보이는 흔적이 더러 있다. 또 이 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넘어 경북도 각북면의 용천사로 내려가다보면 역시 집터 흔적이 보인다. 아마도 옛날에 현풍과 각북을 잇는 주요 통로가 아니었을까? 이 비슬산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에는 유달리 많은 문화유적이 있고, 본래의 산 이름도 숲으로 덮힌 산이란 의미를 띠고 있다. 이는 이 비슬산이 옛날부터 명산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토록 소중한 유산을 우리세대에 와서 파괴시켰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옛산의 모습을 되찾도록 혼신의 노력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말 산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자연과 교감하고자 하는 겸허한 사람, 자연에 대해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 산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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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의 지형, 지질 | |
화강암을 구성하고 있는 석영, 장석, 운모들의 조암광물은 크기가 비슷한 등립질(equi-granular)조직을보이는데 이와 같은 경우에는 팽창계수와 수축계수가 비슷한 물리적 특성을 보인다. 또한, 화성암중에서 심성암(plutonic rock)계열에 속하는 화성암은 지하 깊은 곳에서 형성되는 특성에 따라 마그마의 중심에서부터 외각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온도구배(등온구배)를 보이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화강암은 거시적 관점에서 판자모양의 평평한 상태로 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지질학에서는 화강암과 같이 심성암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형태의 절리를 판상절리(sheeting joint)라 명명한다. 이러한 절리의 방향, 간격 및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암석형태와 지형을 형성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화강암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추형 암봉 즉 돔(dome)형상을 이루고 있다. 수직에 가까운 수많은 암석층의 판상절리들이 정상의 중앙부를 정점으로 하여 방사상 형태로 비슷하게 형성되어 있을 때는 외부층의 암편들로부터 박리작용으로 제거됨에 따라 돔형상의 암봉이 형성된다. 그러나 수직에서 기울어진 상태의 판상절리들이 방사상 형태로 발달하지 않고 어느 한 방향으로 겹겹이 쌓여 있을 때는 수직의 절벽인 암석단애가 발달하게 된다. 둘째, 폭포가 발달한다. 폭포는 흐르는 물의 유로에 낙차가 생길 경우 낙수현상이 일어나는 곳에서 발달하는데, 이때 하상은 반드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하상이 토사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낙수에 의해 주변 토사가 무너져내려 낙차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암석산지에는 대체로 소규모의 암석동굴이 발달한다. 국내에는 1천여 개의 동굴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형성 원인에 따라 크게 용암동굴, 석회동굴, 절리동굴 등으로 나눌수 있다. 넷째, 암괴 주변에서 풍화작용이 진행되면 움푹 팬 형태의 풍화혈이 나타난다. 풍화혈은 장석질의 광물이 포함된 암석에서 염분이나 수분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부분이 주변보다 차별적인 화학적 풍화가 빠르게 진해되어 패인 부분을 말하는데 암괴의 상충면에 나타날 때를 가마솥바위, 측면에 나타날 때를 벌집바위라고 한다. 가마솥바위는 암괴의 상층면이 거의 수평상태와 같이 평탄하여 비가 올 때에 장시간 물이 고여있어 화학적인 풍화작용이 수분의 영향으로 가수분해, 수화작용, 산화작용을 통하여 일어나게됨에 따라 불용성의 석영물질이 떨어져나가 가마솥 모양의 웅덩이가 만들어지는 경우이다. 설악산의 울산바위, 북한산의 백운대, 속리산의 문장대, 월출산의 구정봉 등과 같이 주로 장석의 함이 많은 화강암 지역에 발달하고 있다. 벌집바위는 가마솥바위와는 다르게 암괴의 측면 그늘진 곳에 형성된 다양한 크기의 움푹 팬 곳으로서 벌집모양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염분의 영향이 많은 건조한 지형에서 특히 발달하고 있다. 다섯째, 기둥처럼 우뚝 솟은 암주인 기둥바위다. 기둥바위는 판상의 수평절리 지역에서는 거의 발달하지 않고 비교적 넓은 간격의 수직절리인 주상절리가 우세한 곳에서 집단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화강암 산지에서도 판상인 수직절리의 간격이나 규모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는데 속리산의 입석대, 도봉산의 주봉, 소금강의 만물상, 주왕산의 시루봉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끝으로 암괴의 형태 원형에 가까운 핵석(호박바위)이 나타날 수 있다. 판상의 수평 및 수직절리가 서로 교차하는 암괴들이 지하나 지상에서 존재하게 되면 각기 진 모서리 부분이 주변보다 풍화작용이 빠르게 진행되어 둥그런 모습으로 형태가 바뀌게 된다. 이러한 암괴는 절리의 간격과 형태, 풍화에 대한 저항력의 차, 풍화가 진행된 기간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갖추게 되지만 대체적으로 타원형의 모습이기 때문에 호박바위라고 한다. 등질적인 특징으로 이루어진 화강암은 모든 암석 중에서 판상의 수평, 수직 및 사절리들이 발달하는 암석이기 때문에 규모와 형태의 차이는 있지만 핵석(호박바위)들이 형성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써 갖가지 모양을 갖춘 호박바위는 국립공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화강암 산지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형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암석은 공기 중에 노출된 이후에는 풍화작용을 겪게 된다. 이와 같은 풍화작용은 크게 화학적 풍화와 물리적(기계적)풍화로 나눌수 있다. 화학적 풍화는 온난 다습한 지방에서 우세하게 나타난다. 즉, 습기가 많은 열대, 평야지대, 해안가 등에서는 성질이 변하는 화학적 풍화가 우세하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석회동굴, 고령토, 보오크사이트등이 있다. 물리적(기계적) 풍화작용은 한랭건조한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표적인 지역이 사막, 고산지대, 극지방 등인데 이런 물리적 풍화의 대표적인 산물이 테일러스(talus, 돌서렁)이다. 테일러스란 수직절리가 잘 발달하는 곳의 산비탈에 굴러 떨어진 돌들이 수북히 쌓인 것이다. 산기슭에 위에서 아래로 길게 무너져 내린 부분이 많이 있다. 가까이 접근해 보면 크고 작은 암석들이 상부의 암벽에서 떨어져 나와 비탈면에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암석더미를 테일러스(talus) 또는 돌서렁이라 하고 산악인들은 너덜지대라 부른다. 용암이나 화산쇄설층으로 구성된 화산암, 층리가 발달된 퇴적암은 수직과 수평방향으로 풍화를 받아 크고 작은 암괴로 부숴져 절벽이나 경사면 아래에 쌓이게 된다. |
비슬산의 식생 | |
1. 흔히 볼 수 있는 식물 여기에서는 비슬산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 12종을 선별하여 형태적, 생태적 특징을 설명하였다. 1) 소나무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림중 마을 인근이나 저산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주로 내륙에 분포하여 육송, 줄기 상부가 붉다고 하여 해송으로 부른다. 이 식물은 불에 약하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솔방울에 의해 먼 지역까지 불씨가 날라 간다. 잎은 2개씩 뭉쳐나고 수피는 거북등같이 갈라져 쉽게 탈락한다. 열매(솔방울)는 봄에 수분하여 그 다음 해에 익는다. 이와 같은 침엽수중 미국에서 도입한 리기다소나무(3엽송), 원산지가 한국인 잣나무(5엽소), 일본에서 도입한 낙엽송, 바닷가에 있는 곰솔(해송)등이 있다, 비슬산에서는 600m 이하의 저산지나 능선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2) 신갈나무 이 식물은 낙엽교목으로 산지의 중턱 이상에서 주로 분포하는 식물로 우리나라의 산지에서 대표적인 나무로 참나무의 일종이다. 잎은 가지 끝에 주로 뭉쳐나고 길이 7∼20cm로 손바닥모양이며 뒷면의 맥 위에 털이 약간 있고 밑부분은 귀모양이며, 잎자루는 거의 없다. 열매는 도토리로 타원형이다. 비슬산에서는 700m 이상에서 산 정상부까지 분포한다. 정상부에서는 바람의 영향으로 키가 작다. 3) 굴참나무 이 식물은 낙엽교목으로 저산지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참나무의 일종이다. 수피는 코르크가 두껍게 발달하여 깊게 갈라진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잎의 가장자리는 침모양의 예리한 톱니가 있어 상수리나무나 밤나무의 잎과 비슷하지만 뒷면에 星毛가 밀생하여 회백색으로 특히 새잎이 나오는 봄에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한다. 열매는 둥글며 이듬해 가을에 익는다. 비슬산에서는 중턱이하의 사면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4) 생강나무 3월말경 산에서 제일 일찍 노랑꽃이 피는 키 작은 나무로 산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관목이다. 산수유와 피는 시기와 꽃색이 흡사하여 사람들이 산에 산수유가 피었다고 하는데 산수유는 재배식물로 산지에 야생하는 경우는 없다. 잎은 난형으로 흔히 3개의 결각이 생기며 꽃은 잎보다 먼저 피며 작은 꽃이 우산모양으로 많이 달린다. 열매는 10월에 흑색으로 익는다. 열매의 기름의 동백기름 대용으로 많이 이용하여 이 나무를 개동백 혹은 동백나무라 불렀다. 가지와 잎을 문지르면 생강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 하였다. 비슬산에서는 특히 활엽수림 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5) 참싸리 싸리라 부르는 식물은 높이 2m 내외로 우리나라에 20여종 있으며 이 식물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잎은 3출엽이며, 길이 2∼3cm로 난형이다. 꽃은 여름을 대표하는 식물로 8월에 피며 10월에 열매가 익는다. 요즘은 아까시(아카시아)꿀이 많지만 과거에는 꿀을 따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비슬산에는 산지 숲이나 양지 바른 곳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6) 진달래 양지 바른 산지에서 자라는 2m 내외의 낙엽관목으로 유사종으로 흰진달래, 철쭉 등 10여종에 있다. 이 식물은 인간의 간섭이 많은 곳에 야산 구릉지에 주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잎은 길이 4cm 내외의 장타원형으로 뒷면에는 인편이 많다. 꽃은 잎이 나오기 전 4월에 피며 자홍색, 연한 홍색이며 겉에 잔털이 많다. 이 꽃은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 부른다. 이에 비해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 한다. 철쭉은 진달래보다 한달 늦게 꽃이 피며 잎도 같이 달리며, 화경 부분이 끈적끈적 하다. 비슬산에서는 산지정상에 큰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매년 참꽃축제가 열린다. 7) 질경이 길가, 양지바른 빈터에서 흔히 자라며 숲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산지 등산로에서는 아주 좁은 정상에서도 쉽게 관찰되는 식물로 車前草라 부른다. 많은 잎이 뿌리에서 나오며 난형으로 평행맥이 있고 줄기는 없다. 꽃은 6∼8월에 피며 백색이고 잎사이에서 20∼50cm의 화경이 나와 아주 작은 꽃이 많이 달린다. 종자는 흑색인 아주 작으며, 이 종자가 공기중 수분을 머금어 끈적끈적한 분비물이 나와 사람이나 동물에 붙어 등산로를 따라 전파된다. 비슬산에서는 등산로를 따라 분포하고 있으며 대견사지 주변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많다. 8) 억새 양지바르고 건조한 산지에 자라는 가을을 대표하는 식물로 산지 정상의 초지에 큰 집단을 이루는 곳이 많다. 잎은 밑부분이 줄기를 둘러싸고, 가운데 맥은 백색을 띠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어 베이기 쉽다. 꽃은 가을에 피며 작은 꽃이 길이로 밀집하여 달리며, 열매가 성숙하면 작은꽃에 백색의 털이 달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이를 등산객들이 자라면 화병에 꽂는다. 갈대와 다른 점은 억새는 건조한 산지에 살고 갈대는 물가에 산다. 갈대는 화수 전체가 누른 갈색을 띤다. 비슬산에서는 소나무 숲에는 드문드문 있으며 산지 정상의 반자연 초지에 많다. 9) 노랑제비꽃 우리나라에 제비꽃 종류는 40여종이 있으며 노랑제비꽃은 보통 높은 산지의 양지바른 풀밭에 주로 분포한다. 잎은 심장형으로 가장자리에 물결모양의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4∼6월에 피고 황색이며, 길이 2cm 내외로 꽃잎에 털이 있다. 열매는 난상 타원형으로 꽃이 지고 난 뒤 곧 익는다. 팬지(삼색제비꽃)는 제비꽃 종류를 교잡시켜 만든 관상식물이다. 비슬산에서는 정상 부근의 등산로 주변의 풀밭에서 볼 수 있다. 10) 동자꽃 깊은 숲속이나 높은 산 초지에서 자라며 높이 50cm 내외이다. 잎은 마주 달리며 잎자루는 없고, 길이 5∼8cm, 양면에 털이 있다. 꽃은 여름에 피며 화경 끝에 1개씩 달리며 지름 4cm 정도로 적색이다. 좋은 관상식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비슬산에서는 정상부근의 풀밭에서 주로 관찰 된다. 11) 칡 각지의 산지의 가장자리나 숲이 파괴된 곳에 번성하는 덩굴식물이다. 대개의 경우, 칡을 포함한 덩굴식물은 好光性으로 나무를 타고 위로 자라서 숲이 수관(canopy)을 덮어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기도 한다. 잎은 3출엽이며 길이와 폭이 10∼15cm로 털이 있다. 꽃은 여름에 피며 많은 꽃이 달리며 홍자색이다. 꼬투리는 길이가 5∼10cm이며 가을에 익는다. 뿌리는 식용, 약용으로 이용한다. 비슬산에서는 저산지에 숲가나 파괴된 장소에 많이 번성한다.
12) 물봉선 산지의 냇가에서 주로 자라는 일년초로 줄기에 많은 수분이 있으며 마디가 특히 두르러진다. 잎은 길이가 5∼10cm 정도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피며 가지 윗부분에 달리며 길이 3cm, 홍자색으로 꽃잎 안쪽에 자주색 반점이 있으며 고깔모양이다. 열매는 1∼2cm로 익으면 탄력적으로 터지면서 종자가 튀어나간다. 이런모양을 보고 이 식물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touch me not)'라 한다. 비슬산에서는 산지 계곡부에 집단적으로 분포한다. 2. 특정식물 현재 비슬산은 지나친 개발로 인해 많은 식물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따라서 어떤 종이 위협에 처해있는가 또는 보전의 가치가 높은가를 비교 평가하여 보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어떤 식물들이 그 대상이 되는지 정할 필요가 있다. 이 대상이 되는 식물을 특정식물이라 하고 보전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서 분류학적 특이성, 종의 상태, 종이 직면한 위협도, 자원적 가치등에 대한 평가를 하여 점수를 매겨 5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가장 점수가 많은 종이 가장 높은 등급에 속한다. 분류학적 특이성은 종다양성유지 차원에서 유전적 다양성을 고려한 평가항목으로서 상대적으로 유연관계가 적은 종이 긴밀한 유연관계를 갖는 종보다 보전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과 수준에서 유일한 속 또는 종일 경우는 여러 속과 속내 여러 종이 있는 경우에 비해 계통분류학적으로 고립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높은 평가점수를 받는다. 종의 상태는 일정한 지리적 범위 내에서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개체군의 특성에 관한 것으로서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개체군의 크기, 분포양상, 손실율, 동태에 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한곳의 특산속에 해당하는 종은 가장 높은 점수가 부여되고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자생종은 가장 낮은 점수가 매겨진다. 종이 직면한 위협도는 종의 보전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종의 생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알 수 있는 지표로서 법적 보호조치의 유무, 등산로와의 인접성, 서식지파괴나 변경같은 인위적 원인, 포식자나 경쟁 등과 같은 생태적 영향의 정도, 현지의 보전상황으로 판정한다. 자원적 가치는 인간의 관점에서 평가한 것이다, 자원적 가치가 높은 종은 재배화 또는 수입으로 대체하지 않는다면 빠른 속도로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